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스페인

윤옥환2006.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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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스페인의 동남부 해안지역으로 부터 마드리드에 이르는 5월이었다.

알메리아 항구 도시에서부터 발렌시아를 향하는 자전거와의 항해를 행동에 옮겼다.

2003년 5월 첫날  스페인의 알메리아 항에 도착을 하였었다.

4월의 마지막 주에 알제리아에서 모로코로의 육로 이동이 좌절되어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스페인으로의 해상 이동이었다.

당초대라면 알제리아에서 국경을 통하여 모로코를 경유하였어야 했다.

그러나 모로코와 알제리 정부간에는 정치적인 긴장관계에 있었다.

알제리아는 반미성향이 강한 폐쇄형의 국가이지만 모로코는 친미노선을 걷는 개방형의 국가였다.

특히 모로코의 남부에 있는 사하라 지역에서 모로코 알제리아 그리고 사하라 원주민간의 영토분쟁이 양국간의 긴장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모로코로의 항로는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지니고 스페인의 알메리아에서 유럽을 향하여 북상을 하였다.

낮동안에는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햇살이 따뜻하여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땀을 흘렸다.

그러나 해가지고 밤이되면 일교차가 심하여 아주 쌀쌀하여 졌다.

알메리아에서부터  바로셀로나와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발렌시아까지 가서 다시 뱡향을 결정하여야 했다.

 

발렌시아를 향하여 가는 도로가 낮동안에는 길게 정체 현상을 일으켰다.

자동차 번호판을 살피며 달리다 보니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번호판의 맨 처음 부분에는 유럽연합기가 각 나라의 국기와 함께 그려져 있었다.

프랑스나 독일 차량들이 상당이 많이 눈에 보였다.

 

아프리카나 스페인의 남부로의 바캉스를 다녀오는 차량들이었다.

간혹가다가는 영국이나 이탈리아 국적의 차량도 보였다.

스페인은 모든 유럽국가들이 바캉스를 위하여 아프리카로 가기위하여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곳이었다.

 

온통 오렌지빛 황폐한 토양과 양을 키우는 가난한 민가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의외였다.

우리에게는 '투우의 나라' 그리고 풍부한 문학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친숙하게 알려진 나라였다.

문학과 미술 그리고 건축분야에서 세계적인 거장들을 배출하였다.

 

그런데 해안도로를 따라서 드물게 나타나는 작은 마을들이나 외딴민가의 생활은 너무 빈곤해 보였다.

그러지 않아도 낮동안 내리쬐이는 강열한 햇살과 식물이 자라지 않는 대부분의 거친땅들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선글라스로 눈을 가렸음에도 얼마가지 않아 검둥이로 변할것 같았다.

 

밤이면 숙박을 위하여 찾아들어가야 하는 해안의 중소도시들은 쓸쓸하기만 하였다.

이방인에 대한 무관심과 무뚝뚝함은  거리의 주황색 가로등과 함께 아픔을 느끼게 하였다.

 

밤이 되면 다소 쌀쌀한 기후임에도 젊은남녀들은 반팔차림이나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어울려 거리를 흥겹게 돌아다닌다.

 

손에는 맥주나 기타 상표를 알수없는 각종 음료수를 들은채 팔자 걸음으로 비틀거렸다.

척박하고 숨가쁘게 농사일과 가축사육에 메달리는 교외의 마을 모습과 완전 대조를 이루는 장면이었다.

이미 모두들 잠이 든 시간까지도 공원이나 잔디밭에는 젊은 남녀들이 음주와 가무에 빠져있었다.

알제리아나 튜니지에서 목격하였던 젊은 남녀들의 일상 생활과도 비교되었다.

 

어찌보면 스파게티를 즐기던 알제리아와 튜니지의 서민적 모습과 스페인의 시골 모습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켈트인 서고트인 그리고 로마인과 북아프리카인들이 시간을 두고 끼어들어 정착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유럽이면서도 가장 비유럽적인 전통이나 지역세가 그어느 유럽보다도 강하게 남아있었다.

수도인 마드리드에서부터 프랑스에 이르는 온대성 기후와 산악 지역과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지중해의 해안도시들로 나눌 수있다.

 

프랑코 독재시대를 제외하고는 국왕이 총리를 임명하고 해임할 수있는 입헌 군주제 국가이다.

외로움과 고독이 마음을 어둡게 하였으며 급변하는 5월의 기후마저 육신을 괴롭혔다.

발렌시아까지는 그런대로 지낼만 하였다.

그런데 발렌시아로부터 방향을 바꾸어 마드리드를 향하면서는 바람의 방향 또한 악재로 작용을 하기 시작하였다.

서서히 오르막 경사로였으며 먹구름을 동반한 가랑비가 온종일 내렸다.

왠만한 가랑비는 달리느라 달아오르는 체온에 의하여 말랐었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간간히 휴식겸 비를 피하기 위하여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멈추어야 했다.

비내리는 어두운 날에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하는 경우에는 원두막 같은 폐가에 들어가 가방을 풀었다.

 

가방에는 미리 준비하여두는 말라서 굳은 빵과 버터가 항상 있었다.

비내리는 추위속에서도 벌판이아 하늘을 바라보며 버터 바른 마른빵을 먹는 맛은 일품요리에 못지않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마드리드로 가는 길은 하늘을 향하여 오르는 기분이었다.

바람을 안고 비를 맞으며 꾸준히 페달을 밟아야 하는 일종의 인내력 테스트였다.

얼굴을 타고 내리는 빗줄기가 입으로 들어오는 양이 많아질 때면 입으로 불면서 빗물을 제거하여야 했다.

자동차 통행마저 한산하여서 깊은 산중을 홀로 가는 나그네의 모습 그대로였다.

스페인의 본격적인 산악과 구릉 지역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형을 스페인어로는 '메세타'라고 한다.

마드리드가 위치한 산의 정상이 먹구름에 가려있어서 마치 요새를 연상케 하였다.

5월이면 계절적으로 이미 초여름을 향하여야 하건만 이렇게 추울 수가 없었다.

정상에 가까와 지면서 커다란 화물트럭들의 걸음도 느려졌다.

오른편 깍아 지른듯한 벼랑위에 자리잡은 주유소를 올려다 보면서 이제서야 마드리드에 가까이 올라서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유소의 카페에서 일단 얼어붙은 몸을 녹여야 했다.

온통 비에 젖어 떨리는 몸에 따뜻한 커피를 부어 넣으니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떠 올랐다.

5월의 스페인은 이토록 변화무쌍한 기후와 다양한 문화와 종교적 배경이 어울려 있었으므로,  웃다가도 울게하고 울다가도 웃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마드리드의 시내에서 적당한 숙소를 찾는 동안에도 비는 그치질 않았으며 먹구름은 북쪽 하늘을 향하여 길게 쳐져있었다.

그 구름이 펼쳐진 방향을 향하여 나의 여정이 이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