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大 케네디스쿨 한국인 첫 총학생회장

박은환2006.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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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大 케네디스쿨 한국인 첫 총학생회장

케네디스쿨에 실무경력 전무한 유학생 학생회장 선출은

이례적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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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대학원과 교류의 장 열어

 

   입학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 이하 케네디스쿨)에서 대학 졸업이 경력의 전부인 학부생이 곧바로 입학허가를 받아 이례적인 사례를 만들어 냈던 우리대학교의 최유강(96학번, 국제어문학부, 04년 졸) 동문이 10월 6일(미국 현지시각) 케네디스쿨 학생회장에 선출되면서 다시 한번 이 학교에 이례적인 사례를 만들어 냈다.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 석사과정(MPP:Master in Public Policy) 3학기, 2학년에 재학중인 최유강 동문은 이번 케네디스쿨 학생회장 선거에서 1차 투표는 5명의 후보가 참여한 가운데 1위를 차지했고, 5일 마감된 1 · 2위 결선투표에서는 900여명의 재학생 중 77.6%가 투표한 714표 가운데 426표를 얻어, 칠레계 미국인인 호세 에드워즈(29)씨를 138표차로 크게 따돌리며 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세계 각국의 각 분야 전문가와 주요 공직자와 CEO 등 화려한 경력자들이 많은 케네디스쿨에서 실무경력이 전무한 유학생활 2년차인 학생이 학생회장으로 선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최유강 동문은 “다른 후보들이 모두 미국 국적이어서 힘겹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결과가 좋게 나오게 되어 기쁘며, 이번 일을 통해 한국 토종이지만 마음먹고 도전하면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 기쁘다.”며 “1학년 때부터 폭넓게 외국학생들과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했던 것이 이번 선거에서 큰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런 이유로 같이 유학중인 크린 챠롱옹삭 태국 국회 의원, 프레드릭 수마예 전 탄자니아 총리 등도 적극 나서서 최유강 동문을 도왔다고 한다.

 

   그리고, 한동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경험을 살려,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현실적인 공약을 내세운 그는 “일종의 친목모임처럼 학교와 학생들을 연결하는 역할만 해온 지금까지의 학생회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학생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학생회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공약들을 내세웠다”며, “인종적 · 문화적 다양화의 추진, 미국기업 중심에서 벗어난 세계 각국 유수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기회 확대, 교직원 평가시스템 도입과 장학금 확대 등 학생들의 권익과 복지향상에 노력하겠다는 공약에 공감하여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많았다.”며 이번 선거에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을 자평했다.

   또한, 이번 선거를 치르며 가장 긴장했던 순간으로 최유강 동문은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꼽았다. 그는 “영어강의가 일상적인 한동대를 4년간 다녔고, 2002년 전국 대학생 영어스피치 대회에서 2등을 차지할 만큼 영어나 토론에 있어서 자신은 있었지만 유학오기 전에는 해외여행 경험조차 없었고, 다른 후보들이 모두 은행 컨설턴트, 국제기구 전문가, 미국 육군사관학교 출신 등의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들이어서 토론대에 오르는 순간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며, “토론회 내내 경청하는 학생들이 나의 유창하지 않은 실력에 대해서는 관대한 대신 제안하는 공약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챙겨듣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공약을 또박또박 설명하면서 컨텐츠로 승부했는데 이것이 주요한 듯 하다.”고 말했다. 

 

   이번 학생회장 선출에는 어머니와 아내의 기도가 제일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최유강 동문은 “어머니(고양님(60))는 1994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간호조무사, 치매노인 수발 등 하루 12시간씩 고된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오셨고, 이런 와중에도 예전부터 전도의 달란트가 있으셨던 어머니는 2년 과정의 신학공부를 하시고 전도사가 되셨고 나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는 기도후원자가 되셨다.”며 “여기에 작년 7월 반려자로 맞이한 아내도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보스턴 성요한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든든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가난한 고학생으로서의 어려움도 있었다. 최유강 동문은 학창시절 6~7개의 아르바이트로 학비 등을 해결해왔으며, 케네디스쿨 유학은 여러 후원자의 후원과 몇몇 교회에서 지원해준 장학금으로 가능했다. 하지만 몇달전부터 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아 일을 하지 못하면서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진 것.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여서 출마를 포기할까도 싶었다.”며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뭔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동대학교에서 국제학과 국제커뮤니케이션을 복수 전공한 최유강 동문은 “통일헌법 등 통일과 관련된 문제, 한 · 중 · 일간 영토문제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케네디스쿨 과정을 마치면 국제법을 전공하여 관련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키울 생각”이라고 밝히며 “한동대 입학, 케네디스쿨 유학, 학생회장 선출 등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며, 이곳의 교육과정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꾼으로써 주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 하버드 케네디스쿨에는 한동대학교 96학번(국제어문) 최유강, 97학번(국제어문) 김충선 동문이 재학 중이다.

 

 

   한국인 최유강(崔杻剛·31)씨가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행정전문대학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을 때 30초씩 자기를 소개할 기회가 주어졌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최씨는 무대에 올라가 딱 세 마디 했다.

  “Give me a ‘Y’(‘Y’라고 외쳐주세요)!”

  “Give me a ‘K’(‘K’라고 외쳐주세요)!”

  “Y~!” “K~!”라고 큰소리로 대답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인사말을 맺었다. “내 이름은 YK 최, 한국인입니다.” 그의 이름은 학생들 사이에 확실하게 각인됐다.

  2005년 9월 14일이었다. 1년이 지난 2006년 10월 6일 YK 최는 한국인 최초로 케네디스쿨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조선일보 10월 9일자 참조). 각국 지도자급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학부 출신인 젊은 한국인이 학생 지도자로 선출된 사건이다. 최씨는 2003년 한동대 국제어문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 9월 이 학교 공공정책학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방학을 틈 타 잠깐 한국을 찾은 최씨를 만나 ‘지도자 양성소’ 케네디스쿨에 대해 들었다. 
 

―케네디스쿨에 간 이유는?

 

“1998년 한동대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있을 때였다. 휴가를 나와서 서점에서 책 하나를 집어들었는데 거기에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이 적혀 있었다. 북한 핵문제가 터졌을 때 클린턴 정부가 북한을 폭격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한국 정부는 그 어떤 정보도 결정권도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수업시간에 토론한 내용을 발췌해서 번역했다고 했다. 일개 대학원의 토론 내용이 책으로 나와? 그래서 이 학교를 가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미리, 그리고 더 넓게 알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정말 ‘세상을 더 넓게 알 수 있게’ 수업이 진행되나?

 

“그렇다. 군 시절 읽었던 책 그대로였다. ‘전략관리(Strategic

management)’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엘레인 케이마크(Elain

Kamark)라는 교수는 클린턴 시절 백악관 보좌관 출신이다. 어느 날 수업 토론 과제가 ‘9·11테러와 위기관리’였다. 이런 식이다. ‘CIA는 테러 용의자들이 비행기 조종훈련을 받았다는 사실, 훈련소 위치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FBI에 통보를 하지 않았고 나중에 FBI 실무요원이 따로 올린 보고서는 조직 내에서 증발됐다. 자, 9·11을 예방하지 못한 조직적인 실패 요인을 토론해보자.’ 정부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그 정보를 토대로 대학원 수업에서 정말 치열한 토론이 벌어진다. 그런 과정이 ‘실명(實名)’을 거론하며 토론된다. 심지어 거론된 당사자가 토론에 참석해 ‘왜 실패했나’를 검증했다. 정부 청문회가 아니라 ‘대학원 수업’에서! 한국 대학에서 이 같은 ‘대안을 내놓는 정책 토론’은 드물다.

 

―어떤 사람들과 함께 공부를 하나?

 

“오리엔테이션 전에 신입생 사진과 프로필을 담은 ‘Picture Book’이라는 책자를 나눠줬다. 정말 쟁쟁한 사람들이 많았다. 전직 탄자니아 총리, 태국 국회의원, 그리고 미국 국무부 관료 출신 등…. 그때의 부담감, 정말 엄청났다. 하지만 나에게 장학금을 주며 격려해준 사람들을 위해 내 재능을 최대한 계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케네디스쿨에서 배운 지도자의 덕목 하나만 든다면.

 

“윤리다. 권력이 야당 당사를 도청한 워터게이트사건 이후 윤리가 최우선시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직 내에서 최상위 지도자와 차상위 지도자, 그리고 그 아래로 가는 위계에서 권력이 충돌할 때 진정한 윤리는 무엇인가, 이걸 토론한다. 정말 치열하다. 이라크전의 윤리성을 놓고 토론이 있었는데, 애국심 가득한 군 출신과 반전 분위기의 비(非) 군 출신 논쟁도 정말 볼 만했다. 전문적이었고, 치열했다.”

 

―학생회장 출마도 그런 리더십 훈련의 일환인가?

 

“선거에서 떨어져도 배울 게 있으리라 생각했다. 망신을 당하더라도 그 과정을 이겨내면 내가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동안 이뤄진 선거운동에서 최씨는 동영상까지 동원해 학생들의 복지와 수업에 대한 공약을 설득해 결선투표까지 간 끝에 당선됐다.

  최씨는 “같이 밥 먹고 토론한 사람들이 선거운동에 큰 도움을 줬다”고 했다. 최씨 이전까지 케네디스쿨 학생회장은 일종의 사교클럽 회장 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집행부가 조직적으로 학생들의 관심사항을 여론조사해 학교에 요구하니까 학교에서 직접 찾아와 고충사항을 청취하고 가기도 한다고 했다. 최씨는 최소 일주일에 4회 회의를 갖고, 주 1회는 행정담당 부학장과 회의를 갖는다.

 

―이번에 한국에 온 것도 학생회장직과 관련이 있나.

 

“케네디스쿨에 한국 기업의 장학기금을 만들어달라고 하고 싶다. 세계 각국의 미래 지도자들을 한국 기업들이 지원한다면 그 미래가치는 숫자로 따질 수 없을 정도다. 중국, 일본 기업이 유수 대학에 펠로십을 속속 만들고 있다. 이런 인재풀(pool)을 선점하면 그만한 마케팅이 없지 않겠는가. 그게 바로 글로벌네트워킹(global networking)이다.” 최씨는 재수 시절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숨진 뒤 홀어머니 아래 고학(苦學)을 했다. 어머니는 치매노인 간병사로 일하며 돈을 벌었고, 최씨는 아르바이트를 5~6개씩 뛰며 학비와 용돈과 생계비를 해결했다. 케네디스쿨 학비는 최씨가 다니는 교회 어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장학금이다.

  그는 지난해 7월 한동대 재학 시절 영어회화 강사였던 연상의 최미경(38)씨와 결혼했다. 당시 최씨는 ‘1300송이 장미’와 ‘촛불 200개’로 학교 호숫가 카페에 장식해놓고 프러포즈를 했다. “졸업을 하고 나면 국제기구에서 분쟁 해결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국제법에도 관심이 많은데, 어느 분야에서 일을 하건 제가 진 빚을 갚을 겁니다. 그건 의무죠.” 최씨가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숨막히는 케네디스쿨의 경쟁

 

“케네디스쿨 수업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콜드콜(cold call·사전예고 없이 수업에서 학생을 지명해 질문을 하는 것)’과‘웜콜(warm call·수업 개시와 함께 몇몇 학생을 호명해 토론을 준비시키는 것)’, 그리고 직전 수업에서 토론자를 예고하는‘핫콜(hot call)’. 그런데 내가 받은 수업은 90%가‘콜드콜’이었다. 누가 지명 당할지 아무도 몰라 자료 미리 읽고 수업 준비하느라 진짜 지옥처럼 산다.”

 

  최유강씨가 털어놓은 케네디스쿨의 진짜 얼굴이다. 강의실 앞과 뒤에 조교들이 지키고 앉아 발표 내용과 이름을 체크해 성적에 반영한다고 했다. 신입생 950여명. 미국 국적이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100개국이 넘는 국적으로 이뤄져 있다. 학생들이 자기 국가의 미래 혹은 현재의 지도자급이다 보니 이곳을 무사히 졸업했다는 것은 바로 세계적인 인맥의 소유자라는 말과 통한다.

 

하지만 경쟁은 숨막히다. 최씨는“학생들 하나하나가‘나는 1등’이라는 자부심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라며“수업시간에 콜드콜 몇 번 대답 못하고 토론 못하면 스스로 분통이 터져서 공부에 매달리게 된다”고 했다.심지어 미리 교수를 찾아가“오늘만은 빼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그 경쟁을 이겨낸 이 학교 동문이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1년 학비는 3만6000달러선, 생활비를 합치면 7만달러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