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여성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말한다. 여자기 때문에 더 예쁘고 싶고 그래서 가꿔야 한다는 담론은 상당한 세월 동안 의심없이 받아들여졌다. 다만 그런 이야기의 최전선에는 결국 왜 여자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남성본위의 대답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현대의 여성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이 잦다. 남성은 본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경쟁적으로 미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남에게 보이고 인정받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무인도에 혼자 사는 여성도 아름다움은 가꾼다는 얘기가 되고 남성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모든 화장과 패션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 타인을 의식해 미를 추구한다고 믿는 부류다. 그러나 오늘은 다른 얘기를 좀 해보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의 본래 목적이 자신을 위한 것이든 남을 위한 것이든 그 기저에 깔려있는 '아름답다'는 관념에 대한 생각을 해보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과거의 미의 개념은 현대와는 사뭇 다르다. 양귀비로 상징되는 과거형 아름다움은 풍만함에 핵심이 있다. 흔히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라는 수식어로 대변되는 과거의 여성들은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뚱뚱하고 풍만한 체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사람, 즉 자식이 곧 노동력이자 자본이었던 농경사회에서 필요한 사회적 가치가 투영된 결과이다.
과테말라의 티칼에 있는 고대 마야 제국에서는 남성 엘리트들의 신장이 평균 5피트 7인치인데 반해 보통 남자들은 1인치이상 작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역시 건강하고 강한 육체가 종족생산에 유리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두가지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결국 아름다움이란 말 그대로 순수한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어떤 실질적인 '그 무엇'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이어트의 성정치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부르주아가 신분상승을 하기 전까지 서구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뚱뚱한 것이 매력이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사회에서는 그저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와 명예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귀족들은 폭식을 하고 구토를 한 뒤 다시 폭식을 거듭하는 행위를 즐겼는데 이것이 그들 사회에서는 명예롭고 아름다운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제법 살만한 부루주아가 등장하자 이들은 기존의 왕족, 귀족, 성직자들과 비슷하게 많이 먹을 수 있다는 보여주며 자신들의 신분이 전과 같지 않음을 내비쳤다. 기득권층은 이제 단순히 많이 먹는 것으로는 자신들의 차별화를 달성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더 적게 먹으면서 혹독하게 체형을 관리하는 형태로 아름다움의 관념을 변화시킨다. 바로, 오늘날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S 라인이 등장하는 위대한 순간이었다.
이제 많이 먹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흉이 되었다. 현대에서도 이같은 사실은 쉽게 증명되는데 자신의 소비율 중 먹는 것에 얼만큼의 돈을 지출하는지를 드러내는 엥겔계수의 경우 하위층일수록 그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있는 집 사람들은 더이상 먹는 것에 목숨걸지 않는다.
마르고 날씬한 몸에 대한 관념은 산업화가 자본주의 시대로 전이되면서 더욱 확장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름답다는 말의 다양한 종류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청순하다. 귀엽다, 지성미가 있다. 백치미가 있다. 등등의 표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단연 섹시하다 가 모든 아름다움의 여왕이 되었다. 불과 얼만 전까지만 해도 섹시하다는 말에는 상당한 거부감과 왠지 모를 음흉함이 묻어났지만 근래에 와서 섹시하다는 것처럼 최고의 찬사는 없다.
이제 아름답다는 것은 오로지 섹시해지는 것, 더욱 날씬하고 마른 그래서 육감적이고 탄력 넘치는 몸을 갖는 것만이 정답이 되었다. 이러한 담론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움직임들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만 한해 2조원 이상의 소비가 일어난다는 뷰티산업에서는 끊임없이 여성들에게 날씬해질 것을 강조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날씬해질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 많은 다이어트 방법과 약품들. 또한 이제 날씬하다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찬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몸을 갖기까지 얼마나 혹독한 인내와 절제를 했는지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다.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운동에 매진하는 끈기있는 사람만이 S 라인을 가질 수 있다고 대다수의 사람이 말하는 순간 마르지 않은 당신은 그저 게으르고 볼썽사나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게 된다. 한마디로 S 라인은 도덕적 우월성을 일정부분 함유한 이데올로기가 돼버리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다이어트와 운동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데는 상당한 시간과 돈, 지식이 필요하다. 고로 날씬한 몸을 가진 당신은 그 만큼의 시간과 돈,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등식이 가능해지고 이는 앞으로 그 재산(S라인)을 바탕으로 더 많은 시간과 돈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까지 낳게 된다. 마르고 날씬한 몸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부와 권력의 상징물이자 획득수단이 된 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듯 과거의 아름다움은 생산수단의 재생산이라는 사회적 필요가 낳은 결과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아름다움은 '섹시함'은 무엇을 위한 결과인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이 섹시한 세상의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고 본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즐기지 않는 것은 젊음에 대한 도전이다. 는 따위의 말들 속에서 섹시함 = 섹스. 라는 등식이 가능하리라 본다. 왜 모두들 그렇게 날씬하고 육감적인 육체를 가지려는가? 본인이 원든 원치 않든 그것은 결국 이 땅의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미의 관념에 또한번 여성들이 패배한 셈이다. 남성들은 좀더 멋진 섹스를 할 요량으로 날씬하고 탄탄한 여성을 원하게 되었고 이것이 결국 오늘날의 S라인 천하시대를 낳은 것은 아닐까?
S라인의 면면은 살펴보면 허리는 더욱 잘록하게 엉덩이는 탱탱하게 가슴은 크게 그리고 머리는 작게 라는 공통분모를 추출할 수 있는데 사실 이런 체형은 실제 건강에는 별로 이득 될 것이 없고 자연 상태에서도 불리한 면이 많지 유리한 구석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시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받아들여지는 현대의 이데올로기에는 남성들의 섹스 판타지가 유도한 어떤 음습한 그림자가 있다고 본다.
아름답다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느 순간에서도 단 한번도 순수했던 적이 없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관념에는 인간적인 필요가 반드시 들어가게 마련이다. 동식물은 서로에게 미추를 발견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미추의 관념을 만들어 그것을 선악의 도구로 변질시킬 뿐이다.
S 라인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 수 있다.
더욱이 그것이 남성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 시점에서 폐기처분을 한번 생각해보자.
2006 오늘의 아름다운 여성의 조건.
흔히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여성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말한다. 여자기 때문에 더 예쁘고 싶고 그래서 가꿔야 한다는 담론은 상당한 세월 동안 의심없이 받아들여졌다. 다만 그런 이야기의 최전선에는 결국 왜 여자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남성본위의 대답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현대의 여성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이 잦다. 남성은 본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경쟁적으로 미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남에게 보이고 인정받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무인도에 혼자 사는 여성도 아름다움은 가꾼다는 얘기가 되고 남성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모든 화장과 패션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 타인을 의식해 미를 추구한다고 믿는 부류다. 그러나 오늘은 다른 얘기를 좀 해보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의 본래 목적이 자신을 위한 것이든 남을 위한 것이든 그 기저에 깔려있는 '아름답다'는 관념에 대한 생각을 해보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과거의 미의 개념은 현대와는 사뭇 다르다. 양귀비로 상징되는 과거형 아름다움은 풍만함에 핵심이 있다. 흔히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라는 수식어로 대변되는 과거의 여성들은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뚱뚱하고 풍만한 체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사람, 즉 자식이 곧 노동력이자 자본이었던 농경사회에서 필요한 사회적 가치가 투영된 결과이다.
과테말라의 티칼에 있는 고대 마야 제국에서는 남성 엘리트들의 신장이 평균 5피트 7인치인데 반해 보통 남자들은 1인치이상 작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역시 건강하고 강한 육체가 종족생산에 유리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두가지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결국 아름다움이란 말 그대로 순수한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어떤 실질적인 '그 무엇'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이어트의 성정치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부르주아가 신분상승을 하기 전까지 서구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뚱뚱한 것이 매력이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사회에서는 그저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와 명예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귀족들은 폭식을 하고 구토를 한 뒤 다시 폭식을 거듭하는 행위를 즐겼는데 이것이 그들 사회에서는 명예롭고 아름다운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제법 살만한 부루주아가 등장하자 이들은 기존의 왕족, 귀족, 성직자들과 비슷하게 많이 먹을 수 있다는 보여주며 자신들의 신분이 전과 같지 않음을 내비쳤다. 기득권층은 이제 단순히 많이 먹는 것으로는 자신들의 차별화를 달성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더 적게 먹으면서 혹독하게 체형을 관리하는 형태로 아름다움의 관념을 변화시킨다. 바로, 오늘날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S 라인이 등장하는 위대한 순간이었다.
이제 많이 먹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흉이 되었다. 현대에서도 이같은 사실은 쉽게 증명되는데 자신의 소비율 중 먹는 것에 얼만큼의 돈을 지출하는지를 드러내는 엥겔계수의 경우 하위층일수록 그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있는 집 사람들은 더이상 먹는 것에 목숨걸지 않는다.
마르고 날씬한 몸에 대한 관념은 산업화가 자본주의 시대로 전이되면서 더욱 확장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름답다는 말의 다양한 종류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청순하다. 귀엽다, 지성미가 있다. 백치미가 있다. 등등의 표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단연 섹시하다 가 모든 아름다움의 여왕이 되었다. 불과 얼만 전까지만 해도 섹시하다는 말에는 상당한 거부감과 왠지 모를 음흉함이 묻어났지만 근래에 와서 섹시하다는 것처럼 최고의 찬사는 없다.
이제 아름답다는 것은 오로지 섹시해지는 것, 더욱 날씬하고 마른 그래서 육감적이고 탄력 넘치는 몸을 갖는 것만이 정답이 되었다. 이러한 담론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움직임들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만 한해 2조원 이상의 소비가 일어난다는 뷰티산업에서는 끊임없이 여성들에게 날씬해질 것을 강조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날씬해질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 많은 다이어트 방법과 약품들. 또한 이제 날씬하다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찬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몸을 갖기까지 얼마나 혹독한 인내와 절제를 했는지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다.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운동에 매진하는 끈기있는 사람만이 S 라인을 가질 수 있다고 대다수의 사람이 말하는 순간 마르지 않은 당신은 그저 게으르고 볼썽사나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게 된다. 한마디로 S 라인은 도덕적 우월성을 일정부분 함유한 이데올로기가 돼버리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다이어트와 운동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데는 상당한 시간과 돈, 지식이 필요하다. 고로 날씬한 몸을 가진 당신은 그 만큼의 시간과 돈,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등식이 가능해지고 이는 앞으로 그 재산(S라인)을 바탕으로 더 많은 시간과 돈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까지 낳게 된다. 마르고 날씬한 몸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부와 권력의 상징물이자 획득수단이 된 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듯 과거의 아름다움은 생산수단의 재생산이라는 사회적 필요가 낳은 결과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아름다움은 '섹시함'은 무엇을 위한 결과인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이 섹시한 세상의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고 본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즐기지 않는 것은 젊음에 대한 도전이다. 는 따위의 말들 속에서 섹시함 = 섹스. 라는 등식이 가능하리라 본다. 왜 모두들 그렇게 날씬하고 육감적인 육체를 가지려는가? 본인이 원든 원치 않든 그것은 결국 이 땅의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미의 관념에 또한번 여성들이 패배한 셈이다. 남성들은 좀더 멋진 섹스를 할 요량으로 날씬하고 탄탄한 여성을 원하게 되었고 이것이 결국 오늘날의 S라인 천하시대를 낳은 것은 아닐까?
S라인의 면면은 살펴보면 허리는 더욱 잘록하게 엉덩이는 탱탱하게 가슴은 크게 그리고 머리는 작게 라는 공통분모를 추출할 수 있는데 사실 이런 체형은 실제 건강에는 별로 이득 될 것이 없고 자연 상태에서도 불리한 면이 많지 유리한 구석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시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받아들여지는 현대의 이데올로기에는 남성들의 섹스 판타지가 유도한 어떤 음습한 그림자가 있다고 본다.
아름답다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느 순간에서도 단 한번도 순수했던 적이 없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관념에는 인간적인 필요가 반드시 들어가게 마련이다. 동식물은 서로에게 미추를 발견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미추의 관념을 만들어 그것을 선악의 도구로 변질시킬 뿐이다.
S 라인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 수 있다.
더욱이 그것이 남성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 시점에서 폐기처분을 한번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