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녀석의 여자친구 ..2

우스2003.02.07
조회1,178

졸업선물을 핑계대고 알고보니 데이트신청이었던 그날//▽//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종로의 이상한 극장.

극장 이름도 뭐시기한 무슨 무슨 뭐 세글자 짜리, 정말 오래되어 보이는 극장;

 

둘다 워낙 취향이 특이한지라 아무도 안 보는 아발론을 선택,

졸업예정자는 학생이 아니라고 빡빡 우겨대는 극장 아줌마한테

난 아직 학생이란 말예요!! 라며 끝까지 학생요금으로 들어갔답니다.

(명목뿐인 학생증까지 흔들어댔다죠...T^T)

 

들어가보니 저 너른 극장 안에 달랑 열명남짓(아발론이 얼마나 처참히 망했는지 보여주는..)

우리 앞라인으로 세열엔 사람이 없고

뒷 라인으로는 극장 전체 통틀어 한명이 있었던 것 같네요.

 

저의 특이취향상 영화를 너무 재밌게 봤는데,

보다보다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집중력의 여왕이라 불리죠 --;) 귀염둥이의 손이

제 손 위에 슬그머니 올라 있는 게 아니겠어요 //▽//

어머 어머 어머, 얘좀 봐..;

 

나름대로 범생 중에 좀 놀아봤다고 자부하는 저,

눈도 지지리게 낮아서 좋다고 하는 남자는 무조건 오케이인 저(...)

 

처음 겪어보는 연하의 손길에 두근두근-♡ (--;;;....)

누님의 면모를 보여주마, 하고서

나름대로 작업을 들어간다는 상황에 응해 손바닥을 뒤집어 살포시 맞잡아주..

 

가는 고사하고..

얼어서 꼼짝도 못했다죠 --;;

 

 

사실 전 그때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게다가 이녀석은 그 오빠랑도 잘 아는 사이였고, 셋이서 정말 친하게 다니곤 했죠.

사귄다고 말하고 있었다거나 딱히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는 오빠랑 영화보러 다니고 하다가 뭔가 거절할 새도없이

다른사람들에게 묘하게 인정되어버린 상황에서..

그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녀석인데.

 

그냥 호감을 갖고 있던 동생의 손이 닿는 것뿐인데 왠지 진정이 안 되더라구요.

아; 이거, 이거 위험한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싫지는 않았어요. 바람기인가;

그리고 연달아 엄습하는 죄 책 감 --;;

아아 이건 안돼~~ㅠ.ㅠ 곤란해;;곤란해;;

이렇게 되면 그 오라버니한테 너무나 미안한데,..;;

 

 

--;;(-그러나, 그 손 올려진 게 과연 그 누구의 일부러였는가,

아니면 단순히 손둘곳이 없었던 것인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내일 물어봐야겠네..벌써 까먹었을라나)

 

 

뭔가 극장 나오면서 굉장히,

안 좋더군요. 기분이.

담담하게 임자있는 누님의 태도를 보여줘야 하는데,

들떠서 두근덕대는 꼴이라니! 스스로가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이 누님의 속도 몰라주고, 어느새 자연스레 손을 잡아끌며 점심 사주겠다고

근처 피자헛에 데려가더군요.

 

'누님 제가 점심 사드릴께요~졸업이니까~요즘 보니까 점심세트 할인하던데~'

 

손은 손이고 밥은 밥인 법.

덥썩 따라갔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날은 토요일이었던 것 같아요, 일요일이었거나.

직원이 '오늘은 할인안되는데요~평일이 아니라서요~' 그러면서 녀석의 얼굴이 핼쓱해졌거든요.

아아~고등학생은 곤란하구나 동생아, 제가 영화 쐈으니 점심은 누님이 사주마~

하고 지갑을 열었는데 저도 그날따라 용돈을 서랍에 넣어두고 꺼내오질 않은 거에요--;

 

 

 

.....

 

피자헛에 왔다고 꼭 피자를 시키라는 룰은 없어서..

 

결국 둘이서 스파게티 하나씩 --;

직원의 눈총이 따끔따끔...;;

너무 압박이 심해서 콜라도 하나 추가 --;;

 

하지만 이렇게 돈 쓰고나면

딱히 돈이 남지도 않을 것 같아서,

피자헛에서 뭉개앉아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우리 뭐하고 노냐?'   '누님 우리 끝말잇기나 하죠.'

 

--;; 자알들 논다. 둘은 끝말잇기를 시작했습니다.

'...알루미늄!'

저의 승리.

'...리튬!'

역시 저의 승리--;;

원소기호의 승리가 이어지면서 녀석의 오기 발동..

 

'누님, 우리 이렇게 하지말고 벌칙을 걸기로 해요.'

무슨 벌칙?

열심히 콜라에 건더기를 넣는 녀석..

핫소스..스파게티 소스..케찹...기타 등등... (...)

이루 말로 형용할수없는 콜라가 완성.

'누님, 지는 사람이 이걸 원샷이에요?'

...

훗, 얘야, 이몸은 끝말잇기에 일가견이 있으시단다.

 

 

그런데 그만 그판에 제가 지고 말았군요--;

....막상 마시려고 하니, 웬만해선 비위문제가 전혀없는 저도 망설여지는 냄새가 풍겨오더군요.

앞에서 뭔가 지가 마시래놓고도 긴장감에 넘치는 눈이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눈 딱 감고 그냥 한번에 쭈욱

마시려던 순간에 갑자기 컵을 휙 채 가더래요.

 

뭔가, 컵을 뺴앗아간 녀석도, 이 컵을 어떻게 해야 할지 허둥거리고 있다가,

내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그만 그것을 --;; 꿀꺽;

 

어찌나 멋진 맛이었는지,녀석은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어요.

나중에야 녀석은 초특급 편식인에 비위가 특히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거야 나중 일이었죠.--;; 당시엔 그저 황당했을뿐...

 

뭔가 극장에서 앙금이 남았던 것을 피자헛에서 원샷으로 날려버린

(뭔가 정상적으로 해결이 된게 결코 아니지만,

정신없게 해서 그 전의 일을 잊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우리 둘, 이제 돈이 없으니 정처없이 종로 거리를 걷습니다.

지나가다 보면 잡상인이 엄청많아요.

마침 귀를 뚫은 지 얼마 안된 시기, 예쁜 귀걸이들(물론 가짜지만..--;)이 눈에 들어오네요.

'누님, 귀걸이 하나 사줄까요?'

가판대를 한참 구경하고 있는 제게 녀석이 묻습니다.

공짜로 주는 것을 거절하면 예의에 어긋나기에 사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쩌면 그렇게 완전 제 취향과 정반대의 것을 골라주는지--;

당장 집어치우고 제가 골랐죠.

 

단돈 이천원짜리 귀걸이,

그것도 잡상인과 한참 싸워 (제가 귀를 한쪽만 뚫었거든요;)

이천원 중에 천원만 주고 한쪽만 구입한 귀걸이.

그걸 귀 뚫은 구멍도 잘 못 찾아 가면서 오래오래 씨름한 끝에 (엄청아프더만요;)

간신히 달아 주면서 말합니다.

'누나, 이거 우리 첫 데이트 기념이에요. 졸업축하 핑계 데이트'

 

 

꽈르릉;

이녀석, 친한 오라버니에게 정면으로 선전포고인가...;;

당황한 저를 남겨두고 지하철로 유유히 사라지는 그녀석.

오늘도 밤이 늦었으니 그 오라버니와의 갈등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