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심차민200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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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지지 않는 울음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불덩어리가 내 몸 깊은 곳에서 치받고 올라오는 것을 나는 느꼈다. 방책, 아아 방책. 그때 나는 차라리 의금부 형틀에서 죽었기를 바랐다. 방책없는 세상에서, 목숨이 살아남아 또다시 방책을 찾는다."

 

"시퍼런 칼은 구름 무늬로 어른거리면서 차가운 쇠비린내를 풍겼다. 칼이 뜨거운 물건인지 차가운 물건인지를 나는 늘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칼을 코에 대고 쇠비린내를 몸 속 깊이 빨아넣었다. 이 세상을 다 버릴 수 있을 때까지, 이 방책 없는 세상에서 살아있으라고 칼은 말하는 것 같았다."

 

"배는 살아 있는 생선과 같다. 전선과 어선이 같고, 판옥선과 협선이 매한가지다. 생선의 몸이 물을 읽듯이 배는 물을 읽고, 물을 받아내면서 나아간다. 여울을 거스를 때 생선이 때때로 몸통 전체를 뒤틀며 물에 저항하듯이, 배도 몸통 전체를 뒤틀며 파도와 파도 사이를 빠져나간다. 물에 맞서는 배의 저항은 물에 순응하기 위한 저항이다. 배는 생선과 같다. 배가 물을 거스르지만, 배는 물에 오래 맞설 수 없고, 물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 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었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나는 나의 무력이 안개처럼 증발된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

 

"어느 날, 적들이 모두 떠나버린 빈 광양만 바다의 적막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 견딜 수 없는 적막보다는 임금의 칼에 죽는 편이 오히려 아늑할 듯싶었다. ... 그리고 그 빈 공간으로 밀려드는 빈 시간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 빈 공간과 빈 시간 앞에서, 내 허리에 매달린 칼의 허망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마음 속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책을 어쩌다 읽게 되었더라? 그냥 교보문고에 방문-_-했다가 즉흥적으로 사서 들고 왔는데 이제서야 다 읽었다. 맨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었는데 나중에는 나름대로 적응을하고 한글이 주는 그 유희에 빠져 정신없이 읽었다 큭큭.

 

장군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지만 차마 부끄러워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글자로 나열되었을 때, 가장 죽기 쉬운 곳에 서서 죽기 싫다고 되새기던 이순신 장군이 장군이 아니라, 뭔가 공직에 엄청 높은 사람이 아니라, 또 다른 평범한 한 사람 같고, 나 같고, 그렇게 느껴져버렸다.

 

언제나 나는 경험이 사람을 더 크게 하고, 더 여유롭게 하며, 더 배우게한다고 믿고 싶었지만, 그 수많은 경험 앞에서도, 엄청나게 대단한 이순신 장군조차 무력함을, 무기력함을 느꼈다는 사실에, 아 모두 다 같은 인간이구나, 하는 위안과 또 인간들이 다 똑같다는 사실에 실망을 한 번에 가져버렸다.

 

전쟁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전쟁을 읽으면서 그동안 흘려졌던 수많은 피와 칼과 무기가 생각났다. 아아... 소장하면서 읽고 또 읽을거야 캬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