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사랑글귀에 지친 당신에게 2

신호철2006.11.25
조회89
매일 같은 사랑글귀에 지친 당신에게 2

 

얼마 전 주말이었습니다.

전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서 여자친구와 만날 약속이 있었는데
일이 조금 빨리 끝나서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먼저 도착했습니다.

딱히 할 일도 없어서 계단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한 5분 후에 한 남자가 제 앞에 나타나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주말인데다 사람이 하도 많은 곳이라 전 누구를 만나러 왔나보다 생각하고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정확히 10분을 주기로 한 번씩 나타났습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전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지났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왔다간지 얼마 안 있어 한 여자가 총총 걸음으로 와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군요.
전 한눈에 그 여자가 약속에 늦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주 초조한 얼굴로 누군가를 찾더니 사람이 없는지 발을 동동 구르더군요.
그 순간 저 쪽에서 10분에 한 번씩 나타나던 그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 앞에 오더니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해, 내가 늦었지? 주말이라서 그런가 차 정말 많이 막히더라.
미안해서 어떡하지. 가자, 내가 사과하는 의미로 오늘 정말 맛있는 밥 사줄게.
아니, 네가 하라는 대로 오빠가 다 할게."

약속 시간에 늦은 여자 친구가 미안해 할까봐 그는 먼 발치에 있다가
10분에 한 번씩 와서 확인해보고는 다시 사라졌던 것입니다.


- 작자 미상 (펌)

 

 

아시는 분들은 분명히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인터넷 상에 올라왔던 이 짤막한 글귀 하나는
모든 여성들에 폭발적인 호응과 댓글로 격찬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남자들까지도 정말 멋진 남자라며 쌍수를 들어줬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원츄입니다.
저도 추천하나 줍니다. 돼지꼬리 땡땡이라도 달아줍니다.
일등이면 기분 좋고 꼴등이라도 빙긋이 웃어줄 만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올인에 마지 않을 이 아름다운 남자에 배려를 보세요.

ㅡㅡ;
그러나 헛소리...
매력남에 행동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지켜봐준 사람...
필자, 즉 관객이 있었던 덕택입니다.
이 감동쑈에 전말을 아는 자가 없을 때는 그야말로 말짱꽝이 아닙니까?
이를 두고 ' 뻘짓거리 ' ... 옛 선인들은 이렇게 표현하곤 하셨습니다.

뭘 그리 삐딱하냐구요?


자, 상식적으로 여자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다시 봅니다.


약속시간에 늦어도 한참을 늦었습니다.
헐레벌떡 뛰어왔겠죠?
(여자가 뛰는 건 보통 화장실이 급하거나 좋은 물건이 덤핑으로 나왔을 때..
이 둘 중 하나라고 알고 있는 저로썬 우선 이 대목부터가 수상합니다.

그러나 우선 정말 이랬다고 믿고 밀고나가 보죠.)

그런데 왠 걸 이 남자... 없습니다.
오호라~ 나보다 더 늦게 나타났어요.
늦게와서 미안하니 날 맘대로 하랍니다.
옳거니! 너, 오늘 잘 걸렸다 싶겠지요?
스타일 안 구기고 생색은 내가 다 내겠네~ 싶겠지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럴 거 아닙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이 여자, 늦게온 것 때문에 정신없다가 다행이다 싶은 생각 외에
또 다른 종류에 고마움...
그러니까 필자와 이 이야기를 접하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바로 그 드라마틱한!!!! 근본적인 감동을 체험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이야기에 묘미는 바로 여자가 아무것도 모르게 만드는 남자의 치밀함입니다.
그런데 감동을 무슨 얼어죽을 감동!
여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몇 시간째인 지도 모를 남자에 10분쑈를 까맣게, 정말 까맣게 모를지도 모릅니다!
(10분쑈 설정 자체가 넌센스다. 핸폰은 장식으로 갖고 다니나?)

여자에게 남자는 멋지기는 커녕, 나보다 더 늦은 죄를 용서받으려 비는 남자란 말이지요.
이게 무슨 생쑈란 말인가요?
진짜 감동받아야하는 쪽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어쩌면 그 날 짜증나는 일이 겹쳐 약속까지 늦어버렸는데
애인이라고 하나 있는 게 나보다 더 늦게 와버린 겹짜증에 날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죠~ 반전입니다.

" ...네가 하라는 대로 오빠가 다 할게. "

남자의 이 대사 이후에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 뒷 이야기는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감동의 물결은 거기서 최대치를 이루고 사라져버립니다.

우리는 이미 낚일 대로 낚여서 감동의 물결은 글과는 상관없이 파도타기에 들어갑니다.


훗, 남자는 그 대사를 내뱉은 후

그 날 하루종일 정말 개처럼 끌려다녔을 지도 모릅니다.
이제 감이 오십니까?

이런 류의 믿거나 말거나 러브스토리는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세요.


우와~ 이거 진짜 대박이다! 이러고 따라하지마세요.
감동은 개뿔... 개고생이나 안하면 다행입니다.

어설프게 들켰다면?

당신의 애인이나 와이프가 인터넷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신은 중복으로 욕까지 먹을 겁니다.


스토커인가요? 뒤에서 쫒게?

어차피 훔쳐보고 있으면서 10분마다 얼쩡거리는 건 무슨 청승인가요?


멋진 배려와 멋진 대사는 이야기에 모든 전말이 훌륭하게 맞아떨어졌을 때
즉 상대가 예상 가능하고 이해가 가능한 선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 건 김빠진다~ 싶으십니까? 다 알게 하는데 무슨 감동이냐구요?
속단하지 마세요.

연애기간이 조금만 지나도 그런 빤한 감동조차 주지 못하는 게 당신이니까.
(그렇게라도 잘해보세요. 애인이 실망할 새가 있는지 ㅡㅡ)

알아주지도 않는 헛고생을 해놓고
혼자만 아는 사랑을 해놓고
난 열심히 사랑했어... 라고 푸념치마세요.
상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랑은... 영화가 아닙니다.
누군가 당신의 사랑을 지켜봐주는 게 아닙니다.

 

- 내 사랑에 관객은 아무도 없다. -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 사람과 나입니다.


내 심연에 깔린 복선도.. 반전도.. 깊은 뜻도

내보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상대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직시하세요.

 

사랑은... 싸이월드 스크랩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열심히 당신을 추천해도 소용없습니다.

 

- 내 사랑에 베플은 낚시질이 아니다. -

 

매일매일 쏟아지는 심리와 고백글들... 당신이 적용하지 않으면 허공에 뿌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