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 보라! 문화제국주의가 그늘을 드리움을

김희주2006.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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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무색할 정도로 화씨 93도의 햇살이 작열하던 헐리우드 길의 “비스타” – 이 작은 영화관 앞에는 “보랏: 영광스런 조국 카자흐스탄을 이롭게 하기 위한 미국 문화 체험” 을 보기 위한 인파가 줄을 지었다 마치 카자흐스탄 프로덕션이 만든 듯한 조악한 그래픽으로 시작한 오프닝 크레딧에서 부터 영화관 곳곳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보랏과 수행원이 나체로 레슬링 하는 신에 이르러서는 숨도 쉬지 못할 정도의 폭소로 영화관은 난장판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는 뭔지 모를 불편한 심기 때문에 이 한바탕 웃음에 동참할 수가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쯤에야 그 이유가 머릿 속에 명확히 떠올랐다. 바로 “영화 제작자들은 왜 굳이 엄연한 독립 국가를 모독하는 도박을 걸면서까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어야 했을까” 하는 분노다. 코카서스와 중앙 아시아에 위치한 국가 중 하나를 골라 웃음 거리로 삼고, 국가에 대한 명예훼손의 소지가 다분한 이런 소재로 영화를 만들면서도 까자흐스탄 정부로부터 사전에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나는 이 영화에서 유머라는 이름아래 17세기의 영광을 다시 부활시키려는 21세기 새로운 문화제국주의라는 그늘을 본다. 단지 자원과 노동력 대신에 영화 산업을 위해 한 국가의 명성을 희생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착취일 뿐.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웃음거리의 주 대상이 아시아와 다른 민족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각이므로 전혀 기분나쁘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 목적이 무엇이었던 간에 (미국인들을 풍자를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까자끄 리포터의 바보스런 행동 자체가 영화를 압도해 까자흐스탄에 대한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심지어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보랏의 말과 행동은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어 인간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금기시하는 터부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만약 영화에서 보랏이 아닌 탐이나 존의 남동생, 여동생이 근친상간을 했으면 어땠을까? 관객들은 여전히 재밌다는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까자흐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한 사실에 근거해 만든 것일 뿐이다”라며 왜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냐는 반응이다.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머에 거스르는 말을 하는 게 일종의 금기인 듯한 분위기다. 범생이나 왕따가 되지 않으려고 남들 웃을 때 따라 웃듯이, 그렇게. 보랏이 경마장에서 미국 국가의 가사를 바꿔부르는 장면이 있다. 제작자나 주연배우 코헨이 과연 진짜 까자크 국가를 찾아보려는 노력이나 했으려나 모르겠다. 만약 코헨의 의도가 진정 미국인들의 편견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면 더 노력을 했어야 하지 싶다. 아니면, 미국인들의 과대평가 한 게 아닐까. 어차피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그 의도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할 수도 없는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