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익과의 만남

서명진200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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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케익을 싫어한다.

지난 24년간 케익만 보면 왠지 속이 느끼해지고 먹어도 한.두입 맛만 보는 수준이었다. 생일이면 나의 케익은 어김없이 언니차지였고,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선 케익을 자르고 배분(?)하는 일은 나의 몫이었지만 입에 넣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물론 나 역시 그러한 일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고 오히려 감사했다.

불과 1달 전.. 친구가 내 앞에서 초코렛 케익이 눈물 나게 맛있다고 정말 맛있게 먹었을 때도 포크로 병아리 눈물만큼 찍어먹던 나였다. 그리곤 속으로.. '정말 맛있나..?' 라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그러던 나였는데..

지난주부터 왠지 케익이 먹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커피숍을, 베이커리를 지나칠 때면 케익이 먹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순간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아니야.. 아니야.. 설마.. 그렇지 않을 꺼야..'라며 본능적인 미각 마져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케익을 인정해버리면, 24년간 고수해온 나의 입맛을 배반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본능은 어쩔 수 없나보다.

지난 월요일. 드디어 운명의 날이 시작되었다.

학원가기전 1시간이 비었다. 부드럽고 진한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스타벅스에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잔이랑 초코렛무스케익이요' 라고 말해버린 나..

 

'아메리카노 한잔이랑 초코렛무스케익이요'

'초코렛무스케익이요!'

'케익이요..'

 

솔직히 겁이 났다. 내가 한 조각을 다 먹을 수 있을까?..

자리를 잡았다, 가장 편해보이고 나의 모든 미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포크로 소량의 케익을 먹어보았다. 허걱! 살살 녹았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입에 들어가자마자 자취를 감추듯 스르르 녹아버리는 맛에 반해버렸다. 좀 더 많은 양을 한입, 한입.. 그렇게 한 조각을 낼름 먹어치웠다.

 

그날 밤.

저녁약속이 있어 밥을 먹는데, '밥 먹고 치즈케익 먹으러 가요. 잘 하는 집 알아요..' 라고 말하는 그 사람. 헉! 케익중에서도 가장 느끼하다던 치즈케익!! 옛날 같으면 말만 들어도 그 느끼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느껴질 텐데, 왠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그렇게 난 치즈케익 한조각을 맛있게, 정말 맛있게 먹었다. 내가 참~ 맛있게 먹는다며 케익 2조각을 더 사줬고, 그날 밤, 집에서도 정말 맛있게, 맛있게 먹어버렸다.

 

세상에 영원함이란 없다. 변하지 않는 건 없다.

24년간 케익을 싫어한 나였다. 앞으로도 케익은 안 먹을 줄 알았던 나였다. 물론 한국에 와서 많이 피곤해 단 음식이 좋아진 이유도 있겠지만, 나의 입맛이 변했다는 것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케익이 좋아졌다. 한갓 입맛도 변하는데,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있을까.. 난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은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나도, 타인도..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니, 남이 변함을 탓하지 말자.. 지나친 기대를 하지 말자.. 

케익과의 만남을 통해 타인을 향한 나의 기대치를 한뼘 내려놓게 되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나의 허릿살은 한뼘 늘어나는게 아닐까..? 역시 세상은 give n take 다.. 케익과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