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우연히 라이언 킹

신민경200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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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를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우연히 라이언 킹을 보려 뒤지다 호두까기 인형이

올려 졌다는 것을 알게 되어 무려 1시간 20분을

운전하고 달려가 늦게나마 무대를 보게 되었네.

 

작은 도시의 조명은 발레리나를 더욱 가깝게

볼 수 있었으며 몇 백명이 채 되지 않는 객석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자랑스런 눈길을 보내주어

어느면에서는 더 빛나는 색을 발하고 있었다.

 

시에서 지원하는 대표적인 발레 스쿨의 정기

발표회라서 뉴욕의 그것 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4살 부터 강사들 까지 모두가 다 한 작품으로

땀을 흘리는 모습이 얼마전 내가 졸업한  음악 스쿨과

대조적으로 보여졌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이런 극장 공연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숨어 있던 소년의 기억을 모락 모락

피어 오르게 하는데,

아마도 내 나이 7살 때 처음으로 리사이틀 이란 것을

보면서 무대와 객석의 차이와 두근 거리는 허전함을

알게 된것 같구나.

 

자장면집을 하던 우리집에 주문이 들어 오면서 일손이

달리던 점심때에 나도 극장으로 한 20인분

정도 짬뽕 국물이 든 주전자를 들고 따라 갔었지.

무료로 입장을 하고서는 무대 뒷쪽으로 배달을 갔고

막을 가린 뒷편에서 시커먼 객석을 향해

노래와 말솜씨를 뽐내는 가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어.

 

'하춘화'

극장 공연 2만 회라는 기네스북 기록도 가지고 있는

70년대 라이브 여왕,

그녀도 자장면을 맛있게 먹는 일반인 이었지만

내 머리를 스다듬어 주는,

내 생전 처음 보는 스타로 다가서며

난 중국집으로 돌아 가지 않고

숨어서 무대막 뒤에서 끝까지 모든 것을

지켜 보고 훔쳐 보고 그랬다.

 

아는가..

 

공연이 끝나고 적막한 극장에 울리는

셋트 뜯어내는 망치 소리,

악단들 철수하는 소리,

상소리를 내며 실수한 자를 책망하는

사회자 선배의 무서운..

 

그 후로 정확히 난 십년이 안되어

무대에 오를 수 있었고,

15년이 흐른 뒤엔 어느 지방 행사때

초청 되어 온 하춘화 선배와 한 무대를

함께 할 수 있었다.

 

비록 퇴물이 되었다고 수근대는 사람들 속에

서있는 가수 이었지만

내게 있어 그녀는 내 시선을 보내 화려하게

재기 하는 은막 위의 발레리나 였다..

 

그 뒤로 나의 무대 공포증은 사라졌고

난 연주가 끝난 뒤의 공허함을 즐기는

소리 치는 선배로 남아 있다..

 

나와 함께 했던 내가 모르는 어린 후배들은

나를 기억해 주어 작은 무대에 오를때

박수를 쳐줄수 있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