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장날은 그 역사성이 유구하다. 17세기 영정조 때에 오늘의 모습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삼가 장날이면 저멀리 충청도 금산 인삼과 경기도 안성 유기까지 보부상들이 가지고 왔었다.
삼천포 등 남해안의 풍부한 해산물과, 창녕 고령 진주 등지에서 오는 소장수, 풍성한 농산물, 삼베, 모시, 문종이, 숯 등 땔감시장, 옹기그릇, 입맛 당기는 돼지국밥과 막걸리, 쌍백 가회 대병 봉산 신원 용주 묘산 대양 초계 대의 생비량 신등 단성 안간 집현 신반 성주 거창 등에서까지 밀려오는 장꾼들로 시끌법적했던 삼가 장터였다. 지금도 2일과 7일에 5일장이 서고 있다.
삼가 장날에, 장(장터)에서, 2만여명의 장꾼들이 현재의 삼가면사무소로 집결하여 1919년 기미년에 독립만세를 소리 높혀 외쳤다. 이렇게 삼가 장터 3.1 만세운동이 3.1 운동사에서 불멸의 금자탑을 쌓게 된 것은, 삼가 장터와 장날, 장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느 장소에서, 어느 날, 어느 사람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고 독립만세를 외쳤는가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장(場)인 삼가면사무소 마당에 3.1 독립만세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념비는 단지 관광을 위한 전시적인 조형물로 전락할 것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장터와 장날, 장꾼, 그리고 3.1 독립만세 운동 기념비는 이런 역사적인 의미를 부활하는 첫걸음으로 인식하여 추진해야 한다.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인 복원을 통하여 살맛나는 고향 건설에도 이바지하는 혜안(慧眼)을 가져야 하며, 재래시장 활성화 대책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검토되고 시행되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삼가 장날과 장터, 장꾼
▲삼가 장날, 장터, 장꾼...
삼가 장날은 그 역사성이 유구하다. 17세기 영정조 때에 오늘의 모습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삼가 장날이면 저멀리 충청도 금산 인삼과 경기도 안성 유기까지 보부상들이 가지고 왔었다.
삼천포 등 남해안의 풍부한 해산물과, 창녕 고령 진주 등지에서 오는 소장수, 풍성한 농산물, 삼베, 모시, 문종이, 숯 등 땔감시장, 옹기그릇, 입맛 당기는 돼지국밥과 막걸리, 쌍백 가회 대병 봉산 신원 용주 묘산 대양 초계 대의 생비량 신등 단성 안간 집현 신반 성주 거창 등에서까지 밀려오는 장꾼들로 시끌법적했던 삼가 장터였다. 지금도 2일과 7일에 5일장이 서고 있다.
삼가 장날에, 장(장터)에서, 2만여명의 장꾼들이 현재의 삼가면사무소로 집결하여 1919년 기미년에 독립만세를 소리 높혀 외쳤다. 이렇게 삼가 장터 3.1 만세운동이 3.1 운동사에서 불멸의 금자탑을 쌓게 된 것은, 삼가 장터와 장날, 장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느 장소에서, 어느 날, 어느 사람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고 독립만세를 외쳤는가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장(場)인 삼가면사무소 마당에 3.1 독립만세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념비는 단지 관광을 위한 전시적인 조형물로 전락할 것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장터와 장날, 장꾼, 그리고 3.1 독립만세 운동 기념비는 이런 역사적인 의미를 부활하는 첫걸음으로 인식하여 추진해야 한다.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인 복원을 통하여 살맛나는 고향 건설에도 이바지하는 혜안(慧眼)을 가져야 하며, 재래시장 활성화 대책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검토되고 시행되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