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출판의 특징은 거대 담론 보다는 개인의 삶에 대한 책이 많았다는 것이다. 역사 인식이나 사회 이슈도 중요하지만, 우리 삶과 직접 관련을 맺는 것은 아무래도 개인의 안락함이라는 사실이 올해 출판계 흐름을 통해 입증됐다.
교보문고가 집계한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는 경제ㆍ경영서와 소설이 각각 25종으로 가장 많이 포함됐다.
소설이 전년(30종)보다 줄어든 반면 경제경영서는 10종이나 증가해 두 분야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10위 안에 경제ㆍ경영서가 4종이나 들어간 반면 소설은 공지영의 (2위) 하나만 포함된 것도 눈여겨볼 대목. 이에 대해 교보문고측은 "금년을 경제ㆍ경영서의 해로 불러도 좋겠다"고 밝혔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발행하는 역시 경제학 열풍을 올해 출판 시장의 10대 뉴스에 포함시켰다. 경제ㆍ경영서의 특징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대중 경제서가 많고 특히 재테크 서적의 약진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등은 경제 현상에 대한 이해보다는 돈 벌기, 재산 불리기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들 서적은 제목에 '젊은' '20대' 등을 집어넣어 과거보다 더 젊은 층을 겨냥했다.
올해 출판시장의 대표 아이콘으로는 행복이 거론된다. 등이 이 범주의 책이다. 는 이들 도서가 말하는 행복을 '철저하게 개인주의적 차원'의 행복이라고 규정한다. 스펜서 존슨이 에서 '내가 행복해야만 온 세상이 행복해진다'고 적은 것이 이런 흐름을 요약한다.
자녀를 버젓이 키우는 것은 모든 부모의 관심사다. 이를 반영하듯 전혜성의 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55위에 올랐다. 이 책은 등과 함께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부모가 먼저 변할 것을 주문한다. 그런 점에서 이책들은 교육학자들의 지침서, 자신의 양육 경험을 담은 체험서와는 성격이 다르다.
조엘 오스틴의 이 교보문고 집계 8위에 오르고 (38위) (44위) 등이 100위 안에 드는 등 종교 서적도 약진을 이어갔다. 또 을 비롯해 (13위) (15위) (29위) (32위) 등 영화 혹은 드라마로 소개된 원작이 다시 사랑 받는 현상도 두드러졌다.
반면 인문학의 침체는 출판에도 반영됐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이덕일의 (67위)과 하임 기너트의 (90위) 2종만 포함됐을 뿐이다. 또 언론 등을 중심으로 토익 무용론이 제기되면서 전년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14종이나 포함됐던 토익ㆍ토플 서적이 올해에는 8종으로 급감했다.
한편 대리 번역과 도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 올해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6위) (19위) 등 비슷한 종류의 우화형 자기계발서도 많이 판매됐다.
(한국일보 발췌)
2006년을 뒤돌아보는 출판가는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와 장기적인 출판 불황의 조짐속과 함께 침체된 모습이 보인다. 각 언론사의 통계나 서점가의 판매부수를 들추지 않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책 읽는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초판 발행부수도 평균적인 3,000부에서 많이 내려가 2,000부나 1,500부 이하로 찍어내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예전에 언론기자와 나눈 대화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불황(출판)이 내려갈만큼 내려갔으니 이젠 올라갈 일만 있지 않게냐?" 라는 가볍게 하는 질문에 그는 "내려 갈 곳이 없다면 땅을 파서라도 내려간다"라는 의도하지 않는 답을 주어 당황했던 일이 있었다. '마시멜로 이야기' 번역 파문과 주5일제로 인한 활동적인 주말 시간이 올해 후반기에 본격화 되면서 이런 대화가 불미스럽게 맞아 떨어져가는 것이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1인당 한 달에 1권도 안읽는 국민의 독서량이 현실에 그래도 반영되어 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부동산'은 있지만 '독서'는 없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것은 논술의 여파 때문인지 아니면 어른들의 독서량을 아이들에게 책임전가가 되었는지 성인의 독서수준이 내려간만큼 아이들의 독서량과 수준이 반비례하게 올라갔다는 것이다. 비록 학습만화가 대세인 아동출판이지만 그로 인해 올해는 아동출판계가 질적,양적으로 무척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른들용으로 나온 도서를 편집을 달리한 아동도서로 나오고 세계문학을 아이들용으로 발간하고 출판하여 좋은 호응을 얻으며 청소년 도서는 매년 확장하는 추세이고 각 출판사들도 전향적인 기획으로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은 비활동적인 겨울철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제일 출판물량이 많다는 12월이 무색하리만큼 관망세이면서 어정쩡한 날씨처럼 두리뭉실 넘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출판의 유행과 흐름조차 없이 밋밋하기만 하다. 어떤 급물살이라도 있어야 그 물살에 휩쓸리며 따라 흐를수도 있는데 그조차 잔잔한 호수같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어 내년을 기약하는 눈치형 출판이 되어가고 있다. 출판이 도서문화를 선도해야하는데 실상은 도서문화가 출판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과격한 표현이 선뜻 나온다. 창작을 하며 국내도서가 움추려든 것도 올해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좋은 도서를 많이 공급하여 독서가들의 시선을 끌어내야하는데 검증(판매량) 되지 않은 모험적인 출판보다는 외국에서 기본적인 베스트셀러를 들여와 번역해서 내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다. 작금의 독서분위기를 보면 탓할 일은 아닌 듯 하지만 출판의 본연한 의무감(?)을 본다면 마냥 이해만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출판가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흐름이 존재한다. 대형화된 출판사도 있고 반면에 1인 출판사도 공존하고 있다. 나름대로의 모두 장단점은 있다. 대형출판사는 거대자본과 인력으로 중무장하며 기획력과 마케팅의 역동정인 활동으로 출판을 이끌고 있고 중소형 출판사는 발빠른 행보와 간소화된 시스템으로 추진력있게 시장에 대처하며 어렵지만 그래도 많은 독서가들의 입맛에 맞는 책들을 내며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종이 만지는 곳이 생각보다 많은 연봉은 아니지만 문화를 이끄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출판가의 자부심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는 편집자의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내년에는 출판가 모두의 대박을 기원하며 꽃돼지,황금돼지의 꿈을 품어본다.
판매위주로 뽑는 베스트셀러와 다른 통계를 내어보고 싶었다.
독서유행과 판매위주의 책들과 다르게 책을 많이 알고 좋아하는 각 신문사들의 출판담당 기자들의 시선이 궁금하다. 다음의 책들은 스포츠지와 경제지를 포함한 중앙일간지 20개사의 신문들을 분석하여 좋은 도서를 소개하는 취지아래 2006년 주간별로 분류하였다.
각 언론사의 시선이 보는 각도와 그 주의 사회적인 요소와 여론의 추이를 감안하여 가장 많은 시선을 받은 주간별 홍보 베스트북을 이미지와 소개된 날짜를 함께 띄우면서 부족한 내 독서량를 부끄러하고 반성하는 의미를 부여하여 내년에는 더 많은 책을 곁에 두고 싶다는 결연한 의지를 속절없이 해본다. 작심삼일이 아니기를 바라며.....
(12월9일 까지는 책의 서평은 지난 페이퍼를 참고해주시고 그 이후의 주간베스트는 연말의 바쁜 일정의 핑계를 삼아 올리지 못한 내용을 대신해 올려 놓았습니다 ^^;;)
2006년 주간별 베스트 BOOK
1월에 주목받은 책 (7일, 14일, 21일, 28일 설날休)
2월에 주목한 책 (4일, 11일, 18일, 25일)
3월에 주목한 책 (4일, 11일, 18일, 25일)
4월에 주목한 책 (1일, 8일, 15일, 22일, 29일)
5월에 주목한 책 (6일, 13일, 20일, 27일)
6월에 주목한 책 (3일, 10일, 17일, 24일)
7월에 주목한 책(1일, 8일, 15일, 22일)
8월에 주목한 책(7월29일, 8월5일, 12일)
8월에 주목한 책(8월19일, 26일, 9월2일)
9월에 주목한 책(9일, 16일, 23일, 30일)
10월에 주목한 책(7일 추석休, 14일, 21일, 28일)
11월에 주목한 책(4일, 11일, 18일, 25일)
12월에 주목한 책(2일, 9일, 16일)
대화의 역사:소크라테스가 에미넴에게 말을 걸다
Conversation:A history of a declining art (스티븐 밀러 지음/진성록 옮김/부글북스)
대화의 미래가 어둡다고 한다. 인류의 기원, 줄여 잡아도 언어의 역사만큼 오래된 대화의 역사가 쇠잔해지고 있다고 한다. 대화의 부재로 가정이 위기라고도 하고, 사회가 대립과 혼란 속에 빠져든다고도 한다. 한편에서는 처럼, "우리는 말 안하고 살수가 없나"하며 대화의 불모성을 탄식하고, "대화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착각일 뿐, 엇갈리는 독백만 있을 뿐"(레베카 웨스트)이라며 원인무효를 선언하는 소리도 들린다.
미국의 저명 에세이스트 스티븐 밀러가 쓴 (원제-)는 현대사회(엄밀히 말하면 미국사회)의 대화의 위기를 전하는 책이다. 책은 18세기 유럽 커피하우스와 살롱에서 꽃피웠던 격조 있는 대화문화, 더 멀리 중세와 고대 그리스 등 서양사 전반에 걸쳐진 대화의 문명사적 의미를 살피고, 그 퇴조의 원인을 살핀다.
저자는 대화가 언제나 누구에게나 대접 받은 것은 아니라며 서두를 연다. "지나치게 말이 많은 남자는 군인정신을 갖춘 사람이 되기 어렵다"(74쪽)고 생각했다는 스파르타의 정신도 있었거니와, 가까이에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침묵하는 무언의 남자를 찬미"한 소로, "예의 바른 대화보다는 야만적인 울부짖음이 더 좋다"(325쪽)고 한 휘트먼도 있다. 루소는 위선의 냄새를 풍긴다는 이유로 대화를 혐오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혐오한 것은 품위 없고 무의미한 대화였지, 대화 자체는 아니었다. 중년 이후의 삶을 내면의 독백으로 채운 16세기의 몽테뉴는 마음의 훈련법으로 대화만한 것이 없다고 했고, 끊임없이 자신의 개념들을 무찔러줄 지적 모험의 동반자를 갈구했다.
그는 "책으로 하는 공부에는 나른하고 연약한 몸짓만이 따르는데, 대화는 가르침과 연습을 한꺼번에 제공한다"고 썼다. 흄은 어떤가. 그는 "우리가 훌륭한 대화꾼을 즐기는 것은 그들이 안겨주는 즐거움 때문이지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 때문은 아니다"고 썼다.
저자는 성서 와 플라톤의 에서부터 계몽시대 문필가들의 책, 현대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문장까지 인용해가며 대화에 대한 다양한 입장, 바람직한 대화의 기술, 거시적 관점에서 대화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종교, 교역, 이성 등), 대화를 망치는 미시적 요소들(공손의 결핍과 과도한 공손 등)을 추적한다.
그런데 이 찬연한 대화의 역사가 왜 20세기 후반 들어 위기에 처한 것일까. 저자는 이성적 담론을 혐오하고 내면의 탐색으로 새 세상을 찾으려는 반체제문화에 혐의를 둔다.
대화보다는 개인의 해방에 사로잡힌 이들, 마약의 신봉자들, '허위의식'의 마르쿠제, 부르주아 사회를 헤게모니 노예(혹은 '진리체계의 죄수')들의 세상이라고 비판한 미셸 푸코, 종교ㆍ이념의 광신자들, 체제에 대한 분노와 경멸의 언어로 'fuck!'을 연발해대는 '분노의 나르시스트' 래퍼 에미넴까지.
또 기호(嗜好)에 따라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TV토크쇼 같은 '대화의 대용품'들, 아이팟 휴대폰 메신저 이메일 블로그 등 각종 '대화 회피 장비'들…. 세상은 지금 그 '전자 고치'속에 쌓여 있다는 게 저자의 서글픈 결론이다.
저자가 대화의 적으로 규정한 그런 모두의 혐의에 동의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또 '전자 고치'를 찢고 나와 알몸으로 서라는 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에게 그렇게 시비를 거는 것은 어쩌면 부당하다. 그는 다만 에미넴 앞에 소크라테스를 모셔온 것뿐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그는 안절부절 못하며 입시(立侍)해 있다. 에미넴의 반응이 '퍼큐!'라면 이만저만한 실례가 아니겠기에. (한국일보 발췌)
12월에 주목한 책(23일, 30일)
전체주의의 기원 1·2 (한나 아렌트 지음/이진우·박미애 옮김/한길사)
한나 아렌트는 전 생애에 걸쳐 전체주의라는 정치적 악과 치열하게 싸운 정치사상가다. 유태인 출신으로 독일에서 태어난 아렌트는 나치정권에 저항하다 프랑스와 미국으로 망명했고, 1933년부터 1951년까지 ‘무국적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아렌트는 첫 번째 저작인 ‘전체주의의 기원’을 썼다. 1945년 집필에 들어간 아렌트는 한국전쟁 이듬해인 1951년 책을 출간한다. 아렌트는 이 책의 성공으로 미국 시민권과 정치사상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이란 양극단 사이 어디엔가 서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명제를 기저로 깔고 있다. 물론 죽음과 관련된 정치병리 현상에 관한 내용은 책 전반에 소개되고 있지만, 삶과 관련된 내용은 '시작(beginning, Anfang)은 인간의 능력이었다'라는 문구로 짤막하게 표현된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결론에 이르러 삶을 부각시키는 반전으로 종결된다.
3부로 구성된 드라마 가운데 제1부에서는 아렌트의 표현대로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유대인 문제'가 전체주의 등장과 연계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밝히고 있다. 이어서 제2부에서는 부르주아 계급의 정치적 해방, 인종주의, 범민족 운동이 전체주의 운동과 연계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새로운 국가형태로서 전체주의를 기술한 제3부에 이르러 죽음 문제를 구체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전체주의의 정치적 악이 새로운 시작(탄생)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제3부에서는 두 개의 세계를 상정한다. 하나는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세계이며, 다른 하나는 죽은 후에 갈 수 있는 지옥이다. 이 지옥은 집단학살수용소, 죽음의 공장, 인간도살장 등으로 불리는 정치적 실재이다. 이를 지켜본 아렌트는 조직화된 범죄로서 대량학살이 이 지구상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담아 ‘새로운 시작’과 관련된 문구로 책을 마무리한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전체주의의 잔혹성을 해부하고 인간의 귀중함을 드러내어 삶의 다양한 의미를 제시한다. 냉전시대에 연구자들은 아렌트를 부분적으로만 조명하였지만 오늘날 이 책에 담긴 아렌트의 정치적 지혜는 폭넓고 심도 있게 부각되고 있다.
이 책의 현대적 함의를 몇 가지로 압축해 보자. 첫째, 아렌트의 독특한 선악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체주의는 인간의 '시작 능력'을 원천적으로 억압하였다. 시작 능력의 억압은 개인의 자발성 발현뿐만 아니라 정치공동체의 지속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정치적 악을 절대적 악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근대적 현상들 가운데 하나인 잉여성을 언급함으로써 절대 악의 평범성을 암시하고 있다.
둘째, 제9장 ‘국민국가의 쇠퇴와 인권의 종말’에서 언급한 '권리들을 향유할 권리'의 의미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18년간 무국적자 신세였던 아렌트는 무국적자, 난민, 소수집단 등의 인간 존엄성을 역설하고 있다. 인권담론이 단지 의도의 선언에 머물지 않고 정치협약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 상당한 적실성을 가지고 있다.
셋째,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정치적 삶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아렌트의 통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체주의가 인종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연의 법칙을 악용하였고 스탈린주의는 역사의 법칙에 입각해 정치적 삶을 왜곡시켰다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이다. 9·11테러의 주요 동인이 '도덕'이데올로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아렌트의 이데올로기 비판은 현실 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이처럼 아렌트는 선악이론, 인권이론, 이데올로기 비판 등을 제시함으로써 현대의 독자들에게 '진정한' 정치를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에는 서로 다른 정신세계를 가지고도 평생을 함께 살았던 아렌트와 블뤼허 부부의 삶과 그들의 지적 분투가 강렬하게 담겨 있다. 방대한 자료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열정과 지식을 겸비하지 않고서는 우리말로 옮기는 노고를 감내하기 어렵다. 번역본에서 간혹 낯선 어투들이 보이지만 옮긴이들의 열정, 표현의 정교함과 수려함은 이런 결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공동 저서의 공동 번역이 이채롭다.
(홍원표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철학-조선일보 발췌)
아부의 기술 You're too kind-A Brief History of Flattery
(리처드 스텐걸 지음/임정근 옮김/참솔)
진위 여부를 떠나 우리에게는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는 아부의 명구가 있다. 제1공화국 시절,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어떤 장관이 이렇게 알랑거렸다는 것인데,이 말은 한국현대사에 길이 남을 아부의 대명사가 되었다. 내가 하면 능력이고 처세술이지만 네가 하면 비열하다고 지탄받는 아부. 하지만 삶이 곧 아부이며 아부가 곧 삶이라는 심오한 경지에 도달한 고수들도 즐비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수석편집장을 지낸 리처드 스텐걸은 '서양산'아부에 대한 모든 것을 시대적 저인망으로 훑어간다.
아기를 안아주는 행위로 여성 유권자에게 다가간 힐러리 클리턴,배우에게 고가의 스포츠카를 사주며 기분을 맞춘 스티븐 스필버그,아부만큼 뛰어난 최음제가 없다고 믿은 헨리 키신저,8년 동안 클린턴의 비위를 맞춘 끝에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앨 고어.
옥스퍼드 사전에는 시대별로 통용되었던 아부(flattery)의 뜻이 10개나 적혀있다. 고대 그리스인은 아부에 대해 사회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도덕적 타락으로 정의했다. 중세에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고 잠재적으로 사회를 동요시키는 요소로 보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사회가 보다 인간중심적이고 활동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아부에 담겨 있는 경멸적인 뉘앙스의 농도가 점점 엷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아부는 죄악이 아닌,세상 어디서나 존재하는 애교 섞은 결점 정도로 인식되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아부라는 단어에 대한 조롱의 강도는 비로소 약해졌다. 옥스퍼드 사전의 마지막 열번째 항목은 "실수를 그럴 듯하게 얼버무려주고 완화시켜주는 것",나아가 "대범하고 관대한 행위"로까지 설명하고 있다.
아부가 먹혀드는 이유를 생리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아부는 세로토닌(포유동물의 혈액속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으로 요약된다. 아부는 매우 기분좋은 생화학 반응을 뇌에 일으키게 하는데,침팬지나 인간이나 동일한 반응을 일으킨다. 힘이 약한 침팬지로부터 등을 긁어주는 아부를 받은 우두머리 침팬지의 세로토닌 수치가 증가하듯 아첨꾼이 허리를 굽히고 "각하,시원하겠습니다"고 속삭일 때 대통령의 세로토닌은 요동친다. 저자는 아부를 이렇게 정의한다. "자기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놓이도록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높이는 일종의 현실 조작이자 미래의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행하는 의도적인 거래다."
아부와 권력은 늘 밀월 관계였다. 조금도 불평없이 클린턴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며 8년간 2인자의 자리를 지킨 앨 고어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점지될 수 있었다. 아부만큼 뛰어난 최음제가 없다고 믿은 헨리 키신저는 닉슨 대통령에게 살살 녹는 아부를 바쳤다. 카터 행정부에서 교육복지장관을 지낸 조세프 캘리파노는 다른 관료보다 훨씬 많이 '대통령 각하'라는 말을 문장속에 삽입하는 능력을 통해 성공가도를 달렸다. 어느 시대든 백악관에는 아부의 드림팀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고 보면 청와대에도 아부 드림팀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워싱턴에는 지금도 의무적인 아부가 만연되어 있다. 매년 연두교서 발표장에서 벌어지는 긴 기립박수는 시간이 갈수록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아부가 미국식 민주주의의 뿌리에 영양분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자잘한 아부는 조직이나 사회를 하나로 묶는 요소가 된다. 아부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일상적인 예의다." (국민일보 발췌)
되돌아본2006년 출판계와 베스트북
올해는 내가 행복하려 읽었다
2006 출판계 재테크·행복론·종교 서적 인기
<EMBED style="FILTER: GRAY(); LEFT: 10px; WIDTH: 474px; TOP: 15px; HEIGHT: 45px" src=http://mfiles.naver.net/6abb5d8291c8a7113b50/data20/2006/12/30/226/kenny_g_-_auld_lang_syne-eomsaint.wma hidden=faulse type=octet-stream invokeURLs="false" autostart="true" AllowScriptAccess="never" invokeURLS="false" loop="true">2006년 출판의 특징은 거대 담론 보다는 개인의 삶에 대한 책이 많았다는 것이다. 역사 인식이나 사회 이슈도 중요하지만, 우리 삶과 직접 관련을 맺는 것은 아무래도 개인의 안락함이라는 사실이 올해 출판계 흐름을 통해 입증됐다.
교보문고가 집계한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는 경제ㆍ경영서와 소설이 각각 25종으로 가장 많이 포함됐다.
소설이 전년(30종)보다 줄어든 반면 경제경영서는 10종이나 증가해 두 분야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10위 안에 경제ㆍ경영서가 4종이나 들어간 반면 소설은 공지영의 (2위) 하나만 포함된 것도 눈여겨볼 대목. 이에 대해 교보문고측은 "금년을 경제ㆍ경영서의 해로 불러도 좋겠다"고 밝혔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발행하는 역시 경제학 열풍을 올해 출판 시장의 10대 뉴스에 포함시켰다. 경제ㆍ경영서의 특징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대중 경제서가 많고 특히 재테크 서적의 약진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등은 경제 현상에 대한 이해보다는 돈 벌기, 재산 불리기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들 서적은 제목에 '젊은' '20대' 등을 집어넣어 과거보다 더 젊은 층을 겨냥했다.
올해 출판시장의 대표 아이콘으로는 행복이 거론된다. 등이 이 범주의 책이다. 는 이들 도서가 말하는 행복을 '철저하게 개인주의적 차원'의 행복이라고 규정한다. 스펜서 존슨이 에서 '내가 행복해야만 온 세상이 행복해진다'고 적은 것이 이런 흐름을 요약한다.
자녀를 버젓이 키우는 것은 모든 부모의 관심사다. 이를 반영하듯 전혜성의 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55위에 올랐다. 이 책은 등과 함께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부모가 먼저 변할 것을 주문한다. 그런 점에서 이책들은 교육학자들의 지침서, 자신의 양육 경험을 담은 체험서와는 성격이 다르다.
조엘 오스틴의 이 교보문고 집계 8위에 오르고 (38위) (44위) 등이 100위 안에 드는 등 종교 서적도 약진을 이어갔다. 또 을 비롯해 (13위) (15위) (29위) (32위) 등 영화 혹은 드라마로 소개된 원작이 다시 사랑 받는 현상도 두드러졌다.
반면 인문학의 침체는 출판에도 반영됐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이덕일의 (67위)과 하임 기너트의 (90위) 2종만 포함됐을 뿐이다. 또 언론 등을 중심으로 토익 무용론이 제기되면서 전년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14종이나 포함됐던 토익ㆍ토플 서적이 올해에는 8종으로 급감했다.
한편 대리 번역과 도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 올해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6위) (19위) 등 비슷한 종류의 우화형 자기계발서도 많이 판매됐다.
(한국일보 발췌)
2006년을 뒤돌아보는 출판가는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와 장기적인 출판 불황의 조짐속과 함께 침체된 모습이 보인다. 각 언론사의 통계나 서점가의 판매부수를 들추지 않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책 읽는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초판 발행부수도 평균적인 3,000부에서 많이 내려가 2,000부나 1,500부 이하로 찍어내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예전에 언론기자와 나눈 대화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불황(출판)이 내려갈만큼 내려갔으니 이젠 올라갈 일만 있지 않게냐?" 라는 가볍게 하는 질문에 그는 "내려 갈 곳이 없다면 땅을 파서라도 내려간다"라는 의도하지 않는 답을 주어 당황했던 일이 있었다. '마시멜로 이야기' 번역 파문과 주5일제로 인한 활동적인 주말 시간이 올해 후반기에 본격화 되면서 이런 대화가 불미스럽게 맞아 떨어져가는 것이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1인당 한 달에 1권도 안읽는 국민의 독서량이 현실에 그래도 반영되어 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부동산'은 있지만 '독서'는 없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것은 논술의 여파 때문인지 아니면 어른들의 독서량을 아이들에게 책임전가가 되었는지 성인의 독서수준이 내려간만큼 아이들의 독서량과 수준이 반비례하게 올라갔다는 것이다. 비록 학습만화가 대세인 아동출판이지만 그로 인해 올해는 아동출판계가 질적,양적으로 무척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른들용으로 나온 도서를 편집을 달리한 아동도서로 나오고 세계문학을 아이들용으로 발간하고 출판하여 좋은 호응을 얻으며 청소년 도서는 매년 확장하는 추세이고 각 출판사들도 전향적인 기획으로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은 비활동적인 겨울철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제일 출판물량이 많다는 12월이 무색하리만큼 관망세이면서 어정쩡한 날씨처럼 두리뭉실 넘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출판의 유행과 흐름조차 없이 밋밋하기만 하다. 어떤 급물살이라도 있어야 그 물살에 휩쓸리며 따라 흐를수도 있는데 그조차 잔잔한 호수같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어 내년을 기약하는 눈치형 출판이 되어가고 있다. 출판이 도서문화를 선도해야하는데 실상은 도서문화가 출판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과격한 표현이 선뜻 나온다. 창작을 하며 국내도서가 움추려든 것도 올해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좋은 도서를 많이 공급하여 독서가들의 시선을 끌어내야하는데 검증(판매량) 되지 않은 모험적인 출판보다는 외국에서 기본적인 베스트셀러를 들여와 번역해서 내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다. 작금의 독서분위기를 보면 탓할 일은 아닌 듯 하지만 출판의 본연한 의무감(?)을 본다면 마냥 이해만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출판가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흐름이 존재한다. 대형화된 출판사도 있고 반면에 1인 출판사도 공존하고 있다. 나름대로의 모두 장단점은 있다. 대형출판사는 거대자본과 인력으로 중무장하며 기획력과 마케팅의 역동정인 활동으로 출판을 이끌고 있고 중소형 출판사는 발빠른 행보와 간소화된 시스템으로 추진력있게 시장에 대처하며 어렵지만 그래도 많은 독서가들의 입맛에 맞는 책들을 내며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종이 만지는 곳이 생각보다 많은 연봉은 아니지만 문화를 이끄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출판가의 자부심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는 편집자의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내년에는 출판가 모두의 대박을 기원하며 꽃돼지,황금돼지의 꿈을 품어본다.
판매위주로 뽑는 베스트셀러와 다른 통계를 내어보고 싶었다.
독서유행과 판매위주의 책들과 다르게 책을 많이 알고 좋아하는 각 신문사들의 출판담당 기자들의 시선이 궁금하다. 다음의 책들은 스포츠지와 경제지를 포함한 중앙일간지 20개사의 신문들을 분석하여 좋은 도서를 소개하는 취지아래 2006년 주간별로 분류하였다.
각 언론사의 시선이 보는 각도와 그 주의 사회적인 요소와 여론의 추이를 감안하여 가장 많은 시선을 받은 주간별 홍보 베스트북을 이미지와 소개된 날짜를 함께 띄우면서 부족한 내 독서량를 부끄러하고 반성하는 의미를 부여하여 내년에는 더 많은 책을 곁에 두고 싶다는 결연한 의지를 속절없이 해본다. 작심삼일이 아니기를 바라며.....
(12월9일 까지는 책의 서평은 지난 페이퍼를 참고해주시고 그 이후의 주간베스트는 연말의 바쁜 일정의 핑계를 삼아 올리지 못한 내용을 대신해 올려 놓았습니다 ^^;;)
1월에 주목받은 책 (7일, 14일, 21일, 28일 설날休)
2월에 주목한 책 (4일, 11일, 18일, 25일)
3월에 주목한 책 (4일, 11일, 18일, 25일)
4월에 주목한 책 (1일, 8일, 15일, 22일, 29일)
5월에 주목한 책 (6일, 13일, 20일, 27일)
6월에 주목한 책 (3일, 10일, 17일, 24일)
7월에 주목한 책(1일, 8일, 15일, 22일)
8월에 주목한 책(7월29일, 8월5일, 12일)
8월에 주목한 책(8월19일, 26일, 9월2일)
9월에 주목한 책(9일, 16일, 23일, 30일)
10월에 주목한 책(7일 추석休, 14일, 21일, 28일)
11월에 주목한 책(4일, 11일, 18일, 25일)
12월에 주목한 책(2일, 9일, 16일)
대화의 역사:소크라테스가 에미넴에게 말을 걸다
Conversation:A history of a declining art (스티븐 밀러 지음/진성록 옮김/부글북스)
대화의 미래가 어둡다고 한다. 인류의 기원, 줄여 잡아도 언어의 역사만큼 오래된 대화의 역사가 쇠잔해지고 있다고 한다. 대화의 부재로 가정이 위기라고도 하고, 사회가 대립과 혼란 속에 빠져든다고도 한다. 한편에서는 처럼, "우리는 말 안하고 살수가 없나"하며 대화의 불모성을 탄식하고, "대화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착각일 뿐, 엇갈리는 독백만 있을 뿐"(레베카 웨스트)이라며 원인무효를 선언하는 소리도 들린다.
미국의 저명 에세이스트 스티븐 밀러가 쓴 (원제-)는 현대사회(엄밀히 말하면 미국사회)의 대화의 위기를 전하는 책이다. 책은 18세기 유럽 커피하우스와 살롱에서 꽃피웠던 격조 있는 대화문화, 더 멀리 중세와 고대 그리스 등 서양사 전반에 걸쳐진 대화의 문명사적 의미를 살피고, 그 퇴조의 원인을 살핀다.
저자는 대화가 언제나 누구에게나 대접 받은 것은 아니라며 서두를 연다. "지나치게 말이 많은 남자는 군인정신을 갖춘 사람이 되기 어렵다"(74쪽)고 생각했다는 스파르타의 정신도 있었거니와, 가까이에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침묵하는 무언의 남자를 찬미"한 소로, "예의 바른 대화보다는 야만적인 울부짖음이 더 좋다"(325쪽)고 한 휘트먼도 있다. 루소는 위선의 냄새를 풍긴다는 이유로 대화를 혐오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혐오한 것은 품위 없고 무의미한 대화였지, 대화 자체는 아니었다. 중년 이후의 삶을 내면의 독백으로 채운 16세기의 몽테뉴는 마음의 훈련법으로 대화만한 것이 없다고 했고, 끊임없이 자신의 개념들을 무찔러줄 지적 모험의 동반자를 갈구했다.
그는 "책으로 하는 공부에는 나른하고 연약한 몸짓만이 따르는데, 대화는 가르침과 연습을 한꺼번에 제공한다"고 썼다. 흄은 어떤가. 그는 "우리가 훌륭한 대화꾼을 즐기는 것은 그들이 안겨주는 즐거움 때문이지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 때문은 아니다"고 썼다.
저자는 성서 와 플라톤의 에서부터 계몽시대 문필가들의 책, 현대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문장까지 인용해가며 대화에 대한 다양한 입장, 바람직한 대화의 기술, 거시적 관점에서 대화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종교, 교역, 이성 등), 대화를 망치는 미시적 요소들(공손의 결핍과 과도한 공손 등)을 추적한다.
그런데 이 찬연한 대화의 역사가 왜 20세기 후반 들어 위기에 처한 것일까. 저자는 이성적 담론을 혐오하고 내면의 탐색으로 새 세상을 찾으려는 반체제문화에 혐의를 둔다.
대화보다는 개인의 해방에 사로잡힌 이들, 마약의 신봉자들, '허위의식'의 마르쿠제, 부르주아 사회를 헤게모니 노예(혹은 '진리체계의 죄수')들의 세상이라고 비판한 미셸 푸코, 종교ㆍ이념의 광신자들, 체제에 대한 분노와 경멸의 언어로 'fuck!'을 연발해대는 '분노의 나르시스트' 래퍼 에미넴까지.
또 기호(嗜好)에 따라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TV토크쇼 같은 '대화의 대용품'들, 아이팟 휴대폰 메신저 이메일 블로그 등 각종 '대화 회피 장비'들…. 세상은 지금 그 '전자 고치'속에 쌓여 있다는 게 저자의 서글픈 결론이다.
저자가 대화의 적으로 규정한 그런 모두의 혐의에 동의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또 '전자 고치'를 찢고 나와 알몸으로 서라는 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에게 그렇게 시비를 거는 것은 어쩌면 부당하다. 그는 다만 에미넴 앞에 소크라테스를 모셔온 것뿐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그는 안절부절 못하며 입시(立侍)해 있다. 에미넴의 반응이 '퍼큐!'라면 이만저만한 실례가 아니겠기에. (한국일보 발췌)
12월에 주목한 책(23일, 30일)
전체주의의 기원 1·2 (한나 아렌트 지음/이진우·박미애 옮김/한길사)
한나 아렌트는 전 생애에 걸쳐 전체주의라는 정치적 악과 치열하게 싸운 정치사상가다. 유태인 출신으로 독일에서 태어난 아렌트는 나치정권에 저항하다 프랑스와 미국으로 망명했고, 1933년부터 1951년까지 ‘무국적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아렌트는 첫 번째 저작인 ‘전체주의의 기원’을 썼다. 1945년 집필에 들어간 아렌트는 한국전쟁 이듬해인 1951년 책을 출간한다. 아렌트는 이 책의 성공으로 미국 시민권과 정치사상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이란 양극단 사이 어디엔가 서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명제를 기저로 깔고 있다. 물론 죽음과 관련된 정치병리 현상에 관한 내용은 책 전반에 소개되고 있지만, 삶과 관련된 내용은 '시작(beginning, Anfang)은 인간의 능력이었다'라는 문구로 짤막하게 표현된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결론에 이르러 삶을 부각시키는 반전으로 종결된다.
3부로 구성된 드라마 가운데 제1부에서는 아렌트의 표현대로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유대인 문제'가 전체주의 등장과 연계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밝히고 있다. 이어서 제2부에서는 부르주아 계급의 정치적 해방, 인종주의, 범민족 운동이 전체주의 운동과 연계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새로운 국가형태로서 전체주의를 기술한 제3부에 이르러 죽음 문제를 구체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전체주의의 정치적 악이 새로운 시작(탄생)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제3부에서는 두 개의 세계를 상정한다. 하나는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세계이며, 다른 하나는 죽은 후에 갈 수 있는 지옥이다. 이 지옥은 집단학살수용소, 죽음의 공장, 인간도살장 등으로 불리는 정치적 실재이다. 이를 지켜본 아렌트는 조직화된 범죄로서 대량학살이 이 지구상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담아 ‘새로운 시작’과 관련된 문구로 책을 마무리한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전체주의의 잔혹성을 해부하고 인간의 귀중함을 드러내어 삶의 다양한 의미를 제시한다. 냉전시대에 연구자들은 아렌트를 부분적으로만 조명하였지만 오늘날 이 책에 담긴 아렌트의 정치적 지혜는 폭넓고 심도 있게 부각되고 있다.
이 책의 현대적 함의를 몇 가지로 압축해 보자. 첫째, 아렌트의 독특한 선악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체주의는 인간의 '시작 능력'을 원천적으로 억압하였다. 시작 능력의 억압은 개인의 자발성 발현뿐만 아니라 정치공동체의 지속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정치적 악을 절대적 악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근대적 현상들 가운데 하나인 잉여성을 언급함으로써 절대 악의 평범성을 암시하고 있다.
둘째, 제9장 ‘국민국가의 쇠퇴와 인권의 종말’에서 언급한 '권리들을 향유할 권리'의 의미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18년간 무국적자 신세였던 아렌트는 무국적자, 난민, 소수집단 등의 인간 존엄성을 역설하고 있다. 인권담론이 단지 의도의 선언에 머물지 않고 정치협약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 상당한 적실성을 가지고 있다.
셋째,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정치적 삶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아렌트의 통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체주의가 인종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연의 법칙을 악용하였고 스탈린주의는 역사의 법칙에 입각해 정치적 삶을 왜곡시켰다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이다. 9·11테러의 주요 동인이 '도덕'이데올로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아렌트의 이데올로기 비판은 현실 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이처럼 아렌트는 선악이론, 인권이론, 이데올로기 비판 등을 제시함으로써 현대의 독자들에게 '진정한' 정치를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에는 서로 다른 정신세계를 가지고도 평생을 함께 살았던 아렌트와 블뤼허 부부의 삶과 그들의 지적 분투가 강렬하게 담겨 있다. 방대한 자료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열정과 지식을 겸비하지 않고서는 우리말로 옮기는 노고를 감내하기 어렵다. 번역본에서 간혹 낯선 어투들이 보이지만 옮긴이들의 열정, 표현의 정교함과 수려함은 이런 결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공동 저서의 공동 번역이 이채롭다.
(홍원표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철학-조선일보 발췌)
아부의 기술 You're too kind-A Brief History of Flattery
(리처드 스텐걸 지음/임정근 옮김/참솔)
진위 여부를 떠나 우리에게는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는 아부의 명구가 있다. 제1공화국 시절,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어떤 장관이 이렇게 알랑거렸다는 것인데,이 말은 한국현대사에 길이 남을 아부의 대명사가 되었다. 내가 하면 능력이고 처세술이지만 네가 하면 비열하다고 지탄받는 아부. 하지만 삶이 곧 아부이며 아부가 곧 삶이라는 심오한 경지에 도달한 고수들도 즐비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수석편집장을 지낸 리처드 스텐걸은 '서양산'아부에 대한 모든 것을 시대적 저인망으로 훑어간다.
아기를 안아주는 행위로 여성 유권자에게 다가간 힐러리 클리턴,배우에게 고가의 스포츠카를 사주며 기분을 맞춘 스티븐 스필버그,아부만큼 뛰어난 최음제가 없다고 믿은 헨리 키신저,8년 동안 클린턴의 비위를 맞춘 끝에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앨 고어.
옥스퍼드 사전에는 시대별로 통용되었던 아부(flattery)의 뜻이 10개나 적혀있다. 고대 그리스인은 아부에 대해 사회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도덕적 타락으로 정의했다. 중세에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고 잠재적으로 사회를 동요시키는 요소로 보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사회가 보다 인간중심적이고 활동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아부에 담겨 있는 경멸적인 뉘앙스의 농도가 점점 엷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아부는 죄악이 아닌,세상 어디서나 존재하는 애교 섞은 결점 정도로 인식되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아부라는 단어에 대한 조롱의 강도는 비로소 약해졌다. 옥스퍼드 사전의 마지막 열번째 항목은 "실수를 그럴 듯하게 얼버무려주고 완화시켜주는 것",나아가 "대범하고 관대한 행위"로까지 설명하고 있다.
아부가 먹혀드는 이유를 생리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아부는 세로토닌(포유동물의 혈액속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으로 요약된다. 아부는 매우 기분좋은 생화학 반응을 뇌에 일으키게 하는데,침팬지나 인간이나 동일한 반응을 일으킨다. 힘이 약한 침팬지로부터 등을 긁어주는 아부를 받은 우두머리 침팬지의 세로토닌 수치가 증가하듯 아첨꾼이 허리를 굽히고 "각하,시원하겠습니다"고 속삭일 때 대통령의 세로토닌은 요동친다. 저자는 아부를 이렇게 정의한다. "자기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놓이도록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높이는 일종의 현실 조작이자 미래의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행하는 의도적인 거래다."
아부와 권력은 늘 밀월 관계였다. 조금도 불평없이 클린턴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며 8년간 2인자의 자리를 지킨 앨 고어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점지될 수 있었다. 아부만큼 뛰어난 최음제가 없다고 믿은 헨리 키신저는 닉슨 대통령에게 살살 녹는 아부를 바쳤다. 카터 행정부에서 교육복지장관을 지낸 조세프 캘리파노는 다른 관료보다 훨씬 많이 '대통령 각하'라는 말을 문장속에 삽입하는 능력을 통해 성공가도를 달렸다. 어느 시대든 백악관에는 아부의 드림팀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고 보면 청와대에도 아부 드림팀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워싱턴에는 지금도 의무적인 아부가 만연되어 있다. 매년 연두교서 발표장에서 벌어지는 긴 기립박수는 시간이 갈수록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아부가 미국식 민주주의의 뿌리에 영양분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자잘한 아부는 조직이나 사회를 하나로 묶는 요소가 된다. 아부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일상적인 예의다." (국민일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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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