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상상과 공상이 가득한 신세계 정신병원. 이곳에 형광등을 꾸짖고 자판기를 걱정하며 자기가 싸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소녀 '영군'(임수정)이 들어온다. 남의 특징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순’(정지훈)이 새로 온 환자 영군을 유심히 관찰한다.
싸이보그는 밥 먹으면 안돼?
자기도 보통이 아니면서 서로가 더 특별해 보이는 그들! 싸이보그는 밥을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점점 야위어만 가는 영군을 위해 일순은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한다. ‘수면 비행법’을 훔쳐 영군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고 ‘요들송’ 실력을 훔쳐서 우울해하는 영군에게 노래도 불러준다. 그리고 특별히 영군의 ‘동정심’을 훔쳐 그녀의 슬픔을 대신 느낀다.
찌릿찌릿... 두근두근 우리 사랑은 충전 중!
싸이보그가 고장 나면 언제든지 달려가겠다며 ‘평생 AS 보장’을 약속하는 일순과, 싸이보그는 그러면 안되지만 일순 때문에 자꾸 맘이 설레는 영군. 그래도 영군은 여전히 밥을 거부하며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일순은 그녀를 위해 최후의 방법을 준비한다.
내가 널 사랑하니까, 네가 날 사랑하니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정말? 괜찮다. 사랑을 하면 사이보그라는게 뭐 대수인가?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영화 중반에 가서는 내 머리속의 회로들이 실타래처럼 모두 엉켜버렸다.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본다면
정신병원에 갇힌 차영군(임수정)은 자신이 사이보그라고 믿는 환자다. 치매가 걸린 할머니가 강제로 정신병원 차에 실려가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부터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믿게됐다. 만약에 그녀의 정신적 충격을 받은 모습이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회상장면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정신병자가 아닌 진짜 사이보그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만들어낸 장치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영군을 정신병자로 생각하고 상황을 그려보자. 그녀는 작은 건전지를 혀에 댄다. 도시락통에는 다양한 건전지가 가득 들어있다. 아무리 혓바닥에 대도 조금도 소모가 되지 않기때문에 365일을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굳게 믿고있는 그녀는 나날이 말라간다. 할머니가 꼈던 틀니를 끼고 형광등이나 자판기와 대화를 하는 그녀의 모습, 영락없는 미친년이지만 정신병원 안에서는 오히려 그녀의 모습이 평범해 보인다. 그녀를 사랑하는 그 역시 미친놈인데 박일순(정지훈)은 보통사람보다 2배로 미쳤다. 미친데다가 영군에 대한 사랑으로 또 한번 미쳤다.
어쨌든 영군은 거식증으로 죽기 일보직전에 이르고 일순은 그녀에게 밥을 먹이기를 시도한다. 밥을 전기에너지로 만드는 기계를 개발했다며 영군의 몸 안에 거짓으로 장착하는 시늉을 하는 일순.
그녀의 벗은 몸에서 성욕을 느끼기는커녕 척추뼈가 드러나는 마른 몸에서 일순의 눈에는 한방울 눈물이 흐르고 등에 펜으로 문을 그리고 기계 소리를 내면서 영군의 몸 안에 실제로 기계를 장착하듯이 연기를 한다.
동정심, 슬픔에 잠기는 것, 설레임, 망설임, 쓸데없는 공상, 죄책감, 감사하는 마음을 사이보그는 가져서는 안된다. 사이보그가 되어 정신병원에 있는 의사, 간호사들을 다 죽이고 탈출하려는 영군은 7가지의 메시지를 실천하려고 하지만, 결국 사랑에 설레이고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제목 자체에서도 용서의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정신병자가 되어 일순처럼 남의 능력을 훔칠 수 있다고 믿어도, 덕천(오달수)처럼 피해의식에 '죄송합니다'를 수만번 외쳐도, 어렸을때 합창단에 들지 못한 충격에 이십년 동안이나 똑같은 요들송을 계속 불러도 그래도..... 괜찮은 것이다.
정신병원안에서이니까 괜찮아가 아니라, 극장 안에서 이러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괜찮아.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사람들 역시 세상에 존재해도 문제될 것 없어. 괜찮아다.
그럼 두번째로 생각한 것은 진짜로 영군을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절대 등장할거라고 생각지 않았던 잔혹한 장면이 생각보다 상당히 오래 계속되어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바로 영군의 총에서 계속해서 총알이 나가 의사와 간호사들을 죽이는 것이다. 입 안은 탄창집이고 열손가락은 총이 발사되는 통로이다. 기관총처럼 총알이 튀면서 사방으로 발사되는 임수정은 인간무기 같았다.
그녀가 정신병원에 갇힌 정신병자가 아니라 정신병자 행세를 하는 사이보그. 그러니까 흰까운을 입은 적들을 무찌르기 위해 일부러 밤마다 자판기와 형광등과 대화를 한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이상할게 없다. 그녀의 과거에 관한 구구절절한 사연과 할머니의 메시지가 걸리적 거리는가? 그렇다면 과거와 현실을 공상으로 생각하고 공상을 현실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즉 그녀는 사이보그로 정신병원에 침입해서 들어왔고 의사와 간호사들을 모조리 죽였으며 일순의 영군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남겨둔채, 그녀의 과거들은 사이보그이기 전의 인간이었을 때의 과거라고 생각한다면?
물론 박찬욱은 이부분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의 메시지, 병동 안에 있었던 많은 환자와 일순과 영군의 사랑이야기 모두를 포함하면 영군은 사이보그가 아닌 환자가 맞다.
하지만 환자가 아니라 사이보그라면? 더 재밌는 그림이 나온다. 영화에 공상이 더해져서 더 풍성한 스토리를 관객들 스스로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난 박찬욱의 영화가 좋다. 좋은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 그만의 참신한 발상과 고집스러움이 좋다.
둘째, 존재의 가치를 찾으려는 끊임없는 성찰이 좋다.
셋째, 영화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챙기는 꼼꼼하고 아트적인 느낌이 좋다.
그의 발상은 참신하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가 금자가 된 것처럼, '미사'의 청순한 임수정이 영화에서 진짜 사이코, 아니 사이보그가 되어버렸다. 배우들 역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지만 배우의 독특한 캐릭터 역시 기발한 감독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아주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스탭들을 소개해서 머리가 산뜻해 지는 것을 느꼈는데
예를 들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영군의 옷에 의상 아무개, 계속 영화가 진행되다가 의사가 들여다보는 컴퓨터 밑에 편집 아무개, 또 고장난 라디오 한켠에 효과 아무개, 이런 식으로 간접적이면서도 세련되게 스탭들을 알리는 것이다.
그냥 스텝들 쭉 나열하면 될 것을 박찬욱은 절대 평범해지기를 거부하는 감독이다.
그는 인물을 만드는 것에 공을 들이는데 영군과 일순 뿐만 아니라 요들송 소녀, 영군 밥을 뺐어 먹는 뚱녀, '미안합니다'를 계속 외쳐대는 소심남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상, 소품, 성격, 행동을 디테일하게 만들어낸다.
인물 뿐 아니라 배경, 소품 어느것 할 것 없이 감독의 손을 안거쳐간 것이 없다. 왜냐하면 보통 다른 감독같으면 영화에서 스토리와 배우들 빼고 다른 것들은 영화를 만들면서 조금씩 바뀌게 마련인데, 박찬욱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부터 그만의 색깔을 내고 좀체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비밀의 열쇠를 관객의 손에 쥐어주지 않는 감독,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초능력자의 그것과 맞먹는 감독, 사랑과 고통, 복수와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있을 거라 생각되는 감독.
박찬욱이라면 괜찮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우리 둘만 아는 비밀, 그녀는 싸이보그다!
엉뚱한 상상과 공상이 가득한 신세계 정신병원.
이곳에 형광등을 꾸짖고 자판기를 걱정하며 자기가 싸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소녀 '영군'(임수정)이 들어온다. 남의 특징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순’(정지훈)이 새로 온 환자 영군을 유심히 관찰한다.
싸이보그는 밥 먹으면 안돼?
자기도 보통이 아니면서 서로가 더 특별해 보이는 그들!
싸이보그는 밥을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점점 야위어만 가는 영군을 위해 일순은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한다. ‘수면 비행법’을 훔쳐 영군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고 ‘요들송’ 실력을 훔쳐서 우울해하는 영군에게 노래도 불러준다.
그리고 특별히 영군의 ‘동정심’을 훔쳐 그녀의 슬픔을 대신 느낀다.
찌릿찌릿... 두근두근
우리 사랑은 충전 중!
싸이보그가 고장 나면 언제든지 달려가겠다며 ‘평생 AS 보장’을 약속하는 일순과, 싸이보그는 그러면 안되지만 일순 때문에 자꾸 맘이 설레는 영군. 그래도 영군은 여전히 밥을 거부하며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일순은 그녀를 위해 최후의 방법을 준비한다.
내가 널 사랑하니까, 네가 날 사랑하니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정말? 괜찮다. 사랑을 하면 사이보그라는게 뭐 대수인가?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영화 중반에 가서는 내 머리속의 회로들이 실타래처럼 모두 엉켜버렸다.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본다면
정신병원에 갇힌 차영군(임수정)은 자신이 사이보그라고 믿는 환자다. 치매가 걸린 할머니가 강제로 정신병원 차에 실려가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부터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믿게됐다. 만약에 그녀의 정신적 충격을 받은 모습이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회상장면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정신병자가 아닌 진짜 사이보그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만들어낸 장치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영군을 정신병자로 생각하고 상황을 그려보자. 그녀는 작은 건전지를 혀에 댄다. 도시락통에는 다양한 건전지가 가득 들어있다. 아무리 혓바닥에 대도 조금도 소모가 되지 않기때문에 365일을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굳게 믿고있는 그녀는 나날이 말라간다. 할머니가 꼈던 틀니를 끼고 형광등이나 자판기와 대화를 하는 그녀의 모습, 영락없는 미친년이지만 정신병원 안에서는 오히려 그녀의 모습이 평범해 보인다. 그녀를 사랑하는 그 역시 미친놈인데 박일순(정지훈)은 보통사람보다 2배로 미쳤다. 미친데다가 영군에 대한 사랑으로 또 한번 미쳤다.
어쨌든 영군은 거식증으로 죽기 일보직전에 이르고 일순은 그녀에게 밥을 먹이기를 시도한다. 밥을 전기에너지로 만드는 기계를 개발했다며 영군의 몸 안에 거짓으로 장착하는 시늉을 하는 일순.
그녀의 벗은 몸에서 성욕을 느끼기는커녕 척추뼈가 드러나는 마른 몸에서 일순의 눈에는 한방울 눈물이 흐르고 등에 펜으로 문을 그리고 기계 소리를 내면서 영군의 몸 안에 실제로 기계를 장착하듯이 연기를 한다.
동정심, 슬픔에 잠기는 것, 설레임, 망설임, 쓸데없는 공상, 죄책감, 감사하는 마음을 사이보그는 가져서는 안된다. 사이보그가 되어 정신병원에 있는 의사, 간호사들을 다 죽이고 탈출하려는 영군은 7가지의 메시지를 실천하려고 하지만, 결국 사랑에 설레이고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제목 자체에서도 용서의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정신병자가 되어 일순처럼 남의 능력을 훔칠 수 있다고 믿어도, 덕천(오달수)처럼 피해의식에 '죄송합니다'를 수만번 외쳐도, 어렸을때 합창단에 들지 못한 충격에 이십년 동안이나 똑같은 요들송을 계속 불러도 그래도..... 괜찮은 것이다.
정신병원안에서이니까 괜찮아가 아니라, 극장 안에서 이러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괜찮아.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사람들 역시 세상에 존재해도 문제될 것 없어. 괜찮아다.
그럼 두번째로 생각한 것은 진짜로 영군을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절대 등장할거라고 생각지 않았던 잔혹한 장면이 생각보다 상당히 오래 계속되어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바로 영군의 총에서 계속해서 총알이 나가 의사와 간호사들을 죽이는 것이다. 입 안은 탄창집이고 열손가락은 총이 발사되는 통로이다. 기관총처럼 총알이 튀면서 사방으로 발사되는 임수정은 인간무기 같았다.
그녀가 정신병원에 갇힌 정신병자가 아니라 정신병자 행세를 하는 사이보그. 그러니까 흰까운을 입은 적들을 무찌르기 위해 일부러 밤마다 자판기와 형광등과 대화를 한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이상할게 없다. 그녀의 과거에 관한 구구절절한 사연과 할머니의 메시지가 걸리적 거리는가? 그렇다면 과거와 현실을 공상으로 생각하고 공상을 현실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즉 그녀는 사이보그로 정신병원에 침입해서 들어왔고 의사와 간호사들을 모조리 죽였으며 일순의 영군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남겨둔채, 그녀의 과거들은 사이보그이기 전의 인간이었을 때의 과거라고 생각한다면?
물론 박찬욱은 이부분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의 메시지, 병동 안에 있었던 많은 환자와 일순과 영군의 사랑이야기 모두를 포함하면 영군은 사이보그가 아닌 환자가 맞다.
하지만 환자가 아니라 사이보그라면? 더 재밌는 그림이 나온다. 영화에 공상이 더해져서 더 풍성한 스토리를 관객들 스스로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난 박찬욱의 영화가 좋다. 좋은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 그만의 참신한 발상과 고집스러움이 좋다.
둘째, 존재의 가치를 찾으려는 끊임없는 성찰이 좋다.
셋째, 영화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챙기는 꼼꼼하고 아트적인 느낌이 좋다.
그의 발상은 참신하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가 금자가 된 것처럼, '미사'의 청순한 임수정이 영화에서 진짜 사이코, 아니 사이보그가 되어버렸다. 배우들 역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지만 배우의 독특한 캐릭터 역시 기발한 감독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아주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스탭들을 소개해서 머리가 산뜻해 지는 것을 느꼈는데
예를 들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영군의 옷에 의상 아무개, 계속 영화가 진행되다가 의사가 들여다보는 컴퓨터 밑에 편집 아무개, 또 고장난 라디오 한켠에 효과 아무개, 이런 식으로 간접적이면서도 세련되게 스탭들을 알리는 것이다.
그냥 스텝들 쭉 나열하면 될 것을 박찬욱은 절대 평범해지기를 거부하는 감독이다.
그는 인물을 만드는 것에 공을 들이는데 영군과 일순 뿐만 아니라 요들송 소녀, 영군 밥을 뺐어 먹는 뚱녀, '미안합니다'를 계속 외쳐대는 소심남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상, 소품, 성격, 행동을 디테일하게 만들어낸다.
인물 뿐 아니라 배경, 소품 어느것 할 것 없이 감독의 손을 안거쳐간 것이 없다. 왜냐하면 보통 다른 감독같으면 영화에서 스토리와 배우들 빼고 다른 것들은 영화를 만들면서 조금씩 바뀌게 마련인데, 박찬욱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부터 그만의 색깔을 내고 좀체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비밀의 열쇠를 관객의 손에 쥐어주지 않는 감독,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초능력자의 그것과 맞먹는 감독, 사랑과 고통, 복수와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있을 거라 생각되는 감독.
그래서 박찬욱이 만드는 영화는 앞으로도 꾸준히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