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의 찾아서 ★

정용호2006.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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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찾아서 ★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동이족이라 불리며 호전적이고 용맹한 기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고구려는 중국에 맞서는 동아시아 최대 강국이 되었고, 발해는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매우 중흥하였다.

고대 3국(고구려, 백제, 신라)은 가장 작은 신라에 의해 통일되었지만 신라는 당의 30만 대군을 매소성전투에서 물리치고 당나라 최고의 명장 '소정방'을 죽였다. 또한 기벌포에서 '설인귀'를 물리쳐 자주국가의 위상을 드높였다.

916년 왕건에 의해 세워진 고려는 고구려의 계승 정신을 받들었으며 거란에 의해 멸망한 발해 유민(고구려계, 말갈계)들을 거두어 들이고 청천강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다. 또한 그는 화친을 청하는 거란을 '발해를 멸망시킨 흉측한 민족'이라 하여 만부교에서 거란의 낙타를 굶어 죽게했다.

고려는 고구려 때부터 우리민족을 섬겨온 여진족(말갈족)을 회유하고 그들 중 일부를 흡수하였다.

1115년 여진족은 완안 아골타에 의해 통일되고 요(거란)를 물리치고 금나라를 세운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와 여진족이 완전히 갈라지게 된다. 그런데 고려사 일부에 금의 완안 아골타가 신라계열이라는 기록이 있다. 내 생각에도 여진족의 역사는 우리 역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여진족은 고구려의 호전적 기상을 이어받아 대국으로 성장한다.

고려도 초기에는 호전적 기상이 있었으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의 실패로 중국의 꼬봉의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그럼 이제부터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묘청은 고려 중기 승려로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는 서경(평양)일대와 묘향산에서 승려 생활을 하였는데 풍수지리에 아주 뛰어났다고 한다. 당시 고려 조정에서는 왕실 외척인 이자겸이 난을 일으켜서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고 고구려의 복속 부족이었던 여진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이에 묘청은 왕(인종)께 건의하여 수도를 서경(평양)으로 옮기자고 하였다. 도한 그는 당대 최고의 문호인 '정지상'과 손을 잡고 새로운 제국을 꿈꾸고 있었다. 왕은 서경천도를 고민해 보았지만 '김부식' 등의 개경의 대신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때문에 반대하였다.

이에 왕이 서경천도를 거절하여 묘청은 썪은 조정을 혁파하고 자신이 이상국을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서경에서 대위국을 세운다(1135)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김부식으로 하여금 묘청을 치도록 한다. 김부식은 묘청을 치는 것을 차청하여 나갔는데 그의 어릴적 라이벌인 정지상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조정군(김부식군)과  대위군(묘청군)은 남포 주변에서 싸웠는데 이 때에 정지상의 '송인'이라는 유명한 시가 창작된다.

전쟁은 정부군의 승리로 끝났고 고려의 고구려 계승의식은 소멸하여 오늘날까지 만주를 중국에 넘겨주고 있다.

'김부식'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역사학자이지만 또한 최고의 사대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고조선의 단군 이야기를 넣지 않았고 '기자조선'이라 하여 우리나라를 중국 제후국의 일부로 기록하였다. 또한 발해를 기록하지 않았다. 즉,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역사는 사대주의적인 역사가 많다. 만약에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성공하였다면 우리나라 역사는 동아시아의 패자의 역사로 써졌을 것이고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되었을지 모른다.

고려 말기에 이규보(동명왕편), 이승휴(제왕운기...고조선, 발해 역사 다룸) 등에 의해 고구려 계승의식이 잠시 이어졌으나 이미 고구려 계승의식이 많이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발달과 더불어 '소중화의식'이 생겨나 자주 독립국가로서의 주권이 미약한 채로 역사가 진행되었다.

만약 고려 조정에서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을 지지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고구려의 복속국이었던 여진도 중국을 두번이나 지배하였는데 우리나라라고 중국을 지배 못할쏘냐...중국을 다 지배하지는 못하더라도 고구려 계승의식이 이어져 내려와 옛 고구려 땅만큼은 차지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또한 우리 역사책이 많이 남아서 우리가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 우리 조상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요즘 사극이 고구려와 발해를 다루고 중국의 동국공정에 맞서고 있다. 만약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성공했더라면 중국은 감히 동북공정을 운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방송국에서 묘청도 한 번 다루어 볼만한 인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고구려 계승의식을 회복하고 후대에도 널리 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