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

이양자2006.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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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에 버젓이 기술한 왕의 성기 얘기  

은유적으로 표현한 왕권의 상징'

이범교 신라문화원 전문위원 출간

''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
'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 눈길










''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



사진 설명:당제에 신물(神物)로 바쳐진 모조 남근과 성기를 과장한 신라 토우.
삼국유사 '기이 제2편-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 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경덕왕은 옥경(玉莖)의 길이가 여덟 치였다. 아들이 없어 왕비를 폐하고 사량부인에 봉했다." 노골적이고 과장된 남녀 성기를 묘사한 신라 토우를 심심찮게 봐 왔지만,역사책에 왕의 성기 크기까지 거론한 건 참 민망하다. 그것도 일흔이 넘은 당대의 고승인 일연이 이런 허섭스레기 같은 내용까지 거론했다는 점에서 실망감이 들기도 한다.


이범교 신라문화원 전문위원이 출간한 '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민족사/상하 각권 2만5천원)은 그속에 숨은 은유와 상징을 놓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성기 크기는 낮은 차원에서는 남성의 물리적 힘을,높은 차원에서는 권력지향적인 추진력을 상징했다. 경덕왕의 옥경 길이가 여덟 치라는 것은 그 길이가 평균치보다 커서 권력지향적인 왕권강화정책을 실시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경덕왕이 충담사를 시켜 지은 향가 안민가에서도 유교주의적 통치이념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아들이 없다는 것은 왕권강화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녹읍제의 부활. 귀족들의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실시되던 월급개념의 관료전 대신 녹읍제가 부활한 것은 왕권에 대한 귀족들의 승리를 뜻한다. 경덕왕 월명사 도솔가 조에 왕을 상징하는 해가 둘 나타나 10여일간 없어지지 않았다고 하는 내용 역시 왕과 대등한 귀족세력의 부상을 상징한다.


"삼국유사의 상징화된 설화를 제대로 해석해,그 비속함이 사실은 신성(神性)임을 밝혀낼 때만 그 의미와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글쓴이의 주장은 여기서 그 근거를 획득한다. 글쓴이는 일견 허무맹랑한 귀신이야기도 성스러운 우리 조상들의 삶을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고,일견 무질서해 보이는 편집 역시 일연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행간에 숨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삼국유사를 읽어야 불국토건설이란 일연의 의도와 몽고침략의 극복과 붕괴된 사회질서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 삼국유사 편찬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1천100여쪽의 방대한 분량에 삼국유사를 종합적으로 재해석한 이 책의 덕목은 수많은 기존의 학설들을 다양하게 비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2천여편의 논문과 수많은 단행본들을 참고했다.


단군왕검의 의미와 어원에 관한 기왕의 학설들은 이러하다. 단군이란 어원에 대해 최남선 이병도 등 많은 사학자들은 제사장을 뜻하는 터키·몽골어의 탱그리(Tengri)와 동의어라 했고,강길운은 만주어의 부족장을 뜻하는 당가(dangga)에서 연원을 찾았다. 김교헌은 박달나무 밑에서 추대된 군장의 의미로,허목은 신단수 아래에 살아서 단군이라 칭했다 주장했다. 왕검에 대해서도 안호상 이병도 등은 왕의 계승자 또는 신의 대리자를 의미하는 임금 혹은 잇검(繼王)으로,강길운 정호완은 통치자의 의미인 님금 또는 님검으로,북애자 김교헌은 이사腑?동일한 의미인 임검(壬儉)이 변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밖에 경주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궁터 사찰지 불상 등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유적과 유물에 대한 해설과 사진도 담아,삼국유사와 역사현장을 생생하게 연결시켰다. 이상헌기자


ttong@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