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는 보통 판타지영화들처럼 밝고, 신비하고, 동심 가득하지만은 않습니다. 영화의 전반적 색채는 무채의 그레이계열이 많이 쓰였고, 진흙이나 빗물 같은 끈적끈적한 질감도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영화는 '게릴라내전과 프랑코 독재체재가 대립하는 1944년의 스페인'이라는 다소 어두운 배경으로부터 출발해, 진지하고 무게 있게 스토리를 풀어나갑니다. 가벼운 모습은 거의 느껴지지 않죠. 오필리아가 모험을 하는 부분도 신비하고 환상적인 판타지라기보다는 호러에 가깝습니다. 배급사에서 써먹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문구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죠.
‘판의 미로’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데, 앞서 말했던 어두운 현실세계와 오필리아가 체험하는 모험의 세계입니다. 전자가 어른들의 세계, 후자가 아이들의 세계가 될 수도 있고, 전자는 현실, 후자는 망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부여하는 의미가 다르겠지만, 전 이 둘을 구태여 엄격하게 구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필리아가 경험하는 모험의 세계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상상 속 도피세계라고 밀어붙이는 것 같더군요.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이 주장도 그다지 이치에 맞진 않습니다. 영화 끝부분에서 비달 대위가 판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논리가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건 이해하겠지만, 그렇게 치면 영화 중반에 비달 대위가 침대 밑에 숨긴 허브뿌리(정확한 명칭은 허브뿌리가 아니라 ‘만드라고라’입니다.)를 발견하는 장면은 모순이 되죠. 그 허브뿌리는 오필리아가 판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이니까 비달대위가 그것을 발견됐다는 건 판의 존재를 인정하는 꼴이니까요. 또한 허브뿌리는 현실세계에서 오필리아 어머니의 병세를 호전시키는 실질적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두 번째 관문에서 오필리아가 다음날 자기 방이 아닌 곳에서 깨어난 것도 단지 오필리아의 모험 세계가 허구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죠.
여하튼, ‘오필리아의 모험이 현실도피세계였다.’라고 믿는 주장은 영화의 미적인 결말을 원하는 관객들에 의해 발생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두운 현실세계가 순수한 동화적 시각으로 재해석 되어 슬프지만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 문학작품들은 수없이 존재해왔고, 관객들은 그런 패턴에 익숙하거든요.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비달 대위가 저질렀던 수위 높았던 폭력은 오히려 오필리아의 죽음으로써 아름다워 보입니다. 이런 식의 미적집착은 기독교적 사후세계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이승의 육신은 죽었지만 영혼은 아름다운 곳에 있을 거란 믿음 말이죠. 어쨌든, ‘판의 미로’에서 두 세계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고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를 나누는 행위는 무의미합니다. 중요한 건 이 두 세계간의 조율과 배합이 너무 잘 이루어졌단 거죠.
오락성 짙은 판타지를 기대하고 갔던 관객들은 분명히 실망을 할 겁니다. ‘판의 미로’란 제목 자체가 잘못됐죠. ‘판의 미로’의 ‘미로’는 ‘라비린스’ 같이 모험의 여정을 펼쳐나가는 배경이 아니라 ‘지하 세계’, 즉 목적지로 들어가는 일종의 상징적 장소입니다. 오히려 ‘판의 테스트’ 같은 제목이 더 그럴 싸 해보여요. 그리고 솔직히 이 영화에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긴 한가요? 세 개의 관문은 모험으로 치기엔 너무 단편적인 에피소드 같고 싱겁습니다. 시간도 짧고요. 이건 길예르모 델 토로의 잘못은 아닙니다. 홍보 컨셉을 잘못 정한 배급사 탓이겠죠. 가장 눈에 띄는 단점은 관습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필리아가 두 번재 관문에서 실수를 한 것도 그렇고, 마지막에 동생을 대신해 희생을 한 것도 엔딩을 위한 장치로밖엔 안 보이죠. 불필요하게 들어간 잔인한 장면은 가끔 영화의 전반적 정서를 해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좋게 느껴지는 건, 이 두 세계가 흐트러지지 않고, 앞서나가지도 뒤쳐지지도 않으며 서로의 페이스를 적당히 유지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테크니컬함에 있습니다. 관습적요소가 아무리 진부하더라도 영화는 계속 관객들을 스토리에 몰입시키는 에너지를 갖고 있거든요. 오히려 그 뻔뻔하고 유려한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판의 미로’에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p.s. : 근데 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라는 가제가 붙었나요? 열쇠는 한 개밖에 안 나오는데.
[판의 미로] Fantasy?Fantastic!
'판의 미로'는 보통 판타지영화들처럼 밝고, 신비하고, 동심 가득하지만은 않습니다. 영화의 전반적 색채는 무채의 그레이계열이 많이 쓰였고, 진흙이나 빗물 같은 끈적끈적한 질감도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영화는 '게릴라내전과 프랑코 독재체재가 대립하는 1944년의 스페인'이라는 다소 어두운 배경으로부터 출발해, 진지하고 무게 있게 스토리를 풀어나갑니다. 가벼운 모습은 거의 느껴지지 않죠. 오필리아가 모험을 하는 부분도 신비하고 환상적인 판타지라기보다는 호러에 가깝습니다. 배급사에서 써먹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문구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죠.
‘판의 미로’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데, 앞서 말했던 어두운 현실세계와 오필리아가 체험하는 모험의 세계입니다. 전자가 어른들의 세계, 후자가 아이들의 세계가 될 수도 있고, 전자는 현실, 후자는 망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부여하는 의미가 다르겠지만, 전 이 둘을 구태여 엄격하게 구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필리아가 경험하는 모험의 세계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상상 속 도피세계라고 밀어붙이는 것 같더군요.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이 주장도 그다지 이치에 맞진 않습니다. 영화 끝부분에서 비달 대위가 판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논리가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건 이해하겠지만, 그렇게 치면 영화 중반에 비달 대위가 침대 밑에 숨긴 허브뿌리(정확한 명칭은 허브뿌리가 아니라 ‘만드라고라’입니다.)를 발견하는 장면은 모순이 되죠. 그 허브뿌리는 오필리아가 판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이니까 비달대위가 그것을 발견됐다는 건 판의 존재를 인정하는 꼴이니까요. 또한 허브뿌리는 현실세계에서 오필리아 어머니의 병세를 호전시키는 실질적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두 번째 관문에서 오필리아가 다음날 자기 방이 아닌 곳에서 깨어난 것도 단지 오필리아의 모험 세계가 허구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죠.
여하튼, ‘오필리아의 모험이 현실도피세계였다.’라고 믿는 주장은 영화의 미적인 결말을 원하는 관객들에 의해 발생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두운 현실세계가 순수한 동화적 시각으로 재해석 되어 슬프지만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 문학작품들은 수없이 존재해왔고, 관객들은 그런 패턴에 익숙하거든요.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비달 대위가 저질렀던 수위 높았던 폭력은 오히려 오필리아의 죽음으로써 아름다워 보입니다. 이런 식의 미적집착은 기독교적 사후세계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이승의 육신은 죽었지만 영혼은 아름다운 곳에 있을 거란 믿음 말이죠. 어쨌든, ‘판의 미로’에서 두 세계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고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를 나누는 행위는 무의미합니다. 중요한 건 이 두 세계간의 조율과 배합이 너무 잘 이루어졌단 거죠.
오락성 짙은 판타지를 기대하고 갔던 관객들은 분명히 실망을 할 겁니다. ‘판의 미로’란 제목 자체가 잘못됐죠. ‘판의 미로’의 ‘미로’는 ‘라비린스’ 같이 모험의 여정을 펼쳐나가는 배경이 아니라 ‘지하 세계’, 즉 목적지로 들어가는 일종의 상징적 장소입니다. 오히려 ‘판의 테스트’ 같은 제목이 더 그럴 싸 해보여요. 그리고 솔직히 이 영화에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긴 한가요? 세 개의 관문은 모험으로 치기엔 너무 단편적인 에피소드 같고 싱겁습니다. 시간도 짧고요. 이건 길예르모 델 토로의 잘못은 아닙니다. 홍보 컨셉을 잘못 정한 배급사 탓이겠죠. 가장 눈에 띄는 단점은 관습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필리아가 두 번재 관문에서 실수를 한 것도 그렇고, 마지막에 동생을 대신해 희생을 한 것도 엔딩을 위한 장치로밖엔 안 보이죠. 불필요하게 들어간 잔인한 장면은 가끔 영화의 전반적 정서를 해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좋게 느껴지는 건, 이 두 세계가 흐트러지지 않고, 앞서나가지도 뒤쳐지지도 않으며 서로의 페이스를 적당히 유지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테크니컬함에 있습니다. 관습적요소가 아무리 진부하더라도 영화는 계속 관객들을 스토리에 몰입시키는 에너지를 갖고 있거든요. 오히려 그 뻔뻔하고 유려한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판의 미로’에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p.s. : 근데 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라는 가제가 붙었나요? 열쇠는 한 개밖에 안 나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