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 투성인 합천읍 3.1운동 기녑탑

조찬용2006.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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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투성인 합천읍 3.1운동 기녑탑

▲합천읍 3.1 독립 만세운동 기념탑(2002년 완공)

-합천군 합천읍 실내체육관 앞-

 

2001년 합천읍에 주민 모금 없이 3억원으로 3.1기념탑을 수의계약으로 건립할 때 일제의 <헌병대장 및 경무부장 보고서>와 안창호 및 이광수가 1921년에 편찬한 <한일관계사료>, 강덕상의 <현대사자료>,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등 기본적인 자료도 깊이 있게 분석 검토하지 않고 건립함으로써, 비문 내용도 3.1만세운동을 함축적으로 표현하지 못했고, 합천지역을 상징하는 남명학파와 남명 조식 등에 대한 언급도 없고, 또한 3.1운동 때 핵심적인 인물의 이름도 새겨져 있지 않으며, 누가 조각하고 비문을 지었는지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기념탑으로 전락시켜 불멸의 합천지역 3.1만세운동을 왜소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지금 서 있는 상기 3.1기념탑도 건립당시 3.1독립선언문을 새겨넣었는데, 군민들과 언론(경남일보)의 지적이 있다르자, 1,500만원 예산을 추가로 집행하여 아래와 같이 수정을 했는데도 오류 투성이고, 또한 건립 때에 새긴 그림도 문제가 많아서 비문을 바꿀 때 일부 수정하는 등 졸속건립이었다. 비문과 조각, 그림을 누가 했는지 이름이 없다. 불멸의 합천지역 3.1운동을 이렇게 예우하는 것이 말이되는가?

 

그리고 정면 <3.1 독립만세운동 기념탑> 글자는 2001년 당시 합천군수의 글씨다. 합천군수가 서예에 조예가 있다고 하지만, 전국에서 가장 큰 3.1운동을 기념하는 기념탑에 군수의 글을 부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처럼 새로 새겨넣은 비문이 오류 투성이나, 이 중 문맥이 맞지 않는 "외교권과 내정간섭권을 박탈한데" 이어는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간섭권을 탈취한데" 이어로 즉시  수정해야 하고, 기타 사실관계(fact)가 맞지 않는 부분도 수정해야 한다.

 

아래는 현 합천읍의 3.1기념탑 비문이다. 사실관계 조차도 맞지 않는 파란 글자는 붉은 글자로 수정해야  한다.


陜川地方의 3·1 獨立運動 略史


  합천군은 경상남도의 서북부에 위치한 고장으로서, 본래 가야(伽倻)의 다라국(多羅國)이 지배하였던 지역인데, 6세기 중엽에 이르러 신라(新羅)에 편입되었다. 신라(新羅) 진흥왕(眞興王) 26년(565)에 대야주(大倻州)가 설치되면서부터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할 때까지 이 지역은 군사적 행정적 거점으로 주목받았다. 대야주(大倻州)는 통일신라(統一新羅) 시대인 신문왕(神文王) 5년(685)에 군현제(郡縣制)가 시행되면서 대량주군(大良州郡)으로 개편되었으며, 다시 경덕왕(景德王) 16년(757)의 지방제도 정비와 더불어 강양군(江陽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高麗) 현종(顯宗) 9년(1018)에는 합주(陜州)로 승격되어 인근 12개현을 관할하였지만, 조선(朝鮮) 태종(太宗) 13년(1413)에 합천군(陜川郡)으로 개명되었다. 그후 1914년에 이루어진 행정구역의 개편에서 초계군(草溪郡)과 삼가군(三嘉郡)을 기존의 합천군(陜川郡)으로 병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 온 우리고장 합천은 뛰어난 학자와 고승, 의병장 등 겨레의 표상이 될 만한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 땅위에 아로새겨진 선현(先賢)들의 고고(孤高)하고 정명(正明)한 기풍(氣風)은 세월의 흐름 속에 어느덧 우리고장 사람들의 특성으로 자리잡았다. 그리하여 우리고장 사람들은 불의와 맞서 싸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으며,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하였을 때 분연히 일어섰다.

  을사늑약(乙巳勒約 ; 1905년)과 정미조약(丁未條約 ; 1907년)을 구실로 우리나라의 외교권과 내정간섭권을 박탈한데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간섭권을 탈취한데 이어 군대마저 해산한 일제(日帝)는 경술년(庚戌年 ; 1910년)이 되자 결국 국권을 강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러한 일제(日帝)의 파렴치한 침략행위에 분노한 국민들의 항일운동이 국내외에서 격렬하게 전개되었으며, 우리 겨레의 울분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1910년 이후 일제(日帝)의 야만적인 탄압통치를 경험하면서 축적된 민족적 역량은 드디어 1919년의 3.1운동으로 폭발하게 되었다. 3.1운동은 개항 이후 위정척사운동(衛正斥邪運動)에서 시작하여 동학농민전쟁(東學農民戰爭)과 의병전쟁(義兵戰爭), 그리고 구국계몽운동(救國啓蒙運動)으로 이어져 온 항일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국제연맹이 결성되고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되는 것과 같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자극을 받은 바도 크다. 이러한 3.1운동은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출발하였지만, 각 지방의 중소도시와 농촌에까지 시위가 확산될수록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 습격 등 점차 폭력적 형태로 발전해 갔다. 우리고장 합천에서도 서울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의지를 군(郡) 전역에 확산시켰고, 이를 계기로 하여 유학자 승려 학생 농민 상인 등 모든 계층이 망라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우리고장 합천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0일을 전후하여 곳곳에서 일어났는데, 시위 규모도 컸을 뿐만 아니라 그 양상도 격렬하였다. 삼가면민(三嘉面民)과 쌍백면민(雙柏面民)  삼가면민(三嘉面民)과 쌍백면민(雙柏面民) 가회면민(佳會面民)이 주도한 3월 18일 삼가(三嘉) 시위를 시작으로 합천면민(陜川面民)과 대양면민(大陽面民)이 중심이 된 3월 19일, 20일의 합천시위, 3월 20일의 대병면 大幷面) 시위, 3월 21일의 초계면(草溪面) 유림(儒林) 및 학생들의 시위, 3월 22일의 묘산면(妙山面) 시위운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대병면(大幷面)과 초계면(草溪面)의 시위는 참가한 군중이 4,000~5,000명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였으며, 시위의 양상도 격렬하였다. 이러한 시위운동의 열기는 3월 23일 삼가(三嘉)장터 시위에서 절정에 달하였는데, 삼가면(三嘉面) 쌍백면(雙栢面) 가회면(佳會面) 삼가면(三嘉面) 쌍백면(雙栢面) 가회면(佳會面) 대병면 용주면 대양면 봉산면 뿐만 아니라 이웃 산청군(山淸郡) 생비량면(生比良面) 산청군(山淸郡) 생비량면(生比良面) 및 신등면, 의령군 대의면에서 모인 군중의 수가 무려 13,000 여명 30,000명이나 되었다. 이 이외에도 3월 28일의 야로면(冶爐面) 시위, 3월 31일 해인사(海印寺) 학림학생(學林學生)들의 시위, 4월 3일의 가야면(伽倻面) 매안리(梅岸里) 시위, 4월 10일 4월 7일의 봉산면(鳳山面) 시위 등이 이어졌다. 이처럼 우리고장 합천의 시위운동은 모두 13회에 걸쳐 이루어져, 수만 명이나 되는 대규모의 군중이 시위에 참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위의 양상 역시  치열하여 지방에서 일어난 3.1운동 가운데 가장 놀랄 만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일본 경찰의 무차별 사격과 폭력으로 현장에서 21명 50 여명이 순국(殉國)하였으며, 60 여명 150 여명은 총상을 당하였고, 200여 명이 검거되어 그 가운데 60여 명은 6개월에서 4년까지의 징역을 살았다.

  우리고장 합천의 3.1독립만세운동은 이와 같이 군민(郡民)들의 강인한 독립의지를 전국에 알려 거족적인 민족해방해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지역과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은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빛날 것이며, 우리 모두가 길이 간직해야 할 숭고한 이념으로 남을 것이다.

 

*그 외, 합천읍 3.1비문에 "...태종(太宗) 13년(1413)에 합천군(陜川郡)으로 개명되었다."라고 쓰여 있는데, 그 근거(출처)는 무엇인지? 왜냐하면, 조선왕조실록 태종6년(1406) 3. 12일을 보면, "계림(줖林)·합천(陜川) 등지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지붕 기와에서 소리가 났다."라고 수록되어 있고, 태종7년(1407) 3. 9일에도 "순흥(順興)·현풍(玄風)·경산(慶山)·합천(陜川)·안동(安東)에 눈이 내렸는데, 무릇 5일 동안이나 내렸다." 라고 1406년부터 합천이라는 이름(지명)이 벌써 나오고 있다. 이것 역시 검토하여 수정해야 할 부분이다.

 

*참고자료: 1919년 6월 일제의 <고등경찰관계적록>, 1921년 안창호의 <한일관계사료>, 강덕상의 <현대사자료>,  <한국독립운동지혈사>, 1969년 동아일보사의 <3.1운동 기념논문집>, <독립운동사>, <명치백년사총서>, <부산경남 3.1운동사>, <합천군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