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로잡담~!!

애마보이2006.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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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바쁜 뉴요커의 아침 복장은 이색적이다. 정장에 서류가방, 그리고 운동화.. 패션의 첨단을 걷는 뉴요커 들이 아침 출근을 운동화를 신고 한다는 사실! 또한 몇 년 전만 해도 블랙은 뉴요커를 대표하는 컬러였다. 물론 굉장히 쉬크해 보이기도 했지만, 블랙을 선택한 이유는 대도시의 오염에도 더러워지지 않고, 어느 장소에나 무난하게 매치된다는 실용적인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지금은 블랙컬러에서 조금씩 벗어나고는 있지만 뉴요커의 스타일은 여전히 실용주의에 중점을 두고 있다. 라는 단어처럼 낮에는 수트로, 밤에는 언제든지 이브닝 웨어로 손색이 없는 고급스러운 소재, 장식이 주렁주렁 달리지 않는 실용적인 의상은 맨하튼 팬트하우스에 살고 있는 전형적인 미국 상류층의 모습이다. 이들의 왼편 가슴을 보면 작은 폴로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폴로는 결코 포멀한 수트가 아니면서도 고급스러운 상류적 분위기에 매장을 들어서기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캐주얼의 명품인 폴로 랄프로렌으로 더욱 유명한 랄프로렌! 단지 말을 탄 폴로심볼 만으로도 미국 상류층의 한가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패션은 이미지를 소비하는 업종이다. 즉 가격보다도 이미지로 경쟁하는 난이도 높은 감성 산업인 것이다. 일단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니게 되는데, 미국이라는 나라로 대변되는 패션 디자이너 랄프로렌과 캘빈 클라인의 97년 매출액은 한국의 자동차 수출액과도 맞먹었다니 이쯤 되면 패션이라는 산업을 단지 옷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코카콜라, 맥도널드, 나이키는 미국을 대변하기까지 하는 상표들이지만, 과감하게 패션에 국한시킨다면 폴로 랄프로렌(Polo Ralph Lauren)을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자는 없을 듯하다. 폴로 랄프로렌은 한마디로 가장 미국적인 브랜드다. 다수의 미국 중산층 가정이 그렇듯 가족간 유대감을 중시하고, 실용적인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다. 폴로를 만든 랄프로렌은 미국인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디자이너 중 하나로 미국패션의 자존심으로 통한다.

그렇다. 미국을 대표하는 단 한명의 디자이너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랄프로렌(Ralph Lauren)이다. 그만큼 폴로의 랄프로렌은 전세계 패션계에서 확고한 명성을 얻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옷장을 열어 폴로 셔츠를 꺼내어 입고 폴로 타이를 맨다. 폴로 향수를 뿌리고 출근하며, 밤에는 폴로 담요 속에서 잠이 든다. 친구나 가족의 생일이 되면 폴로매장을 찾아가 무엇이 적당할까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완전히 폴로 라이프 스타일이다. 폴로의 인기로 랄프로렌은 전세계에 4500여 개의 매장과 73개의 할인매장, 43개의 플래그쉽 숍(Flagship shop)을 운영하면서 연간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폴로잡담~!!옷 잘 입는 사람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유행에 민감해 변화무쌍한 패션을 즐기는 사람과 유행에 민감하진 않지만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을 내는 사람이다. 랄프로렌은 후자를 타깃으로 성공한 디자이너다. 20세기 초반, 영국과 미국 상류사회의 전통적인 라이프 스타일, 미국 개척시대의 웨스턴 스타일, 옛날 영화들, 야구 선수들의 유니폼.. 랄프로렌 디자인의 근원을 이룬다. 랄프로렌은 한번도 디자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대중의 욕구를 여우처럼 잘 읽어냈고, 성조기 문양을 넣은 디자인들은 후에 토미 힐피거나 갭에도 인용되었고, 캐주얼 웨어를 기본으로 한 미국 스타일의 옷은 전세계에서 유행하고 있다.

랄프로렌은 이란 컨셉을 최초로 도입한 디자이너다. 평일에는 우아하면서도 편안한 슈트를 입고, 주말은 별장에서 캐주얼한 차림으로 자연을 즐기는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을 광고와 매장의 디스플레이에 적극 이용하였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들의 귀속의식을 깊숙이 자극했고, 그것이 바로 랄프로렌의 성공비결이었다.

그 자신도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이다. 1939년 러시안계 유대계의 이민가정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랄프로렌은 종종 피츠 제럴드의 소설 의 주인공인 제이 게츠비에 비교되곤 한다. 실제로 이 소설이 74년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으로 영화화되었을 때, 랄프로렌이 의상디자인을 담당했을 정도. 매장 점원으로 시작해 1967년 폴로라는 브랜드로 넥타이를 팔면서 Polo by Ralph Lauren이란 이름으로 남성패션의 독보적인 디자이너가 되었다. Polo by Ralph Lauren은 1999년 4월 $50억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였다. 그 외의 폴로 랄프 퍼플라넬 폴로진 같은 브랜드가 모두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고, 세계에 4500개 매장을 두고 있다.

맞다. 랄프로렌은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 뿐이다. 대통령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랄프로렌의 옷을 입고, 미국 디자이너로서 처음으로 파리에 매장을 낸 랄프로렌은 단순히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랄프로렌 자신의 꿈을 팔고 있는지 모른다. 폴로가 취급하는 아이템도 정장셔츠, 넥타이 같은 남성복부터 여성복, 향수, 안경, 침대시트, 자기류, 가죽소파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다양하다. 폴로가 피부색이나 연령,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이토록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폴로잡담~!! 미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랄프로렌

폴로잡담~!!오늘날 남성복, 여성복, 캐주얼 및 아동복의 모든 라인에서 고전적인 멋을 유지하면서 다국적 기업으로 성공한 폴로 랄프로렌의 창업자는 다름아닌 디자이너 랄프로렌이다. 패션 비즈니스계의 살아있는 신화라고 불린다. 1968년 넥타이 세일즈맨으로 패션계에 뛰어들었다가 지금까지 자수로 사용되는 심볼마크인 폴로문양을 자수로 새겨넣어 6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 넥타이 라벨의 붐을 일으켜 패션계의 새로운 도전자로 떠올랐다. 성공으로 치닫고 있던 랄프로렌의 사업이 궤도에 오른 건 1970년대 초. 그 당시, 폭이 좁은 넥타이가 유행의 끝을 달리던 무렵이라 사실 사람들은 그런 스타일의 넥타이에 싫증이 날 무렵이었다. 첫눈에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디자인, 폭이 넓은 디자인의 넥타이 성공은 이듬해 남성복을 만드는 사업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폴로의 상승세는 계속 이어졌다. 넥타이의 성공에 이어 사업확장을 하게 된 결과, 재정운영의 빈약과 비용확장의 문제에 부딪히자 극복하기 위해 직접 생산방식에서 라이센스 생산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면서. 랄프로렌은 고급 패션가인 베버리힐즈에 첫 직매장을 낸 미국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였고, 런던에 매장을 내면서 유럽으로도 진출한다.

불과 20년 사이에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공한 비결은 패셔너블하고 유행에 민감하기보다는 전통적인 스타일을 고집스럽게 지킴으로써 독창적인 개성을 확립하고 있다는 데 있다. 폴로 랄프로렌의 제품은 영국 빅토리아조의 패션과 편안한 카우보이 패션, 그리고 폴로경기 선수들의 패션을 복합시킨 풍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정한 정장보다는 캐주얼하게 입을 수 있는 외출복, 스포츠웨어에서 그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스타일은 다분히 미국적이다. 폴로 넥타이는 정통 영국풍의 분위기에 미국적인 스포티함을 첨가한 패턴이 특징이다. 어떤 것이 미국적인 스타일이냐는 물음에 명쾌하게 '폴로 스타일'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폴로는 상품이 아닌 문화양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랄프로렌은 일찍이 사람들에게 생활양식을 제시한 디자이너였다. 직장에서 입는 옷부터 시작해 넥타이는 물론이고, 잠자리에서 입는 파자마와 침대시트까지 같은 이미지를 연출한 최.초.의 디자이너다. 당시만 하더라도 생각지도 못했던 시도로 신선한 충격이었고, 사람들은 로렌의 통일화된 상품을 살 때면 어떤 계층이나 지위에 속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품격을 파는 것"이라는 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폴로의 이미지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거다.

미국 브롱스(Bronx) 태생인 랄프로렌은 화가였던 아버지와 평범한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4명의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야구를 좋아하고 데이트도 하는 평범한 소년이었지만, 색채 감각만은 남달랐다고 한다. "화가였던 아버지에게서 색에 대해 천성적인 감성을 물려받았다. 학교에 다닐 때 내가 무엇을 입든지 아이들은 어디서 샀는지 묻곤 했다"고 고백한다. 맨하튼의 사립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던 그는 2년 뒤 중퇴를 하고 장갑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그 후, 넥타이 제조회사로 옮겨 폭이 넓은 넥타이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는데, 로렌의 재능을 알아본 노먼 힐튼 사장이 그에게 5만 달러를 지원했고, 로렌은 이라는 회사를 차리게 된다. 67년 그가 직접 디자인한 넓은 폭의 넥타이를 갖고 이름도 유명한 백화점인 블루밍 데일즈에 찾아갔지만, 백화점측은 당시 트렌드였던 폭이 좁고 랄프로렌이라는 라벨을 없애줄 것을 원했다. 그래도 로렌은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블루밍 데일즈는 경쟁백화점에서 그의 넥타이가 불티나게 팔리자 그를 다시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이들은 랄프로렌을 가리켜 진정한 전통성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랄프로렌의 상품이 너무 새롭고 깔끔하게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로렌의 답변은 간단하다. "나의 감각 속에는 전통주의가 바탕을 깔고 있다. 그 세계 속에서 생활하고, 즐기는 걸 나는 존중한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이것저것을 끄집어낸다"고 말한다. 그리고 "찰스 황태자도 내 옷을 구입한다"고 자신있게 덧붙인다.

30년간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랄프로렌은 덧없이 지나가고 마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미국인들조차 원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구현한 장본인이다. 국내에서도 폴로의 인기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메리칸 캐주얼이란 새로운 패션영역을 대중에게 전파한 데 이어, 폴로 스포츠, 폴로 골프와 블루라벨의 최고급 기성복인 랄프로렌 컬렉션, 아동복인 폴로베이비, 다양한 품목의 폴로 홈 컬렉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데 차례로 성공했다. 랄프로렌은 자신의 패션 철학에 관해 "디자인하는 데 있어 나의 목표는 궁극적인 꿈을 실현하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상상 가능한 최상의 실제"라고 밝힌 바 있다.

 

폴로잡담~!! 랄프로렌 스타일

폴로잡담~!!그냥 보면 평범한 옷 같다. 그런데 입으면 입을수록 폼난다. 그래서 폴로는 즐겁다. 특히 겨울만 되면 포근한 폴로 스웨터 하나쯤은 누구나 탐을 내게 된다. 학교 갈 때나 친구 만날 때 언제 어디서나 잘 어울리고, 무난하면서도 세련돼 보여 실용적인 면에서도 인기 만점이다. 행복해지는 폴로스타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일단은 단정함과 깔끔함을 떠올리면 될 듯하다. 사립학교 교복과 같은 스타일이다. 그런데 약간의 스포티함이 가미된 것이야말로 폴로 랄프로렌의 진정한 드레스 코드다.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범생이라고 해야 할까. 순수한 여학생 시절의 꿈꾸는 이상향이자 지적 남성들의 영원한 노스탈지어.. 주로 회의가 끝난 뒤 간단한 점심을 하고, 야외에서 열리는 공식적인 모임에서 요구하는 드레스 코드로도 경제계, 의료계 같은 보수적인 조직이 애용하는 브랜드다. 활동적이면서도 초청자에게 예의를 갖출 것을 원할 때 내세우는 코드가 바로 폴로 랄프로렌인 것이다.

랄프로렌을 포함한 미국식 패션은 합리주의에 바탕한 실용성을 강조한다. 1차 대전이후,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게 된 미국인들은 패션 선진국인 유럽패션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여기에 자신들의 문화를 접목해 나갔다. 가장 미국적인 디자이너, 랄프로렌은 영국의 전통적인 디자인에 미국문화를 가미한, 아메리칸 전통으로 정착하게 만들어 가벼운 유행에 지친 소비자들에게 변치 않는 명품으로 꾸준히 사랑 받고있다.

폴로잡담~!!랄프로렌의 옷은 미국의 패션 그 자체다. 동시에 폴로의 카탈로그, 광고 역시 미국식 비주얼의 상징이다. 1967년, 폴로 넥타이 사업을 런칭한 이래, 올해로 36주년이 된 폴로 랄프로렌은 30여년간 패션계의 거대한 흔적을 남겼다. 또한 폴로는 미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 자체에도 거대한 파급효과를 주었다. 전통적인 옷을 지금의 감각으로 신선하게 변형시킨 것과 동시에 동부에 사는 명문 정치가들이나 경제계 인사들을 타깃으로 해서 영국 귀족들의 생활을 신대륙 아메리카에 맞춰 해석해서 제안했다.

그는 미국인들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과거로의 동경과 서부 대초원에 대한 향수를 옷에 반영시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귀족적인 취향을 느끼게 하는 트래디셔널한 옷으로 전세계에서 최고의 브랜드로 사랑 받고있다. 영국풍 전통을 바탕으로 미국문화를 전통으로 승화시켜 가장 미국적인 브랜드로 평가 받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옛 것을 모방하는 전통이 아니다. 때와 장소를 초월하여 느낄 수 있는 전통인 거다. 이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들을 요소요소에 집약해 탄생한 폴로 랄프로렌이 오랫동안 사랑 받을 수 있는 비결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평일에는 우아하면서도 편안한 슈트를 입고, 주말에는 시골집에 가서 대자연에 어울리는 캐주얼 옷차림을 즐기는 것! 폴로는 패션을 통해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계속 제안해왔다. 랄프로렌이 창안한 고풍스럽고 따듯한 패션스타일은 도시에 사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안처가 되고 공감을 일으켰다. 옷이란 원래 입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임에 틀림없다. 일터에서, 집에서, 그리고 사교와 취미를 즐기는 장소에서.. 개인들이 보내는 생활은 실로 다양하지만, 옷을 통해서 개성적인 삶이 되기도 하고 멋을 창출하기도 한다.

남성복에서의 미국식 패션은 자연스러운 어깨선, 좁은 소매, 한 개의 뒤트임을 특징으로 잡는다. 체형을 살짝 감추는 듯한 넉넉함, 활동하기 편한 스타일도 엿볼 수 있다. 패션 스타일에서도 미국인들의 실용주의 정신은 강하게 묻어 나온다. 그러나 유럽식 패션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우아함을 강조하긴 하지만, 어깨는 여전히 딱딱한 느낌을 살려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럽인의 특성이 배어난다. 랄프로렌은 전통을 살리는 유럽적 감성과 기능적이고도 실용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을 혼합하고 있다. 언젠가 그가 한 말이 기억난다. "우리는 단지 옷을 팔지 않습니다. 우리는 꿈과 비전을 팝니다"

 

폴로잡담~!! 성공의 비결

폴로잡담~!!흰색 티셔츠가 하나 있다고 치자. 이 하얀 순면 티셔츠는 싸구려 할인매장에서는 몇 천원에 팔리지만, 명품 브랜드 매장에서는 수 십 만원에도 척척 팔린다. 같은 순면 티셔츠라 해도 옷깃에 붙은 작은 라벨에 따라 가격은 달라지는 거다. 이제 브랜드는 가장 중요한 자산가치로 평가 받고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격이나 품질은 어느 경쟁자라도 모방할 수 있지만, 독창적인 스타일은 모방할 수 없는 성역이기 때문!

다른 어떤 상표보다 뛰어나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고,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최종적인 선택에 이르게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말은 바로 '느낌'이다. 면으로 만든 손바닥만한 티셔츠라도 수 십 만원의 가격은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데도 타당하게 만드는 건 바로 고객의 '느낌'이다. 우리는 폴로라는 이름을 들으면 뭐가 떠오르는가? 상류층의 여유로운 분위기에 벌써부터 마음이 편안해지고 설레인다. 폴로는 이런 숨쉬는 인간과 브랜드간의 교감을 이루는데 완벽하다고 해도 무방하리만큼 성공했다. 바로 랄프로렌이 성공한 비결이다.

폴로 랄프로렌이 오랜 동안 마니아를 형성해오면서 사랑 받을 수 있던 배경은 차별화된 디자인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자연스러운 품위와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폴로문양은 전세계 사람들이 입고 생활하는 방식을 그려내고 있다. 즉, 디자이너 랄프로렌의 비전과 영향력은 패션이라는 국한된 지역을 넘어서 광고, 인테리어, 매장 등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디자인컨셉트를 상품화해 내놓음으로써 폴로는 고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의류 한장을 걸치는 것이 아니라 에 소속됐다는 로열티를 부여 받고 있는데, 따라서 고품격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고 만족시키는 것이다.

폴로에 있어서 디자인은 곧 전략이며, 전략은 곧 상품자체를 말한다. 세계적인 트렌드와 독창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상품개발을 위해 세계 25개국에 150개 공장을 가동 중이며, 9개국에 본부를 두는 엄격한 관리시스템을 운영중이다. 폴로를 이끌어가는 디자이너들도 디자인의 모티브를 찾기 위해 세계를 여행하면서 아이디어를 발굴, 조합하여 매 시즌마다 새로운 컨셉트를 제시한다.

올해는 이라크 전으로 미국의 인기가 뚝 떨어졌고, 게다가 할리우드 스타들조차 반전에 깊은 공감을 하고있는 터이지만, 해마다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볼거리는 한자리에 모이는 유명 배우들의 얼굴 뿐만 아니라, 시상대에 오르는 스타들의 패션 또한 적지 않은 세간의 화제가 된다. 특히 2000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기네스 펠트로! 그날의 진정한 히로인으로 만든 것은 분홍빛의 우아한 랄프로렌 컬렉션의 드레스였다.  아주 심플한 디자인이지만 진달래 색으로 꿈속 연인 같은 청순한 이미지를 연출해 기네스 펠트로에 시선이 꽂히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폴로잡담~!!뜨려면 아카데미를 잡아라! 패션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불문율! 시상식에서 스타들이 입고 나온 의상에 따라 올해 뜬 디자이너가 가려지고, 곧바로 매출의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카데미 시상식은 표면적으로 할리우드 영화인들의 잔치이지만, 한편으로는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통해 첨단패션의 경향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쇼 무대로서의 역할도 한다. 실제로 2001년 아카데미의 경우, 기네스 펠트로가 입고 나왔던 랄프로렌의 분홍색 드레스는 전세계적으로 전파를 탄 뒤, 똑 같은 제품을 구입하려는 전화가 폭주해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하니..

패션전문지 보그에 따르면, 랄프로렌이 지난해 60억 달러(8조 4천억원)의 매출을 올려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캘빈 클라인(44억 달러), 토미 힐피거, 조르지오 아르마니, 도나 카란 순으로. 아르마니를 빼면 5위 안에는 모두 미국 디자이너로 실용성을 강조한 미국 패션이 예술적 성향이 짙은 유럽패션보다 인기가 높았는데, 그 중 랄프로렌이 최고를 차지한 것이다. 이 매출기준은 의류 뿐 아니라 화장품, 향수와 다른 회사로부터 받는 상표 사용료도 포함되어 있다. 랄프로렌은 스포츠웨어와 셔츠 뿐 아니라 안경, 구두, 모피, 스카프, 보석.. 거의 전부분에서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폴로 랄프로렌, 폴로 스포츠, 랄프로렌.. 브랜드를 다각도로 전개중인 랄프로렌 컴퍼니는 1997년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9년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도 뛰어들어 텔레비전 시트콤에 단역배우로 참여하기까지 하는 적극성을 보이면서, 자신의 디자이너 라이프스타일을 인터넷과 TV, 신문에 판매하기 위해 NBC와 NBC계열 회사와 30년간 계약을 체결했다.

랄프로렌은 미국의 경제잡지인 포브스가 선정하는 미국 억만장자들 중 빼어난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베스트 드레서로도 반드시 소개된다. 랄프로렌 자신이 폴로가 주는 이미지와도 같은 삶을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전통과 품격을 파는 폴로의 창시자! 미국을 대표하는 단 한명의 디자이너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확실히 랄프로렌이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 아니었다    
나의 꿈을 실천하기 위해 디자이너가 된 것이다"   
Ralph Laur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