‘위탁’에서 ‘입양’으로, 장애아동 입양스토리

홀트아동복지회200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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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에서 ‘입양’으로, 장애아동 입양스토리

 

느림의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해 준 내 아들 희석이 - 고재환 ․ 신점희 부부

 

“산삼을 먹어서라도 희석이가 결혼할 때까지 건강하게 살자며 남편과 다짐했잖아요!”

막상 웃으며 말하지만 내심 발달장애를 가진 희석이 때문에 걱정이 많은 엄마. 신점희 씨와 희석이가 모자지간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신점희(50) 씨는 이웃의 소개로 1996년 홀트 위탁모를 시작했다. 남편 고재환(59) 씨도 아이를 무척 좋아해 위탁 아기들을 정성껏 키웠고, 그러다 2001년 2kg 미숙아로 태어난 희석이를 만났다. 인큐베이터에서 나와 자신의 품에 안긴 여린 작은 아기를 엄마는 더 많은 사랑으로 키웠다. 그러나 희석이가 18개월 때 정신발달지체로 입양가정을 찾기가 어렵다고 판정, 2003년 일산복지타운(장애인보호시설)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가정대신 시설로 가야하는 희석이가 안쓰러워 눈물로 밤을 지새운 엄마는 남편과 함께 희석이를 직접 일산까지 데려다 주었다. 

 

  “희석이가 없는 텅 빈 집을 보니 큰 재산을 잃어버린 것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어요. 날 밝기만을 기다렸다 아침 일찍 일산으로 뛰어 갔지요.”

  한달음에 달려가 희석이를 애타며 불렀지만 희석이는 이불을 콕 덮어쓰고는 엄마얼굴도 안보더란다. ‘그 어린 것이 얼마나 화나고 미웠으면 그랬겠냐’며 지금도 마음 아파하는 엄마.

 

“우리 어머님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울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얼마나 펑펑 울었던지 … 죽을 만큼 괴로웠어요.” 친부모의 무관심속에 태어난 희석이가 또 다시 아픔을 겪는 다는 생각에 엄마는 그 길로 남편과 ‘입양’을 결심 했다.

  하지만 엄마가 느낀 입양의 벽은 높았다. 우선 부모가 되기에 법적 나이(부모와 아동의 연령차가 50세 미만)가 많았고, ‘희석이를 사랑하는 엄마 마음’보다 ‘장애를 가진 희석이를 잘 키워줄 수 있는 현실’ 여건들이 부딪쳤다. 하지만 사랑에는 장애가 없는 법! ‘나만큼 희석이를 잘 키울 사람들이 없다’고 울부짖는 엄마의 호소는 진정한 모성애였기에 결국 특별승인을 받아 2003년 11월 아빠 고재환 씨의 호적에 기재되었다.

  늦둥이 희석이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고 있다. 때로는 엄마 아빠의 말벗이 되어 주고 웃어 주는 희석이로 인해 엄마 아빠는 다시 젊어지고 세상을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도 생겼단다.

 

  희석이(6)는 유치원을 다니며 언어 치료를 받고 있다. 말도 행동도 또래보다 늦어 처음에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 어디서 치료를 받아야 할지 막막했지만 이제 엄마는 조금씩 터득해 가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희석이와 함께 산과 동네를 누비며 ‘나무’, ‘꽃’, ‘가게’ 등 단어를 가르치고 간단한 물건 구입부터 잠잘 때 손가락 발가락을 세며 숫자를 익혀 주고 있다. 희석이도 부모님의 사랑때문인지 우려와 달리 간단한 단어나 의사표현을 하는 등 놀랍도록 좋아지고 있다. 역시 사랑 앞에 ‘장애’란 없어 보였다.

  “어쩌다 내뱉는 단어 하나 몸짓 하나에 환호하죠. 건강하게 자라서 사회 구성원으로 자기 몫을 하면서 세상을 살 수 있으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아요.”

행여 장애 때문에 차별 받지 않을까, 성인이 되어서 자신들 없이 먹고 살려면 이것저것 가르쳐 주어야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할 때도 있지만 비록 신발을 신는데 하루가 걸린다 하더라도 천천히 기다려 주고 싶단다. 그저 엄마 아빠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희석이를 위해 조금만 천천히 기다주고 배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란다.



미소왕자 영운이의 부모가 되어 자랑스럽다 - 오효경 ․ 김진미 부부


“끝이 보이지 않는 만큼 아주 넓은 논에 빛나는 황금 벼들이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어요.” 영운이를 만나기 전날 꾸었다는 아빠 오효경 씨의 꿈. 어쩌면 영운이가 자신들을 부모로 선택해 준 것은 아닌지 말한다. 영운이를 위해 가장 튼튼하고 넓은 울타리고 되고 싶다는 부모는 오늘도 뇌성마비 아들 영운이를 위해 세상을 바꾸고 있다.


10년을 ‘한사랑마을(장애영아원)’에서 봉사해 온 김진미 씨. 어느 날 위탁가정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친구와 함께 신청했다. 그리고 2000년 6월 뇌성마비 장애아 16개월의 영운이를 만났다. 원래 시설아동 가정위탁은 한주에 3일정도만 함께 지내지만 영운이는 달랐다. 위탁을 시작한 첫 주가 지나 다시 시설로 영운이를 데려다 준 그날 밤, 영운이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운이가 엄마 아빠와 헤어진 후 눈물 콧물을 흘리며 밤새 울고 있다는 것. 영운이는 위탁부모가 자신의 부모가 되리라는 걸 이미 알았던 것일까! 결국 영운이는 그날부터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오효경(51) ․ 김진미(47) 씨 집에서 계속 지내게 되었다.

 

  영운이가 있어 가족은 행복했다. 영운이를 보기위해 아빠의 퇴근 시간이 빨라지고, 자녀들이 성장해 적막했던 집은 다시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 행복도 오래가지 못하고 갑작스런 이별이 찾아왔다. 영운이가 커서 이제는 영아원이 아닌 다른 장애인보호시설로 가게 된 것이다. 영운이가 비록 다른 시설로 옮겨갔지만 계속 위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찾아 갔지만 되돌아 온 답은 ‘NO' 였다. 아빠는 영운이를 안고 한참을 울었단다.

 

   “영운이를 키우면서 내 새끼라 여겼지만 아픈 아이니까 장래를 생각해서 우리 보다 좋은 부모, 넉넉한 가정에 입양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죠.”

 

위탁을 하면서 엄마는 여러번 아빠에게 입양의향을 묻기도 했지만 아빠는 영운이를 위해 ‘입양’ 보다는 ‘위탁’을 고집했단다. 하지만 영운이가 시설에서 생활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진 아빠는 그날 이후 입양을 서둘게 되었다고. 사실, 영운이는 1999년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홀트에 입양이 의뢰되었다. 하지만 일찍이 뇌기형이 발견되어 입양 불가 진단을 받고 영아원으로 간 것이기에 입양가정을 그것도 국내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영운이는 가족의 사랑 속에 자라고 있다. 특히 아빠의 사랑이 넘쳐 가끔 딸이 시샘하기도 한단다.  ‘장애 아동 키우기 힘들지 않냐며, 선택하여 장애아동의 부모가 된 걸 후회하지는 않냐’는 질문에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일반 아동에 비해 손이 조금 더 갈 뿐이지 똑같다. 오히려 영운이를 통해 인생의 소중한 행복, 기쁨 등을 얻었다’고 주저 없이 말한다. 

 

  하지만 왜 어려움이 없겠는가.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까지 ‘장애아’에 대한 열악한 현실 때문에 엄마는 교육청으로 학교로 몇 달을 뛰어 다녀야 했고, 속상하고 가슴 아픈 일도 수없이 겪어야 했다. 하지만 엄마는 영운이를 위해 모든 힘든 일도 웃어넘긴다. 영운이 학교 등․ 하교에 일주일간 계속되는 재활치료, 다른 장애아를 위한 차량 봉사, 집안 살림까지 엄마의 하루는 바쁘지만 영운이가 좋아지는 모습에 오히려 신이 난단다.

 

  “어머니! 영운이에게 뭘 먹여서 이렇게 좋아졌어요?” 영운이가 평생 근육 약을 먹어야 될지도, 발달이 늦을지도 모른다며 엄마를 겁먹게 했던 의사 선생님이 어느 날 물었단다. 

 

  “당연이 있죠. ‘사랑의 묘약’이요!!”

 

엄마의 외침처럼 소외된 모든 아이들에게 ‘사랑의 묘약’이 처방되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