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의 길가에 늘어선 작은 가게들은 대부분이 그 간판과 진열되어 있는 겉 모습과는 달리 뒷쪽으로 돌아가 보면 슬레트 지붕과 허름한 판자로 도배된 열악한 옛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같은 상점들이 권리금도 만만치 않았으니 장사로 자리잡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든 것인가를 알수가 있어서 감히 그 주인한테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내가 할머니와 살던 시절에는 이리 저리 떠돌다가 결국 광명시라는 사람이 북적이는 동네에 정착을 하게 되었는데 싸구려 전셋방을 찾다 보니 100만원 짜리 상점 뒷채방 하나를 얻을 수가 있었다. 허나 그 지저분한 마당 아닌 공간에는 장독대며 쓰레기며 잡풀 따위가 무성했고 비가 오는 날이면 몹시도 냄새가 나는 전형적인 도시 빈민촌의 모습 그대로라 할 수 있었지. 나무로 된 기둥이 다 쓰러져 가는 방안을 지탱하기 보다는 쥐가 밥상을 넘나들고 바퀴벌레가 수저 보다 많아서 손으로 터트려 죽이기 바빴던 어수룩한 살림집,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이었던 사건들은 앞집 상점이 개소주 전문점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세가 싼이유도 되겠지만 부억과 마당을 같이쓸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도 않고 매일 같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장독대에서 겁에 질린 개들을 도끼로 도륙을 내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이마를 딱 한방에 찍어 죽이는 주인 아저씨의 뒷모습을.. 난 그런 피비릿내 나는 마당을 건너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러 나가서는 자주 집에 들어 가지 않았었고, 청자와 막걸리를 먹고 보급소에서 쓰러져 자는 소년범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았다. 죽는것 보다 사는 것이 더 비참했던 모진 세월이라는 것은 그 환경에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모른다 밑바닥을 헤엄치며 자식들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것은 어쩌면 자기 분수를 지키는 삶일테고, 올라가 보지 못한 다른 세상은 감히 상상도 못하고 꿈도 세우지 못하고 그렇게 산다. 부모의 배경을 가장 성공의 비결로 보고 있다는 한국인들의 설문 조사에서 무어라 반론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결혼의 조건도 집안, 직장의 출세도 인맥, 사업의 성공도 처세인 것을 보면 외국에서 출생한 사람이 고국에서 정착을 못하는 현실을 이해 할만 하다. 돈이 한 참 흥청 망청 유흥가로 쏟아 질 무렵 많은 사람들이 강남으로 몰려 들었다 천민과 부유층이 유일하게 한 자리에서 터놓고 술 한잔을 나눌 수 있는 룸싸롱이라는 그 곳은 어찌보면 한 뭉치의 돈다발로 그 가족들이 고루 먹고 살 수 있는 사회환원의 행태가 묵인 되는 곳이었을 수도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시골 처자들이 어디가서 장관과 회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양주를 마셔 보겠나, 언제 또 값비싼 정장에 짙은 화장으로 별장에 외제차를 타고 놀러가 볼수 있었겠나.. 그러나, 가난하게 살던 사람이 부유층과 접촉을 갖다 보면 금새 주재를 모르고 경고 망동을 하게 마련이라서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 심각한 인생을 보내게 되고 결국에는 자기 자리로 돌아 가지도 못한 채 허공만 바라보며 일확천금을 꿈꾸고 산다. 내가 자주 만나던 손님들은 다행히도 나를 차별하지 않는 인품이 있던 자들이라서 돈에 대해 별 다른 자랑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부자는 조금 재산이 있어서는 않된다는 것, 또 엄청 나게 있더라도 그 과정과 집안과 학력등이 따르지 않는 졸부는 철저히 무시 당하는 집단이라는 것.. 보통 천억은 있어야 그들과 대화가 통한다 할아버지 때에도 천억이 있었어야 하고 대대로 자손들도 결코 망하지 않는 수 천억이 보장 되어야 비로소 부자 상류층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돈에 대해 무감각하게 되버린 것인지도 모르겠고 음악만을 하고 살으려 다짐했는지도 몰라.. 누군가 울면서 말했다. '친구들이 유학 생활때 까지는 친했는데 이젠 간판쟁이라고 무시하고 따돌린다고..' 그는 유명한 영화 사업가이고 대종상 시상식도 주최를 하는 잘 나가는 재벌이었는데. 누군가 또 울면서 말했다. '천하에 무서울게 없던 3인방 이었는데 이젠 마담들도 예약을 받아 주질 않는다고..' 그는 전두환 아들의 오른팔로 한 시대를 풍미하다 김영삼 아들에게 밀린 경우 이지만, 그래도 뭐가 그리 슬펐을까.. 끝도 없는 빈민의 삶이나 끝도 없는 부자들의 욕심이나 다 부질 없는 한 시절의 새옹지마 이겠지.. 다른 계층의 삶을 엿보지 말자, 하루 하루가 비참해 진다. 다른 남자를 훔쳐 보지 말자, 남편이 그리 무능해 보일 수가 없다.. 자신의 주제를 아는 것도 인생의 커다란 공부일테니 주위를 둘러 보아 자신에 맞는 친구를 찾자, 그것이 가장 큰 재산가 일것이다...
변두리의 길가에 늘어선 작은 가게들은 대부분이 그
변두리의 길가에 늘어선 작은 가게들은 대부분이
그 간판과 진열되어 있는 겉 모습과는 달리 뒷쪽으로
돌아가 보면 슬레트 지붕과 허름한 판자로 도배된
열악한 옛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같은 상점들이 권리금도 만만치 않았으니
장사로 자리잡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든 것인가를
알수가 있어서 감히 그 주인한테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내가 할머니와 살던 시절에는 이리 저리 떠돌다가
결국 광명시라는 사람이 북적이는 동네에 정착을 하게
되었는데 싸구려 전셋방을 찾다 보니 100만원 짜리
상점 뒷채방 하나를 얻을 수가 있었다.
허나 그 지저분한 마당 아닌 공간에는 장독대며
쓰레기며 잡풀 따위가 무성했고 비가 오는 날이면
몹시도 냄새가 나는 전형적인 도시 빈민촌의
모습 그대로라 할 수 있었지.
나무로 된 기둥이 다 쓰러져 가는 방안을 지탱하기 보다는
쥐가 밥상을 넘나들고 바퀴벌레가 수저 보다 많아서
손으로 터트려 죽이기 바빴던 어수룩한 살림집,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이었던 사건들은 앞집 상점이
개소주 전문점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세가 싼이유도 되겠지만 부억과 마당을
같이쓸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도
않고 매일 같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장독대에서
겁에 질린 개들을 도끼로 도륙을 내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이마를 딱 한방에 찍어 죽이는 주인 아저씨의 뒷모습을..
난 그런 피비릿내 나는 마당을 건너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러 나가서는 자주 집에 들어 가지 않았었고,
청자와 막걸리를 먹고 보급소에서 쓰러져 자는
소년범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았다.
죽는것 보다 사는 것이 더 비참했던 모진 세월이라는 것은
그 환경에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모른다
밑바닥을 헤엄치며 자식들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것은
어쩌면 자기 분수를 지키는 삶일테고,
올라가 보지 못한 다른 세상은 감히 상상도 못하고
꿈도 세우지 못하고 그렇게 산다.
부모의 배경을 가장 성공의 비결로 보고 있다는
한국인들의 설문 조사에서 무어라 반론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결혼의 조건도 집안,
직장의 출세도 인맥,
사업의 성공도 처세인 것을 보면
외국에서 출생한 사람이 고국에서 정착을 못하는
현실을 이해 할만 하다.
돈이 한 참 흥청 망청 유흥가로 쏟아 질 무렵
많은 사람들이 강남으로 몰려 들었다
천민과 부유층이 유일하게 한 자리에서 터놓고
술 한잔을 나눌 수 있는 룸싸롱이라는 그 곳은
어찌보면 한 뭉치의 돈다발로 그 가족들이 고루
먹고 살 수 있는 사회환원의 행태가 묵인 되는
곳이었을 수도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시골 처자들이 어디가서 장관과
회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양주를 마셔 보겠나,
언제 또 값비싼 정장에 짙은 화장으로 별장에
외제차를 타고 놀러가 볼수 있었겠나..
그러나, 가난하게 살던 사람이 부유층과 접촉을 갖다 보면
금새 주재를 모르고 경고 망동을 하게 마련이라서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 심각한 인생을 보내게 되고
결국에는 자기 자리로 돌아 가지도 못한 채
허공만 바라보며 일확천금을 꿈꾸고 산다.
내가 자주 만나던 손님들은 다행히도 나를 차별하지
않는 인품이 있던 자들이라서 돈에 대해 별 다른
자랑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부자는 조금 재산이 있어서는 않된다는 것,
또 엄청 나게 있더라도 그 과정과 집안과
학력등이 따르지 않는 졸부는 철저히 무시 당하는
집단이라는 것..
보통 천억은 있어야 그들과 대화가 통한다
할아버지 때에도 천억이 있었어야 하고
대대로 자손들도 결코 망하지 않는 수 천억이
보장 되어야 비로소 부자 상류층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돈에 대해 무감각하게 되버린 것인지도
모르겠고 음악만을 하고 살으려 다짐했는지도 몰라..
누군가 울면서 말했다.
'친구들이 유학 생활때 까지는 친했는데
이젠 간판쟁이라고 무시하고 따돌린다고..'
그는 유명한 영화 사업가이고 대종상 시상식도
주최를 하는 잘 나가는 재벌이었는데.
누군가 또 울면서 말했다.
'천하에 무서울게 없던 3인방 이었는데
이젠 마담들도 예약을 받아 주질 않는다고..'
그는 전두환 아들의 오른팔로 한 시대를 풍미하다
김영삼 아들에게 밀린 경우 이지만,
그래도 뭐가 그리 슬펐을까..
끝도 없는 빈민의 삶이나
끝도 없는 부자들의 욕심이나
다 부질 없는 한 시절의 새옹지마 이겠지..
다른 계층의 삶을 엿보지 말자,
하루 하루가 비참해 진다.
다른 남자를 훔쳐 보지 말자,
남편이 그리 무능해 보일 수가 없다..
자신의 주제를 아는 것도
인생의 커다란 공부일테니
주위를 둘러 보아 자신에 맞는
친구를 찾자,
그것이 가장 큰 재산가 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