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그가 (그동안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을 뺀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귀여운 스타일을 (물론 자신의 스타일을 완전히 벗어버리는 것이 힘들었는지 임수정의 입을 탄창으로 손가락을 총구로 삼아 병원을 쑥대밭을 만들어놓는 장면을 넣기는 하지만) 선택한 것은 최고 대우 메인 스트림의 감독이 누리는 일종의 허영에 가까워 보인다.
지금까지의 스타일로부터 한껏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스타일의 창조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제 더 이상 오를 자리가 없다고 스스로 느낀 자가 한껏 여유를 부린 오만의 결과물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가능하다. 단순한 오락물을 만들기엔 좀 그렇고, 그렇다고 지금 복수 3부작과 같은 영화를 반복할 수도 없었던 감독은, 아마추어리즘 가득한 독립영화나 상상력 가득한 초보감독의 데뷔작에서나 등장할 법한 난해한 설정과 페이소스 얕은 유머를 곁들여 사이코 (+사이보그)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다고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는 자신을 쥐라고 믿는 할머니에게서 자랐으며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믿어 건전지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신의 존재의 목적을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영군과, 어머니가 집을 나간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어머니가 집을 나가 전화로 남긴 이를 닦으라는 마지막 말에 따라 수시로 이를 닦고 자신이라는 존재가 소멸할지도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훔치심을 발휘하여 누군가의 능력을 훔쳐내는 일순의 사랑을 주요 스토리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존재의 목적을 모르는 사이보그(라고 믿는) 여자와 존재의 소멸을 항상 두려워해야 하는 남자의 사랑 쯤이라고 할까...
여기에 전기 충격 치료를 받을 때마다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를 잃고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화증 환자인 오설미, 죄책감으로 가득하여 누구에게든 송구스러워하고 미안해하며 뒤로 걷는 남자 신덕천, 삼십년전 합창단 오디션에서 떨어진 이후 언젠가 알프스에 가서 노래를 부르리라 생각하며 항상 또다른 오디션을 준비하며 거울 속을 통해서만 상대방과 눈 마주치는 처녀 손은영, 유니폼 코스프레를 즐기고 아내가 괴물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이대평, 병명은 딱히 모르겠으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만큼이나 강한 식탐을 가지고 있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양말을 개발한 왕곱단, 태어날 때부터 허리에 고무줄이 있다고 믿으며 손은영과 왕곱단 사이 삼각관계에 빠져 있는 총각 황규석 등이 가세하며 정신병원이 완성된다.
그리고 영화는 건전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영군에게 무언가를 먹이기 위해 애쓰는 일순, 무엇이든 다른 사람의 속성을 훔쳐갈 수 있는 일순에게 (하얀맨을 처치하고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동정심을 훔쳐가 달라며 애원하는 영군의 좌충우돌 정신병원 생활 일기로 채워져 있다. 서로를 끊임없이 훔쳐보며 서로를 이해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상대방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어가다가, 결국 영군의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거의(?) 알게 되고, 두 사람은 알몸으로 드넓은 광야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비, 정지훈을 기용함으로써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중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감독의 말과는 달리 영화는 전혀 대중적이지 않다.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이 곧바로 예술성의 획득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영화가 무조건 대중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실 박찬욱이 어떻게 영화의 대중성을 높였는가를 확인하려면 현재의 영화가 아니라, 애초에 감독이 정지훈이나 임수정을 기용하기 이전에 만들려고 했던 영화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니, 실상은 확인 불가능인 셈...)
물론 콜라주된 작가의 상상력이 화려한 볼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임수정의 연기는 매우 훌륭해 보인다. TV와 스크린을 오고가며 주가를 올리는 배우가 눈썹을 밀고 틀니를 끼고 우스꽝스러운 앵글에 노출된 채 할머니 같은 말투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배우 정지훈의 귀여운 그의 팬클럽 회원이 아니라면 봐주기 힘들다.)
어쩌면 박찬욱 감독에게 내가 바라는 것이 복수 3부작의 그, 혹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그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들 심리의 어두운 심연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는 다양한 스타일의 창조나 파멸을 향하고 있음에도 도저히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예리한 탐구, 혹은 도저히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중성을 달라고 칭얼거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이번 영화는 태만해 보인다.
ps1. 일순과 영군이라는 이름들이 재밌다. 남자는 여성화된 이름을 여자는 남성화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실 영과 일,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의 세계에서 남녀의 구분은 무의미하니까, 이런 의도인가...
ps2.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려진다고 한다. 사실 영화를 함께 본 아내는 굉장히 재밌었다고 몇 번을 말했다. 나는 “저건 허영이야.” 라고 한 마디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심술궃은 영화광 웰 메이드 영화감독의 허영심...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그가 (그동안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을 뺀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귀여운 스타일을 (물론 자신의 스타일을 완전히 벗어버리는 것이 힘들었는지 임수정의 입을 탄창으로 손가락을 총구로 삼아 병원을 쑥대밭을 만들어놓는 장면을 넣기는 하지만) 선택한 것은 최고 대우 메인 스트림의 감독이 누리는 일종의 허영에 가까워 보인다.
지금까지의 스타일로부터 한껏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스타일의 창조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제 더 이상 오를 자리가 없다고 스스로 느낀 자가 한껏 여유를 부린 오만의 결과물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가능하다. 단순한 오락물을 만들기엔 좀 그렇고, 그렇다고 지금 복수 3부작과 같은 영화를 반복할 수도 없었던 감독은, 아마추어리즘 가득한 독립영화나 상상력 가득한 초보감독의 데뷔작에서나 등장할 법한 난해한 설정과 페이소스 얕은 유머를 곁들여 사이코 (+사이보그)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다고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는 자신을 쥐라고 믿는 할머니에게서 자랐으며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믿어 건전지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신의 존재의 목적을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영군과, 어머니가 집을 나간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어머니가 집을 나가 전화로 남긴 이를 닦으라는 마지막 말에 따라 수시로 이를 닦고 자신이라는 존재가 소멸할지도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훔치심을 발휘하여 누군가의 능력을 훔쳐내는 일순의 사랑을 주요 스토리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존재의 목적을 모르는 사이보그(라고 믿는) 여자와 존재의 소멸을 항상 두려워해야 하는 남자의 사랑 쯤이라고 할까...
여기에 전기 충격 치료를 받을 때마다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를 잃고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화증 환자인 오설미, 죄책감으로 가득하여 누구에게든 송구스러워하고 미안해하며 뒤로 걷는 남자 신덕천, 삼십년전 합창단 오디션에서 떨어진 이후 언젠가 알프스에 가서 노래를 부르리라 생각하며 항상 또다른 오디션을 준비하며 거울 속을 통해서만 상대방과 눈 마주치는 처녀 손은영, 유니폼 코스프레를 즐기고 아내가 괴물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이대평, 병명은 딱히 모르겠으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만큼이나 강한 식탐을 가지고 있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양말을 개발한 왕곱단, 태어날 때부터 허리에 고무줄이 있다고 믿으며 손은영과 왕곱단 사이 삼각관계에 빠져 있는 총각 황규석 등이 가세하며 정신병원이 완성된다.
그리고 영화는 건전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영군에게 무언가를 먹이기 위해 애쓰는 일순, 무엇이든 다른 사람의 속성을 훔쳐갈 수 있는 일순에게 (하얀맨을 처치하고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동정심을 훔쳐가 달라며 애원하는 영군의 좌충우돌 정신병원 생활 일기로 채워져 있다. 서로를 끊임없이 훔쳐보며 서로를 이해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상대방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어가다가, 결국 영군의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거의(?) 알게 되고, 두 사람은 알몸으로 드넓은 광야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비, 정지훈을 기용함으로써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중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감독의 말과는 달리 영화는 전혀 대중적이지 않다.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이 곧바로 예술성의 획득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영화가 무조건 대중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실 박찬욱이 어떻게 영화의 대중성을 높였는가를 확인하려면 현재의 영화가 아니라, 애초에 감독이 정지훈이나 임수정을 기용하기 이전에 만들려고 했던 영화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니, 실상은 확인 불가능인 셈...)
물론 콜라주된 작가의 상상력이 화려한 볼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임수정의 연기는 매우 훌륭해 보인다. TV와 스크린을 오고가며 주가를 올리는 배우가 눈썹을 밀고 틀니를 끼고 우스꽝스러운 앵글에 노출된 채 할머니 같은 말투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배우 정지훈의 귀여운 그의 팬클럽 회원이 아니라면 봐주기 힘들다.)
어쩌면 박찬욱 감독에게 내가 바라는 것이 복수 3부작의 그, 혹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그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들 심리의 어두운 심연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는 다양한 스타일의 창조나 파멸을 향하고 있음에도 도저히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예리한 탐구, 혹은 도저히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중성을 달라고 칭얼거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이번 영화는 태만해 보인다.
ps1. 일순과 영군이라는 이름들이 재밌다. 남자는 여성화된 이름을 여자는 남성화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실 영과 일,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의 세계에서 남녀의 구분은 무의미하니까, 이런 의도인가...
ps2.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려진다고 한다. 사실 영화를 함께 본 아내는 굉장히 재밌었다고 몇 번을 말했다. 나는 “저건 허영이야.” 라고 한 마디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