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닷속에서 해마들이 물을 차는 소리, 밤나들이 하는 작은 조개들이 속살로 조심조심 뻘밭을 기어가는 소리, 바닷가 소나무 잎사귀들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 간간이 울리는 파도 소리, 바다 위로 떠오르는 수천 개 별들 깜빡이는 소리, 그 모든 것 사이로 달빛이 수면에 살그머니 내려앉는 소리......
여자의 살 위에 이슬이 맺힌다. 땀, 육체의 깊은 골을 돌아나와 육체 밖으로 육체의 냄새를 끄집어내는, 만남, 세계와 내면의 접경.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는 손가락으로 살 위에 맺힌 이슬을 만져본다. 조금 끈적이는...... 여자는 바다를 향해 머리를 들었다가 또다시 깊이 고개를 숙인다. 파도가 높은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여자의 땀에서 강하게 바다냄새가 난다.
여자는, 문득, 날카로운 칼날처럼 어두움을 가르고 일어선다. 여자는 바닷가를 따라 걸어간다. 밤안개가 자욱이 일어난다. 여자가 낮게 중얼거린다. "여긴 습하고 추워. 살 수 있을까? 어쩌면...... 하지만 너무 쓸쓸해." 여자는 모랫벌이 끝나는 곳까지 걸어간다. 모랫벌이 끝나는 곳까지. "난 여기까지 걸어왔어. 그래, 말들이 나를 떠다밀었지, 여기까지는......" 밤안개가 조금씩 빽빽해진다. 그것이 여자의 몸을 에워싼다. 여자의 몸이 천천히 가벼워지고, 이윽고 발목이 지워진다.
달빛이 고즈넉히 쏟아진다. 그리고 낡은 성당의 나지막한 뒷문이 환영처럼 나타난다. 여자는 안개에 싸여 성당 안으로 스며들어간다.
여자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여자의 동공이 텅 비어 있다. 여자의 크게 벌어진 눈속에서, 설핏, 분노, 세계 위를 달려온, 수천 년의 인내, 그것이 세계 안에서 실현하지 못한 사랑의 힘, 응축된 힘의 핵이, 조용히, 단호하게 일어선다. 여자의 가슴속에 무시무시한 폭풍이 불어닥친다. 여자의 몸이 한참동안...... 한참동안...... 앞뒤로 위아래로 격렬하게 뒤흔들린다. 여자는 버티고 서서 그 힘을 살아낸다. 믿음의 이름으로. 이윽고 폭풍이 멎고, 여자의 살에 다시 이슬이 맺힌다.
여자의 말
- 낡은 성당에서의 해후
깊은 바닷속에서 해마들이 물을 차는 소리, 밤나들이 하는 작은 조개들이 속살로 조심조심 뻘밭을 기어가는 소리, 바닷가 소나무 잎사귀들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 간간이 울리는 파도 소리, 바다 위로 떠오르는 수천 개 별들 깜빡이는 소리, 그 모든 것 사이로 달빛이 수면에 살그머니 내려앉는 소리......
여자의 살 위에 이슬이 맺힌다. 땀, 육체의 깊은 골을 돌아나와 육체 밖으로 육체의 냄새를 끄집어내는, 만남, 세계와 내면의 접경.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는 손가락으로 살 위에 맺힌 이슬을 만져본다. 조금 끈적이는...... 여자는 바다를 향해 머리를 들었다가 또다시 깊이 고개를 숙인다. 파도가 높은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여자의 땀에서 강하게 바다냄새가 난다.
여자는, 문득, 날카로운 칼날처럼 어두움을 가르고 일어선다. 여자는 바닷가를 따라 걸어간다. 밤안개가 자욱이 일어난다. 여자가 낮게 중얼거린다. "여긴 습하고 추워. 살 수 있을까? 어쩌면...... 하지만 너무 쓸쓸해." 여자는 모랫벌이 끝나는 곳까지 걸어간다. 모랫벌이 끝나는 곳까지. "난 여기까지 걸어왔어. 그래, 말들이 나를 떠다밀었지, 여기까지는......" 밤안개가 조금씩 빽빽해진다. 그것이 여자의 몸을 에워싼다. 여자의 몸이 천천히 가벼워지고, 이윽고 발목이 지워진다.
달빛이 고즈넉히 쏟아진다. 그리고 낡은 성당의 나지막한 뒷문이 환영처럼 나타난다. 여자는 안개에 싸여 성당 안으로 스며들어간다.
"여기 계세요? 날 기다리셨나요? 오랫동안? " 눈빛, 잠깐, 제대 뒷쪽에서, 번쩍, 빛나고, 휘익, 궁륭 이쪽과 저쪽을 스치는 거대한 날개. "여기 계시지요? 그렇지요?"
여자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여자의 동공이 텅 비어 있다. 여자의 크게 벌어진 눈속에서, 설핏, 분노, 세계 위를 달려온, 수천 년의 인내, 그것이 세계 안에서 실현하지 못한 사랑의 힘, 응축된 힘의 핵이, 조용히, 단호하게 일어선다. 여자의 가슴속에 무시무시한 폭풍이 불어닥친다. 여자의 몸이 한참동안...... 한참동안...... 앞뒤로 위아래로 격렬하게 뒤흔들린다. 여자는 버티고 서서 그 힘을 살아낸다. 믿음의 이름으로. 이윽고 폭풍이 멎고, 여자의 살에 다시 이슬이 맺힌다.
"그래요, 당신이군요." 세계의 문이란 문들의 경첩들이 모두 삐걱거리며 덜컹거린다.
-김정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