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속의 여성 "아니마" / 여성 속의 남성 "아니무스"

탁호현2006.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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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속의 여성 '아니마'   /


여성 속의 남성 '아니무스'


Yesterday, Yes A Day  -  Jane Birkin<EMBED style="LEFT: 1px; WIDTH: 80px; TOP: 1px; HEIGHT: 28px" src=http://bin.cafe.empas.com/jwanice/pds/b13/attach_down.html?asn=426&msn=1¬ice=0/yesterdayyes.asf width=300 height=45 type=video/x-ms-asf invokeURLs="false" AllowScriptAccess="never" volume="0" loop="-1">



   그는 누가 보나 강직하고 남자답다고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 리더십, 결단력과 추진력, 동료간의 우애, 개인적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공정 무사한 자세로 하여 그는 주변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남성 속의 여성 "아니마" / 여성 속의 남성 "아니무스"그러나 그의 부인은 그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면 그는 잔소리꾼이고 변덕쟁이라고 한다.


사사건건 작은 일을 가지고 짜증내고,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가족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여기저기 몸이 불편하다고 호소하고, 공정 무사는 커녕 어린애 같고 자기 중심적이며, 기분이 이랬다저랬다 해서 맞추어 주기 어렵다. 그래서 가족들은 그가 퇴근해서 돌아올 무렵이면 슬며시 제 방으로 숨어 들어가 접촉을 피하려 하고, 이것이 또한 그의 불만이다.

이 남자를 보면. 누가 보아도 남자다운 남자, 사회에서 말하는 남자 이미지 - '남성 페르소나'(Persona)- 에 일치된 행동을 하는 남자가, 집에서 보이는 약하고 변덕스런 성격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무대에서 보인 이남자의 인격 속에 숨어있던 또 하나의 인격 - '여자 중에서도 유치하고 미숙하고 열등한 여자'라고 사회가 말할만한 성격이다.






남성 속의 여성 "아니마" / 여성 속의 남성 "아니무스"


페르소나(persona) :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들이 연기할 때 쓰는 가면을 뜻하며, 원시사회에서 가면을 쓰는 것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불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가 바깥 세상에서 하는 역할들을 의미.



사람의 페르소나는 사회상황과 사회관습의 요구에 응답하는 쓰는 가면이다. 영어의 '성격' (personality) 이란 말은 이 가면이 어원이다. 





페르소나는 사회가 부과하는 역할이며 사회가 연출하도록 사람에게 기대하는 부분으로. 공적 자아이며, 세상에 노출시키는 자신의 일면인 사회적 자아 이다. 



이것은 집단정신의 한 단면이고. 흔히 개성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가면(mask)으로, 사람들이 곧잘 나의 생각,나의 신념, 나의 가치관,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결코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남들의 생각,즉 부모의 생각,선생의 생각,다른 친구들의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페르소나는 참다운 것이 아니다.그것은 개인과 사회가 '어떤 사람이 무엇으로 보이는 것'에 대하여 서로 타협하여 얻은 결과다.



이것은 진정한 자기(self)와는 다른 것이며 페르조나에 입각한 태도는 주위의 일반적 기대에 맞추어 주는 태도이며,외부와의 적응에서 편의상 생긴 기능 콤플렉스이다..


한국사회는 특히 페르소나가 강조되는 사회이며 페르조나와 동일시가 심해지면 자아는 그의 내적인 정신세계와의 관계를 상실하게 된다.



즉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게 되고 그 존재조차도 잊어버린다..




페르소나는 가상(假相)이다.그러나 그것은 없애야 할 것이라기보다 '구별되어야'할 것이다.



그것이 자아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자각과 맹신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평소에는 무의식에서 잠자고 있다가 그가 사회적 의무와 요청에서 해방되는 순간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그 남자의 '아니마'(Anima), 남자 속의 여자이다.

또한 누가 보아도 여자답다고 할 만한 사람이 있다. 섬세하고 아름답고 조용하며 항상 남의 그늘에서 나서지 않고 겸손하면 매사를 거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씨 고운 여자 -그녀가 어느 날 사소한 일로 흥분하여 자기 아이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 것을 본 사람이 그녀를 "딴 사람 같았다"고 하였다.



그 사람은 이때 그녀의 '여성 페르소나' (Persona) 밑에 미숙하고 열등하며 원시적인 상태로 남아 있던 남성성 - 여자 속의 남자, '아니무스'(Animus)를 본 것이다.


'아니마'(Anima-Seele-심령 : 心靈) . '아니무스'(Animus-Geist-심혼 : 心魂)는 융이 무의식에 대한 오랜 탐구 끝에 발견한 개념이며 '남성과 여성의 페르소나'(외적 인격)에 대한 "내적 인격"을 말한다. 



프로이드는 인간은 어린시절에 남자는 오이디프스 컴플랙스(oedipus complex), 여자는 엘랙트라 컴플랙스(electra complex)를 거치면서 여자는 아빠를 사랑하고 남자는 엄마를 사랑하게 된다고 규정 한다. 


이러한 사랑이 대부분 이상적인 이성의 모습으로 자신의 내부에 자리잡게 되는데, 융은 이러한 이상적인 연인상을 곧 자신의 일부로 보고 그것을 아니마, 아니무스라고 부른다. 


남자는 남자일 뿐 아니라 그 마음속에 여성적 요소를, 여자는 그 마음속에 남성적 요소를 가지고 태어나고, 인격의 성숙을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라는 사회적 역할에 집착하기보다. 내면의 인격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 가설'의 골자이다. 






남성 속의 여성 "아니마" / 여성 속의 남성 "아니무스"


'꽃과 토르소' (Flower and Torso).' 피터 블룸' (Peter Blume) 1927.





가슴을 드러낸 것으로 여성이라는 것을 부정 할 수 없음에도 그녀의 각진어깨, 팔, 엉덩이 선으로 하여 어쩌면 ‘그녀’가 아닌 ‘그’ 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일어난다. 




융이 언급한 보이지 않는무의식의 세계의 여성의 남성성인 아니무스와 남성의 여성성인 아니마를 시각화한 미술작품. 



남자는 남자다움을 배우는 동시에 이에 맹목적으로 집착하지 말고, 내면의 여성적 감성(感性)을 키워 나가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움을 배우더라도 마음속의 남성성(로고스 Logos), 곧 판단하는 힘과 지혜를 발전시켜야 한다.

'남성의 아니마'는 '기분'으로 표현되고 '여성의 아니무스'는 '생각' 또는 '의견'으로 표현되는데 '아니마'가 미숙한 상태에 있으면 앞에 예를 든 남자처럼 '짜증'과 '변덕스런' 경향을 나타낸다. 여성의 미숙한 '아니무스'는 폭발적인 공격성과 따지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런 때 여성은 경직된 의견과 논리로 남성을 공격하며 남성의 미숙한 '아니마'는 이런 여성의 따지는 말버릇을 가장 싫어하고 이에 상처를 입는다. 96_signalamical2


'아니무스'는 '다수의 의견'이라고도 한다. 그 의견은 보편 타당하여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미숙한 '아니마'는 감상적인 분위기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여성의 '아니무스'는 그런 흐리멍덩한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


그러니 미숙한 '아니마'의 소유자에게 여성의 '아니무스'가 논쟁을 시작하면 남성은 기겁을 해서 도망가거나 조금 대응을 해보다가 궁지에 몰리면 화를 버럭 낸다.





그림자(Shadow): 프로이트의 id(이드)와 유사한 개념으로, 인간의 부정적 측면을 가리키고, 인간의 동물적인 사악한 면, 부도덕성과 공격성, 잔인성 등의 원형이 [그림자]이다. 인간의 원죄라는 개념을 형성시킨 근원이라고 한다.
그림자도 역시 붕괴시키는 에너지이지만 트릭스터와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이다. 그림자는 우리가 수치스러워 무의식 속에 파묻어 버리고자 하는 비천하고 반사회적인 욕망을 나타낸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한 단단한 통제력을 잃기라도 하면 우리를 어두운 행동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고 느껴지는 내적 공포이다. 이것이 외부로 투사되면 그림자는 희생양을 찾아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장 방어력이 없는 사람을 희생자로 만들 고자 하는 충동이 된다.


 그러나 그것을 또한 긍정적인 역할도 갖고 있어 우리 내부의 긍정적 이며 창조적인 긴장을 형성하고 우리에게 삶 속에서 '밀어 붙여야' 할 어떤 것, 극복해야 할 내적 장애물을 만들어 준다.


트릭스터(trickster-사기꾼, 협잡꾼, 마술사): 트릭스터는 심리학적 삶에 있는 반항적 에너지로서 기존 상태를 부인하거나 의문시하고 아주 잘 돌아가는 체제에 제동을 걸고 심지어 는 한창 승리감에 차 있을 때조차도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것들을 비웃고 미래의 재난을 예언 하길 즐긴다. 트릭스터는 아무런 분명한 도덕률도 갖고 있지 않고 무너뜨리고 조롱하고자 하는 충동 외에는 어떠한 일관된 규약에도 매여 있지 않다.




부부싸움을 반복하는 사람들, 우리는 성격이 안 맞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무의식의 미숙한 '아니마'와 미숙한 '아니무스'가 서로 자극하고 서로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의 과거 생활사를 보면 서로 상대방에게 둘도 없는 이상적 남성상과 여성상을 보고 결혼한 경우이다.


그런데 그들이 서로 모습에서 본 그 이상적인 남성과 여성상은 또한 바로 그들 자신의 '아니무스', '아니마'의 인격상의 일면이었던 것이다. 


'아니마'나 '아니무스'는 그 용어의 뜻이 말하는 것처럼 매우 깊고 다양한 의미를 갖는 원초적 상징으로 표현된다.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기는 쉽지않다.


'아니마'는 창녀에서 성녀에 이르는 여러 측면을, '아니무스'는 타잔과 같은 육체적 영웅에서 간디와 같은 지혜로운 자에 이르는 여러 발전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아니마'는 인류가 여성에 대하여 체험한 모든 것의 침전이고 새와 사슴, 해와 달과 같은 자연의 상징으로도 표현된다.


'아니마', '아니무스'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그림자(Shadow)를 살리는 것보다 더 어렵고 엄청난 창조적 작업이다.



남성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에만 맞추지 말고, 정서적인 취미를 익히고, 작고 섬세한 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여성이 여성다움에 머무르지 말고, 공부하며 일함으로써 생각하는 힘을 기를 때,

남성은 보다 깊은 공감능력과 안정된 정서를 지닌 존재로, 여성은 따지는 여자에서 지혜로운 여성으로 한걸음 더 다가갈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