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yes - 폭력시위에 고함

강준구2006.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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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 - 폭력시위에 고함


 


 대학시절 몇번의 시위대에 참가했다. 아마 처음은 김영삼 정권말기 노동법 개악 반대 집회였던 것 같다. 차기 과대표 또는 학과장쯤으로 나를 찍었던 몇몇 선배들에게 집요한 설득을 당했었다. 당시 나는, 통과됐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재토론 과정을 거치고 있는 만큼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었다. 생각해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말. 힘을 보여줘야 할때가 있다는 것을 안것은 몇년 후의 일이었다.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것은 도원동 삼성아파트 강제철거 현장이었다. 골리앗을 쌓고 위태롭게 올라서있던 철거민들, 그들을 둘러싼 골리앗 높이의 흙더미와 쏟아지는 물대포. 그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한밤중에 뛰어들던 청년들.

 가난,폭력,전쟁을 방불케 하는 치열함에 젊은 피가 끓었다. 어느 날 밤, 그들에게 식량을 건네려고 진입하던 한 20대 철거민이 용역이 퍼부은 화염방사기 사례에 잿덩이가 됐다. 그날 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런게 세상이라니. 피가 끓었다.

 사수대에 뽑혀 최루탄을 맞았고 광화문 8차선을 막고 '떴다 비'도 했다. 투석전 멤버에 뽑혔고 백골단을 피해 16차선 도로를 횡단하기도 했다. 그것이 옳다고 믿었다. 지금도 한치의 후회는 없다.

기자가 된 후 전경과 부딪힐 일이 많았다. 그들은 시위대만큼이나 기자들에 대한 적개심도 크다. 다만 그들의 최고위 상관인 서울청장,경찰청장,일선 서장들의 눈치 때문에 기자들에게 함부로 못할 뿐이다. 기자들의 감정도 좋을리는 없어 종종 부딪히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 그들이 어느날 시위대의 죽창에 찔려 눈을 실명했다. 이해못할 일이었다. 그 순간, 궁지에 몰린 빈민의 처절함과 어쨌든 막아야하는 공권력의 졸개가 엄청난 기세로 맞부딪혔다. 처절한 부상자들. 승리자는 없었다. 빈민과 졸개.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 인생들이 부딪히는 순간일 뿐이었다.

폭력시위는 사라져야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 시위대는, 너무 거칠다. 70~80년대를 달궜던 민주화에 대한 열정,그에 대한 미련이 왠지 잘못된 형태로 이식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니다. 불을 지르고 대나무 끝을 갈라 헬멧 사이로 파고드는 죽창 세례는, 그건 아니다. 칼을 겨눠야 될 사람은 그 사람들이 아니다.

조금더 합리적일 수는 없을까. 조금더 보편적일 수는 없을까. 홍콩 바다에 뛰어들던 농민을 바라보던 심정. WTO 쌀협상 테이블 바깥에서 배를 가르는 농민을 바라보는 심정. 공감 대신 적대감을 얻어가는 시위문화를 보면서, 이제 80년대에 대한 미련을 접을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와 자본주의가 맞붙던 시대는, 일부 이견이 있다하더라도 지났다고 보는게 맞다. 각각의 이슈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파이팅의 시대에 전략이 아닌 힘이 맞붙는 것은 틀렸다.

 쌀개방에 대한 잃어버린 10년, 그에 대한 감시자체가 부족했다. 미군의 상습 폭행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부족했다. 이는 윗대가리가 썪었고 사회적 감시망이 부족한 탓이다. 이는 이를 감시하고 보조하고 견제하는 시민사회의 권력이 커져야 해결된다.

 그러나 물리력이 그 힘을 보조해야 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이는 시민사회의 투명성이 강화되고,전략적인 시민단체에 힘이 몰려서야 가능한 일이다. 각각의 이슈에서 개별 시민단체가 역량을 가져야만이 가능한 일이고 이들의 안내를 참고해 능력없는 의원들을 제거해야만이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보다 경제가 먼저 성장해, 돈이면 해결되는 구조를 낳았다. 국민들은 감정이 앞서고 지역은 각자의 이기주의로 뭉쳐있는 구조. 온갖 선정적인 정치 이슈들에 나라가 좌지우지되고 한 박자 늦춰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한 사람들.

과거보다 나은 오늘이라니,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지금의 과오들이 자양분이 되어야만 한다. 방패와 죽창이 맞붙는,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말이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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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일요일 근무, 과거 미니홈피에 정리해뒀던 글을 페이퍼로 냅니다.. 재탕 비난 댓글은 사절이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