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왕가리마타이의 부족 키쿠유와 이집트를 체험하다

이장연2006.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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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왕가리마타이의 부족 키쿠유와 이집트를 체험하다
왕가리마타이의 부족 키쿠유와 이집트를 체험하다
김춘이, 이집트에서 'Hakuna Matata(하쿠나 마타타)'

안녕하세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여러분. 지금 이곳은 케냐시간 밤 10시. 저는 내일 그린벨트운동 지역현장방문 준비를마쳤습니다. 왕가리마타이씨의 unbowed책을 읽을까 하다가 편지를 써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대학원에서 11월 8-18일까지 케냐 기후변화회의참가와 왕가리마타이씨의 그린벨트운동현장 방문 프로그램이 있어서 총 29명의 학생들과 교수가 이곳을 현장방문하고 있습니다. 예일대학원의 가장 좋은 점은 뭐니뭐니 해도 기부자들이 학생들의 현장방문을 위한 기부가 많다는 점. 학교에서 케냐방문 관련 공고가 있었고 응모자가 많은 경우를 대비해 응시자격은 1페이지 페이퍼(왜 가고자 하느냐 ?) 였습니다. 그리고 가는 사람의 조건은 내년 봄학기의 기후변화 과목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저는 기후변화회의 자체보다도(유엔회의가 주는 지루함 때문에) 그린벨트운동 현장방문이 관심이 있었기로 지원했습니다. 1학년 15명, 2학년 8명, 조교 2명, 교수 1명.  이렇게 왔습니다.

저희가 묵고 있는 곳은 나이로비 그린벨트운동의 교육센터입니다. 이곳에서 지난 금요일(11월 9일)부터 오늘까지 숙식하고 내일부터는 왕가리마타이씨의 부족인 키쿠유부족 현장마을에서 3일간을 체험하게 됩니다. 물론 그곳에서 숙식하면서 마을의 온갖 일들 –나무심기 등등-을 하게 되는 거죠.

UNEP 기후변화 회의장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다

월요일날 당사국 회의장(UNEP 본부)의 기업세션에 가서 앉아있는데 한국기업대표단들이 들어오더군요. 그러면서 어 이게 누구야 !!! 하는데 보니 너무나 일을 같이 많이 했던 박영우 전 환경부 국제협력국장님이셨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어쩔줄 모르다가 혹시 환경연합 안왔느냐고 여쭈었더니 이상훈실장이랑 방을 같이 쓴다고 해서 이런 반가운소식이 또 있나 싶어더랬습니다. 환경정의에서 온 이진우씨가 회의장을 지나는데 또 아는척을 해서 반가웠고 1년 휴직을 신청하고 아프리카를 혼자 돌고 있다는 녹색연합의 이신애간사도 아는 척을 해서 너무 반가워서 혼났습니다. 드디어 오늘 점심시간에 이상훈씨를 만났습니다. 정말 너무 반갑더군요. 저는 장소도 너무 멀고 재정적 상황도 여의치 않아 아무도 안올거라고 생각하고 제가 기후변화회의를 간다는 연락을 안 했던거죠. 그런데 다행히 이상훈씨가 와서 속으로 많이 안도감이 들었고 너무 기뻤습니다. 오늘은 오전에 세션을 듣고 오후에는 모두 한국분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습니다. 한국정부대표단분들은 제가 예일에 오기 전 모두 같이 일을 했던 분들이라 또 너무나 반갑더군요. 외무부 환경협력과출신들의 정래권국장님, 김창모서기관님 등등. Ngo와 정부라는 위치 때문에 입장차가 있어도 오랜만에 보는 한국분들이라 분들이라 그냥 반갑더군요. 맨날 노란머리의 영어쓰는 사람만 보고 생활하다가 잘 알던 한국분들 만나 한국말로 이야기하니 그 기쁨이 무엇과도 비교가 안되었습니다. 이상훈씨랑 걸어가는데 마침 이치범 장관님일행이 UNEP 건물에 도착을 하셔서 짧은 시간이지만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오후 5시 20분경 버스출발약속시간이 되어 unep 건물을 나가야하는데 너무나 큰 비가 내려 참가자들 모두가 unep 건물앞에서 줄구장창 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분이 반갑다고 어깨를 두드려서 보니 wssd 준비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외무부의 김찬우 심의관님이어서 또 너무 반가웠습니다. 오랜만에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반가운 우리 NGO사람들, 정부분들을 모두 만났습니다. 예일친구들이랑 숙소로 돌아오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으로 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싶더군요. 저는 원래 오늘 unep을 안가고 그린벨트운동의 케냐 사막화 현장방문을 갈 예정이었는데 저의 이집트행 티켓이 문제가 있어 할 수 없이 당초 계획을 바꿔 unep빌딩내의 여행사를 가야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루를 더 참석해야 했던 거죠. 어휴 어제 티켓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반가운 얼굴들 다 못볼뻔 했죠.

기후변화회의에 와서 계속 토요일부터 오늘 오전까지 부대행사에만 있었는데 정말 내용이 쏠쏠했습니다. 그동안 유엔회의를 참가할때는 주로 NGO에 가고 다른 데는 가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말입니다. 그들의 고민은 “세계국가들이여 지리한 협상을 끝내고 무엇이든 빨리 결정해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부대행사(side event)의 요건은 좋은 스피커와 전달능력등입니다. 중국의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세션에 갔는데(중국의 국립경제기관이 주관하는) 제목은 완전 훌륭해서 외국인들이 많이 왔더군요. 그런데 조직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린 GDP와 CO2저감 연계 내용이었는데 내용은 괜찮은 듯 한데 4명의 중국 발제자들 모두가 파워포인트의 영어를 한자씩 한자씩 읽는식이라 정말 재미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회의 참가자들이 10-15분에 다 방을 나가서 저도 한 30분 있다가 나왔습니다. 세션조직 자체가 엉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어권사람들이 "중국이 비영어권이라 영어를 못하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내용을 전달하려면 중-영 통역을 써서 내용전달을 하든지 해야지 스펠링을 하나 하나 읽는 식으로 발표를 하면 그것이 무슨 발표냐”라고 이야기하더군요. 부대행사중 가장 특이한 것은 아프리카사람들이 왜 CDM이 아프리카에는 없냐며 항의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프리카는 오염공장이 많은 것도 아니고 또한 CDM을 하려 해도 처리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모든 CDM의 프로젝트는 아시아(중국), 남미(브라질)로 가고 아프리카는 거의 빈몸이라 그들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키쿠유의 삶 – 불도 없고 전기도 없지만 불평하나 없는 키쿠유족

왕가리마타이의 부족(케냐에 약 56개정도의 부족이 있고 왕가리씨는 그중의 키쿠유부족출신) 키큐우족 마을 방문을 마치고 커피의 고향이라는 이디오피아를 거쳐 지금은 이집트 수도 카이로입니다. 왕가리마타이씨의 키쿠유마을 체험은 가히 감동이어서 글이 잘 써지질 않습니다. 심호흡을 좀 해야할 것 같아서요. 저의 40개국의 방문
가장 감동적인 방문이 4개가 있는데 키쿠유마을 체험은 단연 그중의 하나입니다. 저희모두가 8시간을 달려 키쿠유 마을에 도착하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두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엉덩이를 흔들고 루루루루루루 하는 그 아프리카 특유의 소리를 내면서 우리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이미 밴에서 내린 학생들은 아주머니들과 한덩이가 되어 춤을 추고 있더군요. 인도 날린의 춤을 보고는 너무 웃었습니다. 그의 춤은 우리나라 아주머니 아저씨분들이 관광버스에서 추는 춤을 연상시켰기 때문입니다. 학교 운동장에 모두 모이니 키쿠유족 어린이들의 아프리카 춤이 공연되고 주민들과 춤공연단들과 우리들 모두 한덩이가 되어 춤을 추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너무 기뻐서 말이 안나올 지경의 감동의 도가니였고 “왜 우리가 유엔에서 4일간이나 허비했지”를 외쳤습니다. 모두 한덩이가 되어 춤추는 시간도 끝나고 우리는 각자 우리가 숙식할 주민들집으로 안내되었습니다. 저는 인도의 날린, 스페인의 페드로, 콜럼비아의 클라우디아 이렇게 모두 4명과 그린벨트운동 활동가 2명과 함께 제인의 집으로 갔습니다. 세상에 도착하니 집안식구들은 전기가 아닌 호롱불 아래서 불때가며 우리를 위해 음식을 짓고 있었습니다. ‘개도국의 에너지이슈’라는 수업시간에 배운 그대로 굴뚝이 없으니 나갈리 없는 연기가 가득한 부엌에서 말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집안에 불이 없으니 부엌에서 온갖 연기를 다 마시며 엄마 할머니곁에서 음식준비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여성과 아이들은 호흡기질환이 일상적 질환입니다. 우리는 팔을 걷어 부치고 돕는다고 나섰는데 도대체 양파를 어떻게 썰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더군요. 불이 없는 관계로.

음식준비에 걸리는 시간은 2시간 가량. 음식을 먹고 서로 소개를 하니 29세의 제인과 25세의 파나가 엄마집에서 각각 아이들 둘과 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아버지는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그들 모두 싱글맘이라고 하더군요. 다음날부터 산에 가서 나무심고 동네 잡초를 뽑는 등의 일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일을 하고도 저녁에 씻는 것은 엄두도 못냅니다. 전기도 없고 또 따듯한 물을 쓰려면 불을 피워 물을 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샤워하는 습성이 있는 친구들이 샤워하겠다고 하자 제인이 나무불로 물을 끓여내더군요. 저는 다행히 그런 습성의 소유자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네살의 크리스토퍼는 파나의 둘째아들입니다. 네살배기가 얼마나 영리한지 키쿠유족의 전통노래와 춤을 모두 배워 기차송, 하쿠나마타나 등의 노래를 춤과 함께 우리앞에서 선을 보였습니다. 하이파이브를 하면 힘이 세서 우리들 손이 아플 지경입니다. 우리들도 각자 자기나라 노래를 선을 보였는데 저는 한국 노래방에서 가끔 즐겨부르던 찔레꽃을 부르는데 가사가 첫소절만 생각나고 하나도 생각이 안나더군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청중들이 한국말을 아는것도 아니고 그래서 모두 나오는대로 지어불렀습니다. 찔레꼬옷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고향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어디가세요, 맛있게 먹었냐, 반갑습니다 등등을 마구마구 붙여서 노래를 불렀드랬죠. 원노래에는 참으로 미안했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곡은 안 틀려서 좀 그럴싸한 노래가 되었고 장난아니게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반갑습니다라는 말을 떠올리니 반갑습니다라는 노래가 생각나서 한곡 더 부른다 하고 그를 또 불렀는데 역시 가사가 생각이 안나서 이번에는 회의주제가 뭐냐, 점심시간이 언제냐 등등등을 마구마구 넣어서 불렀습니다. 이집트로 오는 길에 이디오피아국제공항에서 되지도 않은 가사를 마구 붙여 노래 부른 것을 생각하니 웃음을 참기가 어렵더군요. 하도 많이 혼자 웃으니 브룬디출신의 아저씨가 저를 보고 따라 웃더군요.

키쿠유 부족의 학생들은 아침등교때마다 물을 2리터 가량 통에 담아서 갑니다. 던컨에게 이유를 물으니 교실을 청소하기 위함이랍니다. 이곳 마을은 수도가 없으니 모두 빗물을 받아서 빨래하고 세수하고 합니다. 마을에서 전기를 쓰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 전기의 소스는 소수력 혹은 태양열입니다. 매우 소량이고 한달에 내는 전기세는 3달러입니다. 마을사람들이 학생들을 먹이기 위해 안그래도 더운데 더운 불을 때가면서 음식을 하는 모습은 정말 죄송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이곳 마을 언덕언덕에는 선교 표시가 많이 보였는데 (정말 많이 보입니다.) 그린벨트운동의 모네리는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의 선교가 이곳의 전통종교를 개종시키고 전통문화가 거의 파괴되었다면서요. 반면 GBM의 활동가 라합은 노래를 부르라 하면 맨날 가스펠송을 부릅니다. 미국에서 온 학생들도 충격을 많이 받더군요. 기독교가 이렇게까지 깊이 파고들었다는 사실에요. 이 그린벨트운동의 여성활동가들 제인, 라합, 송탁 등은 직선으로 곧게 뻗은 우리의 머리카락을 부러워하더군요. 아이들이 태어나면 1년간은 머리카락도 직선이고 피부도 그렇게 검지 않는데 한 1년 지나면 검게 되고 머리도 곱슬해진다고 하면서요.

왕가리씨를 보고 만나다

[아카시아]왕가리마타이의 부족 키쿠유와 이집트를 체험하다11월 18일, 왕가리 마타이와 예일학생들과 마을 주민들과 함께 나무심기 행사가 있었습니다. 배가 내리는 흙길을 약 50분 가량 걸어서 우리는 현장에 도착하여 나무를 심었습니다. 왕가리씨는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그녀의 웃음과 열정과 에너지가 아프리카 아니 세계의 희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녀의 책 UNBOWED를 읽었는데 그녀의 민주화투쟁,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 어쩌면 우리의 역사와 똑 같은지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갔습니다. 온갖 박해에도(정부, 심지어는 남편의 박해에도) 굽히지 않고 열정적으로 세상을 살아온 그녀였기에 진정 그녀는 노벨평화상 아닌 그보다도 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를 심기위한 왕복 2시간의 빗길속 흑탕물걸음은 신발을 완전히 망가지게 했고 안그래도 구멍이 났었던 저의 운동화는 더욱 찢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이집트행을 해야했기에 버린다고 휴지통을 찾으니 케냐 고아원에서 왔다는 한 아주머니가 그를 챙기면서 빨아서 고아원 아이들한테 주겠다고 하더군요. 이것도 없어서 못신는다면서요. 실지로 아이들은 거의 신발이 없이 학교를 다니고 제인이나 파나도 신발없이 온 마을을 다닙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슬리퍼로 여행하는 북미나 유럽인들을 안좋아했는데 저도 이번엔 할 수 없이 미국집에서 가져온 화장실용 슬리퍼를 끌고 온곳 이집트를 헤비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남 욕할 것 못된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쉴틈없는 키쿠유 여성, 싱글 맘의 삶

마을을 떠나는 날 제인과 헤어지기 직전 정말 개인적인 질문이 있는데 대답해줄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무엇이든 답하겠다고 해서 왜 싱글맘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대답은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는 남자와 결혼을 이야기하는 정도의 관계였고 어느날 아이가진 것을 알고 이야기 했더니 그날부로 남자가 사라져버렸다는군요. 아이가 둘인데 그럼 둘째 아이 아빠는 ? 그랬더니 둘째 아이의 아빠도 첫째아이 아빠와 똑 같은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면 동생 파나도 그런 식으로 두 아이의 싱글맘이 된거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옆에 있던 인도의 날린이 듣다 못해 “남자를 왜 그렇게 믿느냐”고 반문하니 “결혼까지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안믿을 수가 있느냐”는 그녀의 대답이었습니다. 마음이 아프더군요. 아침 6시에 일어나 불을 피워 식사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점심싸서 학교에 보내고 나면 소 꼴을 베러 밭에 가고 그리고 커피 따고 바나나 따서 시장에 팔고 그리고 5시에 집에 들어와 저녁준비하고 먹고 그리고 9시에 잠자리에 드는 이것이 키쿠유족 여성들의 삶이었습니다. 제인은 하루 중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들때까지 한번도 쉰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리사’라는 케냐 티를 지속적으로 마시는데 이렇게 하면 농장에서 일할 때 배가 고프지 않답니다. 아프리카의 아이들, 정말 너무 이쁩니다. 그리고 엄마 말이라 하면 정말 잘 듣습니다. 던컨과 크리스토퍼(푸나의 아들 둘), 마이클과 윈젤(제인의 아들과 딸) 모두 우리와  헤어지는 날, 우리를 따라 오다가 엄마이자 이모인 제인이 자 여기까지야 이젠부터 집에 돌아가 라고 이야기하니 아쉬운 표정을 얼굴에 짓더니 그러나 모두 몸을 돌려 집으로 향하더군요. 그리곤 울더군요. 울면서도 계속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보자니 우리나라 아이들 같으면 따라오겠다고 엄마한테 떼쓰고 그랬을텐데 이들은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의 흑인과 아프리카의 흑인을 비교해보니 가장 큰 차이는 몸무게였습니다. 미국 흑인들은 거의 몸무게가 장난이 아닌데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몸이 가늘하죠.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니 전통춤을 매일같이 추고 일을 매일매일 하니 살이 찔리가 없죠. 아이들의 전통춤과 전통노래는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가르친답니다.

그리고 저는 나이로비를 떠나 이디오피아를 경유해 이집트에 왔습니다. 나이로비 국제공항에 있는데 일본 환경부 출신으로 케냐주재 일본대사관에 근무하는 일본인 친구 세이노가 동료들과 누군가를 호위하고 가고 있더군요. 호위당하는 사람은 장관같았는데 인상이며 걸음걸이는 꼭 국방부나 경제부처 장관 아니 꼭 중국과 막 회담을 마치고 회의장을 막 나오는 일본 수상 처럼 매우 얼굴이 굳어있고 딱딱한 인상이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할때까지 직원들이 창가에 기대어 무전기로 계속 연락하고 있더군요. 마치 그 모습이 유리창에 딱 달라붙은 잠자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웃음이 나왔습니다. 우연히 다시 통로에서 세이노를 만나 누구냐고 물었더니 일본 환경부장관이라고 하더군요.  그분의 걸음걸이는 도대체 환경부장관의 걸음걸이라고는 상상이 안되더군요. 다소 조금은 덜 권위주의적인 환경부장관들의 세계적 추세와 연결이 안되어서요.

한국과 미국의 좋은 점만을 가진 크리스틴 킴

이번에 저희들을 안내했던 친구가 크리스틴 킴입니다. 이 친구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는데 그래도 한국어를 잘 합니다. 크리스틴의 주업무는 예일환경법센터에서 다니엘 에스티교수와 함께 환경이행지수와 환경지속가능성지수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그녀가 이번에 이 케냐 여행의 TA였습니다. 그녀의 이번 여행 조직 스타일을 보니 미국 정형스타일도 아니고 한국 정형스타일도 아니고 미국과 한국의 좋은점이 잘 결합한 형태의 조직 스타일을 보여주더군요.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미국인 특유의 논리적인 것이 잘 결합되어서 학생들이 모두 그녀를 칭찬하더군요. 저도 그녀의 조직 스타일을 눈여겨보고 과연 칭찬감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쓰는 한국어를 보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우리도 쓰지 않는 고어를 그녀는 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언니, 난 밥먹으면 살이 다 궁뎅이로 가서 문제에요” 합니다. 학생들 모두 케냐마운틴에 갔다가 그곳 산장에 ‘오늘 우리가 본 동물들’ 이라는 등록부가 있더군요. 그런데 그 등록부를 보니 출신 국가가 한국(S.korea)라고 되어 있어서 제가 미국 친구들한테 “어 여기 한국인 왔다 갔나봐, 이 먼곳까지. 세상에 세상에” 했더니 미국친구들이 자세히 보더니 “춘이, 우리의 크리스틴이쟎아” 하더군요. 그래서 머리가 띵 하더군요. 크리스틴은 미국서 나고 자랐고 실질 국적도 미국인인데 그녀가 국적기입을 한국으로 하니 말입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한국인과 결혼할 것을 요구했다가 지금은 한발 양보해서 미국인이어도 좋은데 한국말을 하는 사람으로 못을 박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도 한국말 못하는 사람과는 사귈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우리둘이 언젠가 저의 집에서 뉴헤븐의 윤세교 사장님이 제게 준 소주 한병을 매운탕 삼아 마셨는데 그 소주가 완전 물이더군요. 원래는 한 병을 우리 둘이 마시고 한 병은 그녀가 가져가기로 했는데 이거 원 소주가 완전 물이어서 우리 둘이 “야 소주가 뭐 이러냐. 완전 물이네” 하면서 연거푸 마셔댔고 결국 소주 두병을 우리 둘이 바닥냈죠.  그 두병도 부족해서 좀 더 없냐 하고 입맛을 다시기도 했는데 아무튼 그때 약간 혀꼬부라진 소리로 그 친구는 잘 안되는 한국어를 저는 잘 안되는 영어를 마구마구 섞어가며 이것저것을 논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질 미국에서 파는 소주는 무척 알코올도수가 약합니다. 하여간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저에게도 큰 배움이어서 그녀에게 무척 고마울 따름입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아닌 삐끼가 없이는 상상이 안되는 이집트 카이로를 오다

이디오피아를 거쳐 카이로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11월 19일 새벽 1시. 이집트로 향하는 비행기안에서 론리 플래닛을 읽고 어디어디서 자야하겠다 하는 생각만 했지 아무 예약이 없었죠. 유럽은 호스텔도 예약이 필요하지만 개도국은 굳이 예약이 필요없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에 비행기에서 정한 호스텔로 들어가자니 택시비는 50이집션파운드 약 9천원가량이었습니다. 숙소에 들면 숙소비가 또 드니 그냥 공항에서 잤습니다. 좋은 커피숍에 좋은 쿠션이 있어서 그곳에서 새우잠을 자고 새벽 5시 20분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제가 임의로 정한 숙소에 왔습니다. 숙소는 25이집션 파운드. 우리돈으로 4천5백원 -5천원입니다.

[아카시아]왕가리마타이의 부족 키쿠유와 이집트를 체험하다

이집트, 그리고 카이로. 글쎄요. 뭐라고 말하기가 힘드네요. 베를린여름인턴기간중 이집트를 가려고 계획했다가 레바논-이스라엘간 전쟁이 터져 포기했고 또 지구의 벗 독일 활동가 틸만이 여름에 가면 더워서 거의 죽을 판이라고 해서 케냐행을 하는 이번 기회에 이집트행을 하기로 결정해서 오긴했는데 -----.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물으니 이집트가 가장 감동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아직까진 감동이다 이런 것은 없습니다. 어제 이집트 뮤지엄과 이슬람 카이로를 갔고 오늘 그 유명하다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다녀왔습니다. 이집트 박물관은 그냥 온갖 문화재들이 시설이 없어 여기저기 드러누워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 정도로 많습니다. 이집트의 무덤과 조각들을 도난해 전시한 다른 나라박물관에서 보면 이집트 문화의 신비로움과 거대함에 와와를 금치 못하는데 막상 이집트에서는 그런 것들이 천지에 있어서 그것이 귀중한 문화재인지가 사실 구분이 안갈정도입니다. 람세스 2,3,4,5세들의 무덤관과 미이라들을 보면서 와 이사람들은 죽어서도 자기의 후세들에게 엄청난 부를 주는구나 싶더군요. 그런데도 가난한 이집트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오늘 다시 이슬람 카이로 지역을 가려고 나갔다가 그냥 실망하여 다시 들어와서 사실은 이 글을 쓰고 있는 겁니다. 이집트가 실망인 이유, 글쎄 그냥 사람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매우 친절한데 그 도가 지나치다고 해야하나---. 이렇게 훌륭한 문화재를 두고 왜 여행객들을 짜증나게 하는지 ---.

공항에 새벽 1시에 도착했을때부터 상인들의 접근은 정말 장난아닙니다. 이집트 관광청 소속의 뱃지를 달고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나오는 외국인들에게 접근합니다.

상인 : 숙소를 정했느냐 ?
김춘이 : 정했다.
상인 : 어디냐, 우리가 연락해서 방이 있는지 알아봐주겠다.
김춘이 : 리얄리 호스텔이다. 그런데 당신들은 누구냐 ? 
상인 : 우리는 관광청 직원들이다. (뱃지를 당당히 보여줍니다.)
상인 : (김춘이가 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고) 아 어떡하면 좋냐. 방이 없다고 한다. 통화해볼래?

그말을 듣는 순간 번개같이 일어서서 그들의 공항 사무실을 걸어서 나왔습니다. 그 전까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론리플래닛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론리플랫닛에 의하면 이들 모두 상인들이고 전화를 하는 것도 자기하고 짜고치는 사람들한테 전화를 해서 방이 없다고 하고 자기들의 방을 소개한다는 거였습니다.  새벽 1시부터 이렇게 당하니 카이로에 도심에 나오면 얼마나 많이 당하겠습니까. 상상을 초월합니다. 특히 혼자 다니는 여자, 특히 동아시아에서 온 여성들은 그들에게 좋은 타겟입니다.

도대체가 길에서 한스텝을 못갑니다. 얼마나 말을 걸어대는지.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가기까지,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앞에서도, 온갖 택시를 타면서도 얼마나 이런 상인들의 호객행위가 많은지 사람 질식하게 만듭니다. 더군다나 저는 혼자라 더 심했습니다. 여자가 혼자 지나가면 이를 절대 그냥 놓치지 않는 이집션들. 길 한두발짝만 걸어도 how are you ? Where are come from ? 이 온 천지서 들립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여자친구가 한국인이었다는 이유로, 자기부인이 일본사람인데 한국이 일본과 가깝다는 이유로, 자기 딸이 절 닮았다는 이유로 하여간 온갖 이유는 다 같다 붙여댑니다. 그러고서 이집트의 호의를 베풀고 싶은데 꼭 받아달라고 거의 간청하듯이 합니다. 그래서 어찌 어찌 저를 그들의 가게로 데리고 갑니다. 향수며 파피루스며 등등. 가서 차를 한잔 주긴 합니다. 배고 고프다 하면 음식도 줍니다. 물론 그들이 처음에 이야기할때는 절대 상업적인게 아니라며 강조에 강조를 하죠. 이야기 다 듣고 그들의 과거 여자친구 이야기까지 듣고(실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차도 다 마시고 마지막 물건을 안사니 제가 차 값을 내겠다고 이야기하면 그들은 손을 내젖습니다. 이슬람의 호의고 이집트의 호의라면서요. 그런데 돈 안받는 이 행동은 우리 한국인과 같아서 혼자서 웃었습니다.

여하간 대화도중에 개인적인 이야기가 필히 나오게 되는데 온 세상 사람들에게 빠질수 없는 질문, 남편이 있냐. 자식이 있냐. 남자친구가 있냐 등의 질문 공세가 퍼부어집니다.
그들의 질문대로 저는 대답합니다. 남자친구가 있냐고 묻는 사람에겐 남자친구가 있다고 답하고 남편이 있냐고 묻는 사람에겐 남편이 있다고 대답합니다. 저편에서 난 딸이 둘이다 라고 이야기하면 저도 딸이 둘이라고 이야기하고 저편에서 아들이 둘이라고 하면 저도 아들이 둘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또 없는 자식들의 나이까지 물어봅니다. 제가 정해둔 대답은 6살과 4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남편없이 혼자서 여행하는 저가 특이한지라 이집트 떠날때가지 자기를 남자친구로 삼으면 안되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제가 “알라가 하늘에서 보고 있는데 그런말 하면 못쓴다”라고 이야기하면 그들은 “알라는 이런 것까지 자세하게 관여못한다”고 대답합니다. 다음에 남편이랑 다시 한번 올텐데 그때 지금 못다한 HOSPITALITY(호의)를 보여달라고 하면 떨떠름하게 있다가 “그러지” 합니다. 그냥 이런 것도 한두번이지 스핑크스를 가도 룩소 신전을 가도 식당을 가도 이런식이니 정말 사람환장하겠더군요. 그러니 저는 스핑크스며 피라미드며 사람에 지쳐 그 효과가 반감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어찌어찌 버스타고 피라미드에 가니 온갖 학생들이 저에게 달려와서 지폐를 꺼내들고 사인해달라고 하더군요. 이거 원 내가 브룩실즈도 아니고 이영애도 아니고 난감해서 멍하니 서 있으니 아이들이 제앞에서 자빠지고 넘어지고 등등. 그래서 몇장 해주고 달음질해 스핑크스로 도망했습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서 감동을 느끼고 싶은데 너무 많은 사람들의 호객행위와 학생들의 사인공세(?)가 그곳에 오랫동안 있고픈 마음이 안들게 하더군요. 창원에서 왔다는 대학생을 만났는데 그 친구도 똑 같은 경험(사인해주고 하는)을 했더군요. 그래서 “난 그런것 때문에 이집트가 반감된다” 라고 했더니 그친구는 “누나 유럽이나 미국에 가면 누가 우릴 이렇게 환영해줘요. 이집트니까 이렇게 우릴 환영해주지. 저 카이로 너무 맘에 들어요. 카이로 완전 제 체질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곳이 저는 뉴욕인줄 알았는데 카이로에요, 카이로” 하더군요. 생각해보니 그 청년의 말이 다 맞아서 저도 카이로가 좋아지기 시작하더군요. 올드 카이로든 이슬람 카이로든 모스크는 훌륭한데 그 모스크만 나가면 흙먼지며 쓰레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문화재는 많은데 주변이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곳은 지금까지의 여러 여행경험중 이집트가 처음입니다.

카이로에서 13시간 걸리는 기차를 타고 룩소에 아침에 내리니 달라붙는 호스텔 매니저들. 다른 여행객들은 정말 땅바닥에 주저앉더군요. 얼마나 호스텔 장사아치들이 달라붙는지. 한걸음 내걷기가 힘들어서요. 룩소의 호스텔은 우리나라돈으로 2천원.

기차를 타면 온 기찻간의 눈은 관광객을 향하고 특히 혼자인 저에게 집중합니다. 뭘 하나 하더라도 집중합니다. 나이 든 아저씨들은 welcome하고 따뜻한 웃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룩소신전과 카트락 신전에 있는 오벨리스크며 람세스 상이며 태양신이며 모두가 훌륭하고 또 복원중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저는 혼자 다녔는데 그곳 직원(전통복장을 하고 문화재를 관리하는)들이 저를 일반관광객들은 못들어가는 구역으로 안내하더군요. 그래서 한두시간 정도 제한구역에서 공개되기 전의 유물들을 보았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호의로 알았고 이것이 호의다 싶어서 고맙다고 나오면 어김없이 돈을 요구합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습니다. 이것이 이곳 사람들의 방식인듯 했습니다.

카이로를 오려고 23일 밤 11시 이등석 기차를 예약해서(13시간 소요, 왕복 26시간.) 룩소 기차역에 서 있는데 정말 허름한 기차가 오더군요. 진짜로 허름한데 온갖 기차안 사람들의 눈은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저를 향하고 그런데 군인들, 남자 아이들, 아저씨들만 보이고 도대체 여자승객들은 한명도 안보이더군요. 저는 차비를 날리면 날렸지 도저히 저것은 못타겠다고 생각하고 저것이 11시 카이로행 기차냐고 물으니 주변사람들이 다음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13시간 달리는 기차의 차비는 1등석이 1만원, 2등석이 6천5백원가량입니다. 이집트 물가 감당안될 정도로 쌉니다. 그런데 또 그를 깍으려면 이집트시민들에게 참으로 죄를 짓는 마음이긴 합니다. 그런데 안깍고 보면 다음에 저만 또 바가지를 쓴 격이라 ---. 다운타운 제 호스텔에서 이스람 카이로까지 15-20분가는데 10파운드. 10파운드면 2천원. 그래서 그냥 탔는데 다음날 한국인 친구는 누나 5파운드야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다음부턴 깍았습니다. 물론 택시는 가죠. 그게 정상가격이니까. 참으로 너무 싸서 사람 난감하게 하는 물가입니다. 그래서 먹고자는데 5일동안 1만원도 안썼습니다. 이에 비하면 케냐는 물이 못나게 비쌉니다.

종교

이슬람국가 이집트. 5천만이 이슬람이고 1천만정도가 크리스트교입니다. 제가 탄 택시운전사분의 성함은 마이클. 모하메드, 아메드 등의 이름은 모두가 이슬람이고 이름이 마이클이면 모두 크리스챤입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만난 모든 이집트 크리스챤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마이클이었습니다. 그들도 이슬람과 크리스트교의 충돌 사이에서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이집트에서도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슬람 모스크는 크고 화려한데 사람들의 생활은 빈곤하기 이름 없으니 종교의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하메드 알리의 아들과 부인과 딸과 손자손녀가 묻어있다는 묘를 갔는데 그는 화려한 반면 그 묘지 바로 위 아래에서 생활을 하는 50만의 인구는 빈곤하기 이를데 없어서 한참을 어이가 없어 서 있었습니다. 과거부터 이슬람묘지가 있었고 주거가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50만의 도시를 이루게 되었던거죠. 실지로 그들은 무덤위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제가 정부는 이렇게 되도록 뭐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정부가 부패해서 이런 곳까진 손도 못쓴다고 하더군요. 대부분의 이집트 사람들은 한국, 중국, 이란 등을 좋아하더군요. 미국에 제 할소리를 그대로 한다는 것 때문에. 일본에 대해서는 물으니 일본과 영국은 미국의 푸들이라면서 안좋아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무바라크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물으니 무바라크 자체는 좋은 사람이지만 현재 정부는 썩었다. 라고 평가하더군요. 미국에 대해 물으면 미국사람들은 좋지만 미국정부는 좋지 않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식당의 주인, 택시 운전사, 길거리의 행상객들이 정치적 입장이야 어떻든 모두 수준높은 정치의식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꼭 여자친구 남자친구 하자는 둥 하는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서 문제이지 그런 대화전의 세계정세에 대한 그들의 판단은 아주 들을만했습니다. 기독교의 휴일은 일요일, 유대교(이스라엘)의 휴일은 토요일, 이슬람의 휴일은 금요일입니다. 만약 서방세계가 이슬람이었다면 지구상 거의 모든 사람들은 금요일을 휴일로 지냈겠죠. 실지로 카이로 도착한 날 일요일날 관공서나 은행이 일하고 있어서 놀라서 물었더니 휴일이 금요일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이곳의 남자들은 혼자 걸어가는 저를 보고 이런저런 많은 것을 묻기는 하지만 절대 해꼬지는 안합니다. 아마도 강한 종교적 계율때문인 듯 했는데 하여간 과한 친절이 저의 방향을 방해하고 그것이 저를 성가시게 할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냥 맺고 끊는게 명확하고 대신 이집션 타임은 세월가는줄 모릅니다. 이집트의 춤은 배꼽댄스(벨리댄스)가 전통춤. 그래서 이를 안보면 이집트문화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아 보러갔습니다. 입장료는 그 유명한 이집트인들의 호의라는 명목으로 무료로. 이는 원래 밤 11시, 12시부터가 시작입니다. 함께 가기로 한 덴마크에서 온 고고학자 레게가 안가는 바람에 그 시간에 저혼자 갔는데 가니 춤추는 댄서만 빼고 저 혼자 여자더군요. 그녀가 갔으면 셋이 여자였을 것을----. 그렇다고 또 생뚱맞게 나올수도 없어 그곳에서 한시간 가량 춤을 구경했습니다. 관광객구역의 벨리댄스는 관광객을 위한 것이라 전 순전히 이집트 사람들이 가는 곳을 갔었는데 다른 관광객들이 부러워하더군요. 춤은 정말 재미있고 좋더군요. 어쨌거나 모두가 남자이니 그들의 행동을 제가 잘 관찰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댄서를 대하는 행동은 아주 예의가 깊었습니다. 우리나라 같지가 않더군요. 아직도 그 배꼽댄스의 음악이 귓전을 때립니다.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데 이거 뭐 이집트에서 내가 뭘했나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한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 돌아올때는 “아싸했어” “충분히 배웠어”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집트는 사람에 과잉친절에 치여서 문화재도 맘껏 못 보고 못 느끼고 못 배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이만큼 로컬 사람들의 성향을 알게 된 여행도 없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또한 다른데처럼 이집트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사귄 것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시내에서 공항까지 1시간 걸려 가는 에어컨도 잘 가동되는 이 공항버스가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인줄 아십니까 ? 너무 싸서 감당안되는 물가, 2파운드 즉 400원입니다. 완전 장난 아닙니다.

커피의 나라, 이디오피아 그리고 슬픈 우리들의 자화상, 아프리카

그리고 이디오피아 비행기를 타고 커피의 고향 이디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밤 12시에 도착했습니다. 땅이 떡떡 벌어지는 가뭄에 배고파 굶주리는 아이들의 사진. 그는 거의 이디오피아 아이들이었죠. 실지로 밤 12시에 차가 달리는데 건설공사장옆에서 얇은 옷 걸치고 있던 거지 아이들이 차로 내 달리더군요. 먹을 것을 달라고. 호텔에 도착하니 전화기는 연결이 안되고 TV는 있어도 (gold star) 전혀 프로그램이 안나오고 그나마도 아침에 일어나니 전기는 들어오지 않더군요. 이디오피아의 가난한 삶에 비해 내가 하루저녁 묵는 곳이 화려하면 어떡하나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밤 12시에 도착해 저녁식사를 시켰습니다. 돈이야 어차피 이디오피아 항공이 내는 것이니 저는 제방에 시켜놓고 먹지 않으면 다음날 방을 치우는 사람들이 집으로 가져갈 것 같아서요. 아니면 길거리의 음식과 돈을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라도 호텔측에서 줄 것 같아서요. 창문을 여니 아침 6시부터 길거리에 사람들이 동냥하러 다니는 것이 눈에 많이 띄였습니다. 그리고 달리기 하는 이디오피아인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들은 그냥 무조건 달립니다. 그래서 세계 마라톤역사에 이디오피아사람들이 많이 우승했다는군요. 거리를 나가보니 사방을 한눈에 바라보면 총 사람 30명중에 거지행색-거지행색이 아니라 실지 거지들입니다.-의 사람들은 10명가량. 정말 이곳의 가난이 실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산천은 우리와 비슷하게 정말 이쁘더군요. 사람들은 무지무지 착하고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었습니다. 호텔직원들이건 거리의 사람들이건 눈망울이 또롱또롱하고 그러면서도 매우 순진합니다. 제가 그들의 표정을 통해 읽은 건 “차라리 내가 남한테 찢기고 당하면 당했지 남에게 피해주고 남에게 상처주는 짓은 못해”였습니다. 그러니 찢겨지고 헤벼져도 남 비난할 줄 모르고 그 가슴아픔을 묵묵히 짐으로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디오피아인들, 아니 아프리카인들. 참으로 가슴아프고 한켠으론 많은 것을 공부케하는 짧은 이디오피아의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국여자들이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예쁘다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부터는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디오피아여자들로. 정말 이쁩니다. 다시 아침에 케냐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 아프리카 사람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한국에 비하면 자연자원도 많고 땅떵이도 넓은데 왜 아프리카가 가난하지 이유를 모르겠다. 한국도 아프리카처럼 식민지도 겪었고 군부독재도 겪었고 그랬는데…..” 했더니 그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식민주의, 내부전쟁, 1세계국가들의 이익”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언제까지 비난할수도 없고 문제는 내부적으로 서로 단결하지 않음, 뭔가에 대해 저항하지 않음이 주요 이유가 아니겠느냐”라고 했더니 그들 스스로도 서로 단결치 않은 아프리카의 이기주의가 아프리카를 더욱 큰 슬픔의 대륙으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특히 아프리카인들 모두 콩고에 대해서는 너무 가슴아파했습니다. 기름에, 금에 장난아니게 천연자원이 많은 콩고가 내부분쟁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면서요. 너무나 천진하고 순수한 그들. 우리 편하자고 우리가 그들에게 일부러 씌운 ‘검은’ 것에 대한 편견, 정말 뿌리뽑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대화를 나누었던 케냐에서 커피 사업을 한다는 케냐인은 공항에서 헤어지면서 “김, 기다려봐. 콩고도 곧 분쟁을 해결하고 케냐도 지금 좋은 리더쉽을 가져가고 있으니……. 더 좋아지겠지” 하더군요.

케냐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정오 12시. 미국으로 가는 저의 비행기는 밤 11시. 족히 12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일정. 그러나 운 좋게도 공항내 KLM Lounge에 편하게 자리를 잡아 편지 글 마지막을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냐구요? 공항을 지나가나 KLM/Kenya airway 라운지를 보았고 KLM이 아시아나 혹은 KAL과 마일리지 공유가 되니 저도 라운지에 갈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얼굴이 너무 검어 이빨만 하얀 직원 모리스(Maurice)가 저의 아시아나와 KAL 카드를 보더니 안된다고 하더군요. 카이로를 출발 아디스아바바를 출발 케냐도착 다시 런던 경유 그리고 뉴욕 도착이라는 저의 일정, 그리고 런던행 비행기를 타기가지 총 1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저의 말에 그리고 얼굴은 타서 새까맣고 장기간 비행에 피곤이 절은 저를 보고 그냥 내치기가 뭐했던지 그는 다시 돌아와서는 KLM(비즈니스급) 고객들이 쓰는 라운지로 저를 안내하더군요. 이곳의 모든 음식은 무료. 물과 커피, 음료수 심지어는 샌드위치 등등 모든 게 무료입니다. 인터넷도 무료로 쓰고 음식도 음료도 무료고 무엇보다도 등받이 좋은 의자도 있으니 세상을 다 얻은듯 합니다. 그의 동료 리처드(Richard)가 또 저를 돕고, 두 사람 모두 케냐 42개의 부족 중 가장 세가 크다는 루오족입니다. 제가 케냐 스와힐리어 노래를 부르니 그 반가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나저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곳이 유럽이었으면 가능할까 이곳이 한국이었으면 가능할까 생각해보니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아프리카니까 가능한 오늘의 이 긴 행복. 그들이 베푼 호의가 또한번 저의 철학을 상기시킵니다. “세상은 참 이름없이 살아가는 이들 때문에 의미있는 곳이다”라는. 맑고도 순진한 눈빛의 아프리카인들, 그러면서도 그들의 눈망울은 왜 그리 항상 촉촉하고 깊고 먼곳을 응시하는지, 우리모두가 잘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역시 사람이 핵심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 내가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하고 ----. 오늘 라운지에 앉아 그동안 여행하면서 내게 잊지 못할 도움을 주었던 많은 이들을 생각했습니다. 과테말라의 미구엘과 안토니오, 독일의 카트리나와 펠릭스, 한스, 덴마트의 토니, 핀랜드의 리나, 이집트의 압둘과 아메드, 케냐의 모리스, 제인, 크리스토퍼, 엘살바도르의 카를로스 그리고 소피 그리고 곳곳에서 만난 우리나라 교민들 등등에 이르기까지----. 이들과의 만남은 소위 위험하다고 이야기되는 곳에 대해 제가 그런 편견을 버리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제게 세상은 참으로 살만한 것이라고 느끼게 해 주었고 저에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들은 제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제게 그들의 가진 것을 제공했고 저는 그들을 통해 제가 향후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겠다를 배웠습니다. 생각하면 이들 중 거의 모두는 저보다 가진게 더 없는 사람들인데도 말이죠. 그들이 제 인생의 선생님입니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니 새삼 혼자 떠나는 여행을 감행할 수 있도록 용기를 제게 준 그 무언가에 감사함이 들고 별 것 아니지만 저 자신에 대해 뿌듯함도 드네요.

미국에 가면 2주동안 못한 숙제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쿠나 마타타”입니다. 이는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사람들이 쓰는 스와힐리어의 “문제없어”입니다. 사실 라이언킹을 보면 이 말이 많이 나온다는군요. 시험과 페이퍼 때문에 미국 도착내일부터 12월 22일 방학전까지의 한달이 저에겐 무척 고통스러울 시간일것이 예감되지만 그래도 “하쿠나 마타타”일것을 기대하면서 저도 여러분께 쓰는 긴 편지를 마칩니다. 11월 25일 오후 6시. 얼척없게 이용하게 된 케냐 국제공항 KLM 고급 라운지에서 김춘이가 드렸습니다.

방금 이곳 라운지의 모리스와 리처드가 떠나면서 이곳 직원들에게 제가 비행기 뜰때까지 이곳을 계속 쓸 수 있도록 말해두었다고 하면서 근무를 마치고 떠나는군요. 정말 Hakuna Matata 입니다. 온 세상이 이렇듯 Hakuna Matata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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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왕가리마타이의 부족 키쿠유와 이집트를 체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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