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여행 할때 누군가의 소개로 작은 한인이 운영

신민경200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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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여행 할때 누군가의 소개로 작은 한인이

운영하는 가정집 녹음실을 찾은 적이 있었다.

투배드 정도로 짐작이 되는 그의 작업실에는 한국과

같은 이런 저런 장비가 놓여져 있었지만

최신의 것은 아니어서 미국의 상업적인 회사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남자의 눈 빛을 잊을 수가 없구나.

 

김민종과 이승철의 마스터링을 맡아 오던 꽤 잘나가던

엔지니어에서 해외파에게 무언가의 심리적인

압박을 받아오던 현실을 극복하고자 무작정

뉴욕을 찾은 그의 발길은 결국 학교를 졸업 하는 것 보다

깨달음을 얻는 그 것 이었다 말한다

 

지인의 도움으로 늙었지만 유명했다던 분에게

레슨을 받으러 가던 날 그 반 쪽을 알 수 있었다는데,

그 기억을 말 하는 진지함에 나도 당시의

상황을 알 수가 있었다.

맨하튼 어느 구석에 위치한 선생의 집은 정말 보잘 것

없는 흑인의 살림 살이 었고 구식 아나로그 믹싱 장비가

전부이어서 여기서 무얼 배울 것인가 실망도 했다는데,

그래도 빠다 맛을 직접 보기 위한 그의 질문은 계속 되었고,

그 날밤 세상에서 처음 보는 기술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는군.

 

데모 테입을 가져가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겠지만

스스럼 없이 선생은 각 채널 별로 분산하여 그

말도 안 되는 가요를 이것 저것 정리 하기를 시작 하였다.

그리고,

5 불도 안 될것 같은 허름한 헤드폰을 꺼내어

마스터링을 시작..

 

믿겨 지는가,

최첨단을 사용해도 며칠 밤을 고심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미국적인 싸운드가 단지

아나로그 콘솔과 들릴듯 말듯한 헤드폰에서

조합 되고 완성된다는 것을..

 

놀라움과 함께 작업실로 돌아와 그의 테입을 들어 보았을때

십여년을 엔지니어로 살아 오며 어깨에 힘을 주고

거들먹 거렸던 그 지난 시간이 부끄러웠단다.

아무리 소리를 키워도 아무리 중저음이나 다른

이퀄라이저를 걸어도 어디선가에서 부터

들려 오는듯한 기가막힌 리버브의 입체적인 사운드...

 

한국 녹음실에는 경쟁적으로 첨단 시설을 들여와

영화나 더빙 같은 것을 하던 때라

그 기계를 만질 사람이 필요 했고

그래서 유니버셜 같은 곳을 졸업한 젊은 해외파를

영입하고 모든 것을 맡기고는 했었다.

그런 욕심을 가지고 뉴욕에 입성한 후 깨달은

그 사람의 허탈함은 잠시었겠으나,

진짜를 찾아 가야 한다는 학생 본연의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는 사연들..

 

그의 입에서 잭리를 처음 들었다

펑키 리듬만 치는 흑인,

솔로만 만드는 백인,

편곡만 하는 부류,

그렇게 각자 한 파트만 고집하는 풍토덕에

노래 하나 녹음 하는데 어려움을 격던 때에

누군가 알려진 한국 사람을 쓰라고 조언했다는데

그가 바로 잭리 였다는 구나.

 

뉴욕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신인으로

스므스 라디오 채널에도 하루에 몇 번씩

소개 되던 떠오르는 재즈 기타리스트,

그 때 아마 내가 처음 재즈를 접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 까 하고 생각한다.

 

뉴욕의 비오는 거리를 내려다 보며

갈 곳 없이 헤메이던 내가 들어야만 했던

귀에 익지 않은 음악은 오로지 재즈 음악이었다.

 

'이왕에 미국에 오셨으니까 길게 잡으시고

 재즈를 배우시는게 어떨까요..

 잭리도 열심히 하는것 같던데

 만나서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을 거에요..'

 

그 날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버진에 들러

블르 노트를 샀다,

마음에 무엇으로 앞으로 다가올 지도 모르면서

밤 새 내가 들었다.

 

참 오래 된 그 길..

 

난 길을 잘 들어 섰던가,

그 들은 잘 가고 있는가,

 

사람은 어느날 교차점을 만나게 되어있고

선택은 훗 날,

가슴에 새겨진다..

 

문신 처럼 지워지지 않아...

 

품에 안고 살아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