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어렸을적부터 꿈꿔오던 직업을 갖게 되었든, 아니면 차선 삼선 적어도 최선책으로 선택된 직업이든.
주인공 앤드리아는 100만명대 1의 경쟁을 뚫고 모든(?!) 여성들이 선망하는 런웨이의 미란다에게 고용되지만, 100만명으로 치자면 100만번째에 가까운 옷차림과 센스로 고전을 면치 못한다.
눈물이 쏙 빠질만큼 야단을 맞아가며 일을 배우곤 하던 앤드리아는 어느날, "네가 변화하고 적응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느냐"는 한마디에 충격을 받아 런웨이화 되어가기 시작한다.
한때, 패션에 죽고 사는 인간들을 경멸하던 앤드리아는 어느순간 촌티를 벗고
명품으로 휘감긴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업무에 어느정도 성공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사회초년병이란 그런것이다. 자신이 경멸해 마지 않던 삶도 적응을 해야 하는 것. 그러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라고 했던가.
앤드리아 곁에 있던 친구와 애인은 점차 그녀를 멀리하게 되고 자신의 선임이 오매불망 바라던 기회마저 빼앗아야 하게 되면서 그녀는 갈등을 겪기 시작한다.
과연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짓인가!
한동안 그녀가 공수해준 명품에 환장하던 친구들이 앤드리아를 면전에 두고 너는 명품에, 런웨이에, 미란다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힐난을 할때 앤드리아는 결심을 하게 된다.
럭셔리한 라이프와 환상적인 옷들, 구두들, 사치품들에게 마음의 평화까지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과감히 지금의 자신을 버리고 과거 촌스러웠던 그러나 행복했던 자신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된장녀들의 일상을 대변하는 영화냐 아니냐에
궁금증이 쏠려서 보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이 영화가, 명품으로 죽고사는
정신 덜떨어진(?) 여성들의 사치풍조를 조장하는 영화였다면 지금의 흥행성적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소설로 읽었을때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온갖 상표들 (구찌나 샤넬, 루비이통 같은 브랜드는
이미 너무나 노말한 상표가 되어버렸다.) 을 실제로 구경할 뿐만 아니라, 걸출한 모델(배우)가 걸치고 자태를 뽐내는 모양새까지
더불어 구경하게 되었으니 매우 흡족한 영화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나는 샤넬, 구찌, 루비이통 이외의 브랜드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고유의 심볼마크를 구별할 줄도 모르거니와 그것들을 구별하고 싶은 욕구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태생적인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와 소설이 나에게 주는 감흥(감동이라고 표현 할 수가 없다)이 지대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 는
나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극장에 주저앉기 전에 주워들은 정보를 들먹여 보자면, 프리티 우먼과 워킹걸의 2006년형 변주곡이라고 했다. 또한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주인공처럼
뉴요커 여성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라고도 평해진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점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고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악마의 본성은 프라다를 통해 대변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끼느냐 아니냐에 따라 평가된다는 것이다.
미란다가 대외적인 일로써 승승장구하지만 집안으로 그녀를 데려다 놓았을때는 그저 가녀린 여성일 뿐이고 전적으로 미란다의 기준에 따르자면 똑똑한 뚱보인 앤드리아가 66사이즈 의상에서 시작하여 44까지 도전하게 되는 과정이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숭고한 행복추구의 과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은 불행한 케이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커다란 교훈인 것 같다.
눈에 보여지는 행복과 성공만이 전부가 아니며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옷과 악세서리들만이
자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님을, 또한 마약과 알콜에만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중독 될 수 있는 그 어떤것에서 과감히 떨치고 나올때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들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단지 유쾌할 뿐인, 아주 사소한 영화일 수 있겠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감동의 깊이는 값비싼 명품의 구경이 주는 눈요기가 아니라 앤드리아 삭스와 미란다 프리슬리가 주는 인생에 대한 성찰.............. 따위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 과연 행복한가.... 그리고 지금 불행하다면 나는 과연 이 불행을 떨치기 위한 노력을 단 1%라도 시도하기는 했는가. 만약 지금 내가 걷는 이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길을 찾기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가.......
엉뚱하게도 를 보며 나를 성찰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죄 이야기 해 버려서 굳이 사족같지만, 메릴스트립이 연기한 미란다는 확실히 책속의 미란다가 아니었다.
원작소설 속에서는 한낮 괴팍한 직장상사에 지나지 않았던 워크홀릭 미란다 프리슬리는 메릴 스트립 덕분에 생명력을 얻게 되었고, 그로 인해 라는 영화 자체가
생동감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여튼, 악마든 천사든....... 프라다를 입고 벗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프라다가 아니라 시장표 몸빼를 걸치더라도 행복하기만 하다면야 굳이 프라다를 얻기 위해 만신창이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신달자 시인이 한 말이 새삼 가슴에 박힌다. "행복은 자기 스스로가 동의 할때 비로소 완성된다." 타인이 아무리 넌 행복해... 라고 이야기 해도 내가 스스로 그래, 난 행복해... 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행복한 것이 아니기때문에.
파랑새는 먼곳에 있지 않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때는
누구나 희망에 부풀어있게 마련이다.
자신이 어렸을적부터 꿈꿔오던 직업을 갖게 되었든,
아니면 차선 삼선 적어도 최선책으로 선택된 직업이든.
주인공 앤드리아는
100만명대 1의 경쟁을 뚫고 모든(?!) 여성들이 선망하는
런웨이의 미란다에게 고용되지만,
100만명으로 치자면 100만번째에 가까운 옷차림과 센스로
고전을 면치 못한다.
눈물이 쏙 빠질만큼 야단을 맞아가며 일을 배우곤 하던 앤드리아는
어느날, "네가 변화하고 적응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느냐"는
한마디에 충격을 받아 런웨이화 되어가기 시작한다.
한때, 패션에 죽고 사는 인간들을 경멸하던 앤드리아는
어느순간 촌티를 벗고
명품으로 휘감긴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업무에 어느정도 성공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사회초년병이란 그런것이다.
자신이 경멸해 마지 않던 삶도 적응을 해야 하는 것.
그러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라고 했던가.
앤드리아 곁에 있던 친구와 애인은 점차 그녀를 멀리하게 되고
자신의 선임이 오매불망 바라던 기회마저 빼앗아야 하게 되면서
그녀는 갈등을 겪기 시작한다.
과연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짓인가!
한동안 그녀가 공수해준 명품에 환장하던 친구들이
앤드리아를 면전에 두고
너는 명품에, 런웨이에, 미란다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힐난을 할때
앤드리아는 결심을 하게 된다.
럭셔리한 라이프와 환상적인 옷들, 구두들, 사치품들에게
마음의 평화까지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과감히 지금의 자신을 버리고
과거 촌스러웠던 그러나 행복했던 자신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된장녀들의 일상을 대변하는 영화냐 아니냐에
궁금증이 쏠려서 보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이 영화가, 명품으로 죽고사는
정신 덜떨어진(?) 여성들의 사치풍조를 조장하는 영화였다면
지금의 흥행성적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소설로 읽었을때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온갖 상표들
(구찌나 샤넬, 루비이통 같은 브랜드는
이미 너무나 노말한 상표가 되어버렸다.)
을 실제로 구경할 뿐만 아니라,
걸출한 모델(배우)가 걸치고 자태를 뽐내는 모양새까지
더불어 구경하게 되었으니
매우 흡족한 영화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나는 샤넬, 구찌, 루비이통 이외의 브랜드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고유의 심볼마크를 구별할 줄도 모르거니와
그것들을 구별하고 싶은 욕구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태생적인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와 소설이 나에게 주는
감흥(감동이라고 표현 할 수가 없다)이 지대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 는
나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극장에 주저앉기 전에 주워들은 정보를 들먹여 보자면,
프리티 우먼과 워킹걸의 2006년형 변주곡이라고 했다.
또한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주인공처럼
뉴요커 여성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라고도 평해진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점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고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악마의 본성은 프라다를 통해 대변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끼느냐 아니냐에 따라 평가된다는 것이다.
미란다가 대외적인 일로써 승승장구하지만
집안으로 그녀를 데려다 놓았을때는 그저 가녀린 여성일 뿐이고
전적으로 미란다의 기준에 따르자면 똑똑한 뚱보인 앤드리아가
66사이즈 의상에서 시작하여 44까지 도전하게 되는 과정이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숭고한
행복추구의 과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은 불행한 케이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커다란 교훈인 것 같다.
눈에 보여지는 행복과 성공만이 전부가 아니며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옷과 악세서리들만이
자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님을,
또한 마약과 알콜에만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중독 될 수 있는 그 어떤것에서
과감히 떨치고 나올때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들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단지 유쾌할 뿐인, 아주 사소한 영화일 수 있겠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감동의 깊이는
값비싼 명품의 구경이 주는 눈요기가 아니라
앤드리아 삭스와 미란다 프리슬리가 주는
인생에 대한 성찰.............. 따위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
과연 행복한가....
그리고 지금 불행하다면 나는 과연
이 불행을 떨치기 위한 노력을 단 1%라도 시도하기는 했는가.
만약 지금 내가 걷는 이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길을 찾기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가.......
엉뚱하게도 를 보며
나를 성찰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죄 이야기 해 버려서 굳이 사족같지만,
메릴스트립이 연기한 미란다는 확실히 책속의 미란다가 아니었다.
원작소설 속에서는 한낮 괴팍한 직장상사에 지나지 않았던
워크홀릭 미란다 프리슬리는
메릴 스트립 덕분에 생명력을 얻게 되었고,
그로 인해 라는 영화 자체가
생동감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여튼, 악마든 천사든.......
프라다를 입고 벗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프라다가 아니라 시장표 몸빼를 걸치더라도 행복하기만 하다면야
굳이 프라다를 얻기 위해 만신창이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신달자 시인이 한 말이 새삼 가슴에 박힌다.
"행복은 자기 스스로가 동의 할때 비로소 완성된다."
타인이 아무리 넌 행복해... 라고 이야기 해도
내가 스스로 그래, 난 행복해... 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행복한 것이 아니기때문에.
나는 여태까지,
마음을 다쳐가면서까지 프라다를 입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젠 그만 프라다를 놓아줘야 겠다.
샤넬도, 구찌도, 루이비통도..........
그리고 나는 이제 행복해 지겠다는 명제에
서둘러 동의를 해 주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