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의 기운이 들어오자 몸의 기운이 불쑥 빠져나가버렸다. 그러면 나의 몸의 기운을 빼앗는 감기는 나의 감기라고 봐야 하는지, 나의 것이 아닌 감기라고 봐야 하는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래서이다. 김광진을 비롯해서 황성숙과 황승호제, 김동규와 김두수, 장필순과 장사익의 노래를 두서없이 들으며 몽롱해진 정신을 수습하려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렇게 육체의 기운이 쏙 빠진 자리에 적절한 소설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는 것이 위안이다.
사실 이토야마 아키코가 쓴 어른들이 읽는 동화(잔혹하지 않다)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아쿠다가와 상에 후보로도 올랐다는 소설은 그렇게 나지막하고 연성이다. 손가락에 꼽히는 등장인물과 중편 정도의 길이를 가진 소설은, 어느 해 바닷가를 거닐다가 문득 들려온 허밍의 선율을 닮았다. 바람의 소리도 같고, 사람의 소리도 같고, 하늘의 소리도 같고, 저쪽 지평선에서부터 밀려오는 물의 소리도 같다.
복권에 당첨된 코우노는 도시에서의 모든 삶을 정리하고 여행을 하다 츠루가라는 곳에 둥지를 튼다. 모래를 뿌려 만든 거실에 새모래를 뿌려주기 위해 트럭을 몰고 바닷가로 가 모래를 채취하거나, 그렇게 도착한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거나, 항구의 노인의 배를 빌려타고 낚시를 하는 것 말고 코우노에게 다른 할 일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판타지가 코우노 앞에 나타난다.
『“판타지, 부탁이니까 저것 좀 멈추게 해줘. 벼락은 정말 싫어.” “벼락은 벼락신神한테 부탁해야지, 나는 못해.” “뭐 그런 무책임한 소릴 하고 그래, 판타지!” “진짜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신을 주웠다니까.”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신인 거야.”』
그렇게 객식구처럼 코우노와 함께 생활을 하게 된 판타지는 코우노에게 누군가가 나타날 것을 예상하고 바로 그날 코우노는 카린을 만나게 된다. 아직 과장이면서도 부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도시의 여자와 벼락에 맞고도 살아나서 벼락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적이 있는 코우노는 금세 친해진다. 하지만 코우노는 완전하게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 또한 그런 코우노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더 긴 사이를 두고 카린은 코우노를 만나기 위해 바닷가를 찾고, 코우노는 그런 카린이 반갑다.
“행복이란 뭐지? ... 과거를 공유하는 건가? ... 있는 그대로를 만족하는 것. 그러니까 과거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그냥 과거의 일로만 끝내야 하는 거야.”
하지만 소설은 행복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슬프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모자란다. 그래, 소설은 마냥 쓸쓸하다. 과거를 과거의 일로 끝내고 앞으로 나아갈 때 행복하다고 모두가 알고 있고, 아마도 주인공들은 앞으로 그렇게 하겠지만 그래서 더욱 쓸쓸하다. 두 번째 벼락을 맞고도 아직 살아 있는 코우노가 바닷가에서 첼로를 켜고, 이제 카린이 없는 코우노를 향해 오래전부터 그를 좋아했던 것 같은 카타기리가 다가선다.
“코우노는 첼로를 시작하자고 결심했다. 고등학교 시절,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한 적 이 있다. 언젠가 다시 연주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연주 실력은 녹슬어 있었지만, 연주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집에서는 울림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그는 밖에서 연주하기를 좋아했다. 픽업트럭 뒷좌석에 첼로를 싣고 여기저기 바닷가로 나가 연주했다... 첼로는 사람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음정이라서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코우노 역시, 첼로에게 이야기하듯이 연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첼로는 코우노에게 있어 가장 풍요롭고 심오한 이야기 상대가 되어 있었다.”
소설을 보는 동안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것 같은 존재감 없는 코우노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아랑곳하지 않아도 될 듯한 츠루가라는 바닷가에 가면 첼로를 켜는 코우노를 만나게 될 것 같다. 아무 때고 불쑥 나타나고 아무 때고 불쑥 사라지는 판타지보다 더욱 신기루 같은 코우노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만 같다.
허밍처럼 실려오는 저 먼 바닷가 첼로 선율처럼... <바다의 선인>
감기의 기운이 들어오자 몸의 기운이 불쑥 빠져나가버렸다. 그러면 나의 몸의 기운을 빼앗는 감기는 나의 감기라고 봐야 하는지, 나의 것이 아닌 감기라고 봐야 하는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래서이다. 김광진을 비롯해서 황성숙과 황승호제, 김동규와 김두수, 장필순과 장사익의 노래를 두서없이 들으며 몽롱해진 정신을 수습하려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렇게 육체의 기운이 쏙 빠진 자리에 적절한 소설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는 것이 위안이다.
사실 이토야마 아키코가 쓴 어른들이 읽는 동화(잔혹하지 않다)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아쿠다가와 상에 후보로도 올랐다는 소설은 그렇게 나지막하고 연성이다. 손가락에 꼽히는 등장인물과 중편 정도의 길이를 가진 소설은, 어느 해 바닷가를 거닐다가 문득 들려온 허밍의 선율을 닮았다. 바람의 소리도 같고, 사람의 소리도 같고, 하늘의 소리도 같고, 저쪽 지평선에서부터 밀려오는 물의 소리도 같다.
복권에 당첨된 코우노는 도시에서의 모든 삶을 정리하고 여행을 하다 츠루가라는 곳에 둥지를 튼다. 모래를 뿌려 만든 거실에 새모래를 뿌려주기 위해 트럭을 몰고 바닷가로 가 모래를 채취하거나, 그렇게 도착한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거나, 항구의 노인의 배를 빌려타고 낚시를 하는 것 말고 코우노에게 다른 할 일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판타지가 코우노 앞에 나타난다.
『“판타지, 부탁이니까 저것 좀 멈추게 해줘. 벼락은 정말 싫어.” “벼락은 벼락신神한테 부탁해야지, 나는 못해.” “뭐 그런 무책임한 소릴 하고 그래, 판타지!” “진짜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신을 주웠다니까.”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신인 거야.”』
그렇게 객식구처럼 코우노와 함께 생활을 하게 된 판타지는 코우노에게 누군가가 나타날 것을 예상하고 바로 그날 코우노는 카린을 만나게 된다. 아직 과장이면서도 부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도시의 여자와 벼락에 맞고도 살아나서 벼락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적이 있는 코우노는 금세 친해진다. 하지만 코우노는 완전하게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 또한 그런 코우노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더 긴 사이를 두고 카린은 코우노를 만나기 위해 바닷가를 찾고, 코우노는 그런 카린이 반갑다.
“행복이란 뭐지? ... 과거를 공유하는 건가? ... 있는 그대로를 만족하는 것. 그러니까 과거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그냥 과거의 일로만 끝내야 하는 거야.”
하지만 소설은 행복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슬프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모자란다. 그래, 소설은 마냥 쓸쓸하다. 과거를 과거의 일로 끝내고 앞으로 나아갈 때 행복하다고 모두가 알고 있고, 아마도 주인공들은 앞으로 그렇게 하겠지만 그래서 더욱 쓸쓸하다. 두 번째 벼락을 맞고도 아직 살아 있는 코우노가 바닷가에서 첼로를 켜고, 이제 카린이 없는 코우노를 향해 오래전부터 그를 좋아했던 것 같은 카타기리가 다가선다.
“코우노는 첼로를 시작하자고 결심했다. 고등학교 시절,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한 적 이 있다. 언젠가 다시 연주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연주 실력은 녹슬어 있었지만, 연주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집에서는 울림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그는 밖에서 연주하기를 좋아했다. 픽업트럭 뒷좌석에 첼로를 싣고 여기저기 바닷가로 나가 연주했다... 첼로는 사람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음정이라서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코우노 역시, 첼로에게 이야기하듯이 연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첼로는 코우노에게 있어 가장 풍요롭고 심오한 이야기 상대가 되어 있었다.”
소설을 보는 동안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것 같은 존재감 없는 코우노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아랑곳하지 않아도 될 듯한 츠루가라는 바닷가에 가면 첼로를 켜는 코우노를 만나게 될 것 같다. 아무 때고 불쑥 나타나고 아무 때고 불쑥 사라지는 판타지보다 더욱 신기루 같은 코우노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