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다시보기

박혜진2006.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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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다시보기
 

  봉준호 사단이 만들어낸 well-made 영화 ‘괴물’. 이 영화에는 송강호,변희봉,박해일,배두나,고아성 등이 주요 등장인물인데 배우들 대부분이 이미 감독의 전작에서 얼굴을 선보인 적이 있다. 조금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하고 소박한 아버지 박희봉(변희봉),아버지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 남들처럼 똑똑했으나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인해 방치된 결과(단백질 섭취가 부족한 관계로) 좀 덜떨어진 큰 아들 강두(송강호),남부럽지 않은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대학시절 데모에 몸 바친 이력으로 취업에 실패하고 늘 술에 절어 사는 백수 둘째 아들 남일(박해일),실력은 있으나 결정력이 다소 부족한 수원시청 소속 양궁선수 막내딸 남주(배두나-실제로 배두나는 영화 내내 ‘수원시청’이 박혀있는 갈색 트레이닝복만 주구장창 입고 나온다^^),그리고 철모르던 시절 강두가 사고 쳐서 낳았고 이제는 아버지보다 똑똑하고 영민한 강두의 딸 현서(고아성)가 주인공이다.


  이미 잘 아려진 대로 이 영화는 한경에서 매점을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들의 일상에 한강에 나타난 괴생물체가 끼어들면서 시작된다. 한강에 출현한 괴물이 현서를 잡아 가고,괴물의 피가 얼굴에 튄 강두는 바이러스 보균자 취급을 받으며 병원에 감금되다시피 하는데 죽은 줄 알았던 현서의 전화로 가족들이 모두 괴물퇴치와 현서구출에 나서게 된다. 아버지는 전 재산을 털어 현서를 구해낼 물건을 구매하는데,대행업체에서는 이들 가족의 불행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2면지에 복사한 한강지도를 50만원이나 받을 정도로 폭리를 취한다. 현서는 특유의 영민함과 기지를 발휘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스러져가는 하수구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는데 영화는 어쩌면 괴물과 현서,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이 팽팽한 삼각관계(?)를 이루는 듯 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정의감 넘치고 용감한 현서 역의 고아성이 무척 인상적으로 남는다.


  괴물에게 하나뿐인 손녀와 딸,조카를 잃어버린 이 가족들에게 주위의 반응은 싸늘할 정도로 냉담하다. 경찰이나 병원 관계자,심지어 미디어에서도 어느 누구도 딸이 살아있다는 강두의 항변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오히려 강두를 바이러스 감염자에 정신병자 취급이다. 아마 조금 더 일찍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면 이 가족은 이런 처절한 사투 없이도 현서를 손쉽게 구해낼 수 있었을 것이고 물론 영화는 재미를 잃었을 테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비정한 현실에서 단지 주위 사람들은 정신병자 취급이나 이 가족들에게 걸린 현상금에 연연해 할 뿐이다. 괴물이 출현했고 많은 사람들이 사상되었지만,초기에는 뉴스 속보로도 방송되지 않을 만큼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도시에 괴생물체가 출현했지만 한강 주변만 폐쇄 될 뿐,사람들은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학교를 다니고,바이러스 보균자 가족들에게 걸린 현상금에 목을 맨다. 나와 내 주변의 일이 아니라면 상관없는 도시사회의 단면을 비정하게 꼬집는 한편,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시니컬하고 자조적인 비웃음을 날린다.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유머 코드는 웃음을 만들어내긴 하지만,어쩐지 씁쓸함이 짙게 남는다.


  헐리웃이나 일본의 괴수영화들이 거대한 몸집을 무기로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거나,그 밖의 다른 재난 영화들도 엄청난 스펙터클을 자랑하며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것에 반해 ‘괴물’에 등장하는 괴물은 한강에 서식하며 한강 주변에서만 공포를 일으킨다. 게다가 그 규모 면에서도 킹콩이나 고질라에 비길 바 못 된다. 커다란 코끼리 크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찌 보면 다소 왜소한 크기의 괴물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기보다는 예전 깊은 산속에 출현해서 사람들을 잡아먹었다는 호랑이 수준이다. 게다가 이 괴물은 헐리웃 재난영화에서 종종 사용되어지는 수법인 바이러스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원래부터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이 괴물은 단 한마디의 대사도 없지만 어쩐지 처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현서의 잘 터지지 않는 오래된 핸드폰이나 현서의 새 핸드폰을 사주기 위해 빈 컵라면 통에 100원짜리 500원짜리 동전을 오래도록 모아온 강두의 부정엔 눈물이 날 만큼 뭉클하다.  영화의 마지막은 괴물과 가족들이 함께 있었던 흔적을 훑어가며 아버지와 딸을 잃은 강두와 하나뿐인 가족인 형을 잃어버린 재주의 동거로 따뜻하게,혹은 쓸쓸하게 막을 내린다. 물론 괴물의 출현 이후 자잘한 자극에도 촉각을 곤두세우지만 그들은 가족이라는 새로운 울타리로 들어서 있다. 괴물이 사라진 후 남일과 남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남일은 취업에 성공했을까? 남주는 양궁 금메달을 땄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