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후애 6

장은경200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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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라야 괜찮니?"

"……."

실눈을 뜬 혜라는 여기가 어딘지 확인해 볼 양으로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아빠야 혜라야. 정신 들어? 정신 들으면 끄덕끄덕 해봐"

"……”

끄덕 끄덕

민혁의 눈에 눈물이 글썽 거렸다.

“선생님 혜라가 깨어났어요.

"흠흠 언제부터 비를 맞고 쓰러져 있던 거죠?"

의사는 안경을 한번 치켜 올리더니 혜라의 얼굴을 보고 차트에 열심히 적고 있었다.

"글, 글쎄요"

머리를 긁적이며 혜라의 링거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 그 게요”

초조한 눈빛으로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던 모양이군요. 정신적인 충격으로 면역력과 저항력이 떨어져서 그래요. 거기에 몸살까지 합병으로 더해 졌고요 우선 안정을 취하고요 3일정도 링거 맞고 입원해 있으면 될 것 같아요"

"정신적인 충격이요?"

'혹, 혹시?'

"얘 또래의 아이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환경이 바뀌거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그걸 속으로만 삭히는 경우가 많아요. 어른들처럼 스트레스를 표현표출 할 정도의 표현력이 미흡하기 때문에 그런 거지요. 거기서 장시간 비에 노출된 몸과 충격이 혼합해서 쓰러진 듯해요."

"……."

깊은 한숨을 쉬며 다시 눈을 감고 있는 혜라를 쳐다보았다.

새근새근 숨소리와 함께 뭐라고 중얼 중얼 입으로 말하는 거 같기도 했다.

"그럼 보호자는 항상 환자를 보살피시고요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네"

"…….무슨 일이라니."

민혁이 엄마가 소란을 피며 헐레벌떡 응급실로 찾아 왔다. 응급실까지 도착한 후 혜빈은 혜라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집으로 갔다. 아마 혜빈이가 가면서 민혁이 엄마한테 연락을 했던 모양이었다. 혜라가 아끼던 드레스는 비에 젖어 벗겨서 꼭 짠 후 곱게 접어놓은 것이 보였다. 어차피 입원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고사리만 한 팔엔 혈관을 잘 찾지 못해 여기 저기 주사 구멍 자국이 나 있었고 그 자국 주변엔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혈관이 눈에 잘 띄지 않아 여러 번 찔러야 했다고 간호사가 진땀을 흘리면서 해명을 했었다. 마치 자기의 실력이 미흡해서 그런 것은 아닌 것처럼.

"어휴 내 새끼. 어휴 내 새끼"

숨이 찬지 헉헉거리며 혜라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민혁이 엄마였다.

"그래 의사가 뭐라던? 갑자기 왜 그런 거래?"

민혁을 바라보며 슬픈 눈으로 쳐다봤다.

"유치원에서 조금 안 좋은 일이 있던 모양이에요"

차마 아빠를 쳐다보지 못하고 하늘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일?"

조금 예감을 했는지 민혁이 엄마는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엄마 없는 거지라고."

"내가 혜라를 볼 테니 민혁이 넌 내일 출근해야 하잖니. 어서 가라"

"아녜요 제가 볼게요. 제가 아빤데요"

"내가 혜라랑 얘기 할 게 있어서 그래"

"그래도 절 찾을 거예요."

"넌 가서 쉬고 내일 오렴 머리도 부스스하고 얼굴도 반쪽이 됐어. 못 믿을 사람들도 아니고 가족인데, 나도 혜라 할머닌데 날 못 믿겠니?"

"알았어요. 엄마 혜라가 안정되면 전화 해 주세요."

"그래 어서 가라 가서 내일 와"

황망한 눈빛을 하며 민혁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잠들어 있는 숲 속의 공주를 놓치기 싫었다. 하지만 엄마가 있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억지로 떨어뜨렸다.

"혜라야 이젠 눈 떠봐 "

"……."

"그렇게 눈을 꼭 감고 있으니 이마에 주름지잖아 꼭 지렁이처럼 말야. 안 자고 있는 거 다 알아 눈 떠 봐"

"……."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저녁 먹고 땡 창문을 열어 보니 비가 오더래. 지렁이 세 마리가 기어가더래. 아이고, 무서워 해골바가지”

부드러운 선율과 달콤한 음성이 달팽이관을 자극 했다.

쪼오옥

혜라의 볼에 살며시 뽀뽀를 하자 셔터처럼 감겼던 눈을 살며시 떴다.

 

“안녕하세요. 저 혜빈인데요. 혜라가 아파서 응급실에 갔거든요. 네. 단국대학교병원이요. 알려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민혁씨가 정신이 없는 거 같아서요. 고맙긴요. 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마음만은 같이 있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혜라를 예뻐하지만 더 이상은 다가 갈 수가 없었다. 주위의 시선도 따가웠고, 같이 병원에 있자니 짱구처럼 오바액션 하는 거 같았다. 혜라가 침대에 누운 걸 확인 하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아직도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차차 내 바구니’

그제야 바구니를 떨어뜨리고 온 걸 기억해 냈지만, 다시 가기엔 우산도 없고 너무 늦은 거 같았다. 택시를 타고 집 앞에서 내렸다.

“선생이 이렇게 늦은 밤에 귀가 하시면 어떠하시나? 얼굴도 예뻐서 짐승 같은 남자들이 확 채가면 큰일 날 텐데.”

“무슨 일이시죠?”

‘저 인간 왜 나타난 거야 짜증나게’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 주는 날이라서 한번 와 봤더니 그렇게 독사 같은 눈으로 바라 볼 건 없잖아?”

우산 쓴 몸으로 혜빈이에게 다가와 우산을 씌워 졌다. 한 손에는 페레로로쉐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사탕을 안 좋아하고 폐레로로쉐를 좋아해서 사 왔는데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군.”

살포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초콜릿이 들어 있는 상자를 바라 보았다

“흥 선물 관심 없고요 앞으로 찾아오지 마세요. 귀찮으니까”

‘앗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이다’

뒤도 안 돌아 보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잠깐”

“아 왜요?”

혜라가 아파서 심난한 그녀는 괜한 짜증이 밀려 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멈추어 섰다.

“아빠를 병원에 입원 시키고 싶나 보지?”

“네?”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참 근데 성폭행 당할 뻔 한건 학교 앞에 팸플릿 붙여 놓고 싶은데 이를 어쩌나”

이마를 톡톡 치며 깜빡 했다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 왠지 가식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예요?”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밥 한 끼”

“30분?"

"오우 안돼 안돼. 1시간."

"쳇!”

혜빈은 코웃음을 치면서도 별수 없었는지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토요일 2시”

“왜 토요일이예요”

“우리 혜빈이가 과외해서 토요일만 시간이 나는 걸 어떠하라고”

‘우리 혜빈이? 페레로로쉐 좋아한다는 뒷조사 한 것도 모자라 과외까지?’

찌리릿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보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예쁜 아 이건 가지고 가야지 비 오는데 2시간이나 길거리에서 서 있었는데 그 정돈 기본 에티켓 아닌가?”

‘뭐야 버터를 발라 놓은 것처럼 니글니글해’

“쳇 알았어요. 알았어.”

‘앗싸 가오리’

별로 탐탁치 않았지만 성의를 봐서 한번만 봐 주리라 생각 했다.

‘티잉’

윽.

혜빈은 머리가 너무 아파 순간 주저앉고 말았다.

“예쁜 아”

몇 발자국 다가오기를 기다린 상민은 그녀가 갑자기 주저앉자 당황해 했다. 우산도 집어 던지고 초콜릿 상자만 꼭 쥔 채 헐레벌떡 그 몇 발자국을 뛰어 갔다.

“괜찮니?”

연약한 두 어깨에 살짝 두 손을 올려놓고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이거 놔요 왜 내 몸을 함부로 만지고 그래요?”

혜빈은 수영을 하듯 두 팔을 휙휙 내 저었다. 걱정스러워 하는 그의 표정을 뒤로 한 채, 초콜릿 상자를 낚아채듯 빼앗아 가며 집으로 뛰어 들어 갔다.

‘요즘 머리가 이상해. 너무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