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임성빈200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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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의 신작. 당연히 기다리던 영화였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내 생애 가장 잊을 수 없는 역작 중 하나를 남기신 감독이니까... 그런데 로맨틱 코미디란다. 구라치지마라 이 양반아! 하고 속으로 외치며 극장에 들어갔다.

 

 이 영화가 로맨틱 코미딘지 싸이코 코미딘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전작들과 그 색깔을 많이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영화의 톤이 다르고 캐릭터의 성격이 다르다. 복수는 나의 것의 강렬한 톤이나 올드보이의 극단적 대비, 금자씨의 모노톤이 아닌 부드러운 파스텔톤이 주를 이룬다. 다양한 캐릭터들도 흥미롭다. 기본은 영군(임수정 분)이 중심이지만 일순(정지훈 군), 그 밖에 오달수 캐릭터나 여러 정신병자 캐릭터들은 이야기의 서브플롯을 탄탄하게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문제의 시작은 바로 이 서브플롯부터 시작된다. 메인플롯과 유기적인 연결점을 갖지 못하는 서브플롯은 이미 그 역할을 잃은 것이다. 결국 다양하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단지 소품에 불과하고 영군과 일순의 메인테마에 힘을 싣지 못하고 만다.

그로 인해 이야기는 겉돌게 되고 관객은 영화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게 된다. 관객이 영화에 빠지지 않게 되면 진정성은 사라진다. 이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은 여기서 발생한다.

 

 판타지가 많이 첨부된 영화의 배경은 특이하지만 정신병원이라는 곳이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이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나, 처음 만나는 자유 등 기존의 명작들이 종종 다루어왔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신선하지 않은 소재를 박찬욱 감독은 나름대로 잘 가공했다. 꽤나 공들인 씬들이 보이고 그로 인해 풍부한 상상력을 느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겉도는 이야기 때문에 단지 그의 상상력을 구경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고 리얼리티를 부여해서 캐릭터의 과거와 현재 등을 대비시키는 것은 기존의 명작을 답습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가슴을 울렸던 부분은 영군이 과거를 고백하는 씬이었으니 안타깝기는 하다.  뭐, 휴식 같은 의미로 만든 영화라고 하니 어쩔 수 없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기본적인 내용은 간단하다. 영군과 일순의 사랑이 싹트는 과정을 그린 내러티브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파편적이다. 그러한 통일성의 부재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나 방식이 다른 보편적 사랑에 대한 미학들을 희미하게 만든다.

서로에게 조금씩 관심을 보이는 두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네 그것과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일순은 영군의 정신을 자유롭게 해주고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준다. 영군은 일순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관심을 가진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무지개는 서로의 상처위로 따뜻한 비가 내릴 때 만들어진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캐릭터와 플롯의 유기적 통일성 부재와 그로 인해 생긴 영화와 관객과의 거리, 지루함 등으로 인해 힘을 잃는다.

 

 여전히 박감독에게서는 배울 것이 많기는 하다. 다양한 앵글과 카메라의 무빙은 이 따뜻한 영화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에서 익스트림 롱샷까지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영화의 볼거리를 풍부하게 만든다.

 

임수정은 데뷔이래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미 장화홍련에서 발군의 가능성을 보여준 그녀의 연기는 박감독을 만나면서 꽃을 피우는 느낌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아마도 임수정의 연기를 보는 맛이리라.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비, 정지훈은 좋지 않다. 그의 연기를 본 적이 없어서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드라마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번 영화만 봤을 때는 한계가 보였다. 크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상투적이다. 상투적이지 않은 영화에서 상투적인 연기를 하는 것은 그 반대보다 더 어렵다.

 

기존의 박찬욱 영화에서는 신화적 사고나 철학이 주된 테마를 이루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정신분석학이 그 근간이 되고 있다. 굳이 프로이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쥐인간이나 억압된 성, 결핍 등은 정신분석학에서 끌어온 것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시도만으로도 다음 작품을 기대케 만드는 우리의 박감독. 쳇!

 

진정한 작가주의란...

몇 년 전 영화를 처음 공부할 때 작가주의나 누벨바그 따위를 살펴보며 우리네 작가는 누군가, 고다르는 왜 작가인가, 등을 운운할 때는 몰랐지만 이번 영화를 보고 확실히 느꼈다. 작가는 아우라를 만들어 낼 때 호명될 수 있는 것을...

이번 영화는 박찬욱이 만들지 않았다면 아마도 다세포소녀 취급을 받았으리라. 그만큼 그의 전작이 뿜는 아우라는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에 그 아우라가 미쳤음이 분명하다. 쿨럭!

진정한 작가 박찬욱이여! 휴식의 차원으로 만든 영화! 이룬 자의 여유! 부럽소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