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배를 타고 남해로 건너온 나는 그곳이 얼마나 외진곳인지 알고있을 필요가 있었다. 도로로 걸어나와 아주머니께 버스를 물어봤지만 한시간에 한대 있을까말까하는 곳에 하필 와있었던것이었다.지나가는 차도없었다. 체감온도 30도를 웃도는 더위속에서 나는 아스팔트길을 걸어야했다. 한 20분정도 걸었을까? 타들어가는 내살들과 진득하게 붙어가는 내 운동화. 지칠데로 지쳐버렸다. 손을 흔들어 지나가는 차들을 잡아보았지만 매정하게그냥 가버리는차들. 이때구세주처럼 내앞에선 트럭을 타고 읍내까지 나갔다. 보리암까지 갈려면 읍내에서 가는편이 좋을거라는 동네 아주머니의 충고에 따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쪽마늘이 한창인 남해. 가지런히 누워있는 마늘들이 인상적이었다. 땡볕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 뽑아놓은 마늘이던가... 마늘향가득한 남해들녘이 왠지 푸근하다 태워준 트럭아저씨께서 친절하게 터미널 앞까지 데려다 주시곤 볼일보러 가셨다. 얼마나 고마운지 말도 못한다. 표를 끊어놓고 굶주린 배를 채우러 돌아보기로했다. 버스시간인 한시간가량 남았기 때문이다. 근처에 시장이 있다고 해서 젤좋아하는 시장표 칼국수를 찾으러 나섰다. 재래시장의 현대화 바람이 이곳까지 불었는지 구석진곳에 시장표 칼국수가 먹고싶었지만 결국 찾지못해서 깔끔하게 생긴 '오고파분식'집에서 젤좋아하는 칼국수를 먹었다. 얼마나 맛나던지 혀가 다 데이도록 훌훌 말아먹었다. 배도부르고 따땃한 날씨에 버스에 오르자마자 졸기시작했다. 무슨이윤지는 몰라도 본능적으로 내릴때가되어서 번쩍 눈을 뜨고는 버스에서 후다닥 내렸다. 피곤하지만 설레이는 가슴은 어쩔수없었다. 도로한복판에 내려진 나와 보리암까지 가는 일행들은 보리암입구까지 걸어가서 셔틀버스를 타야만했다. 여행중에 만난 제일 가슴깊은 아저씨...좋은말씀 참많이도 들었다. 사실 이야기를 듣느라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여튼 남는게 가장 많았던 보리암을 향한길이었다. 보리암입구까지 도란도란 많은 이야길 나누고 보리암셔틀버스를 탔다 (악덕업주들...셔틀버스가 편도 1000원이나한다.-"-) 모자를 쓰신분이 그분인데 사진을 미쳐 찍지 못해많이 아쉽다. 열심히 올라간 보리암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깜짝놀랬다 물론 그날이 휴일이기는 했지만.. 여튼 향일암 스님말씀이 떠올랐다. 경상도절이 사람이 많이 다녀 부자절이 많다더니. 이것보고 하시는 말씀이구나 싶었다. 여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너무 쉽게 지쳐버렸다. 탁트인 바다와 산,그리고 섬이 어울어져 명성에 걸맞는 보리암. 안개속에 바다는 쉽게 그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가슴은 뻥뚤렸다. 보리암암자와 조금 떨어진곳에 이성계가 기도했던 기도처가 있다고 해서 사람들도 피할겸 기도처를 찾아 내려갔다 울창한 대나무숲사이로 부는 바람만큼 시원한게 없었다. 여튼 아저씨와 건빵을 먹으면서 또 도란도란 많은 이야길 나누었다. 버스시간이 임박해진줄도 모르고 말이다 여튼 부랴부랴 버스타러 초고속으로 보리암을 내려왔지만 결국 5분차이로 놓치고 말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공익근무요원의차를 타고 다행이 터미널까지 올수있었지만말이다 ^^ 부산에서 약속이 있어서 늦어지기전에 남해를 떠나야했다. 빵빵한 내 작은 배낭과 가벼운 내 운동화모두 벗어재끼고는 맨뒷자석에 보기좋게 누워버렸다.너무 많이 걸었던 하루였다. 고속도로까지 남해를 놓치고 싶지않아 잠을 참았다. 남해대교를 뒤로하고 혼로떠난 내 첫여행은 마무리지었다. 물론 그후로 부산도 들르고 청주도 들렀지만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들렀던곳이기때문에 나는 아쉽지만 남해를 끝으로 첫여행을 마무리 지어야했다 많은인연들을만나고 많은 생각들을 하고 많은것들을 보고.. 흔히들걱정하는 외로움이나 무서움같은건 느낄새가없었다. 더 늦기전에 한번더 다녀올생각이다. 참고로 나는 이렇게 둘러보는데 10만원조금넘게 들었다. 물론 움직이는시간이 아까워서 먹게된 삼각김밥이나 라면등이 식비를 아끼게된결과를 낳긴했지만 차비나 입장료가아니고서야 돈쓸때가 없었다. (물론 절에서 잘땐 식비도 아껴진다 ^^) 여튼.말많은 나도 혼자서 다녀왔다 말할사람이 없어서 입에서 쉰내가 나지않을까 걱정했지만 가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되고 많은사람들과 많은이야길나누어서 그런걱정은 할필요가없었다. 그래서 외롭지도 않았고 그래서 무섭지도않았다. 아직 대한민국은 홀로여행하는 여자들에겐 관대한 나라다. 2
[경남 남해]보리암
여수에서 배를 타고 남해로 건너온 나는 그곳이 얼마나 외진곳인지 알고있을 필요가 있었다.
도로로 걸어나와 아주머니께 버스를 물어봤지만 한시간에 한대 있을까말까하는
곳에 하필 와있었던것이었다.지나가는 차도없었다.
체감온도 30도를 웃도는 더위속에서 나는 아스팔트길을 걸어야했다.
한 20분정도 걸었을까? 타들어가는 내살들과 진득하게 붙어가는 내 운동화.
지칠데로 지쳐버렸다. 손을 흔들어 지나가는 차들을 잡아보았지만 매정하게그냥 가버리는차들.
이때구세주처럼 내앞에선 트럭을 타고 읍내까지 나갔다.
보리암까지 갈려면 읍내에서 가는편이 좋을거라는 동네 아주머니의 충고에 따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쪽마늘이 한창인 남해.
가지런히 누워있는 마늘들이 인상적이었다.
땡볕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 뽑아놓은 마늘이던가...
마늘향가득한 남해들녘이 왠지 푸근하다
태워준 트럭아저씨께서 친절하게 터미널 앞까지 데려다 주시곤 볼일보러 가셨다.
얼마나 고마운지 말도 못한다.
표를 끊어놓고 굶주린 배를 채우러 돌아보기로했다.
버스시간인 한시간가량 남았기 때문이다.
근처에 시장이 있다고 해서 젤좋아하는 시장표 칼국수를 찾으러 나섰다.
재래시장의 현대화 바람이 이곳까지 불었는지 구석진곳에 시장표 칼국수가 먹고싶었지만
결국 찾지못해서 깔끔하게 생긴 '오고파분식'집에서 젤좋아하는 칼국수를 먹었다.
얼마나 맛나던지 혀가 다 데이도록 훌훌 말아먹었다.
배도부르고 따땃한 날씨에 버스에 오르자마자 졸기시작했다.
무슨이윤지는 몰라도 본능적으로 내릴때가되어서 번쩍 눈을 뜨고는 버스에서 후다닥 내렸다.
피곤하지만 설레이는 가슴은 어쩔수없었다.
도로한복판에 내려진 나와 보리암까지 가는 일행들은
보리암입구까지 걸어가서 셔틀버스를 타야만했다.
여행중에 만난 제일 가슴깊은 아저씨...좋은말씀 참많이도 들었다.
사실 이야기를 듣느라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여튼 남는게 가장 많았던 보리암을 향한길이었다.
보리암입구까지 도란도란 많은 이야길 나누고 보리암셔틀버스를 탔다
(악덕업주들...셔틀버스가 편도 1000원이나한다.-"-)
모자를 쓰신분이 그분인데 사진을 미쳐 찍지 못해많이 아쉽다.
열심히 올라간 보리암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깜짝놀랬다 물론 그날이 휴일이기는 했지만..
여튼 향일암 스님말씀이 떠올랐다. 경상도절이 사람이 많이 다녀 부자절이 많다더니.
이것보고 하시는 말씀이구나 싶었다. 여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너무 쉽게 지쳐버렸다.
탁트인 바다와 산,그리고 섬이 어울어져 명성에 걸맞는 보리암.
안개속에 바다는 쉽게 그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가슴은 뻥뚤렸다.
여튼 아저씨와 건빵을 먹으면서 또 도란도란 많은 이야길 나누었다.
버스시간이 임박해진줄도 모르고 말이다
여튼 부랴부랴 버스타러 초고속으로 보리암을 내려왔지만
결국 5분차이로 놓치고 말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공익근무요원의차를 타고 다행이 터미널까지 올수있었지만말이다 ^^
부산에서 약속이 있어서 늦어지기전에 남해를 떠나야했다.
빵빵한 내 작은 배낭과 가벼운 내 운동화모두 벗어재끼고는 맨뒷자석에
보기좋게 누워버렸다.너무 많이 걸었던 하루였다.
고속도로까지 남해를 놓치고 싶지않아 잠을 참았다.
남해대교를 뒤로하고 혼로떠난 내 첫여행은 마무리지었다.
물론 그후로 부산도 들르고 청주도 들렀지만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들렀던곳이기때문에
나는 아쉽지만 남해를 끝으로 첫여행을 마무리 지어야했다
많은인연들을만나고 많은 생각들을 하고 많은것들을 보고..
흔히들걱정하는 외로움이나 무서움같은건 느낄새가없었다.
더 늦기전에 한번더 다녀올생각이다.
참고로 나는 이렇게 둘러보는데 10만원조금넘게 들었다.
물론 움직이는시간이 아까워서 먹게된 삼각김밥이나 라면등이
식비를 아끼게된결과를 낳긴했지만 차비나 입장료가아니고서야 돈쓸때가 없었다.
(물론 절에서 잘땐 식비도 아껴진다 ^^)
여튼.말많은 나도 혼자서 다녀왔다
말할사람이 없어서 입에서 쉰내가 나지않을까 걱정했지만
가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되고 많은사람들과 많은이야길나누어서 그런걱정은 할필요가없었다.
그래서 외롭지도 않았고 그래서 무섭지도않았다.
아직 대한민국은 홀로여행하는 여자들에겐 관대한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