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반의하며 신문 하나와 가벼운 책 한권을 챙기고 공항가는 버스를 탈 때만 해도, 2시간 후에 보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해 나는 무심하기만 했었다. 공항에서 사과주스 3캔을 마시며 두 시간 남짓 여러 신문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때만 해도, 세상돌아가는 것 읽는데에 너무 정신이 팔린 나머지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부족했다.
비행기가 울산에 도착할 때 쯤 되서야, 푸른 바다와 근접해있는 수많은 공장들과 웅장한 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내가 비로소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왔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역동성이 살아숨쉬는 도시, 울산에 도착한 것이다.
출구를 나가면서 혼자 외톨이가 되는 것이 두려워 오른쪽으로 붙어 나왔는데, 나를 고맙게도 마중나와주고 기다려준 사람이 있어 행복했다. 이방인인 나는 오늘 하루를 이 사람에게 맡겨야 했다. 같이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면서, 눈에 펼쳐지는 새로운 광경들을 보며 이내 감탄사를 내뱉으며 "울산에서는 내가 촌놈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문무대왕릉 (文武大王陵)이며 대왕암이라고도 불리우는 수중릉이었다. 마치 바다와 산이 어우러지는 듯한 절경이 더욱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곳이었다. 바위자락까지 가는 길까지 내 옆의 사람과 많은 얘기들을 하면서, 마치 내가 그 사람과 고적답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찍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센 파도가 겹치기를 반복하며 더 큰 파도를 만들어냈고, 그 강한 물결 속에서 우리는 대자연의 강인함을 봤다. 박지성만 있으면 하이트 광고 나오겠다며, 서로 웃다가 어느새 꼭대기에 올라가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바다를 멀리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했다. 내눈에는 한사람만 들어왔고 왜 그러는지에 대한 해답을 풀지 못한채, 나는 바위에서 내려왔다.
바닷가 근처로 내려와 길을 걸으며, 시간이 정지되었음을 느꼈고, 항상 나를 사로잡고 있던 경제학적 논리와 이성에서도 잠시나마 해방되었음을 느꼈다. 일탈을 하고있는 나는 지극히 감성적이었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내가 감성적 순간을 유지하는데 더할 나위없었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칼국수 집에 들어가 밥을 맛있게 먹었고,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되는 시간을 가졌다.
밥을 다먹고 일어나 우리는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추억을 이어갈 다음 장소에서 부터 느껴져오는 방향성에 이끌렸고, 이내 자석처럼 끌렸다.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건 간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가 석양이 졌고, 두 눈도 잠시 감겼다. 눈을 떠보니, 오색 빛깔의 커다란 관람차가 원을 그리며 고층 건물 위를 돌고 있었고, 우린 택시에서 내렸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벽한 날에 관람차보다 잘어울리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을 부추겨 관람차를 타러 올라갔다. 운행을 안하는 줄 알고 이내 실망했는데, 다행히 매표소가 있어 표를 끊고 유유히 돌아가는 큰 원의 일부분이 될 수 있었다. 옆의 사람은 태풍이 불때 관람차의 문짝이 바람에 날아갔다며 나를 겁줬고, 나는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가 하늘위에 펼쳐진 투명한 도화지를 보았고, 그 위에 커다란 콤파스로 보이지 않는 원을 함께 그리고 있는 내 앞 사람과 내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이번에도 먼 야경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눈 앞의 한 사람만 볼 수 있었고, 왜 그러는지에 대한 해답을 또 다시 풀지 못한 채 관람차에서 내려야만 했다.
옆에 사람에 이끌려 이번에는 정글과 어우러진 멋진 바에 들어갔고, 주위의 색깔에 맞춰 나는 기분좋게 미도리사워 2잔을 시켰다. 분위기와 함께 마시는 사람에 취해 쉽게 취기가 올랐다. 앞에 앉은 그 사람도 애써 안취해보이려 노력했지만 이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센티해졌다. 그러다가 어느새 잔이 비었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번엔 내가 그 사람을 우리가 갈 곳으로 인도할 차례였고, 나는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울산 KBS홀에는 오늘 밤 유난히도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그 사람들 중 일부분이 되기를 자청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오늘 여행의 클라이막스가 곧 시작됨을 옆에 앉은 그 사람과 깨달았다. 그리고 야광봉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콘서트를 기다렸다. 곧 빅마마가 무대위에 나타났으며, 그들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우리는 매료되기 시작했다. 노래 하나 하나가 이미 지워버려져 껍데기만 남은 마음 속의 과거 그리고 앞으로 펼쳐지면 좋을 것 같을 미래와 버무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는 미래 이전에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현재가 보이기 시작했고, 내 옆을 쳐다 보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그 사람을 눈을 감으며 음악를 듣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네 손가락으로 만든 네모난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카메라에 찍힌 그 모습은 이내 손가락들과 팔을 타고 심장에서 잠깐 멈추다가 약간의 박동을 일으키다가 마음 속에 저장되었다. 저장된 사진이 인화되기 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인화되면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서트가 끝나자 아쉽지만, 나는 오늘의 여행이 이제 끝나가는 것을 알았고 오늘 내 옆에 계속 있어줬던 그 사람과도 그만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버스터미널은 생각보다 가까웠고, 아쉬움을 남긴 채 그 사람이 나 몰래 사다 준 따뜻한 옥수수차를 왼손에 들고 길고도 짧은 인사를 나누며 버스에 탔다. 나의 울산 당일치기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으며, 아쉬움을 달래고자 그 사람에게 문자 하나를 날리면서 눈을 감았다.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중요하기 보다는 어떤 대상과 함께 그 시간을 보내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좋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 장소와 방법이 어떻든 상관없이 빨리지나가듯이 말이다. 다만 장소와 방법은 그 대상과 함께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촉매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울산과 오늘 들렸던 모든 장소 그리고 오늘 한 일들은 그 사람과 완벽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더할 나위 없었던 촉매였다. 2006년 12월 30일자로 내 마음에 찍힌 많은 사진들이 시간이 지남에도 불구하고 고이 간직되기를 빈다.
한해를 이보다 더 멋있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한해를 이보다 더 멋있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신문 하나와 가벼운 책 한권을 챙기고 공항가는 버스를 탈 때만 해도, 2시간 후에 보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해 나는 무심하기만 했었다. 공항에서 사과주스 3캔을 마시며 두 시간 남짓 여러 신문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때만 해도, 세상돌아가는 것 읽는데에 너무 정신이 팔린 나머지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부족했다.
비행기가 울산에 도착할 때 쯤 되서야, 푸른 바다와 근접해있는 수많은 공장들과 웅장한 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내가 비로소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왔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역동성이 살아숨쉬는 도시, 울산에 도착한 것이다.
출구를 나가면서 혼자 외톨이가 되는 것이 두려워 오른쪽으로 붙어 나왔는데, 나를 고맙게도 마중나와주고 기다려준 사람이 있어 행복했다. 이방인인 나는 오늘 하루를 이 사람에게 맡겨야 했다. 같이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면서, 눈에 펼쳐지는 새로운 광경들을 보며 이내 감탄사를 내뱉으며 "울산에서는 내가 촌놈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문무대왕릉 (文武大王陵)이며 대왕암이라고도 불리우는 수중릉이었다. 마치 바다와 산이 어우러지는 듯한 절경이 더욱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곳이었다. 바위자락까지 가는 길까지 내 옆의 사람과 많은 얘기들을 하면서, 마치 내가 그 사람과 고적답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찍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센 파도가 겹치기를 반복하며 더 큰 파도를 만들어냈고, 그 강한 물결 속에서 우리는 대자연의 강인함을 봤다. 박지성만 있으면 하이트 광고 나오겠다며, 서로 웃다가 어느새 꼭대기에 올라가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바다를 멀리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했다. 내눈에는 한사람만 들어왔고 왜 그러는지에 대한 해답을 풀지 못한채, 나는 바위에서 내려왔다.
바닷가 근처로 내려와 길을 걸으며, 시간이 정지되었음을 느꼈고, 항상 나를 사로잡고 있던 경제학적 논리와 이성에서도 잠시나마 해방되었음을 느꼈다. 일탈을 하고있는 나는 지극히 감성적이었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내가 감성적 순간을 유지하는데 더할 나위없었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칼국수 집에 들어가 밥을 맛있게 먹었고,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되는 시간을 가졌다.
밥을 다먹고 일어나 우리는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추억을 이어갈 다음 장소에서 부터 느껴져오는 방향성에 이끌렸고, 이내 자석처럼 끌렸다.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건 간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가 석양이 졌고, 두 눈도 잠시 감겼다. 눈을 떠보니, 오색 빛깔의 커다란 관람차가 원을 그리며 고층 건물 위를 돌고 있었고, 우린 택시에서 내렸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벽한 날에 관람차보다 잘어울리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을 부추겨 관람차를 타러 올라갔다. 운행을 안하는 줄 알고 이내 실망했는데, 다행히 매표소가 있어 표를 끊고 유유히 돌아가는 큰 원의 일부분이 될 수 있었다. 옆의 사람은 태풍이 불때 관람차의 문짝이 바람에 날아갔다며 나를 겁줬고, 나는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가 하늘위에 펼쳐진 투명한 도화지를 보았고, 그 위에 커다란 콤파스로 보이지 않는 원을 함께 그리고 있는 내 앞 사람과 내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이번에도 먼 야경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눈 앞의 한 사람만 볼 수 있었고, 왜 그러는지에 대한 해답을 또 다시 풀지 못한 채 관람차에서 내려야만 했다.
옆에 사람에 이끌려 이번에는 정글과 어우러진 멋진 바에 들어갔고, 주위의 색깔에 맞춰 나는 기분좋게 미도리사워 2잔을 시켰다. 분위기와 함께 마시는 사람에 취해 쉽게 취기가 올랐다. 앞에 앉은 그 사람도 애써 안취해보이려 노력했지만 이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센티해졌다. 그러다가 어느새 잔이 비었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번엔 내가 그 사람을 우리가 갈 곳으로 인도할 차례였고, 나는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울산 KBS홀에는 오늘 밤 유난히도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그 사람들 중 일부분이 되기를 자청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오늘 여행의 클라이막스가 곧 시작됨을 옆에 앉은 그 사람과 깨달았다. 그리고 야광봉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콘서트를 기다렸다. 곧 빅마마가 무대위에 나타났으며, 그들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우리는 매료되기 시작했다. 노래 하나 하나가 이미 지워버려져 껍데기만 남은 마음 속의 과거 그리고 앞으로 펼쳐지면 좋을 것 같을 미래와 버무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는 미래 이전에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현재가 보이기 시작했고, 내 옆을 쳐다 보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그 사람을 눈을 감으며 음악를 듣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네 손가락으로 만든 네모난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카메라에 찍힌 그 모습은 이내 손가락들과 팔을 타고 심장에서 잠깐 멈추다가 약간의 박동을 일으키다가 마음 속에 저장되었다. 저장된 사진이 인화되기 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인화되면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서트가 끝나자 아쉽지만, 나는 오늘의 여행이 이제 끝나가는 것을 알았고 오늘 내 옆에 계속 있어줬던 그 사람과도 그만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버스터미널은 생각보다 가까웠고, 아쉬움을 남긴 채 그 사람이 나 몰래 사다 준 따뜻한 옥수수차를 왼손에 들고 길고도 짧은 인사를 나누며 버스에 탔다. 나의 울산 당일치기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으며, 아쉬움을 달래고자 그 사람에게 문자 하나를 날리면서 눈을 감았다.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중요하기 보다는 어떤 대상과 함께 그 시간을 보내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좋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 장소와 방법이 어떻든 상관없이 빨리지나가듯이 말이다. 다만 장소와 방법은 그 대상과 함께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촉매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울산과 오늘 들렸던 모든 장소 그리고 오늘 한 일들은 그 사람과 완벽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더할 나위 없었던 촉매였다. 2006년 12월 30일자로 내 마음에 찍힌 많은 사진들이 시간이 지남에도 불구하고 고이 간직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