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rt Donald Cobain

최희진2006.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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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t Donald Cobain

"몇 년에 걸쳐 펑크록 101코스로부터 파생된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만드는 것에 대해 흥분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나는 뭐라고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무대 뒤에 있고 쇼를 알리는 표시로 객석의 불이 꺼지고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성이 들리기 시작해도 아무런 감동을 느낄 수 없다. 프레디 머큐리처럼 무대를 사랑하고 관객들이 바치는 애정과 숭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나는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가 정말 존경스럽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여러분들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 한 사람 속이고 싶지 않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공정하지 못하다."                       

                                                   

  -'커트 코베인'의 유서중에서

 

 

 

 

 


 밴드 너바나(Nirvana)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 송라이터였던 커트 코베인은 1990년대의 펑크, 얼터너티브록 씬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뮤지션이다.

 

 1967년 시애틀에서 태어나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 음악은 친구이자 돌파구이며 소통의 매개체였다. 1987년, 커트 코베인은 베이시스트인 크리스트 노보셀릭과 드러머 채드 채닝과 함께 밴드 너바나를 결성했고 시애틀에서 주로 공연을 했다. 1991년 레이블 '게펜(Geffen)'에서 새로운 드러머 데이브 그롤과 함께 녹음한 그들의 앨범 '네버마인드(Nevermind)'는 1990년대 젊은이의 감수성을 송두리째 바쳐버리게 하는 기념비적인 앨범이었다. 그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시애틀에서 활동하고 있던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은 그들의 성공 전례를 딛고 오버그라운드로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투어일정과 겉잡을 수 없는 인기는 오히려 커트 코베인을 점점 지치게 만들었고, 즐길 수 없고 흥분되지 않는 공연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괴감을 느꼈던 그는 약물에 자신을 의존한 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다. 1994년, 4월 그는 자신의 집 온실에서 끝내 엽총에 머리를 겨누었고 홀(Hole)의 멤버인 부인 커트니 러브와 딸 프랜시스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서 내가 커트 코베인을 전혀 모르는건 아니었지만 그에 대해 안다고 해봤자 27세의 나이에 자살한 뮤지션이라는것과 얼너티브록과 90년대 음악씬에 지대한 영향를 끼쳤다는것. 이렇게 그냥 객관적인 상식으로만 알고 있을뿐이었다. 그가 자살했을 1994년도에 난 기껏해야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영화 '라스트 데이즈'를 보면서 간접적으로 그에 대해 한 번 조금 더 알고, 생각하게 될 기회를 가지게 되어서 좋았다. (영화는 정말 이런게 좋은 것 같다. 자기가 경험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거에 한번 생각을 하고 신경을 쓸 기회를 준다.) 그래봤자 10년도 전에 죽은 뮤지션의 옛 노래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들어보거나 그의 유서를 읽어보는게 전부이긴 하지만..

 

 

 비틀즈의 앨범 다음으로 팝역사상에서 위대하다는 너바나의 'NeverMind' 앨범이 나왔을 때 내가 고등학생이나 지금의 나이였다면 난 그 앨범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