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한국인의 문제점

김충곤200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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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항상 붕 떠있다. 어떠한 명확한 기준의 체계도 없고, 형식과 절차를 지나치게 따지다 보니 실속이 부족하며 중요한 일은 파행적으로 운영된다. 이것은 어디서나 관찰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과학, 교육, 종교 등 등. 일반적인 국민의식에 이러한 마인드가 깔려있다. 항상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일 때, (그것이 정보이든 사상이든 이론이든) 원래의 의미가 퇴색되어서 자의적으로 생긴 의미가 이상하게 원래의 정보를 바꾸어버린다. 그리고 이 잘못된 정보가 어떠한 비판의식도 없이 그대로 전파되는 것은 아주 큰 문제이다.


한국 사람들은 다혈질이라고들 말한다. 그리고 감성적이며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의 그동안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었다. 감성과 논리의 기준은 우뇌와 좌뇌가 담담하는 것으로 볼때 감성적인 사람은 논리적이지 못하며, 논리적인 사람은 감성적이지 못하다. 이것이 일반적 원리이다. 그리고 그 기준에 의한 것으로 볼때,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기울게 되면 좋지 않으므로 균형을 맞추면서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인이 감성적이라고 해서 정말 감성적인가? 우리는 반드시 감성적과 감정적을 구분해야 한다. 어떨 때 이것이 사용될 수 있고, 개념에 적용시킬 수 있는가? 한국인이 감성적인가? 대개 우리는 감정표현에 익숙치 못하다. 이것은 아시아문화권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유교의 영향이 크다. 특히 남성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거의 금기시 되어 왔을 정도로 솔직한 감정을 억압한다. 육체적 관계의 부재 또한 이것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간의 말의 표현과 동시에 육체적으로 친밀한 의사를 표시하면 관계에 도움을 준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육체적 접촉이 부족한 것은 인간의 사랑욕구에 대한 억압이기도 하다. 즉,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잣대로,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모임문화에 대한 편향적 관찰로써 한국인들이 감정적, 감성적 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로부터, 우리끼리는 소통이 잘되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에서는 아무리 비이성적이고 남이 봤을 때는 타당치 못할 지라도 그 안에서는 나름대로의 효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것이 다른 문화를 만났을 경우는, 지구인이 외계인을 만나는 것과 같이, 큰 파장을 초래한다.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외래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 문화를 져버리는 행위가 아니다. 이것을 추구하고 따라가면 저것을 져버리고 포기하는 것 또한 아니다.


영국을 예로 들어보자. 영국은 아직도 왕정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왕가의 힘은 무시할 수없다. 그리고 극단적인 보수파들 또한 많다. 아직도 Oxford 나 Cambridge 에 다니는 고위층의 자제들은 개인의 하인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분야,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진취적이다. 기준과 관리에 대한 명확한 체계, 특정사안에 대해서 무슨 기준으로 어떠한 판단을 내릴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그러한 정신에 입각하여 해결한다.


하지만 우리는 특정한 일에 대해서 항상 정리가 안 된다. 공공의식에 대한 부족과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자세, 항상 근시안적으로 바라보는 태도; 예를 들면, 법에 대한 의식은 희미하지만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단순히 법에 씌여진 문자 자체로서 법을 해석하고 행동을 하는 행위, 그리고 법에 세부적인 사항이 쓰이지 않았다면 곧 그것은 허가가 되는 행동이라는 잘못된 마음가짐을 볼 수 있다. 법을 안정된 사회를 위한 하나의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법 자체에 매달려 인간적인 자연적인 원리와 보편적 진리를 잊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일과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한다.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내린 일의 결과는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으며 철저한 책임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비판하고 반성하며 고찰해보아야 한다. 철저함과 엄격성은 모든 것의 바탕이 된다. 우유부단함과 일시적 결과에 흥분하는 경박한 행동은 사람을 초조하고 초라하게 만든다. 미지근한 숭고한 일을 하느니 차라리 철저한 속물적 행위를 하는 것이 좋다. 철저함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하지만 이 철저함과 엄격성의 의미를 절대로 오해하여 오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관용이 무슨 말인가? 관용은 타협점을 찾아가는 하나의 길이며 문제가 해결될 때이다. 하지만 이것의 의미가 지나치게 확대대거나 좁아지는, 인간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바뀌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타인에 대하여는 관용의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너무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관용은 자신의 의지와 철저히 구별시켜야 하고 하나의 인간은 이것을 명확하게 알고 적용시킬 수 있어야한다. 관용뿐만 아닌 다른 모든 대상과 개념에 대하여 이러한 마인드가 있어야한다.

 

지휘와 관리체계가 명확하지 않고 엉성한 군대는 이성적으로 패하게 된다. 2차대전 당시의 독일과 이탈리아를 보라. 한국은 모든 것이 개념이 뒤바뀌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경계이며, 어떠한 곳에 적용시켜야 하고, 어떤 식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완전히 틀렸다. 이렇게 엉성하고 모든 것이 불분명한 사회와 집단은 당연히 인간 개개인을 불안하고 불행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것은 누구를 탓해서도 안 되고, 우주적 원리에 따른 당연한 결과물이다. 국민의 의식성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