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 왕가위 영화를 안 좋아했습니다. ‘도그빌’ 리뷰를 쓸 때 말했듯이 안 좋아한다기보단 저한테 너무 안 맞는다고 말하는 게 맞겠죠. 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였는지 최근에 ‘춘광사설’과 ‘화양연화’를 다시 봤습니다. 두 영화 역시 맨 처음 봤을 땐 그냥 ‘괜찮고 볼만한 영화’정도였고 구태여 다시 볼 생각도 별로 없었습니다. 이 두 영화를 짧은 갭을 두고 감상한 지금의 저는 어떨까요? 여태껏 확고하게 밀어붙이던 왕가위식 영화에 대한 제 입장이 바뀌지 않고서는 이렇게 공들여가면서 리뷰를 쓰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 리뷰를 쓰면서 전 많은 왕가위 영화의 팬들이 좋아하는 그의 독자적 영화스타일에 대해서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스타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다지 큰 감흥이 없습니다. ‘이과수 폭포’나 ‘비가 내리는 옛날 홍콩 거리’의 기나긴 롱 테이크는 여전히 절 꽤 무안하게 만들었거든요. (무안하다는 표현 좋네요.) 이런 걸 떠나서 전 두 영화의 내러티브적 측면에 관해 말하고 싶습니다. 제 감정이 동화되고 영화에 끌렸던 부분도 바로 이 영화들의 이야기 그 자체였으니까요. ‘춘광사설’과 ‘화양연화’는 무엇보다 사랑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영화는 많은 부분이 닮아있기도 하구요. 막연하게 사랑을 하는 방식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면 우린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누구나 다 나름대로 확고히 갖고 있는 사랑관이 있을 테고, 그 사랑관 안에서 각자의 사랑을 하고 있거나 혹은 하고 싶어 합니다. 연애를 하게 되면 당연히 상대방과 맞지 않는 사랑관이 계속해서 부딪치게 될 거구요. 그걸 맞춰나가는 과정은 정말 힘들지만 또한 행복하기도 합니다. 앞에서 제가 두 영화가 닮아있다고 말한 부분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사랑관이 서로가 연결된다는 거죠. 이를 테면 ‘아휘’와 ‘차우’, ‘보영’과 ‘리첸’처럼 말입니다. ‘아휘’의 사랑하는 방식을 보면 열정적이고 또 결과적으로 보면 참 현명합니다. 그는 사랑하는 순간에 있어선 어떻게든 최선을 다 하고, 죽도록 목매며 이기적인 집착 증세까지 보입니다. 한마디로 정말 불같은 사랑을 하죠. 그러나 헤어질 때 역시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불처럼 모든 감정을 태워버리고 그것을 추억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어떻게 보면 ‘봄날은 간다’의 상우 같은 캐릭터입니다. 완전히 똑같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요. ‘보영’은 어떤가요. 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상대방한테 잘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지가 않고 사람 자체도 그다지 충실하지 않습니다. ‘아휘’한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간에 크고 작은 상처를 주면서 그를 지치게 만들죠. 나중에 정신을 차려서 ‘아휘’에게 돌아가려하지만 그 땐 이미 늦었고요. 그래서 남는 건 뼈저린 아픔과 후회입니다. ‘아휘’가 떠난 방에서 담배를 사놓고 기다리며 이불을 붙잡고 우는 그의 모습을 보세요. ‘화양연화’의 캐릭터들도 ‘춘광사설’의 인물들과 비슷하게 닮아있습니다. ‘차우’의 경우엔 ‘아휘’와 매치된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의 사랑 방식은 효율적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이기적이거든요. 그는 ‘리첸’에게 그가 묶고 있는 숙소로 그녀를 계속 부르며 절제된 사랑을 합니다. 결국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도 ‘차우’였고 같이 싱가폴로 떠나자고 한 것도 ‘차우’였습니다. 그는 모든 걸 그녀에게 걸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했죠. 결국 그렇게 이별을 하고, 고통을 겪으며 계속 힘들어하는 과정에서 ‘아휘’와 ‘차우’에겐 아픔을 추억으로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매체가 공통적으로 하나씩 등장합니다. ‘아휘’에겐 ‘소장’의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울음소리가 그렇고요, ‘차우’에겐 앙코르와트의 구멍에 묻어 넣은 자신의 비밀이 그렇죠. 반면에 ‘리첸’은 소극적입니다. 그녀는 감정을 이어가면서도 은연중에 언젠가는 남편이 돌아와 주길 바랬고, ‘차우’에게 쉽사리 마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성과 감성의 괴리에서 혼자 갈등하고 힘들어하다가 끝내는 자신이 사랑했던 ‘차우’를 생각하면서 ‘보영’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2046번방을 찾아가 눈물을 흘립니다. ‘차우’와의 이별연습을 하면서도 되려 서글프게 울었던 것도 ‘리첸'이었구요. 몇 년이 지난 후의 홍콩에서 ‘리첸’은 다시 그 집에서 아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꼭 ‘아휘’집에서 살고 있는 ‘보영’처럼 말이죠. 그녀는 ‘차우’가 돌아오길 기대했던 걸까요? 어쨌든 간에 ‘차우’는 자신이 살았던 집에 갔다가 옆집을 들르지 않고 그냥 나옵니다. 과연 그가 옆집에 ‘리첸’이 살고 있었던 걸 모르고 그랬던 걸까요? 제가 보기엔 아닙니다. 간절히 만나고 싶었다면 누가 살고 있든 간에 확인이라도 해봤겠죠. 그는 이미 그녀와의 사랑을 ‘화양연화’로 만들어놓고 구태여 끄집어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걸 겁니다. 영화의 마지막엔 이런 자막도 나오는군요. “그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안타까운 건 ‘아휘’는 폭포 아래에서도 ‘보영’ 생각을 하며 슬퍼했고 ‘차우’는 ‘리첸’의 슬리퍼를 계속해서 갖고 있었다는 점이죠. 그러면서도 다시 시작하기엔 버거운 그들의 심리는 이성적이기도하고 지극히 감성적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두 영화를 굳이 연결시켜보지 않더라도 각각은 매우 독자적인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둘을 연결시키려는 저의 시도가 우습게 보일정도죠. 음악이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크리스토퍼 도일의 영상도 인상적입니다. 스토리 진행에 있어서도 각자의 확고한 스타일이 있고요. 어쨌든, ‘아휘’와 ‘보영’은 ‘화양연화’를 같이 보냈고 ‘차우’와 ‘리첸’은 'happy together'였으니 전 그들의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습니다.
[춘광사설]과 [화양연화]
사실, 전 왕가위 영화를 안 좋아했습니다. ‘도그빌’ 리뷰를 쓸 때 말했듯이 안 좋아한다기보단 저한테 너무 안 맞는다고 말하는 게 맞겠죠. 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였는지 최근에 ‘춘광사설’과 ‘화양연화’를 다시 봤습니다. 두 영화 역시 맨 처음 봤을 땐 그냥 ‘괜찮고 볼만한 영화’정도였고 구태여 다시 볼 생각도 별로 없었습니다. 이 두 영화를 짧은 갭을 두고 감상한 지금의 저는 어떨까요? 여태껏 확고하게 밀어붙이던 왕가위식 영화에 대한 제 입장이 바뀌지 않고서는 이렇게 공들여가면서 리뷰를 쓰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 리뷰를 쓰면서 전 많은 왕가위 영화의 팬들이 좋아하는 그의 독자적 영화스타일에 대해서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스타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다지 큰 감흥이 없습니다. ‘이과수 폭포’나 ‘비가 내리는 옛날 홍콩 거리’의 기나긴 롱 테이크는 여전히 절 꽤 무안하게 만들었거든요. (무안하다는 표현 좋네요.) 이런 걸 떠나서 전 두 영화의 내러티브적 측면에 관해 말하고 싶습니다. 제 감정이 동화되고 영화에 끌렸던 부분도 바로 이 영화들의 이야기 그 자체였으니까요.
‘춘광사설’과 ‘화양연화’는 무엇보다 사랑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영화는 많은 부분이 닮아있기도 하구요. 막연하게 사랑을 하는 방식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면 우린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누구나 다 나름대로 확고히 갖고 있는 사랑관이 있을 테고, 그 사랑관 안에서 각자의 사랑을 하고 있거나 혹은 하고 싶어 합니다. 연애를 하게 되면 당연히 상대방과 맞지 않는 사랑관이 계속해서 부딪치게 될 거구요. 그걸 맞춰나가는 과정은 정말 힘들지만 또한 행복하기도 합니다. 앞에서 제가 두 영화가 닮아있다고 말한 부분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사랑관이 서로가 연결된다는 거죠. 이를 테면 ‘아휘’와 ‘차우’, ‘보영’과 ‘리첸’처럼 말입니다.
‘아휘’의 사랑하는 방식을 보면 열정적이고 또 결과적으로 보면 참 현명합니다. 그는 사랑하는 순간에 있어선 어떻게든 최선을 다 하고, 죽도록 목매며 이기적인 집착 증세까지 보입니다. 한마디로 정말 불같은 사랑을 하죠. 그러나 헤어질 때 역시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불처럼 모든 감정을 태워버리고 그것을 추억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어떻게 보면 ‘봄날은 간다’의 상우 같은 캐릭터입니다. 완전히 똑같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요.
‘보영’은 어떤가요. 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상대방한테 잘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지가 않고 사람 자체도 그다지 충실하지 않습니다. ‘아휘’한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간에 크고 작은 상처를 주면서 그를 지치게 만들죠. 나중에 정신을 차려서 ‘아휘’에게 돌아가려하지만 그 땐 이미 늦었고요. 그래서 남는 건 뼈저린 아픔과 후회입니다. ‘아휘’가 떠난 방에서 담배를 사놓고 기다리며 이불을 붙잡고 우는 그의 모습을 보세요.
‘화양연화’의 캐릭터들도 ‘춘광사설’의 인물들과 비슷하게 닮아있습니다. ‘차우’의 경우엔 ‘아휘’와 매치된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의 사랑 방식은 효율적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이기적이거든요. 그는 ‘리첸’에게 그가 묶고 있는 숙소로 그녀를 계속 부르며 절제된 사랑을 합니다. 결국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도 ‘차우’였고 같이 싱가폴로 떠나자고 한 것도 ‘차우’였습니다. 그는 모든 걸 그녀에게 걸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했죠. 결국 그렇게 이별을 하고, 고통을 겪으며 계속 힘들어하는 과정에서 ‘아휘’와 ‘차우’에겐 아픔을 추억으로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매체가 공통적으로 하나씩 등장합니다. ‘아휘’에겐 ‘소장’의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울음소리가 그렇고요, ‘차우’에겐 앙코르와트의 구멍에 묻어 넣은 자신의 비밀이 그렇죠.
반면에 ‘리첸’은 소극적입니다. 그녀는 감정을 이어가면서도 은연중에 언젠가는 남편이 돌아와 주길 바랬고, ‘차우’에게 쉽사리 마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성과 감성의 괴리에서 혼자 갈등하고 힘들어하다가 끝내는 자신이 사랑했던 ‘차우’를 생각하면서 ‘보영’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2046번방을 찾아가 눈물을 흘립니다. ‘차우’와의 이별연습을 하면서도 되려 서글프게 울었던 것도 ‘리첸'이었구요.
몇 년이 지난 후의 홍콩에서 ‘리첸’은 다시 그 집에서 아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꼭 ‘아휘’집에서 살고 있는 ‘보영’처럼 말이죠. 그녀는 ‘차우’가 돌아오길 기대했던 걸까요? 어쨌든 간에 ‘차우’는 자신이 살았던 집에 갔다가 옆집을 들르지 않고 그냥 나옵니다. 과연 그가 옆집에 ‘리첸’이 살고 있었던 걸 모르고 그랬던 걸까요? 제가 보기엔 아닙니다. 간절히 만나고 싶었다면 누가 살고 있든 간에 확인이라도 해봤겠죠. 그는 이미 그녀와의 사랑을 ‘화양연화’로 만들어놓고 구태여 끄집어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걸 겁니다. 영화의 마지막엔 이런 자막도 나오는군요. “그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안타까운 건 ‘아휘’는 폭포 아래에서도 ‘보영’ 생각을 하며 슬퍼했고 ‘차우’는 ‘리첸’의 슬리퍼를 계속해서 갖고 있었다는 점이죠. 그러면서도 다시 시작하기엔 버거운 그들의 심리는 이성적이기도하고 지극히 감성적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두 영화를 굳이 연결시켜보지 않더라도 각각은 매우 독자적인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둘을 연결시키려는 저의 시도가 우습게 보일정도죠. 음악이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크리스토퍼 도일의 영상도 인상적입니다. 스토리 진행에 있어서도 각자의 확고한 스타일이 있고요. 어쨌든, ‘아휘’와 ‘보영’은 ‘화양연화’를 같이 보냈고 ‘차우’와 ‘리첸’은 'happy together'였으니 전 그들의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