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대륙을 따라서 내려가다보면 여러가지의 장애를 만나게된다. 일차적으로는 음식과 식수 그리고 신변안전에 대한 갖가지 생존문제이다. 두번째의 장애로는 비자문제를 비롯하여 급변하는 아프리카 나라들의 정치,경제 상황의 변수들이다. 그래도 두번째 문제이 비하면 첫번째 생존에 관한 문제는 심각하지 않은편이다.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대부분이 정치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은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어제까지 안정과 발전을 하던 국가도 정변이나 쿠테타등이 발발하여 순식간에 피의 장터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순박하고 천진스런 사람들이 일단 통제력을 잃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잔혹함을 발휘한다. 평소에는 온순한 양과 같아서 외국인을 경계하거나 무서워 하는 눈빛이 역력하였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동물적인 야성이 나오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프리카인들의 잔인함을 처음 목격한곳은 모르타니아에서 세네갈 영내로 진입하여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무슨이유인지 모르지만 마을간에 집단 혈투가 벌어졌다. 세네갈서 하루밤을 맞이한 다음날 오전이었다.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를 향하던 좋은 아침이었는데 전방에 나타난 마을에서 일대 절규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사람들의 모습을 어렴픗이 보일듯한 거리였다. 육안으로 살피기 위하여 좀더 접근을 하여보니 남자들이 상의를 벗은채 손에는 칼을 들고 서로 공격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여자들의 비명소리도 섞여들렸다. 가능하면 그러한 비이성적인 난동 장소를 긴급하게 빠져나가려고 도로에서 마을 반대편 들판으로 우회를 하였다. 남자들이 집단으로 커다란 아프리카 칼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치고 받았다. 그들이 싸우고있는 현장에서 약 300여미터 거리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이미 한두명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앞만 바라보고 현장에서 멀어지려고 애를 썼으며 그들의 눈에 띄이지 않기를 바랐다. 이 경험이 아프리카에서의 피싸움을 목격한 첫번째 장면이었다. 그런데 좀더 심각한 문제는 나의 여정지상에 자리하고 있는 아이보리 코스트라는 국가였다. 이미 유럽에서부터 아이보리코스트에 정변이 발생하여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에 내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런데 세네갈을 지나 감비아로 향하고 있는 동안에 계속 아이보리 코스트 현지에 관한 않좋은 소식이 들렸다. 이미 세네갈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도 아프리카 몇몇나라에 대한 위험상황을 전해 들었다. 지리적으로도 아이보리 코스트를 벗어나려면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에서는 더욱 정확한 정보가 들렸다. 라이베리아나 기네 꼬나끄리와 아이보리 코스트 국경은 반군들이 강한 지역이어서 절대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이다. 두가지 방법이 남아있었다. 한가지는 항공편으로 아이보리코스트를 넘어서 이웃국인 가나로 입국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크게 아이보리 코스트를 우회하여 부르키나 파소라는 국가에서 입국을 하는 방법이었다. 애당처 자전거로 아프리카를 돈다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는 위험과 시간 낭비를 감수하여야 한다라고 결심하였다. 다시 기네 꼬나끄리로 입국하여 말리와 부르키나 파소로 이동을 하였다. 그 누구도 부르키나파소 국경과 아이보리 코스트의 수도인 아비장까지의 안전성 여부를 알지 못하였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길이나 어느것에 대하여 질문을 하면 모르는 것도 모른다고 하지를 않는다. 길을 물어서 여러번 경험을 한 바가 있다. 몰라도 모른다고 하지 않고 짐작으로 대답을 하는 것이 아프리카 사람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인 보람이었던지 부르키나에서 아이보리 코스트로 향하는 도로는 아주 말끔하였다. 그런데 아이보리 코스트와의 국경을 들어서자 비포장 도로가 시작되었다. 좁다란 오솔길이 나오기도 하고 트럭이 지나갈 수있는 넓다란 도로도 나타났다. 얼마동안은 국경을 넘나드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함께 휩쓸려서 무료하지 않게 이동을 하였다. 그런데 오후 5시를 넘어설 무렵,도로의 우측 방향에서 고막을 울리는 요란한 사격음이 들렸다. 언뜻보기에도 기관단총으로 두군데의 참호에서 총알이 불을 뿜고 있었다. 아수라장으로 변하여 이리 저리 달아나는 아프리카인들과 자세를 낮추고 줄행랑을 쳤다. 그렇게 혼비백산하여 30여분정도를 벗어나자 군용트럭과 일단의 군인들이 앞을 가로 막았다. 우리는 여러군데로 불려가서 간단한 신원조회를 받았다. 그런 동안에도 맞딱뜨린 군인들이 정부군인지 반군인지에 촉각이 섰다. 나의 여권을 살피고 그들간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니 일단 악의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후 소총을 소지한 두명의 군인이 따라오라고 하였다. 초소 사무실 같은 곳으로 따라들어갔다. 허름한 나무 책상에 앉아있던 군인이 그 부대의 지휘관의 한명인듯 한 태도를 보였다. 이미 한손에는 나의 여권이 들려져 있었다. 그 장교는 몇가지 질문과 행선지에 관하여 질문을 하였다. 나의 여정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을하고 아이보리 코스트에서 가나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그 장교는 현 아이보리 코스트의 치안문제와 외국인의 안전문제를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민간인의 출입을 불허하는 군사지역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다음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유엔 평화 유지군의 주둔지까지는 자신들의 차량으로 동행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일단 안심이 들었다. 이들은 일단 반군이 아닌 것이 확실하였다. 얼마후 그들의 안내를 받아 군용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나도 몸을 실었다. 얼마를 달리자 어둠이 내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어마어마한 폭우로 금방이라도 아프리카 대륙이 잠겨 버릴 것같은 공포를 들게 하였다. 거침없는 아프리카의 폭우는 사나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다. 얼마후에 트럭의 운행이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하루밤을 적당한 곳에서 피신을 하며 비가 멎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병사의 설명을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아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기로 가득찬 태양이 아침 아프리카를 비추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하는 곳에 인계되어 적법절차를 밟은후에야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그렇게 하여서 무사히 아이보리 코스트에서의 여정이 연결되었다. 1
아이보리코스트 가는길
아프리카의 대륙을 따라서 내려가다보면 여러가지의 장애를 만나게된다.
일차적으로는 음식과 식수 그리고 신변안전에 대한 갖가지 생존문제이다.
두번째의 장애로는 비자문제를 비롯하여 급변하는 아프리카 나라들의 정치,경제 상황의 변수들이다.
그래도 두번째 문제이 비하면 첫번째 생존에 관한 문제는 심각하지 않은편이다.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대부분이 정치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은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어제까지 안정과 발전을 하던 국가도 정변이나 쿠테타등이 발발하여 순식간에 피의 장터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순박하고 천진스런 사람들이 일단 통제력을 잃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잔혹함을 발휘한다.
평소에는 온순한 양과 같아서 외국인을 경계하거나 무서워 하는 눈빛이 역력하였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동물적인 야성이 나오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프리카인들의 잔인함을 처음 목격한곳은 모르타니아에서 세네갈 영내로 진입하여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무슨이유인지 모르지만 마을간에 집단 혈투가 벌어졌다.
세네갈서 하루밤을 맞이한 다음날 오전이었다.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를 향하던 좋은 아침이었는데
전방에 나타난 마을에서 일대 절규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사람들의 모습을 어렴픗이 보일듯한 거리였다.
육안으로 살피기 위하여 좀더 접근을 하여보니 남자들이 상의를 벗은채 손에는 칼을 들고 서로 공격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여자들의 비명소리도 섞여들렸다.
가능하면 그러한 비이성적인 난동 장소를 긴급하게 빠져나가려고 도로에서 마을 반대편 들판으로 우회를 하였다.
남자들이 집단으로 커다란 아프리카 칼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치고 받았다.
그들이 싸우고있는 현장에서 약 300여미터 거리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이미 한두명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앞만 바라보고 현장에서 멀어지려고 애를 썼으며 그들의 눈에 띄이지 않기를 바랐다.
이 경험이 아프리카에서의 피싸움을 목격한 첫번째 장면이었다.
그런데 좀더 심각한 문제는 나의 여정지상에 자리하고 있는 아이보리 코스트라는 국가였다.
이미 유럽에서부터 아이보리코스트에 정변이 발생하여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에 내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런데 세네갈을 지나 감비아로 향하고 있는 동안에 계속 아이보리 코스트 현지에 관한 않좋은 소식이 들렸다.
이미 세네갈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도 아프리카 몇몇나라에 대한 위험상황을 전해 들었다.
지리적으로도 아이보리 코스트를 벗어나려면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에서는 더욱 정확한 정보가 들렸다.
라이베리아나 기네 꼬나끄리와 아이보리 코스트 국경은 반군들이 강한 지역이어서 절대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이다.
두가지 방법이 남아있었다.
한가지는 항공편으로 아이보리코스트를 넘어서 이웃국인 가나로 입국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크게 아이보리 코스트를 우회하여 부르키나 파소라는 국가에서 입국을 하는 방법이었다.
애당처 자전거로 아프리카를 돈다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는 위험과 시간 낭비를 감수하여야 한다라고 결심하였다.
다시 기네 꼬나끄리로 입국하여 말리와 부르키나 파소로 이동을 하였다.
그 누구도 부르키나파소 국경과 아이보리 코스트의 수도인 아비장까지의 안전성 여부를 알지 못하였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길이나 어느것에 대하여 질문을 하면 모르는 것도 모른다고 하지를 않는다.
길을 물어서 여러번 경험을 한 바가 있다.
몰라도 모른다고 하지 않고 짐작으로 대답을 하는 것이 아프리카 사람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인 보람이었던지 부르키나에서 아이보리 코스트로 향하는 도로는 아주 말끔하였다.
그런데 아이보리 코스트와의 국경을 들어서자 비포장 도로가 시작되었다.
좁다란 오솔길이 나오기도 하고 트럭이 지나갈 수있는 넓다란 도로도 나타났다.
얼마동안은 국경을 넘나드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함께 휩쓸려서 무료하지 않게 이동을 하였다.
그런데 오후 5시를 넘어설 무렵,도로의 우측 방향에서 고막을 울리는 요란한 사격음이 들렸다.
언뜻보기에도 기관단총으로 두군데의 참호에서 총알이 불을 뿜고 있었다.
아수라장으로 변하여 이리 저리 달아나는 아프리카인들과 자세를 낮추고 줄행랑을 쳤다.
그렇게 혼비백산하여 30여분정도를 벗어나자 군용트럭과 일단의 군인들이 앞을 가로 막았다.
우리는 여러군데로 불려가서 간단한 신원조회를 받았다.
그런 동안에도 맞딱뜨린 군인들이 정부군인지 반군인지에 촉각이 섰다.
나의 여권을 살피고 그들간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니 일단 악의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후 소총을 소지한 두명의 군인이 따라오라고 하였다.
초소 사무실 같은 곳으로 따라들어갔다.
허름한 나무 책상에 앉아있던 군인이 그 부대의 지휘관의 한명인듯 한 태도를 보였다.
이미 한손에는 나의 여권이 들려져 있었다.
그 장교는 몇가지 질문과 행선지에 관하여 질문을 하였다.
나의 여정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을하고 아이보리 코스트에서 가나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그 장교는 현 아이보리 코스트의 치안문제와 외국인의 안전문제를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민간인의 출입을 불허하는 군사지역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다음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유엔 평화 유지군의 주둔지까지는 자신들의 차량으로 동행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일단 안심이 들었다.
이들은 일단 반군이 아닌 것이 확실하였다.
얼마후 그들의 안내를 받아 군용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나도 몸을 실었다.
얼마를 달리자 어둠이 내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어마어마한 폭우로 금방이라도 아프리카 대륙이 잠겨 버릴 것같은 공포를 들게 하였다.
거침없는 아프리카의 폭우는 사나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다.
얼마후에 트럭의 운행이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하루밤을 적당한 곳에서 피신을 하며 비가 멎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병사의 설명을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아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기로 가득찬 태양이 아침 아프리카를 비추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하는 곳에 인계되어 적법절차를 밟은후에야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그렇게 하여서 무사히 아이보리 코스트에서의 여정이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