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의 태웅, 수학 천재라는 이유만으로 과학고에 입학한다. 평범한 직장인이 꿈이라던 그였으니 아마도 장학금이나 뭐 그런 것 때문에 이 학교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고, 특목고, 기숙사, 방치, 정서적 유기 ... 다시 이런 단어들이 맴돌고 있다. 열일곱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나이다. 하지만 그만큼 부모가 필요한 나이이기도 하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거의 20대 중반까지 지연된 청소년기에 머무르기 쉬운 특수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런 열일곱의 아이들이 부모를 떠나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서로에게 친구가 되고, 의지가 되고, 경쟁자가 되고, 또 그렇게 부모도 돼 주면서. 주말에도 집에 오지 말고 공부하라고 당부하던 태웅 엄마의 말에 괜시리 맘이 아파오던 건 나의 직업병이다. 아들의 장래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아픈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는 나로서는 그렇게 아이의 등을 떠미는 것은 부모로서의 책임 회피이자 아이에 대한 정서적 유기라는 것을 자주 경험하기 때문에 그 장면이 너무 속상했었다. 결국 정서적 고아들은 서로에게 집착할 수 밖에 없다. 아버지의 부재에 이어, 어머니에게 등 떠밀린 태웅, 어머니의 부재에 요구만 하는 아버지에게 몰린 정규. 정규에게 태웅은, 태웅에게 정규는 이런 존재이지 않았을까? 친구이자 가족이자 경쟁자이자 부모인. 그런 존재가 나 때문에 죽었다는 걸 깨닫게 될 때 겪어야 하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세상이 모두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결코 부정할 수 없을 때, 그리고 다 내 탓만 같이 느껴질 때. 내게는 별 것 아닌 것이 친구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것임을 알면서 그것이 그저 내 손에 주어져 있을 때, 양보할 수도 선물할 수도 없는 그것. 그의 그 천재성은 그에게 짐일 뿐이었을 게다. 그래서 떠나야만 하지 않았을까? 그가 천재이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천재일 수 없는 곳으로. 그곳에서 그는 천재적인 권투선수는 아니다. 그저 열심히 하는 좋은 선수일 뿐. 그래서 그저 그런 존재일 뿐.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열일곱이 아닌 그는 조금씩 알게 될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나의 천재성과는 상관 없이, 부정할 수 없는 아주 소중한 것이며, 또 그렇게 나의 천재성이 그저 나의 일부일 뿐임을, 그래서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나를 수용하고 사랑하는 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건 보라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너무 일찍 힘든 병을 앓아야만 했던 것이, 떠나버린 엄마를 가진 것이, 자신의 가치만 우선인 아빠를 가진 것이, 혼자만 훌쩍 떠나버린 오빠가 있다는 것이, 지독히도 억울하고 분하겠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겠지만 그 복수란 것이 결국은 다 나를 해치는 짓임을 그래서 결국 더 억울한 상황만 만들게 되는 것을 알게 되면 보라도 달라질 것이다. 아픈 나도 나이고, 싸가지인 나도 나인 걸 어쩌겠는가! 결국 그런 나를 먼저 보듬고 감싸야 할 것도 나 자신이란 걸 보라도 조금씩 알아가게 되겠지.
어릴 적 읽었던 눈의 여왕은 내게 그런 동화였다. 분명 해피엔딩이었음에도 어둡고, 침울한. 그래서 결말이 해피엔딩인 것을 고등학생 쯤 되어서야 아! 그랬구나 깨달았을 만큼 어두운 여운이 남는 그런 이야기. 핀란드 사람들을 보면 눈의 여왕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정말 정말 하얗기만 한 얼굴, 또 그렇게 하얗게 보일만큼 여리고, 눈부신 금발. 밤만 계속되기도 하고, 낮만 계속되기도 하는 불공평한 날씨 속에서 우울증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들... 날씨 탓만 하고 우울하고 음습하고, 사람들을 멀리한 채로 고독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라는 핀란드. 그곳에 라플란드가 있고 눈의 여왕이 있고... 참 그럴 듯하지 않나. 외로운 눈의 여왕은 친구가 필요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마음이 따듯한 친구를 가지는 것이 두려웠던 건지, 카일의 마음을 차갑게 만들어 데리고 간다. 그래도 여전히 춥고 외로웠을텐데. 결국 내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는 한, 외로움을 달래 줄 친구는 없는 건데...
겨우 읽은 글을 이해할 수 있었던 아주 어린 시절에, 그 때 읽었던 눈의 여왕이 실린 북유럽 동화집에는 유난히 눈이 하얗게 쌓인 밤, 하얀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차갑게 빛나는 별에 대한 묘사가 많았었다. 그래서 나는 막연히 자작나무는, 그 때는 어딘지도 몰랐던 북유럽이란 곳에만 있는 나무일거라고 믿어버렸었다. 그래서 언젠가 꼭 한 번만이라도 자작나무를 볼 수 있기를, 그 가지 사이로 빛나는 별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랐었다.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들어 자작나무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난 뭔가를 잃은 듯한 기분이었다. 판타지가 깨어진다는 것은 마음이 아프고 허전한 일이지만 또 그렇게 새롭게 다가온 현실 또한 별로 나쁘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되는 것이 삶인 것 같다.
보라도 태웅이도 내가 가진 것들을, 지금 맘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 모든 조건들조차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때서야 눈과 심장에 박힌 얼음 조각이 녹아서 정말 소중한 것들이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알게 되겠지... 그걸 너무 늦게 알게 됐음을 전제로 시작한 드라마라 벌써 마음 아프긴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작품을 통해 작은 위로가 되고 싶다던 감독의 말을 믿어 볼 수 밖에 없다. 보라와 태웅이 찾은 라플란드는 동화 속 눈의 여왕이 살던 곳보다는 훨씬 따듯하고 행복한 곳이기를...
★ 리뷰 :: 그들의 라플란드
열일곱의 태웅, 수학 천재라는 이유만으로 과학고에 입학한다. 평범한 직장인이 꿈이라던 그였으니 아마도 장학금이나 뭐 그런 것 때문에 이 학교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고, 특목고, 기숙사, 방치, 정서적 유기 ... 다시 이런 단어들이 맴돌고 있다.
열일곱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나이다. 하지만 그만큼 부모가 필요한 나이이기도 하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거의 20대 중반까지 지연된 청소년기에 머무르기 쉬운 특수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런 열일곱의 아이들이 부모를 떠나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서로에게 친구가 되고, 의지가 되고, 경쟁자가 되고, 또 그렇게 부모도 돼 주면서.
주말에도 집에 오지 말고 공부하라고 당부하던 태웅 엄마의 말에 괜시리 맘이 아파오던 건 나의 직업병이다. 아들의 장래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아픈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는 나로서는 그렇게 아이의 등을 떠미는 것은 부모로서의 책임 회피이자 아이에 대한 정서적 유기라는 것을 자주 경험하기 때문에 그 장면이 너무 속상했었다.
결국 정서적 고아들은 서로에게 집착할 수 밖에 없다. 아버지의 부재에 이어, 어머니에게 등 떠밀린 태웅, 어머니의 부재에 요구만 하는 아버지에게 몰린 정규.
정규에게 태웅은, 태웅에게 정규는 이런 존재이지 않았을까? 친구이자 가족이자 경쟁자이자 부모인. 그런 존재가 나 때문에 죽었다는 걸 깨닫게 될 때 겪어야 하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세상이 모두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결코 부정할 수 없을 때, 그리고 다 내 탓만 같이 느껴질 때. 내게는 별 것 아닌 것이 친구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것임을 알면서 그것이 그저 내 손에 주어져 있을 때, 양보할 수도 선물할 수도 없는 그것. 그의 그 천재성은 그에게 짐일 뿐이었을 게다. 그래서 떠나야만 하지 않았을까? 그가 천재이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천재일 수 없는 곳으로. 그곳에서 그는 천재적인 권투선수는 아니다. 그저 열심히 하는 좋은 선수일 뿐. 그래서 그저 그런 존재일 뿐.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열일곱이 아닌 그는 조금씩 알게 될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나의 천재성과는 상관 없이, 부정할 수 없는 아주 소중한 것이며, 또 그렇게 나의 천재성이 그저 나의 일부일 뿐임을, 그래서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나를 수용하고 사랑하는 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건 보라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너무 일찍 힘든 병을 앓아야만 했던 것이, 떠나버린 엄마를 가진 것이, 자신의 가치만 우선인 아빠를 가진 것이, 혼자만 훌쩍 떠나버린 오빠가 있다는 것이, 지독히도 억울하고 분하겠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겠지만 그 복수란 것이 결국은 다 나를 해치는 짓임을 그래서 결국 더 억울한 상황만 만들게 되는 것을 알게 되면 보라도 달라질 것이다. 아픈 나도 나이고, 싸가지인 나도 나인 걸 어쩌겠는가! 결국 그런 나를 먼저 보듬고 감싸야 할 것도 나 자신이란 걸 보라도 조금씩 알아가게 되겠지.
어릴 적 읽었던 눈의 여왕은 내게 그런 동화였다. 분명 해피엔딩이었음에도 어둡고, 침울한. 그래서 결말이 해피엔딩인 것을 고등학생 쯤 되어서야 아! 그랬구나 깨달았을 만큼 어두운 여운이 남는 그런 이야기.
핀란드 사람들을 보면 눈의 여왕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정말 정말 하얗기만 한 얼굴, 또 그렇게 하얗게 보일만큼 여리고, 눈부신 금발. 밤만 계속되기도 하고, 낮만 계속되기도 하는 불공평한 날씨 속에서 우울증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들...
날씨 탓만 하고 우울하고 음습하고, 사람들을 멀리한 채로 고독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라는 핀란드. 그곳에 라플란드가 있고 눈의 여왕이 있고... 참 그럴 듯하지 않나.
외로운 눈의 여왕은 친구가 필요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마음이 따듯한 친구를 가지는 것이 두려웠던 건지, 카일의 마음을 차갑게 만들어 데리고 간다. 그래도 여전히 춥고 외로웠을텐데. 결국 내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는 한, 외로움을 달래 줄 친구는 없는 건데...
겨우 읽은 글을 이해할 수 있었던 아주 어린 시절에, 그 때 읽었던 눈의 여왕이 실린 북유럽 동화집에는 유난히 눈이 하얗게 쌓인 밤, 하얀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차갑게 빛나는 별에 대한 묘사가 많았었다. 그래서 나는 막연히 자작나무는, 그 때는 어딘지도 몰랐던 북유럽이란 곳에만 있는 나무일거라고 믿어버렸었다. 그래서 언젠가 꼭 한 번만이라도 자작나무를 볼 수 있기를, 그 가지 사이로 빛나는 별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랐었다.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들어 자작나무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난 뭔가를 잃은 듯한 기분이었다. 판타지가 깨어진다는 것은 마음이 아프고 허전한 일이지만 또 그렇게 새롭게 다가온 현실 또한 별로 나쁘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되는 것이 삶인 것 같다.
보라도 태웅이도 내가 가진 것들을, 지금 맘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 모든 조건들조차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때서야 눈과 심장에 박힌 얼음 조각이 녹아서 정말 소중한 것들이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알게 되겠지... 그걸 너무 늦게 알게 됐음을 전제로 시작한 드라마라 벌써 마음 아프긴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작품을 통해 작은 위로가 되고 싶다던 감독의 말을 믿어 볼 수 밖에 없다. 보라와 태웅이 찾은 라플란드는 동화 속 눈의 여왕이 살던 곳보다는 훨씬 따듯하고 행복한 곳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