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풍경

안지언200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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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읽은 날 : 12월 7일

 

이 책은 앞부분 작가의 말부터 마음에 들었다. 사실 대부분의 책이 본문과 머리말이 분리된 느낌이어서 대충 읽고 넘기기 일쑤였는데 이 책은 작가의 말부터 꼼꼼히 읽었다. 라는 친구의 말로 시작하는 작가의 말. 아직 서른 문턱을 넘으려면 많은 해를 앞두고 있는 나지만 저 말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내 일기장에 나이만 바꿔서 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도 나이는 먹는데 어릴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로 고민하고, 막막해하고 화내는 나를 자주 발견했다. 이러한 마음은 서른이 되어도 이러면 어쩌지, 그렇다면 늙는다는 것이 단순한 노화 외에 무슨 의미가 있지, 라는 생각에 잠기게 한다. 말 그대로 뭔가에 떠밀려서 나이를 억지로 먹는 듯한 느낌. 

여행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정은 그리 눈을 끌지 않는다. 소제목을 달아서 하나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어 읽기 좋았다.


1. 무의식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세상에는 완벽한 어머니도 없고 완벽한 자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참자기가 생겨나서 독특하고 자율적인 자기에 통합되기 시작하는 생후 첫 3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겪는 어려움이 어린 시절의 사소했던 갈등의 잔재 때문이고 그 결과 창조성과 자율성, 성적 친밀감에서 경미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제임스 F. 매스터슨, 중에서..


 머리를 감다 문득 이 구절이 떠올랐을 때,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다. 신생아실에 빼곡히 누워있는 갓난 아기들을, 그 아이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욕망을 거부당하거나 부당한 대접을 받는 과정을, 그 아이들이 자라서 이유 없이 우울해하고 답답해하는 모습을, 그 중 하나가 나라는 것을 생각했다. 생후 3년이 일생을 좌우한다니, 그 때 형성된 거대한 무의식 속에서 우리가 휘둘리며 살아간다니, 생후 3년간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었던 일이 뭐 얼마나 있었을까. ‘나는 그때 아무 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 지금 이렇게 힘들고, 왜 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상을 하고 끊임없이 심리학 서적을 뒤적여야 하는가.’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머리를 다 감았다.


2. 사랑 : 모든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

3. 대상 선택 : 타인을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과정

4. 분노 : 대상 상실의 감정

화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아기다. 그윽한 마음으로 화를 끌어안아야 한다

  -틱낫한, 중에서...


보통 우리는 화가 나면 누구 때문에 화가 났어, 뭐 때문에 화가 났어, 라면서 씩씩거리는 경우가 많은데, 글쓴이는 분노란 것은 모두 자기로 향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은 타인의 분노도 실은 나를 향한 게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이므로 크게 휘둘릴 것 없다고 한다. 라는 부분이 묘하게 마음을 쳤다.


5. 우울 : 정신의 착오, 혹은 마음의 요술 부리기

6. 불안 : 사랑하는 대상을 읽을까 봐 두려워 하는 마음

7. 공포 : 분노가 가면을 쓰고 다른 대상에게 옮겨진 것

8. 의존 :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대상

나는 의존이 좀 심한 편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혼자 고민하지 않고 바로 친구나 선배,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한다. 또한 핸드폰이나 엠피3 플레이어가 없으면 불안하다.


서운하겠지만 잘 들어. 지금 네가 원하는 것은 나의 조언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이야. 그것도 유년기의 아기가 환상 속에 창조해둔 이상화되고 미화된 엄마의 보살핌이야. 그러니 아무리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해도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어.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난 늘,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해, 라고 말하면서 정작 방문 밖에 있는 엄마를 생각하지 않았다. 늘 방문을 닫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토해냈다. 난 왜 가장 가까이 있는(물리적으로) 엄마 대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건 것일까. 갑자기 슬퍼졌다. 내가 특별히 엄마에게 사랑을 덜 받고 자란다고 생각한 적은 많았지만, 내가 엄마를 거부하고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9. 중독 : 의존성이 심화 극단화된 상태

나는 연예인이나 신기한 것에 중독적인 증상을 보이는 것 같다. 몰랐는데 싸이월드에도 중독되어 있는 것 같다. 음악을 마구 사 모으고, 늘 홈피를 꾸미지 않으면 불안하다. 방명록에 댓글도 꼬박꼬박 달아야 하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늘 업데이트해야 할 것 같은 느낌.


10. 질투 :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감 없음

11. 시기심 : 타인이 가진 것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

12. 투사 : 내면의 부정적인 면을 타인에게 옮겨놓기

13. 분리 : 세상을 반으로 축소시키는 태도

14. 회피 : 자기 자신과 삶으로부터의 도피

15. 동일시 : 타인을 받아들여 나의 일부로 만들기

16. 콤플렉스 : 다양하고 풍성한 인격의 근원

17. 자기애 : 퇴행과 성장으로 난 두 갈래 길

18. 자기 존중 : 행복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느낌

19. 몸 사랑 : 몸이 곧 정신이고 육체가 곧 정체성이다

20. 에로스 : 생의 에너지이자 예술의 지향점

21. 뻔뻔하게 : 유아적 환상 없이 세상 읽기

22. 친절 :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지켜보기

23. 인정과 지지 : 고래도 춤추게 하는 놀라운 힘

24. 공감 : 타인에 이르는 가장 선한 길

‘상처 입은 자가 치유한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지금 하고 있는 상담 일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25. 용기 : 절망 속에서도 전진할 수 있는 능력

26. 변화 : 세상을 보는 시각과 삶의 방식 수정하기

27. 자기 실현 :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일

 

 많은 것을 어머니의 사랑에 연결시키고 있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 불편함도 나의 문제일 것이다. 이 책이 왜 독서치료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지 이해한다. 그동안 생각했던 문제들이 차분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막막함이 조금은 없어지는 것 같다.

글쓴이는 집을 팔아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한 권의 책에 나와있는 저 수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정도 쯤이야 라는 생각이 든다. 더 나이들기 전에 나도 낯선 여행지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