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이나 심리학적인 문제는 잘모르겠으나 정신병자를 편견으로 보는 게 아니라, 명랑하고 밝은 분위기속에 진정한 사람, 삶의 의미를 잘 그려냈다고 생각했다.
사이보그는 과연 누구인가
정신병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 이건 '나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군 스스로 사이보그라고 말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그애는 인간이이예요"라고 말해준다. 그렇다! 그녀는 분명히 인간이다. 그녀가 정말 사이보그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믿는가? 아니다. 나의 소견으로는 영군이 사이보그라고 되뇌이고 행동하는 것은 '당신은 정말 인간입니까?' '인간으로서 손색이 없습니까?' 라고
영화가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으로서 행해야 할 것,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감정. 푸근하고 다정한 인간.. 이 될 자격이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사이보그가 가지면 안되는 칠거지악.. 가장 으뜸이라는 동정심과 이하 순서대로 슬픔에 잠기는것, 설레임, 망설임, 쓸데없는 공상, 죄책감, 감사하는 마음 이다. 이상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져야할 감정이 아닐까?' 라고 생각 될 무렵 다시 그림책을 뒤로 넘겨가며 되짚어 주고 있다. 메마른 현대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이 사이보그로 형상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한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친구, 동료, 가족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선 통 관심이 없는 현대인들의 성향을 꼬집어 주고 있는듯 하다. (역설적 표현)
일순
일순은 끊임없이 이웃을 관찰하고 따라한다. 그러나 일순이 이웃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들이 관심있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꽤 뚫어보는 한편 '따라한다'는 점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친밀감이고, 둘째는 모방에 따른 불쾌감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하나하나 같이 한다는 것은 친밀감의 표시일 수 있으나, 일순의 행동은 그대로 이웃의 행동을 따라하면서 행동을 빼앗가 간다는 점이 다르다. 일순에게 자신의 행동(능력)을 빼앗긴 사람들은 화가나고, 우울증에 시달림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순은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의 능력을 훔치는 도벽은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적인 요소로 인해 가능하다.) 사회에 있을때도 자기밖에모르며 마음대로 성질만 내다가 정신병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누군가 억지로 집어 넣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발로 직접 찾아 들어왔다고 말해준다. 스스로 병원으로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스스로의 결점을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다. 또 그것을 끊임없이 고치고 싶어한다. 자기 성질 밖에 낼 줄 모르는 이기적인 성향을 모른척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일순 역시 그러하다. 화내지 않으면 자신이 점이 되어 사라질 것 같다는 그는 해결책으로 양치질을 한다. 양치질이란 이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이물질을 빼어내 주는 역할을 한다. 상쾌한 느낌. 영화에서 양치질은 더러운 성질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나쁜 행동을 할때마다 엄습해 오는 죄책감을 그는 이렇듯 씻어내는 행동으로 상징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하얀 맨을 죽이자.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데려가는 하얀 맨들. 할머니를 사랑하는 영군은 할머니를 위해 틀니를 가져다 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매정한 하얀 맨들은 그녀를 돌아봐 주지 않는다. 영군은 밥을 먹지 않는다. 그녀가 밥을 먹지 않는 걸 하얀 맨들은 눈치 채지도 못한다. 그녀가 밥을 먹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는 하얀 맨들은 없다. 그녀가 사이보그라는 사실에도 통 관심이 없다. 눈물을 삼키며 자신이 사이보그라고 하얀 맨에게 밝히지만 하얀 맨의 목적은 단지 영군의 입 속에 밥을 밀어 넣는 것밖엔 없다. 이 장면에서는 내가슴도 답답해 지는 듯 목에 슬픔이 그득 메어진 느낌이다. 나만의 진실을 어렵게 이야기하는데, 해결책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들어달라는 것인데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인지.. 가슴이 아프다. 근본을 찾아내지 못하면서 답만 찾으려는 하얀 맨. 그것은 내안에 있는 또다른 나의 모습이다. 영군이 그들을 쏘아죽이는 장면이 나올 때는 조금은 잔인하다고 생각이되었으나 원인도 없이 답만 바라는 모습은 이렇듯 잔인하게 쏘아죽여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 있는 하얀 맨들을 죽이자!
존재의 목적은 삶이다. 영군은 스스로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므로 인간으로서의 에너지원인 밥을 먹지 않는다. 기력이 다 떨어질 즈음, 영군에게 밥을 먹이기위해 병원측에서는 전기 충격 요법을 쓰기로 한다. 이때 할머니를 만나보게되는데 여기서 영군은 할머니에게 존재의 목적을 전해 듣게 된다. 존재의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유리관에 있던 영군은 할머니의 입모양만을 기억하는데 영화후반에 파악한 존재의 목적이란 '핵폭탄 100만 볼트'.. 영군이 정말 사이보그라면 100만 볼트는 영군에게 있어서 풍부한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비가오는 날 언덕으로 올라가 벼락이 치기만을 기다리지만 몸만 젖을 뿐 기다리는 벼락은 치지않는다. 그대신 영군과 일순의 사랑이 꽃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애타게 찾던 존재의 목적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 그것을 온전히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가볍지만 무거운영화
시간이 2시간 남아서 보게 된 영화이다. 시작시간 10분정도 못봐서
아쉬움이 남는다. 비디오로 나오면 꼭 다시 보고싶은 영화이다.
정신병이나 심리학적인 문제는 잘모르겠으나 정신병자를 편견으로 보는 게 아니라, 명랑하고 밝은 분위기속에 진정한 사람, 삶의 의미를 잘 그려냈다고 생각했다.
사이보그는 과연 누구인가
정신병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 이건 '나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군 스스로 사이보그라고 말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그애는 인간이이예요"라고 말해준다. 그렇다! 그녀는 분명히 인간이다. 그녀가 정말 사이보그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믿는가? 아니다. 나의 소견으로는 영군이 사이보그라고 되뇌이고 행동하는 것은 '당신은 정말 인간입니까?' '인간으로서 손색이 없습니까?' 라고
영화가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으로서 행해야 할 것,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감정. 푸근하고 다정한 인간.. 이 될 자격이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사이보그가 가지면 안되는 칠거지악.. 가장 으뜸이라는 동정심과 이하 순서대로 슬픔에 잠기는것, 설레임, 망설임, 쓸데없는 공상, 죄책감, 감사하는 마음 이다. 이상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져야할 감정이 아닐까?' 라고 생각 될 무렵 다시 그림책을 뒤로 넘겨가며 되짚어 주고 있다. 메마른 현대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이 사이보그로 형상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한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친구, 동료, 가족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선 통 관심이 없는 현대인들의 성향을 꼬집어 주고 있는듯 하다. (역설적 표현)
일순
일순은 끊임없이 이웃을 관찰하고 따라한다. 그러나 일순이 이웃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들이 관심있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꽤 뚫어보는 한편 '따라한다'는 점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친밀감이고, 둘째는 모방에 따른 불쾌감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하나하나 같이 한다는 것은 친밀감의 표시일 수 있으나, 일순의 행동은 그대로 이웃의 행동을 따라하면서 행동을 빼앗가 간다는 점이 다르다. 일순에게 자신의 행동(능력)을 빼앗긴 사람들은 화가나고, 우울증에 시달림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순은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의 능력을 훔치는 도벽은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적인 요소로 인해 가능하다.) 사회에 있을때도 자기밖에모르며 마음대로 성질만 내다가 정신병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누군가 억지로 집어 넣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발로 직접 찾아 들어왔다고 말해준다. 스스로 병원으로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스스로의 결점을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다. 또 그것을 끊임없이 고치고 싶어한다. 자기 성질 밖에 낼 줄 모르는 이기적인 성향을 모른척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일순 역시 그러하다. 화내지 않으면 자신이 점이 되어 사라질 것 같다는 그는 해결책으로 양치질을 한다. 양치질이란 이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이물질을 빼어내 주는 역할을 한다. 상쾌한 느낌. 영화에서 양치질은 더러운 성질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나쁜 행동을 할때마다 엄습해 오는 죄책감을 그는 이렇듯 씻어내는 행동으로 상징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하얀 맨을 죽이자.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데려가는 하얀 맨들. 할머니를 사랑하는 영군은 할머니를 위해 틀니를 가져다 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매정한 하얀 맨들은 그녀를 돌아봐 주지 않는다. 영군은 밥을 먹지 않는다. 그녀가 밥을 먹지 않는 걸 하얀 맨들은 눈치 채지도 못한다. 그녀가 밥을 먹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는 하얀 맨들은 없다. 그녀가 사이보그라는 사실에도 통 관심이 없다. 눈물을 삼키며 자신이 사이보그라고 하얀 맨에게 밝히지만 하얀 맨의 목적은 단지 영군의 입 속에 밥을 밀어 넣는 것밖엔 없다. 이 장면에서는 내가슴도 답답해 지는 듯 목에 슬픔이 그득 메어진 느낌이다. 나만의 진실을 어렵게 이야기하는데, 해결책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들어달라는 것인데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인지.. 가슴이 아프다. 근본을 찾아내지 못하면서 답만 찾으려는 하얀 맨. 그것은 내안에 있는 또다른 나의 모습이다. 영군이 그들을 쏘아죽이는 장면이 나올 때는 조금은 잔인하다고 생각이되었으나 원인도 없이 답만 바라는 모습은 이렇듯 잔인하게 쏘아죽여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 있는 하얀 맨들을 죽이자!
존재의 목적은 삶이다.
영군은 스스로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므로 인간으로서의 에너지원인 밥을 먹지 않는다. 기력이 다 떨어질 즈음, 영군에게 밥을 먹이기위해 병원측에서는 전기 충격 요법을 쓰기로 한다. 이때 할머니를 만나보게되는데 여기서 영군은 할머니에게 존재의 목적을 전해 듣게 된다. 존재의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유리관에 있던 영군은 할머니의 입모양만을 기억하는데 영화후반에 파악한 존재의 목적이란 '핵폭탄 100만 볼트'.. 영군이 정말 사이보그라면 100만 볼트는 영군에게 있어서 풍부한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비가오는 날 언덕으로 올라가 벼락이 치기만을 기다리지만 몸만 젖을 뿐 기다리는 벼락은 치지않는다. 그대신 영군과 일순의 사랑이 꽃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애타게 찾던 존재의 목적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 그것을 온전히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