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의 발자취는 거대하다. 그 이름은 마치 선대의 성인처럼 하나의 위엄으로 우리를 억누른다. 딜런과 그의 음악을 피해 가는 것은 '록 역사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를 아는 것은 납세와 같은 신성한 의무에 다름 아니다. 미국의 음악계와 학계에서 '딜런 읽기'는 실제로 교양필수 과정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는 록의 40년 역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그리고 롤링 스톤스와 함께 최정상의 위치에 점한다. 그러나 이들 '전설의 빅 4' 가운데서도 딜런이 남긴 궤적은 차별화 아닌 특화되어 역사를 장식한다.
얼핏 그의 위상은 '실적주의'로 따질 때 매우 허약해 보인다. 엘비스, 비틀스, 롤링 스톤스는 그 화려한 전설에 걸맞게 무수한 히트곡을 쏟아냈다. 넘버 원 히트곡만 치더라도 얼비스는 18곡, 비틀스 20곡, 스톤스는 8곡이나 된다. 하지만 딜런은 그 흔한 차트 1위곡 하나가 없다. 'Like a rolling stone'과 'Rainy day #12 & 35'등 두 곡이 2위에 오른 것이 고작이다. 차트 톱 10위를 기록한 곡을 다 합쳐봐야 4곡에 불과할 뿐이다.
그에게 대중성이란 어휘는 어울리지 않는다. 상업적이란 말과는 아예 인연이 없다. 이렇듯 실적이 미미한 데도 록의 역사는 마치 신주 모시듯 그를 전설적 존재로 떠받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틀스, 스톤스, 엘비스는 차트 정복 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비록 그 가지는 다를지언정 '록의 스타일 확립'이라는 몸체는 유사하다는 것이다. 비틀스는 록의 예술적 지반을 확대했고, 스톤스는 록에 헌신하여 형식미를 완성했고, 엘비스는 록의 정체성을 부여했다고들 한다. 분명히 딜런도 몸체에 자리한다. 깃털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타 3인의 몸체가 외양이라면 그는 '내면'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노랫말이요, 메시지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음악은 사운드와 형식만으로 이미 메시지가 아닌가?
그의 가사는 그러나 때론 메시지의 파악이 어려운 '난해한 현대시'와 같다. 밑줄 긋고 열심히 분석해도 도대체 명쾌하지가 않다. 1960년대 중반 , , 가 연속 발표되었을 때, 미국 각 대학의 영문과에 '밥 딜런 시분석'강좌 개설이 유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팝팬들에게 딜런이 상대적으로 소원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도 이 정도인데 영어의 벽에 막혀 있는 우리가 어찌 그를 쉽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 때문인지 음반마저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 초기곡으로 알려진 것은 그나마 메시지가 확연한 'Blowin in the wind'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1970년대 중반의 금지곡 태풍으로 반전 노래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방송과 판매가 금지 되었다.
언어 장벽과 무관한 음악 스타일 측면에서도 우리의 '홀대'는 마찬가지였다. 멜로디가 그럴싸한 곡이 있더라도 풍기는 내음이 지극히 '미국적'이었기에 우리의 청취 감성은 딜런을 꺼리곤 했다. 그의 음악 세계라 할 포크, 컨트리, 블루스는 미국 전통과 긴밀한 함수 관계를 지닌다. 선율과 사운드의 영국적인 맛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그의 음악에 잠기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이에 우린 어느덧 딜런과 크게 멀어져버렸다. 록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꼭 딜런에서 막힌다. 신세대 가운데 더러는 우리의 팝 수용 문화에서 딜런 공백이 가져온 취약성을 맹렬히 질타하기도 한다. 우리 기준에서의 '팝 음악 여과'는 바람직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의역은 정확한 직역이 기초돼야 올바르다. 미국의 해석을 전제한 뒤라야 우리식 필터링의 의의가 배가된다. 그 직역의 첫 번째 대상이 바로 밥 딜런이다.
록의 역사는 실로 위와 아래, 진보와 보수, 주류와 비주류, 기존과 대안이 끊임없이 부침을 되풀이 해왔다. 밥 딜런이 밟아온 길은 스것의 축소판이었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서라도 -가령 프로테스트의 깃발을 울렸을 때나, 대중성에 기웃거렸을 때나- 딜런이 주변의 압박에 수동적으로 임한 적은 없다. 남이 시켜서 일렉트릭의 세계로 떠밀려 간 것이 아니었고, 의도적으로 신비를 축적하기 위해 은둔했던 것도 아니다. 그의 터전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가 지배하는 세계였다.
비평가들이 밥 딜런을 전설로 숭앙하는 것은 그가 대중 음악계에서는 보기 드문 '음악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음악인의 최고 영예인 '아티스트'란 소리를 들어 마땅했다.
그는 록에 언어를 불어넣었다. 포크와 컨트리를 록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시대와 맞서기도 했고 자신의 예술성에 천착하기도 했다.그러한 업적과 성과의 편린들이 모여 그의 '광활한 아티스트의 세계를 축조하고 있다.
밥 딜런은 역사의 수혜와 위협 속에서 '인간'을 살려냈다. 음악인으로서 인간의 몸체는 다름 아닌 자유일 것이다.
Bob Dylan - knocking on heavens door
밥 딜런의 발자취는 거대하다. 그 이름은 마치 선대의 성인처럼 하나의 위엄으로 우리를 억누른다. 딜런과 그의 음악을 피해 가는 것은 '록 역사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를 아는 것은 납세와 같은 신성한 의무에 다름 아니다. 미국의 음악계와 학계에서 '딜런 읽기'는 실제로 교양필수 과정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는 록의 40년 역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그리고 롤링 스톤스와 함께 최정상의 위치에 점한다. 그러나 이들 '전설의 빅 4' 가운데서도 딜런이 남긴 궤적은 차별화 아닌 특화되어 역사를 장식한다.
얼핏 그의 위상은 '실적주의'로 따질 때 매우 허약해 보인다. 엘비스, 비틀스, 롤링 스톤스는 그 화려한 전설에 걸맞게 무수한 히트곡을 쏟아냈다. 넘버 원 히트곡만 치더라도 얼비스는 18곡, 비틀스 20곡, 스톤스는 8곡이나 된다. 하지만 딜런은 그 흔한 차트 1위곡 하나가 없다. 'Like a rolling stone'과 'Rainy day #12 & 35'등 두 곡이 2위에 오른 것이 고작이다. 차트 톱 10위를 기록한 곡을 다 합쳐봐야 4곡에 불과할 뿐이다.
그에게 대중성이란 어휘는 어울리지 않는다. 상업적이란 말과는 아예 인연이 없다. 이렇듯 실적이 미미한 데도 록의 역사는 마치 신주 모시듯 그를 전설적 존재로 떠받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틀스, 스톤스, 엘비스는 차트 정복 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비록 그 가지는 다를지언정 '록의 스타일 확립'이라는 몸체는 유사하다는 것이다. 비틀스는 록의 예술적 지반을 확대했고, 스톤스는 록에 헌신하여 형식미를 완성했고, 엘비스는 록의 정체성을 부여했다고들 한다. 분명히 딜런도 몸체에 자리한다. 깃털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타 3인의 몸체가 외양이라면 그는 '내면'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노랫말이요, 메시지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음악은 사운드와 형식만으로 이미 메시지가 아닌가?
그의 가사는 그러나 때론 메시지의 파악이 어려운 '난해한 현대시'와 같다. 밑줄 긋고 열심히 분석해도 도대체 명쾌하지가 않다. 1960년대 중반 , , 가 연속 발표되었을 때, 미국 각 대학의 영문과에 '밥 딜런 시분석'강좌 개설이 유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팝팬들에게 딜런이 상대적으로 소원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도 이 정도인데 영어의 벽에 막혀 있는 우리가 어찌 그를 쉽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 때문인지 음반마저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 초기곡으로 알려진 것은 그나마 메시지가 확연한 'Blowin in the wind'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1970년대 중반의 금지곡 태풍으로 반전 노래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방송과 판매가 금지 되었다.
언어 장벽과 무관한 음악 스타일 측면에서도 우리의 '홀대'는 마찬가지였다. 멜로디가 그럴싸한 곡이 있더라도 풍기는 내음이 지극히 '미국적'이었기에 우리의 청취 감성은 딜런을 꺼리곤 했다. 그의 음악 세계라 할 포크, 컨트리, 블루스는 미국 전통과 긴밀한 함수 관계를 지닌다. 선율과 사운드의 영국적인 맛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그의 음악에 잠기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이에 우린 어느덧 딜런과 크게 멀어져버렸다. 록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꼭 딜런에서 막힌다. 신세대 가운데 더러는 우리의 팝 수용 문화에서 딜런 공백이 가져온 취약성을 맹렬히 질타하기도 한다. 우리 기준에서의 '팝 음악 여과'는 바람직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의역은 정확한 직역이 기초돼야 올바르다. 미국의 해석을 전제한 뒤라야 우리식 필터링의 의의가 배가된다. 그 직역의 첫 번째 대상이 바로 밥 딜런이다.
록의 역사는 실로 위와 아래, 진보와 보수, 주류와 비주류, 기존과 대안이 끊임없이 부침을 되풀이 해왔다. 밥 딜런이 밟아온 길은 스것의 축소판이었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서라도 -가령 프로테스트의 깃발을 울렸을 때나, 대중성에 기웃거렸을 때나- 딜런이 주변의 압박에 수동적으로 임한 적은 없다. 남이 시켜서 일렉트릭의 세계로 떠밀려 간 것이 아니었고, 의도적으로 신비를 축적하기 위해 은둔했던 것도 아니다. 그의 터전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가 지배하는 세계였다.
비평가들이 밥 딜런을 전설로 숭앙하는 것은 그가 대중 음악계에서는 보기 드문 '음악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음악인의 최고 영예인 '아티스트'란 소리를 들어 마땅했다.
그는 록에 언어를 불어넣었다. 포크와 컨트리를 록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시대와 맞서기도 했고 자신의 예술성에 천착하기도 했다.그러한 업적과 성과의 편린들이 모여 그의 '광활한 아티스트의 세계를 축조하고 있다.
밥 딜런은 역사의 수혜와 위협 속에서 '인간'을 살려냈다. 음악인으로서 인간의 몸체는 다름 아닌 자유일 것이다.
밥 딜런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