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수원 아주대학교 뒤쪽엔 두 개의 고등학교가 있다. 야구로 유명한 전통의 명문 유 신 고등학교와 1986년에 개교한 창현 고등학교다. 최초 아주대학교와 유신고등학교 를 설립한 박창원 이사장은 이 두 학교를 각각 최고의 명문고, 대학으로 만들기 위 해 자신의 모든 재산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그의 바램대로 유신고등학교 는 수원의 최고 명문고로, 아주대학교는 수도권 제일의 대학으로 성장해 나갔으나, 박정희 정권 때 강제로 대우 그룹에게 아주대학교를 빼앗기는 아픔을 겪게 된다 아주대학교를 빼앗긴 그는 그 후 10여년을 비탄 속에 지내게 된다. 전 생애를 바쳐 일궜던 대학을 한순간에 빼앗겼기에 그 슬픔과 비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교 육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았고, 결국엔 (당시로는 파격 적으로 여성 장관까지 지냈던) 그의 아내 김갑현의 격려와 응원을 바탕으로 전국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창현 고등학교를 개교하게 되었다 독실한 크리스챤인 그는 자신의 마지막 삶을 이 학교에 바쳐 최고의 명문사립고를 만들겠다고 하나님께 서원을 한다. 그러나, 창현 고등학교가 전국 최고가 되기 위 해서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첫째로, 학력 평준화 지역인 수원에서는 일정수 준을 통과한 재원들을 컴퓨터 추첨을 통해 받기 때문에 우수재원만을 선별해서 받 는 타 지역과의 경쟁에서 핸디캡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둘째, 남학생들로 만 이뤄진 고등학교로 개교하려 하였으나 정부의 방침으로 남녀 공학을 개교하게 되어 이성간에 관심이 많은 시기에 학업에만 전념하기에는 힘든 교육환경이 된 것 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전국 최고의 명문을 기대하는 이사 장의 간절한 기도에 부응하듯 이 학교는 1회 졸업생을 배출한 1989년 2월, 대학진 학률 98.2%라는, 입시 역사상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룩하며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이야기는 1회 졸업생이 졸업한 그 해에 입학하게 된 이예찬, 심몽, 최요한 세 남자들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1> "대학 진학률 98.2%를 자랑한, 그러나, 곧 99% 이상의 대입진학률을 확신하는 창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여러분을 환영 한다" 입학 후 첫 날, 그들의 담임이자 국어를 담당하는 이철두 선생의 첫 인사말이었다 솜털이 보송보송 난 까까머리의 아이들은 담임교사의 첫 인사말에 어떤 반응을 보 여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히는 듯 어벙벙한 표정으로 서로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아 이들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철두 선생은 교탁 위에 길게 뉘어 놓은, 약 50센티의 길이로 잘 다듬어 놓은 당구 큐대를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난 여러분들에게 100프로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 솔직히 말해, 여러분 가운데 1 프로는 대학에 못 갈수도 있다. 퇴학당하지 않고 이 학교를 무사히 졸업함에도 불 구하고 1 프로는 대학에 못 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건 사실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3년 내내 그렇게 들볶이면서도... 아... 여러분은 아직 겪지 못해서 실감 이 안 나겠지만 곧 어떤 식으로 들볶일지 알게 될 것이다. 하여튼, 그 와중에도 1 프로 정도는 낙오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왜냐면, 이 큐대가 일년에 열두 개씩 부러져라 두들겨 패도 말을 듣지 않는 인간 말종이 이 세상엔 한둘은 꼭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당구 큐대로 '쾅!' 하고 칠판을 후려쳤다. 마치, 허벅지를 몽둥이로 내리쳤을 때 나는 소리처럼 소름끼치는 잔향들이 교실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고, 그제야 감을 잡은 아이들은 숨쉬기를 멈춘채 선생의 큐대 끝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너희들은 명심해라. 이제까지 내가 담임하는 학생들은 그 1프로에 속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었다. 지난 삼 년간 나의 노력으로 인해 너희 선배들은 100 프로 전원이 대학에 갔다“ “......” "그건 너희들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내가 담임하는 너희들 가운데엔 1 프로는 있을 수 없다. 너희들은 모두 대학에 간다. 그건 내가 책임지고 장담한다. 단, 너희들 이 딱 한 가지만 지켜 준다면 말이다..." "......" "난 너희들에게 딱 한 가지만 바란다" "......" "그저 학교만 무사히 졸업해라" "......" "못 견디겠다고 자퇴하거나 전학가지 마라. 매일매일 맞아서 팬티와 살이 피로 엉겨 붙는 한이 있더라도 학교에만 나와라. 그렇다면 내가 너희들의 대학은 책임 진다" 이철두, 아니, 모든 선배들 사이에서 '미친곰'이라고 불리는 그는 날카로운, 결코 곰 같지 않은 눈빛으로 아이들을 훑어보며 그 중 두 명의 아이를 골라냈다 "최요한, 심몽 일어나라" 얌전한 뿔테 안경을 낀 모범생 스타일과 머리가 유난히 큰, 그러나 눈빛만은 또렷 한 아이가 일어섰다 "여러분이 본 반편성고사로 1반부터 7반까지 나눈 결과, 우리 1반엔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이 포함되었다. 먼저 최요한" "네" 뿔테 안경이 대답했다 "너는 전교 1등으로 입학했다. 내 경험으로 비춰보아 전교 1등으로 들어온 놈한테 공부를 열심히 해라 말라 하는 말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넌 알아서 열심히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내가 염려하는 건 딱 하나다. 자살하지 마 라. 성적이 떨어졌다고, 원하는 만큼 성적이 안 나왔다고 초조해하지 마라. 사내 새끼가 등수 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긴 인생에서 그런 것들은 대수롭지 않 은 작은 일이다. 성적 떨어지면 당구 큐대 하나 부러질 만큼 맞고 다음에 또 잘 하면 된다. 크게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심 몽" "네" 머리 큰 아이가 대답했다 "넌 전교 꼴등으로 입학했다. 내 경험으로 비춰보아 전교 꼴등으로 들어온 놈한테 공부를 열심히 해라 말라 하는 말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넌 어차피 공부를 안 할 테니까 말이다. 너 역시 내가 염려하는 건 딱 하나다. 네가 또 다시 꼴등 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고개 빳빳이 들고 학교에 등교하는 거다. 만약 그런 경우 가 오면 넌 그냥 자살해라. 내가 널 죽일까 겁난다. 혹여 컨닝 같은 거 해서 성 적 올릴 생각 한다면 이 한 가지만 명심해 둬라. 넌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동안 무조건 등수가 올라가야 한다. 만약 네가 컨닝 한 번으로 전교 100등까지 올라갔 다면 다음엔 더 컨닝을 잘해서 100등 이내로 들어가야 된다. 넌 단 한 번이라도 등수가 떨어지면 차라리 자살하는 편이 편하게 죽는 길이라는 걸 명심해라. 알겠나" 머리 큰 아이는 멍한 표정으로 미친곰을 바라봤다. 한동안 멍하게 있던 그는, 자신 이 어떤 짓을 하는지 깨달은 듯 허둥거리며 대답을 하였다 "그럼 이것으로 조례를 마치겠다. 하루 수업 열심히 듣고 종례 때 보도록 하자" 미친곰은 곰의 그것처럼 어슬렁거리며 천천히 교실 문으로 향했다. 그러다,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는 듯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한 가지 잊은 게 있는데... 입학 후 첫 1교시는 선배와의 만남의 시간이다. 너희 선배들이 들어와 학교생활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 해 줄 것이다. 그럼, 즐거운 시간되길 바란다" 그는 '명복을 빈다'는 듯한 뉘앙스를 남기고 교실 문을 나갔다 "......" 미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은 말문이 막힌 듯 멍하게 앉아 있었다. 이제 겨우 중학교를 졸업한 이 아이들에겐 이런 두려움은 생애 최초의 공포였다. 이 두 려움을 같이 나눌 친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아직 만난지 채 한 시간도 되 지 않았고, 이 공포는 고스란히 혼자 감당할 몫이었다. "딩동댕동~~~~~" 숨 돌릴 틈도 없이 1교시가 시작되는 종소리가 들렸다. 교실 안은 공기의 움직임조 차 사라진 듯 적막만 가득하였다. 미처 대비할 틈 없이 몰아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맞이할 지 아무도 몰랐다. 그저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뚜벅뚜벅" 복도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모든 교실들이 적막에 쌓인 상태 에서 복도의 발자국 소리는 메아리치듯 수십 개의 소리로 울려 퍼지는 듯 했다 "벌컥!"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아이들의 고막을 때렸다. 문 열리는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그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2학년 배지와 명찰을 단, 피부가 하얀 뚜벅뚜벅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누군가 심장을 강하게 쥐어짜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이 학교의 선도부장인 '백색 공포'라 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인사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교탁 위에 선 그는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원래 핏기 가 없는 그는 자신보다 더욱 핏기가 하나 없이 질린 얼굴로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바 라보며 이런 분위기는 식상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알 필요가 없다. 어차피 너희들은 날 '백색 공포'라 부를 것이고 난 그 닉네임을 사랑하니까 말이다" "......" "다정한 인사는 살아가면서 차차 하기로 하고 몇가지 당부의 말만 전하도록 하겠다" "......" "우리 학교를 다니는 형, 누나를 둔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 학교엔 공식적으로 인정된 폭력 서클이 존재한다.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이 폭력서클이 바로 선도부이고 내가 그 선도부의 캡장이다. 우리 선도부는 말 그대로 좆 꼴리는 대 로 너희들을 두들겨 팰 수 있는 모든 전권을 선생님들에게 부여 받았다. 너희들 은 앞으로 수시로 우리들에게 맞을 것이다. 우리는 말 그대로 존나게 팬다. 우리 눈에 거슬리는 새끼들이 있으면 그저 존나게 팬다. 그게 바로 우리의 일이다" "......" "우리가 패는 놈들 1순위는 학교 교칙을 어기는 새끼들이다. 명찰 배지 안 달고 다니는 새끼들, 교복 상의를 바지 위로 빼고 입는 새끼들, 복도에서 실내화 대신 신발 신고 다니는 새끼들, 지각하는 새끼들..." "......" "그리고, 머리가 오 센티가 넘는 새끼들은 그 자리에서 가위로 잘라 버린다. 명심 해라. 머리가 아닌 모가지를 잘라 버린다. 특히, 반항한다고 빡빡 깎은 새끼는.. 차라리 학교 오지 마라. 그게 제 목숨 챙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 "그리고, 익히 소문으로 들었다시피 우리 학교는 '말로만' 남녀공학이다. 다시 말 한다. 분명 '말로만' 남녀공학이다. 그것은, 남자 고등학교와 여자 고등학교가 각각 존재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학교 진입로에서부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걸어 들어온다. 교문이 없는 학교 특성상 스쿨버스가 다니는 차도를 기준으로 남녀는 같이 걸어 들어올 수 없다. 여자들은 학교의 반을 갈라서 왼쪽만 쓰고 남자는 오 른쪽만 쓴다. 중앙복도에 있는 방송실을 기준으로 남녀 학생들은 복도를 서로 넘 어갈 수 없다. 만약, 중앙복도를 넘어 여학생 교실에 간다거나, 혹, 여학생 복도 를 넘어가면 너희들은 죽을 만큼 두들겨 맞은 다음 정학을 받는다. 설마 여학생 복도로 넘어가는 정신병자 같은 새끼가 있을까 의심도 되지만, 실제로, 여자 복 도로 넘어갔다가 정학 받은 너희 선배가 있기에 노파심으로 하는 말이다" "......" "중앙에 있는 복도 역시 너희들은 사용할 수 없다. 중앙복도는 선생님들이 편하게 다니시라고 편의상 만들어 놓은 곳이다. 너희는 양 끝에 있는 복도로 다녀야 한 다. 학생들 가운데서는 총학생회장과 너희들을 감시하는 선도부장인 나, 이렇게 둘만 다닐 수 있다. 너희들은 아예 중앙으로는 오지도 마라. 학교의 반만 너희들 학교다 생각하고 살아라" "......" "복도에서 장난치지 마라. 내가 가끔씩 1학년 복도로 내려와 볼 것이다. 만약 복 도에서 장난친다거나, 혹, 여자반 애들을 불러내서 복도에서 만난다거나 하면..." "......" "토요일 4교시인 H.R(학급회의) 시간엔 선도부들이 내려와서 두발과 복장 검사를 한다. 지금 머리가 긴 새끼들이 몇몇 보이는데, 이번 주 토요일까지 모두 깎고 와라. 만약 안 깎고 오면..." "......" "그럼 다정한 인사는 차차 하기로 하자. 질문 없나?" 그는 질문을 기다리지도 않고 교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이들의 눈은 자석이라도 달린 듯 뒤돌아선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러다, 그가 갑자기 돌아서자 아이들은 악귀와 눈이라도 마주친 듯 얼어붙은 채 눈도 깜빡이지 못했고, 그는 자신을 향한 112개의 눈동자를 향해 건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을 사.랑.한.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의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날리고는 교실 문을 나갔다... <2> "너희들을 사랑한다... 고..." "......"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고" 화장실 변기에서 대걸레를 빨던 심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이 학교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선생이란 사람은 자살을 하라니 말라니 그러고 깡패새낀지 변태새낀지 하는 선배는 협박이 나 해대고... 여기가 무슨 삼청 교육대냐. 시떡하면 두들겨 패고 모가지 자르고 말야" "......" "초반기선 좋다 이거야. 그래도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 안 그래도 바싹 쫄아 있는 애들한테..." "......" 자신의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자 심몽은 고개를 빼꼼 빼고 말한다 "어떻게 생각하냐 예찬아" 묵묵히 손걸레를 빨고 있던 예찬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몽을 보고 씩 웃었다 "몽아, 걸레 다 빨았냐" "다 빨아간다" "빨랑 가자. 자율학습 시작되었다" 몽은 불만스럽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자율학습도 그래. 어떻게 입학한 첫날부터 밤 열시까지 자율학습을할 수 있냐고" "......" "이렇게 숨통을 조이면 나래도 99프로 대학 보내겠다. 그건 당연한 거야. 이렇게 하면 다 전학가고 짤리고 남는 애들이 몇 있겠냐고" 예찬은 씩 웃으며 심몽에게 대걸레를 넘겨받아 발로 밟아 물기를 짜냈다. 심몽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손걸레를 들고 먼저 복도로 나갔다. 잠시 뒤... 화장실 문 이 다시 열리면서 몽이 호들갑스럽게 예찬을 불렀다 "예찬아! 밖에 나와 봐라!" 예찬이 나가자 몽은 아무도 없는 복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지금부터 폭력과 강압에 항거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할 생각이다. 예찬... 니가 증인이 되어 줄 수가 있냐" "어쩌려고 그러는데" 심몽은 자신이 신고 있던 실내화 한 짝을 벗어들고는 예찬에게 내밀었다 "이 실내화를 여학생 교실이 있는 복도로 던져주라" "뭐라고?" "난 이 실내화를 주우러 가기 위해 금남의 구역을 넘을 것이다. 비록, 넘어가다가 그들에게 걸려 정학을 받을지언정... 난 반드시 해내고 말 것이다" 몽은 전사와 같은 눈빛으로 예찬을 쳐다보았다. "꼭 그렇게 해야 되겠냐" "이것은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야... 이대로 굴복할 수는 없다고..." "......" 예찬은 아무 말 없이 깊은 눈으로 몽을 쳐다보았다. 몽은 그에게 신념에 찬 눈빛을 보여 주었다. 예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몽의 실내화를 받아 들었다. 몽 역시 고개 를 끄덕였다 "힘껏 던져 줘. 우리의 절규가 다 타오를 수 있도록 말야..." 예찬은 잠시 호흡을 고른 뒤 실내화를 가슴 춤에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몽에게 말했다 "몽아, 혹시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는데..." "?......" "나 중학교 때 야구선수였다" 몽이 뭐라 말 할 새도 없이 예찬은 익숙한 폼으로 실내화를 던졌다 "쌔애애액!!~~~" 실내화는 바람을 가르며 여학생 복도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여학생 교실 복도 끝에 맞고 화장실 앞에서 멈췄다 "......" 몽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예찬을 쳐다보았다. 예찬은 씩 웃으며 몽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화이팅" 하얗던 몽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그는 자신의 큰 머리를 두 손으로 다 감 싸려는 듯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예찬은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몽에게 '화이팅'이 라는 말을 하며 주먹을 움켜쥐어 보였다 "좋다구..." 몽이 일어섰다. 그는 심호흡을 크게 내쉰 다음 예찬을 쳐다보았다. 예찬은 예의 주 먹을 불끈 쥐어 보였고, 몽은 '씨발...'이라는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여자복도로 달려갔다 "쿵쿵쿵쿵!" 바람을 가르는 실내화의 소리와는 또 다른, 큰 머리를 들고 뛰는 몽의 모습은 웬만 큼 빠른 여자들과 비슷한 속도였다. 가뜩이나 조용한 복도는 그의 쿵쿵거리는 발자 국 소리로 심하게 울려 퍼졌지만 발뒤꿈치를 들고도 뛸 수 있을 만큼 육체적, 정신 적 여유가 없던 몽은 한시라도 빨리 실내화를 잡기 위해 더욱 요란한 발소리를 내 야 했다 "쉬이이이익!!"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 간신히 여학생 교실들을 지나쳐 온 몽은 여자 화장실을 10여 미터 앞 선 지점에서 슬라이딩을 감행했다. 미끌미끌한 복도를 이용하는, 아주 훌륭하지만 초보적인 스킬이었다 그 때였다 "덜컥!" 몽이 미끄러지면서 실내화를 막 낚아채려는 찰라, 여자 화장실에서 누군가가 나오 는 것이 아닌가... "허어억..." 슬라이딩을 한 상태에서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간 몽은 그녀의 다리 를 붙잡고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고... "촤아아아악!!" 주번인 듯한 그 여학생은 자신의 아래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정확히 말하면 자신 의 눈과 자신의 치마 속을 번갈아 들여다보는 몽을 향해 자신이 들고 있던 주전자 의 물을 얼굴에 쏟아 부은 후, 발로 그를 마구 걷어찼다 "죄, 죄송합니다! 제,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몽은 혼비백산한 얼굴로 자신의 손에 든 실내화 한 짝을 보여주었다. 여학생은 물 끄러미 몽을 쳐다보았다. 몽 역시 여학생을 쳐다보았다 "......" 사태파악을 하는 듯 잠시 동안 말없이 쳐다보던 여학생이 몽에게 말했다 "남자가 여자 복도에 넘어오면 어떻게 되죠?" 그제야 상황이 파악된 몽, 얼굴이 사색이 된다 "빨리 가요. 친구 곧 화장실에서 나올 거니까요" "가, 감사 합니다" 몽은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혼이 달아날만큼 놀란 몽의 가슴은 16비트 디스코 메들리처럼 심하게 뛰었다. 숨은 턱에 닿을 정도로 차올랐고, 오직 저 멀리 보이는 예찬에게 가야 한다는 본능만 그를 재촉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신체의 혼란과는 달리 몽의 머릿속엔 뚜렷하고도 강렬한 하나의 말이 계속 맴 돌았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맴도는 한 가지 말을 계속 되뇌었다 '정말 예쁘다... 너무 예쁘다... 분홍빛 팬티까지도 예쁘다...' <다음편에 계속...> 홈페이지 : www.210Love.com (이원영 러브닷컴)
[에스프레소] 1989년, 고교 입학
<프롤로그>
수원 아주대학교 뒤쪽엔 두 개의 고등학교가 있다. 야구로 유명한 전통의 명문 유
신 고등학교와 1986년에 개교한 창현 고등학교다. 최초 아주대학교와 유신고등학교
를 설립한 박창원 이사장은 이 두 학교를 각각 최고의 명문고, 대학으로 만들기 위
해 자신의 모든 재산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그의 바램대로 유신고등학교
는 수원의 최고 명문고로, 아주대학교는 수도권 제일의 대학으로 성장해 나갔으나,
박정희 정권 때 강제로 대우 그룹에게 아주대학교를 빼앗기는 아픔을 겪게 된다
아주대학교를 빼앗긴 그는 그 후 10여년을 비탄 속에 지내게 된다. 전 생애를 바쳐
일궜던 대학을 한순간에 빼앗겼기에 그 슬픔과 비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교
육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았고, 결국엔 (당시로는 파격
적으로 여성 장관까지 지냈던) 그의 아내 김갑현의 격려와 응원을 바탕으로 전국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창현 고등학교를 개교하게 되었다
독실한 크리스챤인 그는 자신의 마지막 삶을 이 학교에 바쳐 최고의 명문사립고를
만들겠다고 하나님께 서원을 한다. 그러나, 창현 고등학교가 전국 최고가 되기 위
해서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첫째로, 학력 평준화 지역인 수원에서는 일정수
준을 통과한 재원들을 컴퓨터 추첨을 통해 받기 때문에 우수재원만을 선별해서 받
는 타 지역과의 경쟁에서 핸디캡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둘째, 남학생들로
만 이뤄진 고등학교로 개교하려 하였으나 정부의 방침으로 남녀 공학을 개교하게
되어 이성간에 관심이 많은 시기에 학업에만 전념하기에는 힘든 교육환경이 된 것
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전국 최고의 명문을 기대하는 이사
장의 간절한 기도에 부응하듯 이 학교는 1회 졸업생을 배출한 1989년 2월, 대학진
학률 98.2%라는, 입시 역사상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룩하며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이야기는 1회 졸업생이 졸업한 그 해에 입학하게 된 이예찬, 심몽, 최요한 세
남자들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1>
"대학 진학률 98.2%를 자랑한, 그러나, 곧 99% 이상의 대입진학률을 확신하는
창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여러분을 환영 한다"
입학 후 첫 날, 그들의 담임이자 국어를 담당하는 이철두 선생의 첫 인사말이었다
솜털이 보송보송 난 까까머리의 아이들은 담임교사의 첫 인사말에 어떤 반응을 보
여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히는 듯 어벙벙한 표정으로 서로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아
이들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철두 선생은 교탁 위에 길게 뉘어 놓은,
약 50센티의 길이로 잘 다듬어 놓은 당구 큐대를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난 여러분들에게 100프로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 솔직히 말해, 여러분 가운데 1
프로는 대학에 못 갈수도 있다. 퇴학당하지 않고 이 학교를 무사히 졸업함에도 불
구하고 1 프로는 대학에 못 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건 사실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3년 내내 그렇게 들볶이면서도... 아... 여러분은 아직 겪지 못해서 실감
이 안 나겠지만 곧 어떤 식으로 들볶일지 알게 될 것이다. 하여튼, 그 와중에도 1
프로 정도는 낙오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왜냐면, 이 큐대가 일년에
열두 개씩 부러져라 두들겨 패도 말을 듣지 않는 인간 말종이 이 세상엔 한둘은 꼭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당구 큐대로 '쾅!' 하고 칠판을 후려쳤다. 마치, 허벅지를
몽둥이로 내리쳤을 때 나는 소리처럼 소름끼치는 잔향들이 교실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고, 그제야 감을 잡은 아이들은 숨쉬기를 멈춘채 선생의 큐대 끝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너희들은 명심해라. 이제까지 내가 담임하는 학생들은 그 1프로에 속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었다. 지난 삼 년간 나의 노력으로 인해 너희 선배들은 100
프로 전원이 대학에 갔다“
“......”
"그건 너희들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내가 담임하는 너희들 가운데엔 1 프로는 있을
수 없다. 너희들은 모두 대학에 간다. 그건 내가 책임지고 장담한다. 단, 너희들
이 딱 한 가지만 지켜 준다면 말이다..."
"......"
"난 너희들에게 딱 한 가지만 바란다"
"......"
"그저 학교만 무사히 졸업해라"
"......"
"못 견디겠다고 자퇴하거나 전학가지 마라. 매일매일 맞아서 팬티와 살이 피로
엉겨 붙는 한이 있더라도 학교에만 나와라. 그렇다면 내가 너희들의 대학은 책임
진다"
이철두, 아니, 모든 선배들 사이에서 '미친곰'이라고 불리는 그는 날카로운, 결코
곰 같지 않은 눈빛으로 아이들을 훑어보며 그 중 두 명의 아이를 골라냈다
"최요한, 심몽 일어나라"
얌전한 뿔테 안경을 낀 모범생 스타일과 머리가 유난히 큰, 그러나 눈빛만은 또렷
한 아이가 일어섰다
"여러분이 본 반편성고사로 1반부터 7반까지 나눈 결과, 우리 1반엔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이 포함되었다. 먼저 최요한"
"네"
뿔테 안경이 대답했다
"너는 전교 1등으로 입학했다. 내 경험으로 비춰보아 전교 1등으로 들어온 놈한테
공부를 열심히 해라 말라 하는 말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넌 알아서 열심히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내가 염려하는 건 딱 하나다. 자살하지 마
라. 성적이 떨어졌다고, 원하는 만큼 성적이 안 나왔다고 초조해하지 마라. 사내
새끼가 등수 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긴 인생에서 그런 것들은 대수롭지 않
은 작은 일이다. 성적 떨어지면 당구 큐대 하나 부러질 만큼 맞고 다음에 또 잘
하면 된다. 크게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심 몽"
"네"
머리 큰 아이가 대답했다
"넌 전교 꼴등으로 입학했다. 내 경험으로 비춰보아 전교 꼴등으로 들어온 놈한테
공부를 열심히 해라 말라 하는 말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넌 어차피 공부를
안 할 테니까 말이다. 너 역시 내가 염려하는 건 딱 하나다. 네가 또 다시 꼴등
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고개 빳빳이 들고 학교에 등교하는 거다. 만약 그런 경우
가 오면 넌 그냥 자살해라. 내가 널 죽일까 겁난다. 혹여 컨닝 같은 거 해서 성
적 올릴 생각 한다면 이 한 가지만 명심해 둬라. 넌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동안
무조건 등수가 올라가야 한다. 만약 네가 컨닝 한 번으로 전교 100등까지 올라갔
다면 다음엔 더 컨닝을 잘해서 100등 이내로 들어가야 된다. 넌 단 한 번이라도
등수가 떨어지면 차라리 자살하는 편이 편하게 죽는 길이라는 걸 명심해라. 알겠나"
머리 큰 아이는 멍한 표정으로 미친곰을 바라봤다. 한동안 멍하게 있던 그는, 자신
이 어떤 짓을 하는지 깨달은 듯 허둥거리며 대답을 하였다
"그럼 이것으로 조례를 마치겠다. 하루 수업 열심히 듣고 종례 때 보도록 하자"
미친곰은 곰의 그것처럼 어슬렁거리며 천천히 교실 문으로 향했다. 그러다,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는 듯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한 가지 잊은 게 있는데... 입학 후 첫 1교시는 선배와의 만남의 시간이다. 너희
선배들이 들어와 학교생활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 해 줄 것이다. 그럼, 즐거운
시간되길 바란다"
그는 '명복을 빈다'는 듯한 뉘앙스를 남기고 교실 문을 나갔다
"......"
미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은 말문이 막힌 듯 멍하게 앉아 있었다. 이제
겨우 중학교를 졸업한 이 아이들에겐 이런 두려움은 생애 최초의 공포였다. 이 두
려움을 같이 나눌 친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아직 만난지 채 한 시간도 되
지 않았고, 이 공포는 고스란히 혼자 감당할 몫이었다.
"딩동댕동~~~~~"
숨 돌릴 틈도 없이 1교시가 시작되는 종소리가 들렸다. 교실 안은 공기의 움직임조
차 사라진 듯 적막만 가득하였다. 미처 대비할 틈 없이 몰아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맞이할 지 아무도 몰랐다. 그저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뚜벅뚜벅"
복도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모든 교실들이 적막에 쌓인 상태
에서 복도의 발자국 소리는 메아리치듯 수십 개의 소리로 울려 퍼지는 듯 했다
"벌컥!"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아이들의 고막을 때렸다. 문 열리는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그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2학년 배지와 명찰을 단, 피부가 하얀 뚜벅뚜벅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누군가 심장을 강하게 쥐어짜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이 학교의 선도부장인 '백색 공포'라 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인사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교탁 위에 선 그는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원래 핏기
가 없는 그는 자신보다 더욱 핏기가 하나 없이 질린 얼굴로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바
라보며 이런 분위기는 식상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알 필요가 없다. 어차피 너희들은 날 '백색 공포'라 부를 것이고 난
그 닉네임을 사랑하니까 말이다"
"......"
"다정한 인사는 살아가면서 차차 하기로 하고 몇가지 당부의 말만 전하도록 하겠다"
"......"
"우리 학교를 다니는 형, 누나를 둔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 학교엔 공식적으로
인정된 폭력 서클이 존재한다.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이 폭력서클이 바로
선도부이고 내가 그 선도부의 캡장이다. 우리 선도부는 말 그대로 좆 꼴리는 대
로 너희들을 두들겨 팰 수 있는 모든 전권을 선생님들에게 부여 받았다. 너희들
은 앞으로 수시로 우리들에게 맞을 것이다. 우리는 말 그대로 존나게 팬다. 우리
눈에 거슬리는 새끼들이 있으면 그저 존나게 팬다. 그게 바로 우리의 일이다"
"......"
"우리가 패는 놈들 1순위는 학교 교칙을 어기는 새끼들이다. 명찰 배지 안 달고
다니는 새끼들, 교복 상의를 바지 위로 빼고 입는 새끼들, 복도에서 실내화 대신
신발 신고 다니는 새끼들, 지각하는 새끼들..."
"......"
"그리고, 머리가 오 센티가 넘는 새끼들은 그 자리에서 가위로 잘라 버린다. 명심
해라. 머리가 아닌 모가지를 잘라 버린다. 특히, 반항한다고 빡빡 깎은 새끼는..
차라리 학교 오지 마라. 그게 제 목숨 챙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
"그리고, 익히 소문으로 들었다시피 우리 학교는 '말로만' 남녀공학이다. 다시 말
한다. 분명 '말로만' 남녀공학이다. 그것은, 남자 고등학교와 여자 고등학교가
각각 존재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학교 진입로에서부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걸어
들어온다. 교문이 없는 학교 특성상 스쿨버스가 다니는 차도를 기준으로 남녀는
같이 걸어 들어올 수 없다. 여자들은 학교의 반을 갈라서 왼쪽만 쓰고 남자는 오
른쪽만 쓴다. 중앙복도에 있는 방송실을 기준으로 남녀 학생들은 복도를 서로 넘
어갈 수 없다. 만약, 중앙복도를 넘어 여학생 교실에 간다거나, 혹, 여학생 복도
를 넘어가면 너희들은 죽을 만큼 두들겨 맞은 다음 정학을 받는다. 설마 여학생
복도로 넘어가는 정신병자 같은 새끼가 있을까 의심도 되지만, 실제로, 여자 복
도로 넘어갔다가 정학 받은 너희 선배가 있기에 노파심으로 하는 말이다"
"......"
"중앙에 있는 복도 역시 너희들은 사용할 수 없다. 중앙복도는 선생님들이 편하게
다니시라고 편의상 만들어 놓은 곳이다. 너희는 양 끝에 있는 복도로 다녀야 한
다. 학생들 가운데서는 총학생회장과 너희들을 감시하는 선도부장인 나, 이렇게
둘만 다닐 수 있다. 너희들은 아예 중앙으로는 오지도 마라. 학교의 반만 너희들
학교다 생각하고 살아라"
"......"
"복도에서 장난치지 마라. 내가 가끔씩 1학년 복도로 내려와 볼 것이다. 만약 복
도에서 장난친다거나, 혹, 여자반 애들을 불러내서 복도에서 만난다거나 하면..."
"......"
"토요일 4교시인 H.R(학급회의) 시간엔 선도부들이 내려와서 두발과 복장 검사를
한다. 지금 머리가 긴 새끼들이 몇몇 보이는데, 이번 주 토요일까지 모두 깎고
와라. 만약 안 깎고 오면..."
"......"
"그럼 다정한 인사는 차차 하기로 하자. 질문 없나?"
그는 질문을 기다리지도 않고 교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이들의 눈은 자석이라도
달린 듯 뒤돌아선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러다, 그가 갑자기 돌아서자 아이들은
악귀와 눈이라도 마주친 듯 얼어붙은 채 눈도 깜빡이지 못했고, 그는 자신을 향한
112개의 눈동자를 향해 건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을 사.랑.한.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의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날리고는 교실 문을 나갔다...
<2>
"너희들을 사랑한다... 고..."
"......"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고"
화장실 변기에서 대걸레를 빨던 심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이 학교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선생이란
사람은 자살을 하라니 말라니 그러고 깡패새낀지 변태새낀지 하는 선배는 협박이
나 해대고... 여기가 무슨 삼청 교육대냐. 시떡하면 두들겨 패고 모가지 자르고
말야"
"......"
"초반기선 좋다 이거야. 그래도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 안 그래도 바싹 쫄아
있는 애들한테..."
"......"
자신의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자 심몽은 고개를 빼꼼 빼고 말한다
"어떻게 생각하냐 예찬아"
묵묵히 손걸레를 빨고 있던 예찬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몽을 보고 씩 웃었다
"몽아, 걸레 다 빨았냐"
"다 빨아간다"
"빨랑 가자. 자율학습 시작되었다"
몽은 불만스럽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자율학습도 그래. 어떻게 입학한 첫날부터 밤 열시까지 자율학습을할 수 있냐고"
"......"
"이렇게 숨통을 조이면 나래도 99프로 대학 보내겠다. 그건 당연한 거야. 이렇게
하면 다 전학가고 짤리고 남는 애들이 몇 있겠냐고"
예찬은 씩 웃으며 심몽에게 대걸레를 넘겨받아 발로 밟아 물기를 짜냈다. 심몽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손걸레를 들고 먼저 복도로 나갔다. 잠시 뒤... 화장실 문
이 다시 열리면서 몽이 호들갑스럽게 예찬을 불렀다
"예찬아! 밖에 나와 봐라!"
예찬이 나가자 몽은 아무도 없는 복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지금부터 폭력과 강압에 항거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할 생각이다. 예찬...
니가 증인이 되어 줄 수가 있냐"
"어쩌려고 그러는데"
심몽은 자신이 신고 있던 실내화 한 짝을 벗어들고는 예찬에게 내밀었다
"이 실내화를 여학생 교실이 있는 복도로 던져주라"
"뭐라고?"
"난 이 실내화를 주우러 가기 위해 금남의 구역을 넘을 것이다. 비록, 넘어가다가
그들에게 걸려 정학을 받을지언정... 난 반드시 해내고 말 것이다"
몽은 전사와 같은 눈빛으로 예찬을 쳐다보았다.
"꼭 그렇게 해야 되겠냐"
"이것은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야... 이대로 굴복할 수는 없다고..."
"......"
예찬은 아무 말 없이 깊은 눈으로 몽을 쳐다보았다. 몽은 그에게 신념에 찬 눈빛을
보여 주었다. 예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몽의 실내화를 받아 들었다. 몽 역시 고개
를 끄덕였다
"힘껏 던져 줘. 우리의 절규가 다 타오를 수 있도록 말야..."
예찬은 잠시 호흡을 고른 뒤 실내화를 가슴 춤에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몽에게 말했다
"몽아, 혹시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는데..."
"?......"
"나 중학교 때 야구선수였다"
몽이 뭐라 말 할 새도 없이 예찬은 익숙한 폼으로 실내화를 던졌다
"쌔애애액!!~~~"
실내화는 바람을 가르며 여학생 복도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여학생 교실 복도 끝에
맞고 화장실 앞에서 멈췄다
"......"
몽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예찬을 쳐다보았다. 예찬은 씩 웃으며 몽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화이팅"
하얗던 몽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그는 자신의 큰 머리를 두 손으로 다 감
싸려는 듯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예찬은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몽에게 '화이팅'이
라는 말을 하며 주먹을 움켜쥐어 보였다
"좋다구..."
몽이 일어섰다. 그는 심호흡을 크게 내쉰 다음 예찬을 쳐다보았다. 예찬은 예의 주
먹을 불끈 쥐어 보였고, 몽은 '씨발...'이라는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여자복도로
달려갔다
"쿵쿵쿵쿵!"
바람을 가르는 실내화의 소리와는 또 다른, 큰 머리를 들고 뛰는 몽의 모습은 웬만
큼 빠른 여자들과 비슷한 속도였다. 가뜩이나 조용한 복도는 그의 쿵쿵거리는 발자
국 소리로 심하게 울려 퍼졌지만 발뒤꿈치를 들고도 뛸 수 있을 만큼 육체적, 정신
적 여유가 없던 몽은 한시라도 빨리 실내화를 잡기 위해 더욱 요란한 발소리를 내
야 했다
"쉬이이이익!!"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 간신히 여학생 교실들을 지나쳐 온 몽은
여자 화장실을 10여 미터 앞 선 지점에서 슬라이딩을 감행했다. 미끌미끌한 복도를
이용하는, 아주 훌륭하지만 초보적인 스킬이었다
그 때였다
"덜컥!"
몽이 미끄러지면서 실내화를 막 낚아채려는 찰라, 여자 화장실에서 누군가가 나오
는 것이 아닌가...
"허어억..."
슬라이딩을 한 상태에서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간 몽은 그녀의 다리
를 붙잡고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고...
"촤아아아악!!"
주번인 듯한 그 여학생은 자신의 아래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정확히 말하면 자신
의 눈과 자신의 치마 속을 번갈아 들여다보는 몽을 향해 자신이 들고 있던 주전자
의 물을 얼굴에 쏟아 부은 후, 발로 그를 마구 걷어찼다
"죄, 죄송합니다! 제,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몽은 혼비백산한 얼굴로 자신의 손에 든 실내화 한 짝을 보여주었다. 여학생은 물
끄러미 몽을 쳐다보았다. 몽 역시 여학생을 쳐다보았다
"......"
사태파악을 하는 듯 잠시 동안 말없이 쳐다보던 여학생이 몽에게 말했다
"남자가 여자 복도에 넘어오면 어떻게 되죠?"
그제야 상황이 파악된 몽, 얼굴이 사색이 된다
"빨리 가요. 친구 곧 화장실에서 나올 거니까요"
"가, 감사 합니다"
몽은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혼이 달아날만큼 놀란 몽의 가슴은
16비트 디스코 메들리처럼 심하게 뛰었다. 숨은 턱에 닿을 정도로 차올랐고, 오직
저 멀리 보이는 예찬에게 가야 한다는 본능만 그를 재촉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신체의 혼란과는 달리 몽의 머릿속엔 뚜렷하고도 강렬한 하나의 말이 계속 맴
돌았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맴도는 한 가지 말을 계속 되뇌었다
'정말 예쁘다... 너무 예쁘다... 분홍빛 팬티까지도 예쁘다...'
<다음편에 계속...>
홈페이지 : www.210Love.com (이원영 러브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