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리틀 선샤인 (Little Miss Sunshine, 2006)
감독 :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이런 게 바로 크리스마스 영화!
얼마 전 을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루저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기란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주류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가슴 밑바닥부터 우울함이 차오르는 난해한 예술영화가 되든 루저들을 아주 우습게 바닥에 내동댕이침으로써 웃음을 만드는 억지 코미디가 되든 둘 중 하나라는 생각에, 한동안 우울했다.
그러나 오늘, 루저들의 이야기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걸, 아니 오히려 어떤 영화보다도 재기 넘치고 행복하기까지 한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걸, 을 보고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성공한 인생이 없는 것 같은, 한마디로 한심한 가족이 있다. 가족의 어른 격인 할아버지는 마약과 섹스 중독으로 양로원에서 쫓겨났고, 사람은 승자와 패자, 딱 둘로만 나뉜다며 성공만이 전부인 양 입에 성공학을 달고 사는 가장 리차드 후버는 성공학 강사지만 자기 인생 앞가림은 안 되는 인물이다. 아들 드웨인은 전투기 조종사가 될 때까지는 말 한 마디 않겠다며 묵언수행 중이고, 딸 올리브는 D라인 몸매로 어린이미인대회에 출전하겠다는 황당한 꿈을 꾼다. 거기에 프루스트에 관해서는 최고의 석학이라 자신하지만, 게이 애인에게 버림받은 뒤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외삼촌 프랭크까지 후버 가족에 합류한다. 오로지 엄마 셰릴만이 정상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매일같이 패스트푸드 치킨을 저녁으로 내놓는 것을 보면 그다지 모범 엄마는 아닌 듯하다.
아무튼 이런 가족 여섯 명이 단지 비행기 값이 없다는 이유로, 자살미수 경력이 있는 삼촌을 혼자 둘 수 없다는 이유로, 모두 함께 구닥다리 밴을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올리브의 소원인 미스 리틀 선샤인에 출전하기 위해서.
도대체 말이 통할 것 같지 않는 여섯명이 좁아터진 밴에 낑겨 앉아 있으니 평탄한 로드무비가 될 것 같지 않다. 고물 밴의 클러치는 말을 듣지 않아 출발할 때마다 가족들이 뒤에서 밀고 달리고 몸을 날리는 서커스를 감수해야 한다거나 클락션마저 고장나 대회 장소까지 가는 내내 시끄러운 경적 소리를 감수해야 한다거나, 이런 소동은 후버 가족의 좌충우돌 로드무비에서 껌 같은 사건일 뿐.
짧은 여행(?) 동안 후버 가족은 극단의 절망을 경험한다. 성공에 집착하는 가장 리차드는 여행 중에 '실패' 통보를 받고, 애인에게 버림 받은 삼촌 프랭크는 여행 중에 옛 애인 앞에서 우스운 꼴을 당한다. 전투기 조종사가 될 때까지 말을 하지 않겠다던 아들 드웨인은 여행 중에 결국 입을 열어 "Fuck"이라 절규하고, 손자에게 되도록 빨리 많은 여자와 섹스를 하라고 강의하던 할아버지는 마약과 섹스보다 더한 극단의 결론에 다다른다.
루저들의 총집합인 듯한 한 가족이 함께 여행 아닌 여행을 하면서 상처를 치유한다거나 콩가루 같았던 가족이 가족애를 확인하고 화합의 계기를 마련한다거나, 그런 눈물 빼는 감동 스토리는 없다. 루저는 루저일 뿐이고, 그들 앞에는 또 다른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실패는 아프다. 실패를 바라보는 것 역시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 무진장 재미있다.
삼촌 프랭크의 말대로 고통이 곧 인생이기 때문일까. 실패 연속인 후버 가족의 로드무비를 보며 무릎을 치고 웃어대는 나는 뭔가. 더구나 이 영화에서 기이한 낙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조화일까.
단 한 순간도(심지어 죽음의 순간까지도) 청승떨지 않고 능구렁이처럼 재치있게 넘어가는 화술 때문에?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섯 캐릭터들 때문에? (여섯명의 가족 모두 너무 사랑스러워서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인 것은 사실이지만)
물론 다 맞다. 이 영화는 각본과 캐릭터의 힘이 조화를 이룬 웰메이드 코믹 로드무비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이들 여섯명은 할아버지로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삼촌으로서, 자식으로서, 모두 꽝인 인물들이다.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누군가'로서는 꽝인 이들이지만 그들은 '그들 자체'로 충분히 사랑스럽다. 분명 루저들이지만 비굴하지 않고 죄의식에 시달리지도 않고 자기를 긍정하는 것, '자기긍정'이야말로 이 영화를 행복한 코미디로 만드는 힘이다. 내가 느낀 기이한 낙관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누군가'의 최고를 가리는 미인대회를 뒤집어 엎는 마지막 장면, 괴상한 가족의 퍼포먼스를 보며 통쾌함까지 느껴졌던 것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요즘 개봉하는 모든 영화는 하나같이 '크리스마스에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영화'라고들 광고하는데, 실상 까보면 개뿔, 연말연시 기분 잡치게 하는 영화가 태반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즐거워지고 싶다면, 행복해지고 싶다면,(왜 크리스마스엔 꼭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_-;;) 이 영화를 강력 추천한다. 아마도 기이한 낙관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 이 영화를 만나서 참 다행이다. 아, 사랑스러운 후버 가족, 고마워요. ^^
미스 리틀 선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