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를 향한 줄리안 반스식 방주의 난해한 항해...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백혁현2006.12.10
조회56
case1. 중학교 때 나는 포천에서 용인으로 이사를 했고 학교도 옮겼다. 그렇게 용인으로 이사를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묶음의 편지를 전달받았다. 이전 학교를 다닌 것은 일주일 정도였을 뿐이지만 그들이 나를 기억하여 반 학생 전체가 내게 편지를 보내준 것이다. case2. 나는 다섯 살 즈음 왼쪽 팔에 화상을 입었다. 피부이식 수술을 받기는 했지만 흉터가 남았고, 난 그 흉터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를 이렇게 위로했다. 네가 화상을 입기 전까지 엄마는 복강경 수술을 받은 이후 심하게 앓고 있는 중이었으며, 매우 위험한 지경에 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네가 다치면서 엄마의 모든 병증은 사라졌다. 네가 나를 살렸던 것이다, 아들아. 그러니 네 상처를 창피해 한다는 것은 이 어미의 되살아남을 창피해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case1을 살펴보면 이렇다. 나는 정말 그런 편지를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받았던 것은 이전 동네에서 다니던 교회에서 내가 떠난 이후 학생회의 집회 때 전도사의 종용에 따라 몇몇 아이가 적은 쪽지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옮기고 심한 외로움에 시달리던 나는 그 쪽지를 어딘가에 처박아 놓고는 반 아이들 전체가 내게 보낸 편지라고 여겼다. 이십대의 어느 날 그 몇 장의 쪽지가 발견되기까지 나는 실제로 반 아이들 전체의 편지를 받았다고 믿고 있었다. case2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의 결혼을 앞둔 어느 날 고모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 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희미하게 고모와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사실 엄마는 어린 내가 상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을 줄여줄 요량으로 나에게 거짓 정보를 흘렸다. 물론 어머니가 수술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내가 다치기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사고와 어머니의 수술을 비슷한 시가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어머니는 어린 자식으로 하여금 그 사실을 믿게끔 만들었다.
“세월이 가면 이야기는 용해되어 하나의 형태, 색깔, 느낌이 되고 만다. 현대인이고 또 무지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야기를 달리 상상한다... 우리의 눈은 하나의 기분, 하나의 해석에서 다른 기분, 다른 해석으로 왔다 갔다 한다...”
줄리안 반스를 읽다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줄리안 반스의 이번 소설은 우리가 보편적인 진실이라고 믿는 역사를 끌어들이면서도 그 역사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들에 강한 의구심을 품는다. 어린 시절의 내가 믿었던 사실들이 실제로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처럼(물론 대다수의 기억들은 사실이겠지만) 우리들이 흔하게 믿는 역사 속에도 많은 허구가 도사리고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실제로 우리들은 역사적 진실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른 것이 지금 역사적 진실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역사는 일어난 사실이 아니다. 역사는 역사가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일 뿐이다... 역사는 항상 여러 미디어의 콜라주, 낙타털 그림붓이 아닌 실내 장식업자의 롤러로 물감을 칠한 그림과 더 비슷하다.”
「제1장 밀항자」. 노아의 방주에 숨어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나무좀벌레를 화자로 삼아 실제로 노아의 방주는 한 척이 아니었고, 유니콘과 같은 많은 동물들이 바로 그 시기에 노아에 의해서 사라지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신에 의해 선택되었던 노아라는 인물에 대한 나무좀의 불신이 강하게 담겨 있으며 동시에 노아의 방주가 물에 잠긴 세상을 떠돌던 시기에 실제 있었을 법한 사실들을 소설로 다루고 있다.
「제2장 방문자」. 프랭클린 휴즈라는 잘 나가는 인물이 타고 있는 배에 갑자기 등장한 아랍의 테러리스트들... 그들에게 납치된 배 안에 있던 다국적의 사람들은 어떻게 분류되었고, 또한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가를 프랭클린 휴즈의 행동과 태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제3장 종교 재판」. 시골의 교회를 방문했던 주교가 의자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넘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그 의자다리를 파먹은 나무좀을 재판에 회부한다. 실제로 있었던 기록을 토대로 한 이 재판의 결론은 이렇다. “... 우리는 전술의 을 가증스러운 해충으로 경고하며, 위반 시 저주, 파문 그리고 추방의 벌을 받는 조건으로 7일 이내에 브장송 주교 교구 마미롤 마을 생 미셸 교회를 떠나서, 지체나 방해 없이 이 그들에게 제공한 초지로 갈 것과, 거기에 거처를 잡고 다시는 생 미셸 교회를 횡행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명하노라...”
「제4장 생존자」. 방사능 노출로부터 안전한 곳을 찾아 한 여자가 남자 친구의 보트를 몰래 타고 항해를 시작한다. 자신의 고양이와 부두에서 만난 다른 고양이 몇 마리와 함께 무인도에 도착한 여자는 그곳에서도 불안하기 그지없다. 악몽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현실을 피해왔지만 그녀의 악몽은 계속된다. 하지만 “... 린다가 출산을 했다. 다섯 마리의 흑 ․ 백 ․ 갈색 고양이 새끼들.. 그런데도 아주 멀쩡했다... 그것은 정상이었다. 그 여자는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 무한한 희망을!” 그렇게 희망은 지속된다.
「제5장 난파」. “아주 극심한 절망감이 지배하는 가운데 격론을 벌이고 나서 건강한 15명 사이에서 합의된 것은,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병든 동지들은 바다에 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깨끗한 자와 더러운 자가 분리되듯 건강한 사람과 건강치 못한 자로 분리된 것이었다.” 실제로 있었던 메두사 호의 침몰과 뗏목에서 일어났을 법한 일을 재구성하고 있다. “재난을 어떻게 예술로 전환하는가? 오늘날은 그 과정이 자동적이다. 핵발전소가 폭발한다? 1년 이내에 런던의 어느 극장에서 상영될 것이다. 어떤 대통령이 암살된다? 책 또는 영화 또는 영화화된 책 또는 책으로 된 영화가 나온다. 전쟁? 소설가들이 몰려든다. 엽기적인 연쇄 살인 사건? 시인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자, 적어도 이 재난은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다. 결국, 재난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예술에 담긴 어떤 거대한 진실성 대신 재난이 어떻게 예술이 되고, 예술은 재난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한 담론이다.
「제6장 산」. 자신의 아버지 퍼거슨 대령이 가지고 있는 종교관에 반발하는 그의 딸 아만다 퍼거슨은 조수 로건 양과 함께 노아의 방주가 물이 빠진 후 멈추어 선 곳이라고 여겨지는 아라라트 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는 정말 신의 뜻이 기다리고 있을까...
「제7장 세 개의 간단한 이야기」.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서 여장을 한 채 탈출했던 남자의 그후의 성공은 어떤가... 요나와 고래의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며 신화는 현실이 되는가... 실제로 요나처럼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제8장 상류로!」. 정글에서 영화를 찍는 한 남자의 도시에 남겨두고 온 여자를 향한 연애 편지...
「삽입장」. 제8장에 나온 여자에 대한 못다한 이야기... “... 만약 우리가 사랑에 안달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도래에 그처럼 감격해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떠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결혼도 더 솔직하고 - 어쩌면 매우 오래 지속될 것이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놀랍게도 사랑이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사랑은 군더더기 살이고, 괴물이고, 의사일정에 뒤늦게 추가된 항목이다...”
「제9장 아라라트 계획」. 달에서 최초로 풋볼을 했던 스파이크 더글러는 바로 그 달에서 자신이 발로 찬 공을 분화구에 넣은 이후 갑자기 ‘노아의 방주를 찾아라’ 라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지미 박사와 함께 떠난 아라라트 산에서 드디어 스파이크 더글러는 노아의 방주 대신 인간의 뼈를 발견한다. 아마도 제6장의 아만다 퍼거슨 양이 신의 뜻으로 동굴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이후 남겨졌던 것 아닐까...
「제10장 꿈」. “나는 내가 꿈을 깼다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꿈 중에도 가장 오래된 꿈인데, 내가 방금 그런 꿈을 꾼 것이었다.”
항해, 나무좀, 노아의 방주, 신의 뜻, 재난 등과 같은 몇몇 이미지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줄리안 반스의 소설을 읽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기독교적인 전통이 강한 유럽과 달리 종교가 하나의 트렌드나 라이프 컨설턴트처럼 여겨지고 있는 우리의 기독교적인 상황에서 교회를 다녔던 나로서는 줄리안 반스의 책에 가득한 역설이 크게 와 닿지 않은 탓도 있다. 올해 들어 가장 긴 시간 동안 읽은 책이기도 하며, 아직도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꿈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세계 역사를 향한 줄리안 반스식 방주의 난해한 항해...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case1. 중학교 때 나는 포천에서 용인으로 이사를 했고 학교도 옮겼다. 그렇게 용인으로 이사를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묶음의 편지를 전달받았다. 이전 학교를 다닌 것은 일주일 정도였을 뿐이지만 그들이 나를 기억하여 반 학생 전체가 내게 편지를 보내준 것이다. case2. 나는 다섯 살 즈음 왼쪽 팔에 화상을 입었다. 피부이식 수술을 받기는 했지만 흉터가 남았고, 난 그 흉터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를 이렇게 위로했다. 네가 화상을 입기 전까지 엄마는 복강경 수술을 받은 이후 심하게 앓고 있는 중이었으며, 매우 위험한 지경에 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네가 다치면서 엄마의 모든 병증은 사라졌다. 네가 나를 살렸던 것이다, 아들아. 그러니 네 상처를 창피해 한다는 것은 이 어미의 되살아남을 창피해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case1을 살펴보면 이렇다. 나는 정말 그런 편지를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받았던 것은 이전 동네에서 다니던 교회에서 내가 떠난 이후 학생회의 집회 때 전도사의 종용에 따라 몇몇 아이가 적은 쪽지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옮기고 심한 외로움에 시달리던 나는 그 쪽지를 어딘가에 처박아 놓고는 반 아이들 전체가 내게 보낸 편지라고 여겼다. 이십대의 어느 날 그 몇 장의 쪽지가 발견되기까지 나는 실제로 반 아이들 전체의 편지를 받았다고 믿고 있었다. case2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의 결혼을 앞둔 어느 날 고모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 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희미하게 고모와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사실 엄마는 어린 내가 상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을 줄여줄 요량으로 나에게 거짓 정보를 흘렸다. 물론 어머니가 수술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내가 다치기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사고와 어머니의 수술을 비슷한 시가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어머니는 어린 자식으로 하여금 그 사실을 믿게끔 만들었다.
“세월이 가면 이야기는 용해되어 하나의 형태, 색깔, 느낌이 되고 만다. 현대인이고 또 무지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야기를 달리 상상한다... 우리의 눈은 하나의 기분, 하나의 해석에서 다른 기분, 다른 해석으로 왔다 갔다 한다...”
줄리안 반스를 읽다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줄리안 반스의 이번 소설은 우리가 보편적인 진실이라고 믿는 역사를 끌어들이면서도 그 역사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들에 강한 의구심을 품는다. 어린 시절의 내가 믿었던 사실들이 실제로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처럼(물론 대다수의 기억들은 사실이겠지만) 우리들이 흔하게 믿는 역사 속에도 많은 허구가 도사리고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실제로 우리들은 역사적 진실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른 것이 지금 역사적 진실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역사는 일어난 사실이 아니다. 역사는 역사가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일 뿐이다... 역사는 항상 여러 미디어의 콜라주, 낙타털 그림붓이 아닌 실내 장식업자의 롤러로 물감을 칠한 그림과 더 비슷하다.”
「제1장 밀항자」. 노아의 방주에 숨어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나무좀벌레를 화자로 삼아 실제로 노아의 방주는 한 척이 아니었고, 유니콘과 같은 많은 동물들이 바로 그 시기에 노아에 의해서 사라지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신에 의해 선택되었던 노아라는 인물에 대한 나무좀의 불신이 강하게 담겨 있으며 동시에 노아의 방주가 물에 잠긴 세상을 떠돌던 시기에 실제 있었을 법한 사실들을 소설로 다루고 있다.
「제2장 방문자」. 프랭클린 휴즈라는 잘 나가는 인물이 타고 있는 배에 갑자기 등장한 아랍의 테러리스트들... 그들에게 납치된 배 안에 있던 다국적의 사람들은 어떻게 분류되었고, 또한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가를 프랭클린 휴즈의 행동과 태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제3장 종교 재판」. 시골의 교회를 방문했던 주교가 의자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넘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그 의자다리를 파먹은 나무좀을 재판에 회부한다. 실제로 있었던 기록을 토대로 한 이 재판의 결론은 이렇다. “... 우리는 전술의 을 가증스러운 해충으로 경고하며, 위반 시 저주, 파문 그리고 추방의 벌을 받는 조건으로 7일 이내에 브장송 주교 교구 마미롤 마을 생 미셸 교회를 떠나서, 지체나 방해 없이 이 그들에게 제공한 초지로 갈 것과, 거기에 거처를 잡고 다시는 생 미셸 교회를 횡행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명하노라...”
「제4장 생존자」. 방사능 노출로부터 안전한 곳을 찾아 한 여자가 남자 친구의 보트를 몰래 타고 항해를 시작한다. 자신의 고양이와 부두에서 만난 다른 고양이 몇 마리와 함께 무인도에 도착한 여자는 그곳에서도 불안하기 그지없다. 악몽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현실을 피해왔지만 그녀의 악몽은 계속된다. 하지만 “... 린다가 출산을 했다. 다섯 마리의 흑 ․ 백 ․ 갈색 고양이 새끼들.. 그런데도 아주 멀쩡했다... 그것은 정상이었다. 그 여자는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 무한한 희망을!” 그렇게 희망은 지속된다.
「제5장 난파」. “아주 극심한 절망감이 지배하는 가운데 격론을 벌이고 나서 건강한 15명 사이에서 합의된 것은,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병든 동지들은 바다에 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깨끗한 자와 더러운 자가 분리되듯 건강한 사람과 건강치 못한 자로 분리된 것이었다.” 실제로 있었던 메두사 호의 침몰과 뗏목에서 일어났을 법한 일을 재구성하고 있다. “재난을 어떻게 예술로 전환하는가? 오늘날은 그 과정이 자동적이다. 핵발전소가 폭발한다? 1년 이내에 런던의 어느 극장에서 상영될 것이다. 어떤 대통령이 암살된다? 책 또는 영화 또는 영화화된 책 또는 책으로 된 영화가 나온다. 전쟁? 소설가들이 몰려든다. 엽기적인 연쇄 살인 사건? 시인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자, 적어도 이 재난은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다. 결국, 재난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예술에 담긴 어떤 거대한 진실성 대신 재난이 어떻게 예술이 되고, 예술은 재난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한 담론이다.
「제6장 산」. 자신의 아버지 퍼거슨 대령이 가지고 있는 종교관에 반발하는 그의 딸 아만다 퍼거슨은 조수 로건 양과 함께 노아의 방주가 물이 빠진 후 멈추어 선 곳이라고 여겨지는 아라라트 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는 정말 신의 뜻이 기다리고 있을까...
「제7장 세 개의 간단한 이야기」.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서 여장을 한 채 탈출했던 남자의 그후의 성공은 어떤가... 요나와 고래의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며 신화는 현실이 되는가... 실제로 요나처럼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제8장 상류로!」. 정글에서 영화를 찍는 한 남자의 도시에 남겨두고 온 여자를 향한 연애 편지...
「삽입장」. 제8장에 나온 여자에 대한 못다한 이야기... “... 만약 우리가 사랑에 안달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도래에 그처럼 감격해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떠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결혼도 더 솔직하고 - 어쩌면 매우 오래 지속될 것이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놀랍게도 사랑이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사랑은 군더더기 살이고, 괴물이고, 의사일정에 뒤늦게 추가된 항목이다...”
「제9장 아라라트 계획」. 달에서 최초로 풋볼을 했던 스파이크 더글러는 바로 그 달에서 자신이 발로 찬 공을 분화구에 넣은 이후 갑자기 ‘노아의 방주를 찾아라’ 라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지미 박사와 함께 떠난 아라라트 산에서 드디어 스파이크 더글러는 노아의 방주 대신 인간의 뼈를 발견한다. 아마도 제6장의 아만다 퍼거슨 양이 신의 뜻으로 동굴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이후 남겨졌던 것 아닐까...
「제10장 꿈」. “나는 내가 꿈을 깼다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꿈 중에도 가장 오래된 꿈인데, 내가 방금 그런 꿈을 꾼 것이었다.”
항해, 나무좀, 노아의 방주, 신의 뜻, 재난 등과 같은 몇몇 이미지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줄리안 반스의 소설을 읽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기독교적인 전통이 강한 유럽과 달리 종교가 하나의 트렌드나 라이프 컨설턴트처럼 여겨지고 있는 우리의 기독교적인 상황에서 교회를 다녔던 나로서는 줄리안 반스의 책에 가득한 역설이 크게 와 닿지 않은 탓도 있다. 올해 들어 가장 긴 시간 동안 읽은 책이기도 하며, 아직도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꿈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