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단 힘 빼는 한국발 "FTA 괴담"

이칠화200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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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협상단 힘 빼는 한국발 'FTA 괴담' [중앙일보 2006-12-06 05:47]     협상단 힘 빼는 한국발 "FTA 괴담" [중앙일보 홍병기] "한국 협상단, 너무 너무 터프(tough)합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본협상 첫날인 4일 오후(현지 시간) 회의장 밖으로 나오던 한 미국 측 협상단 관계자는 성과를 묻는 질문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엄살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협상에서 한국 측과 지겹도록 설전을 벌였던 미국 협상단의 표정에는 한국이 그리 쉽지 않은 상대라는 분위기가 항상 묻어 나온다. 한국 대표단이 미국과 칠레.멕시코의 FTA 협정문까지 줄줄이 인용하며 미국을 공박하는 모습에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도 "내용을 너무 잘 꿰뚫고 있다. 어찌 그리 준비할 수 있느냐"며 감탄했다고 한다. 수적으로도 미국(80명)의 배가 넘는 170여 명의 한국 대표단이 활동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면 일부에서 우려하는 '졸속 협상'의 흔적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마치 칼날을 잡은 기분"이라며 "세게 잡으면 손을 베이고, 느슨하게 잡으면 놓쳐버릴 상황"이라고 협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전투적인 한국 대표단은 그러나 다른 걱정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대표단의 한 관계자가 기자에게 슬그머니 "우리야 협상에만 전념하면 되지만 도대체 (서울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냐"고 물어 왔다. 대표단 주변에는 벌써 본국에서 날아온 괴담이 어지럽게 나돌고 있다. "FTA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 "FTA 협상을 다음 정권에 넘길 것" 등등의 내용이다. 흉흉한 'FTA 괴담' 때문에 "이렇게 죽어라 일만 하다가 나중에 청문회에 서는 것 아니냐"는 자조까지 나오고 있다.

대통령 임기 말의 어수선한 분위기에다 대표단 출발 직전 터져 나온 당.청 분열에서 빚어진 정치적 갈등 때문에 한.미 FTA의 앞날이 불투명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대표단의 힘을 빼고 있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복잡하게 얽힌 국내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대표단 내부의 '우울한'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많은 전문가가 FTA의 성공 여부는 대외협상보다 대내 협상에 달려 있다고 지적해 왔다. 그런데 미국과의 협상에 전념해야 할 협상단이 본국에서 날아온 FTA 괴담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상황은 대내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가 항상 앞세우는 '혁신 시스템'도 한.미 FTA를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

영하 15도 혹한의 미국 내 오지(奧地) 몬태나에서 큰 전투를 치르고 있는 협상단에 본국에선 지원은커녕 뒤흔드는 괴담만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은 온통 '야당'으로 변했고 반대세력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미 FTA는 던져진 주사위다. 지금 중요한 것은 협상단이 최대한 실리를 얻어 낼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일이다. 특히 한.미 FTA를 최대 과제라고 강조해 온 노 대통령이 FTA 괴담을 하루빨리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 이참에 그토록 편지 쓰기를 즐기는 노 대통령이 설상(雪上)의 협상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협상단의 가슴을 녹여 줄 격려의 메시지라도 한번 보내 주면 어떨까.

빅스카이(미 몬태나)에서

홍병기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