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벗어나지 못한 행복의 신비를 찾아헤맨다.

김향지2006.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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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벗어나지 못한 행복의 신비를 찾아헤맨다.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 행복의 신비를 찾아헤맨다.   베를렌느 : 훌륭해.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 행복의 신비를 찾아헤맨다...내가 100년 쯤 뒤쳐져 있는 것 같아.난 가끔 왜 나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가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해   랭보 : 난 당신에게서 형식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난 무엇을 쓸 지 알고 있고, 형식을 당신에게서 이미 배웠어.     랭보의 삶을 정리해서 보고 싶었다. 물론 허구가 있었지만 사실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랭보의 시와 삶을 전적으로 이해하려는 이는 오만해야 한다. 베를렌느가 랭보를 총으로 쏜 이유, 19세에 절필하고 아르리카로 간 이유는 영화의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개연성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랭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정말 열심히 살았기에 내 마음이 흔들린 이유는 자신이 관철하는 바가 세상과 반대임에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바껴야 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완전히 이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감각의 타락으로 모든 것을 경험하고자 한다. 16세 전쟁에서 죽은 어느 병사를 보고 깨달은 바, 그가 동생 이자벨과 간호사에게 욕을 하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창밖 죽은 병사가 통나무에 기대어 햇빛을 쬐고 있다. 그의 삶이 그의 의도처럼 완성되지 않았나요? 라고 보는이로 하여금 동의를 구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욕을 하지 않고 평안하게 죽는다. 그것은 감독의 양심 혹은 영화의 흐름을 위해서일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욕을 했다는 것은 인터넷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사실인데 끝맺음에서 사실과 다르게 함으로서 '내 영화에 빠져봐 이것이 랭보의 삶이라구 틀리지 않았어'라고 영화를 계속 진행해오다 마지막에서 허구가 존재하는 영화였음을 깨닫게 해주는 장치다. 영화를 만든 이들은 분명 랭보를 아꼈고 그의 삶이 왜곡되어 사람들의 기억에 남길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랭보는 17살에 베를렌느에게 편지를 보내 파리로 가게 된다. 랭보는 무엇을 쓸지 알았고 베를렌느는 시의 음악, 형식을 알았다. 둘의 사랑은 영감과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으로 시작되었지만 영화의 후반부, 절필한 자신을 찾아온 베를렌느에게 랭보가 묻는다. '나의 육체를 원해?...나의 영혼을 원해?' '너의 육체' 나는 전적으로 영혼을 사랑하고, 그래서 아름답고 역시 사랑하는 베를렌느의 부인에게서 베를렌느를 계속 소유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체까지 이성처럼 사랑했던 것이다. '압생트 두잔!' 초록의 술 위에 나이프를 얹고 설탕을 올려놓는다. 물을 따른다. 설탕이 녹아 술위로 떨어진다. 컵을 잡는 이가 있다. 랭보의 환상이 술을 마시고 베를렌느의 손 위에 나이프로 슬며시 무언가를 그리더니 키스를 한다. 화해. 싸움뒤의 화해가 아닌 결말의 '화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무엇. 삶 속에 있을 때는 나이프로 손바닥을 콱 찔러버린다. 누구를 사랑하는지 분명히 모르는 베를렌느에게 현실적인 감각을 깨우쳐주는 의도였을까 랭보가 울고 있는 장면을 나도 모르게 일시정지 해놓고 한참 볼 수 밖에 없었다. 저 눈물. 17세에 '나는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어'라고 말했던 랭보가 17세~19세에 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영화의 선물이자 마음 아픈 것. 절대 울것 같지 않았던 시인이 운다. 어떤 방향으로 열심히 살다 간 랭보, 그리고 베를렌느는 그 뒤 시인들의 시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