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만난건 내가 중학생 무렵일 2001년 쯤이었다. 츤쿠사단 밑에 있는 혼성 듀오 EEJump 의 노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극히 일부의 일본음악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알수 없었다. 하지만 아주 인상이 깊었던건 격렬한 춤을 추고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노래였다. 그 내가 본 무대가 おっととっと夏だぜ (옷토톳토 나츠다세 - 아차차차 여름이다) 무대였을것이다. 당시 안무에는 덜블링같은것도 있었는데 정말 깜짝 놀랬다. 그러다가 그녀가 재일교포라는것을 알게 되었고 점점더 그녀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같은 팀의 멤버였던 유우키 (고토마키의동생)의 탈선 현장이 그 유명한 프라이데이에 발각(이라는 단어를 일본에서 사용한다)되면서 EEJUMP는 자동 해체하게 된다. 재일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래할수 없었던 그녀는 그 기회마저 박탈 당하게 된다. 노래하기 위해서 그동안 흘렸던 눈물과 노력들은 수포로 돌아가버린것이다. 결국 우타방을 통해서 그녀의 조국인 한국까지 마라톤을 하는 조건을 달고 조건부로 솔로 싱글 발매를 약속받게 된다.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것이다. 마라톤 중에 그녀가 얼마나 크나큰 고통과 고독을 안고 있어야 했는지. 그러나 14일간의 여정끝에 할아버지의고향 거창, 그녀의 조국인 대한민국에 도달했을때를 그녀는 이렇게 기억한다. "나를 본적도 없을지 모르는데 나를 정성스레 맞아 주어서 너무 기뻤다." 그렇게 기나긴 여정 끝에 첫번째 솔로 싱글인 カレライスの女 (카레라이스노 온나 - 카레라이스의 여자)를 발매하게 된다. 데뷔 2~3년차의 아이돌 그리고 중간에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린 아이돌 치고는 섭섭하지 않은 Top10 의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물론 나 스스로도 오리콘 챠트는 챠트일 뿐이라고 말하는 바이지만 이것이 그녀의 객관적 지표가 된다고 한다면 나는 거부하지 않겠다. 그리고 두번째, 세번째 싱글을 발표 할때마다 Top10 이라는 성적을 거두며 그녀의 홀로서기는 순탄하게 흘러가는듯 했다. "...재계약" 세번째 싱글을 발표하고나서 메이져 음반사와 재계약에 대한 논의가 오갈 무렵 그녀는 재계약불가라는 통보를 받게 된다. 그 이유는 씨디를 많이 팔지못했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지만 메이져 음반사와는 그걸로 인연이 다 했다. 결국 네번째 싱글 ほんとわね(혼토와네 - 사실은요)를 인디즈 레벨로 발매하게 된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한다. "단지 메이져 음반사와 계약하지 않은것 뿐이에요." 그리고 자신을 알리기 위해 일본 전역을 돌면서 노래를 했다. 100번의 노래를 불렀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보다 아이돌이었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기 바빴다.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섰다. "노래를 해야한다! 하고싶다!" 라는 생각 하나로 100번의 노래를 마쳤고 그녀의 싱글은 또다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드라마, 각종 버라이어티쇼에서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굳혀 가며 그녀는 다시 자신의 역사를 새로이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근성의 아이돌" 일본에서는 그녀를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그 어떠한 시련이 와도 꿋꿋하게 일어서는 그녀를 근성으로 똘똘뭉친 강한 소녀라고 말한다. 근성의 아이돌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다. 그녀는 그저 노래를 하고 싶었을뿐이니까. 1
Tink _ 40 : 소닌 이야기 1 - 선임이의 노래이야기
내가 그녀를 만난건 내가 중학생 무렵일 2001년 쯤이었다.
츤쿠사단 밑에 있는 혼성 듀오 EEJump 의 노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극히 일부의 일본음악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알수 없었다.
하지만 아주 인상이 깊었던건 격렬한 춤을 추고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노래였다.
그 내가 본 무대가 おっととっと夏だぜ (옷토톳토 나츠다세 - 아차차차 여름이다) 무대였을것이다.
당시 안무에는 덜블링같은것도 있었는데 정말 깜짝 놀랬다.
그러다가 그녀가 재일교포라는것을 알게 되었고
점점더 그녀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같은 팀의 멤버였던 유우키 (고토마키의동생)의 탈선 현장이 그 유명한 프라이데이에 발각(이라는 단어를 일본에서 사용한다)되면서 EEJUMP는 자동 해체하게 된다.
재일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래할수 없었던 그녀는 그 기회마저 박탈 당하게 된다.
노래하기 위해서 그동안 흘렸던 눈물과 노력들은 수포로 돌아가버린것이다.
결국 우타방을 통해서 그녀의 조국인 한국까지 마라톤을 하는 조건을 달고 조건부로 솔로 싱글 발매를 약속받게 된다.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것이다.
마라톤 중에 그녀가 얼마나 크나큰 고통과 고독을 안고 있어야 했는지.
그러나 14일간의 여정끝에 할아버지의고향 거창, 그녀의 조국인 대한민국에 도달했을때를 그녀는 이렇게 기억한다.
"나를 본적도 없을지 모르는데 나를 정성스레 맞아 주어서 너무 기뻤다."
그렇게 기나긴 여정 끝에 첫번째 솔로 싱글인 カレライスの女 (카레라이스노 온나 - 카레라이스의 여자)를 발매하게 된다.
데뷔 2~3년차의 아이돌 그리고 중간에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린 아이돌 치고는 섭섭하지 않은 Top10 의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물론 나 스스로도 오리콘 챠트는 챠트일 뿐이라고 말하는 바이지만 이것이 그녀의 객관적 지표가 된다고 한다면 나는 거부하지 않겠다.
그리고 두번째, 세번째 싱글을 발표 할때마다 Top10 이라는 성적을 거두며 그녀의 홀로서기는 순탄하게 흘러가는듯 했다.
"...재계약"
세번째 싱글을 발표하고나서 메이져 음반사와 재계약에 대한 논의가 오갈 무렵 그녀는 재계약불가라는 통보를 받게 된다.
그 이유는 씨디를 많이 팔지못했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지만 메이져 음반사와는 그걸로 인연이 다 했다.
결국 네번째 싱글 ほんとわね(혼토와네 - 사실은요)를 인디즈 레벨로 발매하게 된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한다.
"단지 메이져 음반사와 계약하지 않은것 뿐이에요."
그리고 자신을 알리기 위해 일본 전역을 돌면서 노래를 했다.
100번의 노래를 불렀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보다 아이돌이었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기 바빴다.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섰다.
"노래를 해야한다! 하고싶다!"
라는 생각 하나로 100번의 노래를 마쳤고 그녀의 싱글은 또다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드라마, 각종 버라이어티쇼에서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굳혀 가며 그녀는 다시 자신의 역사를 새로이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근성의 아이돌"
일본에서는 그녀를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그 어떠한 시련이 와도 꿋꿋하게 일어서는 그녀를 근성으로 똘똘뭉친 강한 소녀라고 말한다.
근성의 아이돌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다.
그녀는 그저 노래를 하고 싶었을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