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최춘선 할아버지를 가끔 지하철 3호선 종로삼가역에서 보았는데, 그때 "아.. 저렇게 맨발로 다니시면 괜찮을까?" 라는 생각과 "저런 이상한 방법으로 전도하면 거부감이 들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최춘선 할아버지를 사랑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시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나의 선입관이나 편견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은혜받았던 부분은 바로 "우리가 보았을때 열매없이 죽은것 같은 사람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이미 충분한 열매를 맺은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선교지에 도착하자 마자 죽음을 당하는 선교사들이나, 하나님께 영광을 바치겠다는 영화를 만들다가 계단에서 실족사해서 죽은 한 영화감독, 선교여행지에서 그 곳 사람들을 위해 돌계단을 만들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젊은 청년 등의 죽음에 대해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고생만하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세상적인 기준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는데 암에 걸리고, 고통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도저히 하나님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불공평함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100퍼센트 이해한다고야 할 수 없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적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아니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고, 또 내가 보기엔 너무 열매없는 혹은 정말 쓸데없는 일, 아니면 보기 안좋은 일조차도 하나님은 그 마음만으로도, 그 준비만으로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 안되는 글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마태복음 5장 3절과 4절의 말씀입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애통하는 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했더군요...
물론 하나님께 위로를 받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이지만, 애통이란 세상말로 하면 슬퍼하는 것인데, 왜 슬퍼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시는 건지 이해할 수 가 없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애통하는것이 그저 슬퍼하거나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슬픔이 아니라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 힘든 이들을 위해서" 애통하는 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군요...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애통하는 마음은 바로 그런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애쓰고 눈물 흘릴때, 우리와 그들에게도 위로를 주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애통할 수 있을까요?
아니, 얼마나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 자신 한몸조처 챙기기 버거운 사람이 바로 나인데 말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책에 나온 모든 은혜로운 애통하는 자들을 보면서, 더 깊은 찔림으로 나의 교만과 나의 이기심을 조금이나마 회개하게 됩니다.
최춘선 할아버지가 가신 그길을 맨발로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가끔 마음속에서 이기심과 교만의 신발을 벗고 따라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저도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를 위해서 핍박받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애통하는 자는 정말 복이 있을까?
요즘 김우현 PD님의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김우현 PD는 팔복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하신 분이죠. ^^
맨발천사 최춘선 할아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상은
많은 기독교인에게 감동을 주었죠..
전 최춘선 할아버지를 가끔 지하철 3호선 종로삼가역에서 보았는데, 그때 "아.. 저렇게 맨발로 다니시면 괜찮을까?" 라는 생각과 "저런 이상한 방법으로 전도하면 거부감이 들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최춘선 할아버지를 사랑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시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나의 선입관이나 편견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은혜받았던 부분은 바로 "우리가 보았을때 열매없이 죽은것 같은 사람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이미 충분한 열매를 맺은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선교지에 도착하자 마자 죽음을 당하는 선교사들이나, 하나님께 영광을 바치겠다는 영화를 만들다가 계단에서 실족사해서 죽은 한 영화감독, 선교여행지에서 그 곳 사람들을 위해 돌계단을 만들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젊은 청년 등의 죽음에 대해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고생만하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세상적인 기준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는데 암에 걸리고, 고통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도저히 하나님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불공평함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100퍼센트 이해한다고야 할 수 없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적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아니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고, 또 내가 보기엔 너무 열매없는 혹은 정말 쓸데없는 일, 아니면 보기 안좋은 일조차도 하나님은 그 마음만으로도, 그 준비만으로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 안되는 글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마태복음 5장 3절과 4절의 말씀입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애통하는 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했더군요...
물론 하나님께 위로를 받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이지만, 애통이란 세상말로 하면 슬퍼하는 것인데, 왜 슬퍼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시는 건지 이해할 수 가 없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애통하는것이 그저 슬퍼하거나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슬픔이 아니라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 힘든 이들을 위해서" 애통하는 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군요...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애통하는 마음은 바로 그런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애쓰고 눈물 흘릴때, 우리와 그들에게도 위로를 주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애통할 수 있을까요?
아니, 얼마나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 자신 한몸조처 챙기기 버거운 사람이 바로 나인데 말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책에 나온 모든 은혜로운 애통하는 자들을 보면서, 더 깊은 찔림으로 나의 교만과 나의 이기심을 조금이나마 회개하게 됩니다.
최춘선 할아버지가 가신 그길을 맨발로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가끔 마음속에서 이기심과 교만의 신발을 벗고 따라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저도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를 위해서 핍박받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