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미정­―01(가계약)

이영현200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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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손가락을 입에 물고 질끈 깨물으니 `아각`하는 소리가 났다.

깨물어서 찢어진 틈새로 검붉은 피가 손가락의 선을 따라

바닥 위로 떨어졌다. 이미 바닥은 붉고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만발해 있는 상태였다. 나는 아직도 흐르는 피로 범벅이 된

검지 손가락을 매끄러운 바닥의 중앙에 대었다.

 

후하-

 

숨을 한 번 몰아쉬고 중앙에서부터 책에서 보고 외운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안에서 밖으로 동그란 선 세 개를 그린 후 그 선 사이사이에 섬세하게 룬어를 새겼다. 그리고 원의 중앙을 중점으로 이슈타르의 별을 원을 벗어나도록 크게 그렸다.

또 그 안에 작은 오망성을 그린 후 허리를 펴고 마법진의

중앙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손을 따라 흐르는 피를 남김없이

입 안에 털어낸 후 마법진에 적힌 룬어를 차례대로 읊조렸다.

 

[나 이곳에서 나의 지혈을 바쳐 순수하고도 어두운 자를 소환하나니

 앞으로 나의 수족이 될 타락천사여, 나의 잠재력에 버금가는 자로

 내 앞에 나타나라!]

 

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마법진의 룬어 한 자 한 자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이내 주문영창이 끝나자 눈을 뜨지 못할 만큼 많은 양의

빛이 방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빛은 켜져있던 등잔의 빛까지

남김없이 가져갔다. 또한 무언가에 빨리는 듯 그 빛은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그 곳이 내 머리 위라서 자연히 내 고개도 위를 향했다.

보자마자 나는 깜짝놀라 마법진에서 벗어났다.

 

이윽고- 그것이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손을 깍지 끼운 듯이

모아진 검은 천사의 날개 였다. 날개는 창을 통해 흐르는

은은한 달빛마저 흡수했다.

 

아, 이 다음에는 그거였지? 나는 팔에 대롱대롱 끼워져있는

백팔십골드라는 거금을 주고 산 타락천사 종속의 팔찌를 한 번

내려다 보앗다. 그리고 타락천사 고유의 문양을

찾기 위해 날개로 눈길을 돌린지 얼마되지 않아  또 한 번 놀랐다.

 

왜냐하면 책에서 본 날개의 문양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문양이 몇 배는 더 커보였기 때문이다. 날개 한 면을 꽉 채우고

있는 사슬모양의 문양.

 

꼴깍.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 날개로 다가가 팔에 걸쳐진 밋밋한

모양의 팔찌를 그 사슬 모양의 문양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검으면서도 하얀 회색빛이 팔찌로 흘러들어갔다. 그 빛은

붉은 빛으로 변해 팔찌의 정중앙에서 보석이 되었고 그 보석을

중심으로 마치 덩굴같이 엉키는 듯한 모습으로 팔찌를 둘렀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자 빛이 지나간 자리엔 붉은 보석과

그 보석의 왼편으로 검정색, 오른편으로 흰색의 문양띠가 있었다.

 

아, 다시 보석이 빛을 발한다. 그와 동시에 날개가 천천히 펴진다.

 

"와아-"

 

이 곳에서 룬어 외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려 했던 내 입에서

저절로 감탄의 탄성이 튀어나올 만큼 날개가 감춰두고 있던 그는

무엇보다고 환상적이었다.

 

은발의 긴 머리칼, 깊어보이는 검은빛 눈동자. 목에 나타나 있는

소환의 표식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타락천사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그는 아름다웠다. 그런데-

 

"뭘 그렇게 보는가?"

 

응? 분명 목소리는 미성이었는데 그와 상반되는 씨니컬한 말투가

튀어나온 것 같다. 에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그런 틱틱대는

말투를 쓸리가‥

 

"이봐,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아가씨? 뭘 그렇게 보느냐고

 묻지 않았나? 날 소환해놓고 아무 말이 없는 건 무슨 경우지?

 그 쪽 소개라도 해야할 게 아닌가?"

 

헐. 지금까지 간직해 왔던 상상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뭐 이딴 천사가 다있어?! 왜 타락천사가 되었을까 했더니

다 저 놈의 싸가지 없는 성격 때문이었던 거야.

 

나는 그에 맞받아치기 위해 손을 번쩍들어

그의 면상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외쳣다.

 

"당신.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내가 보자기로 보이나 보죠?

 소환자에서 말투가 그게 뭐예요! 적어도 친절한 대우는 해줘야

 할 게 아니예요? 명색이 당신을 소환한 사람인데!"

 

나의 그런 행동에 놀랐다는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

그러나 그의 입술은 날 비웃는 듯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꼭 애들같이 행동하는군. 몇 살 인건가? 보아하니 특출난 능력도

 없는 것 같은데, 잠재력으로만 이 나를 소환하다니 각성한다면

 그 누구보다 강하겠구나. 아, 타락천사를 소환한 거- 여자로서는

 네가 처음이겠군.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 애송이"

 

그가 말하는 사이에 그의 이마에서 빛나는 표식. Ⅱ(* -2라는뜻)

내가 의아함에 그의 이마를 계속 쳐다보자, 그런 나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그가 빙긋 웃으며 하는 말.

 

"자! 그럼, 백(*白-흴 백)의 타락천사 서열 2위 카이세르 스루빌은

 이 앞의 인간을 마스터로 삼곘다. 소녀여, 너의 이름은?"

 

아, 이거 책에서 봤어. 가계약이었던가.

 

"그대와 계약하려는 나의 이름은 레이첼 크리스티앙.

 카이세르 스루빌, 그대를 나의 이름으로 구속하겠다."

 

[나의 증표는 날개. 너의 증표는 이름. 나 이 곳에서 그대와

 연(*緣-인연 연)을 맺노니 신께서는 나의 날개를 그녀에게 주시고

 그녀의 이름은 나에게 주시옵소서. 이제 나는 지금 이 순간 부터

 목숨을 다해 그녀를 지킬 것을 맹세하노라.

 가계약(*歌契約- 노래 가, 맺을 계, 맺을 약)]

 

파앗-

 

그의 날개가 빛나기 시작하더니, 빛은 또 하나의 날개가 되어 내

등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조금 후, 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쓰러지기 전, 당황한 그의 모습이 보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