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의 숨결 호남

신용연2006.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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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의 숨결 호남

 

삼가 생각건대 ‘호남은 국가의 보루이며 장벽이니 만약 호남이 없다면 곧 국가가 없는 것입니다’(湖南國家之保障若無湖南 是無國家). 이런 까닭에 어제 한산도에 나아가 진을 쳐 바닷길을 막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난리 중에도 옛 정의를 잊지 않고 멀리서 위문편지를 보내시고 아울러 각종 물품도 받게 되니, 진중(陣中)의 귀물이 아닌 게 없어 깊이 감격하여 마지 않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에야 더러운 적을 소탕하여 없애고 예전의 종유(從遊)하던 회포를 실컷 풀 수 있겠습니까. 편지를 대하니 슬픈 마음만이 간절할 뿐입니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노승석 옮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요즘 정치권에 ‘호남이 없으면 국가가 없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호남지역의 표심을 얻으려고 내미는, 일종의 밀어(蜜語)이다. 달콤한 말과 함께 여야 정치인들의 호남행(行)도 부쩍 늘고 있다.

 

그러나 400여년 전, 충무공이 진중에서 처음 사용한 이 말은 ‘호남 예찬론’도 아니요, 호남에 대한 밀어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호남을 사수하지 않으면 나라가 일본에 넘어간다는 절박한 현실인식에서 나온 말이었다.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파죽의 기세로 경상, 충청, 강원을 유린하고 도성마저 함락시켰다.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이때 전라수군절도사 이순신은 마지막 남은 호남을 국가 최후의 보루로 삼았다. 국가의 군량이 모두 호남에 의지하고 있으니, 호남이 없어진다면 국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겼던 것이다.

 

옛글은 문맥 속에서 이해할 때 제 뜻이 살아난다. 한 두 구절만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멋대로 사용한다면 뜻이 왜곡될 뿐 아니라 선현의 정신마저 훼손된다.

 

〈조운찬/경향신문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