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이 공간(싸이광장)에 어떤 그리스도인이 집창촌 윤락행위를 근절시키자는 취지로 글을 올렸다가 이곳(싸이광장)에서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어떤 사람들에게 별 해괴한 비난과 모욕과 폄하와 억지주장을 다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그리고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의지없는 사람들까지 내가 설득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은 하여 이 사회를 개혁하는 일을 하는것은 고사하고 기껏하는 일이 악을 옹호하고 악인들의 편에서서 같은 신앙안에서 자신의 형제를 모욕하면서까지 어리석은 말을 하며 어리석게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의 문제까지 좌시할 수는 없어 부득히하게 이글을 남기게 되었다.
형제자매들의 그러한 연약한 생각과 행동은 아래의 열거된 세가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본다...
1. 성매매와 매춘.윤락은 악이 아니다.
2.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으니 그리스도인은 그 행위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3. 그리스도인이 성매매 특별법에 근거하여 집창촌의 윤락행위를 근절시키려고 하는 노력은 사랑과 자비가 없는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행위다.
성경과 이성과 양심에 근거하여 나는 위의 세가지 오해들에 대해 해명하고자 한다.
첫째 오해에 대해 말한다.
매춘윤락과 성매매는 죄가 아닌가?
2004년에 제정 발효된 성매매 알선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그 행위는 분명 범죄다. 누구도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그럼 성경(성서)은 뭐라고 하고 있는가?
모든 그리스도인이 외우고 지키고 있는 10계명에서는 간음하지말라는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간음이 무엇인가? 결혼한 자신의 배우자외에 다른 대상과 육체적 관계맺음을 하는 것이 간음이다. 성매매.매춘윤락은 성매매 여성 스스로 간음을 하는 것이며 성매매.매춘 윤락에 참여한 가정을 가진 배우자있는 남성과 미혼인 남성역시 성매매 여성과 더불어 간음(간통)을 하는 것이다.
구약성경 신명기 23장17절 (현대인의 성경 '모세의 설교' 23장 17절)을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창녀나 남창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인간들이 번 더러운 돈을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에 서약을 갚는 예물로 가져오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런 자들을 아주 미워하십니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21장 8절과 27절을 보면 이런기록이 있다. " 그러나 비겁한 사람과 불신자와 흉악한 사람과 살인자와 음란한 사람과 마술사와 우상 숭배자와 모든 거짓말쟁이들은 유황이 타는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이것이 둘째 죽음이다... 그러나 더러운 짓과 역겨운 짓을 하는 사람과 거짓말쟁이는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마태복음 5장 28절에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한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분이시다. 그런 분이 어찌 돈을 위하여 하루에도 많게는 10명도 넘는 남자와 음행을 행하는 성매매.매춘윤락을 죄가 아니라고 하시겠는가?
성경을 외면하고 폐하면서까지 부패한 억지를 부리지말자 !
둘째 오해에 대해 말한다.
예수님은 분명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여인에게 괜찮으니 계속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신적 없으시다.
해당본문을 자세히 살펴보자.
[요한복음 8장 1절~11절]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 인들이 간음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았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이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있느냐 너를 정죄한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예수님은 그 여인을 돌로치지 않으셨을 뿐 결코 그 행위가 죄가 아니라거나 계속 그러한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말씀하신적은 없으시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어떤 세상사람처럼 성매매. 매춘윤락을 하는 여성들을 향해 걸레 X ,짐승만도 못한 X ...등등의 인격모독적인 말을 해서는 안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 이라고 자처하면서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그리스도인답게 말하든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하지말라고 할것이다.
그러나 성경과 법과 양심에 근거하여 그리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확장시켜나가야할 의무를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춘윤락.성매매 라는 악을 향하여 정당한 윤리적 평가를 내리고 타인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정당한 윤리적 비난을 하는 것은 나는 구분지어야 한다고 본다.
모든 정당한 윤리적 판단.평가.비난 마져 안된다고 성경이 결코 명령한적 없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과 율법학자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마태복음 23장 33절"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그들을 향해 '평토장한 무덤' 이라고 일컬으셨다.
고린도 전서 13장을 쓴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5장에서 고린도 교회에서 음행을 한 사람을 일컬으며 이런음행은 이방인중에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고 이런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다고 말했으며 이 악한 사람을 너희중에서 내어쫓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악에 침묵하며 감싸주려고만 했던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말하였다.
어찌된 일일까? 그리스도인의 윤리의 전부는 사랑인데???
하나님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시듯이 그를 믿고 사랑하고 본받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윤리의 두 기둥은 사랑만이 아니라 사랑과 공의인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잘못된 것에 공의로운 분노를 품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같이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같이 미워할 수 있다. 물론 자기자신이 아닌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말이다... 오히려 지금 이시대는 빌 하이벨스 목사가 말한 '거룩한 분노의 리더쉽'- 목회와 신학 12월호- 이 절실히 요쳥되는 시대이다. 조선 그리스도교 초기역사를 보면 정부의 관리 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많은 곳에 부임하기를 꺼렸다고 한다. 그이유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부정의한 것과 잘못된 것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않고 개혁되도록 끊임없이 요구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어떤가? 사랑.관용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악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과 연약함을 정당화하고 심지어 이 세상의 악에 대하여 정당한 판단과 비난을 가하며 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형제나 조롱하고 모욕하고 폄하하고 있지는 않는가?
카톨릭 역사에서 사후 가장 짧은 기간내에 성인으로 시성된 성 안토니우스도 고리사채업자들의 악행에 맞서 매우 강경하고 비판적인 그리고 비난적인 어조로 그들을 감독할 책임이 책임이 있는 정부기관에 그들의 악행을 고발하고 일반시민들 앞에서 외치지 않았던가? 세계에서 최연소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마틴루터킹 목사역시 흑인들의 인권을 옹호하기위해 백인들의 인종차별적인 행태와 흑인탄압 이라는 범죄에 대해 유색인종주의자들을 향해 강경한 표현과 어조로 그들을 비난하고 비판하지 않았던가?
세번째 오해에 대해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과 양심과 이나라의 정당한 법을 근거하여 집창촌 성매매 라는 악을 근절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랑이 없고 자비가 없는 행위가 아니라 그저 정의로운 행위일뿐이다. 오히려 이웃의 가정이, 청소년들이, 지역사회가 어떤 피해를 입고 어떤 악영향을 입든 말든 손하나 까딱하지않고 있다가 어떤 형제가 그 악에 대항하여 정의로운 법집행을 외치면 그 형제가 쓴 표현중에 정당한 윤리적 비판이든 뭐든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비난을 가한 표현이 없나만을 살펴 그 형제를 모욕하고 정죄하는 그런 행위야 말로 사랑이 없는 그리고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행위이다.
종교개혁사를 보면 프로테스탄트는 카톨릭을 향하여 교리적 개혁만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카톨릭이 실행하지못한 윤리적 개혁까지 실천하였다. 종교개혁가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카톨릭이 방관해온 매음굴( 지금의 집창촌)들에 철퇴를 가했다고 역사가들은 적고 있다. 그들은 성경을 바로 해석할 줄 몰라서 그러한 일을 한 줄 아는가? 그들은 사랑이 부족해서 자비가 부족해서 그러한 일을 한줄 아는가? 그들은 성경을 근거로 일어난 사람들이다. 루터는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마을에 들아가 설교를 했던 사람이고 존 캘빈은 자신이 사역하는 곳을 지나가는 가난한 유학생 하나에게까지 과분한 친절을 베풀어 줄 정도로 자비로운 사람이였다.
집창촌에 머물러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과 그들을 이용하는 포주들과 그곳에 기생하는 조폭들과 성매매 여성들과 더불어 간음을 한, 간음을 하고있는 사람들은 결코 회개하기전까지 구원을 얻지못한다. (고린도 전서 6장 9절.10절, 에베소서 5장 5절, 갈라디아서 5장 19절~21절, 요한계시록 21장 8절.27절,22장 15절....)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옥의 존재를 믿기때문에 순교하며 온갖 모욕과 멸시와 핍박을 참으며 전도하고 선교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라! 어떤 것이 많은 사람의 영혼을 지옥에 던져지지 않게 하는 실천이 되겠는지 진지하게 한번 생악해보라!!!
사랑.관용 타령과 초코파이 행사와 좋은 책읽어주기 행사의 노력으로 (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런 노력으로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1년에 1명 '집창촌 성매매 여성 회개수기' 발표 될때 수천의 영혼이 지옥에 던져지며 (수원중앙교회 고명진목사님은 1일 평균 35만8000명의 남성이 윤락녀와 간음을 하고 있다는 통계를 본적있다고 12월31일 설교한바가 있다) 수십만의 미혼남성들이 간음으로 더럽혀지며 수십만의 기혼 남성들이 간통으로 가정을 더럽히게 된다.( 이런 현실적 상황도 같이 균형있게 헤아려야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최후심판과 지옥의 존재를 맏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한번 죄의 수렁에 빠진 사람이 그 악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하는 것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윤락녀'대신 '성매매여성' 이란 좋은(?) 표현을 써주며 그들이 그일을 계속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실천의 전부가 아니다...
집창촌이 법대로 폐쇄되게 노력하여 그들이 그곳을 억지로라도 떠나 자신을 돌아볼수 있게 만들어주고 새로운 삶으로 비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더 가치있고 더 나은 실천이다...
그들이 그곳을 떠난 후에는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호소하여 그들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
정의로와야 할때 정의롭고 자비로와야 할때 자비롭자...
집창촌 성매매 영업을 근절시키고자 할때는 자비를 외치고 집창촌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을 돕자고 할때는 정의를 외치는 위선적이고 변덕스럽고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자!!!
성매매 여성과 매춘윤락에 대한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오해에 대하여
이전에 이 공간(싸이광장)에 어떤 그리스도인이 집창촌 윤락행위를 근절시키자는 취지로 글을 올렸다가 이곳(싸이광장)에서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어떤 사람들에게 별 해괴한 비난과 모욕과 폄하와 억지주장을 다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그리고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의지없는 사람들까지 내가 설득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은 하여 이 사회를 개혁하는 일을 하는것은 고사하고 기껏하는 일이 악을 옹호하고 악인들의 편에서서 같은 신앙안에서 자신의 형제를 모욕하면서까지 어리석은 말을 하며 어리석게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의 문제까지 좌시할 수는 없어 부득히하게 이글을 남기게 되었다.
형제자매들의 그러한 연약한 생각과 행동은 아래의 열거된 세가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본다...
1. 성매매와 매춘.윤락은 악이 아니다.
2.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으니 그리스도인은 그 행위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3. 그리스도인이 성매매 특별법에 근거하여 집창촌의 윤락행위를 근절시키려고 하는 노력은 사랑과 자비가 없는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행위다.
성경과 이성과 양심에 근거하여 나는 위의 세가지 오해들에 대해 해명하고자 한다.
첫째 오해에 대해 말한다.
매춘윤락과 성매매는 죄가 아닌가?
2004년에 제정 발효된 성매매 알선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그 행위는 분명 범죄다. 누구도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그럼 성경(성서)은 뭐라고 하고 있는가?
모든 그리스도인이 외우고 지키고 있는 10계명에서는 간음하지말라는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간음이 무엇인가? 결혼한 자신의 배우자외에 다른 대상과 육체적 관계맺음을 하는 것이 간음이다. 성매매.매춘윤락은 성매매 여성 스스로 간음을 하는 것이며 성매매.매춘 윤락에 참여한 가정을 가진 배우자있는 남성과 미혼인 남성역시 성매매 여성과 더불어 간음(간통)을 하는 것이다.
구약성경 신명기 23장17절 (현대인의 성경 '모세의 설교' 23장 17절)을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창녀나 남창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인간들이 번 더러운 돈을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에 서약을 갚는 예물로 가져오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런 자들을 아주 미워하십니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21장 8절과 27절을 보면 이런기록이 있다. " 그러나 비겁한 사람과 불신자와 흉악한 사람과 살인자와 음란한 사람과 마술사와 우상 숭배자와 모든 거짓말쟁이들은 유황이 타는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이것이 둘째 죽음이다... 그러나 더러운 짓과 역겨운 짓을 하는 사람과 거짓말쟁이는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마태복음 5장 28절에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한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분이시다. 그런 분이 어찌 돈을 위하여 하루에도 많게는 10명도 넘는 남자와 음행을 행하는 성매매.매춘윤락을 죄가 아니라고 하시겠는가?
성경을 외면하고 폐하면서까지 부패한 억지를 부리지말자 !
둘째 오해에 대해 말한다.
예수님은 분명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여인에게 괜찮으니 계속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신적 없으시다.
해당본문을 자세히 살펴보자.
[요한복음 8장 1절~11절]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 인들이 간음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았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이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있느냐 너를 정죄한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예수님은 그 여인을 돌로치지 않으셨을 뿐 결코 그 행위가 죄가 아니라거나 계속 그러한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말씀하신적은 없으시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어떤 세상사람처럼 성매매. 매춘윤락을 하는 여성들을 향해 걸레 X ,짐승만도 못한 X ...등등의 인격모독적인 말을 해서는 안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 이라고 자처하면서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그리스도인답게 말하든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하지말라고 할것이다.
그러나 성경과 법과 양심에 근거하여 그리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확장시켜나가야할 의무를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춘윤락.성매매 라는 악을 향하여 정당한 윤리적 평가를 내리고 타인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정당한 윤리적 비난을 하는 것은 나는 구분지어야 한다고 본다.
모든 정당한 윤리적 판단.평가.비난 마져 안된다고 성경이 결코 명령한적 없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과 율법학자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마태복음 23장 33절"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그들을 향해 '평토장한 무덤' 이라고 일컬으셨다.
고린도 전서 13장을 쓴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5장에서 고린도 교회에서 음행을 한 사람을 일컬으며 이런음행은 이방인중에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고 이런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다고 말했으며 이 악한 사람을 너희중에서 내어쫓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악에 침묵하며 감싸주려고만 했던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말하였다.
어찌된 일일까? 그리스도인의 윤리의 전부는 사랑인데???
하나님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시듯이 그를 믿고 사랑하고 본받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윤리의 두 기둥은 사랑만이 아니라 사랑과 공의인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잘못된 것에 공의로운 분노를 품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같이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같이 미워할 수 있다. 물론 자기자신이 아닌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말이다... 오히려 지금 이시대는 빌 하이벨스 목사가 말한 '거룩한 분노의 리더쉽'- 목회와 신학 12월호- 이 절실히 요쳥되는 시대이다. 조선 그리스도교 초기역사를 보면 정부의 관리 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많은 곳에 부임하기를 꺼렸다고 한다. 그이유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부정의한 것과 잘못된 것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않고 개혁되도록 끊임없이 요구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어떤가? 사랑.관용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악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과 연약함을 정당화하고 심지어 이 세상의 악에 대하여 정당한 판단과 비난을 가하며 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형제나 조롱하고 모욕하고 폄하하고 있지는 않는가?
카톨릭 역사에서 사후 가장 짧은 기간내에 성인으로 시성된 성 안토니우스도 고리사채업자들의 악행에 맞서 매우 강경하고 비판적인 그리고 비난적인 어조로 그들을 감독할 책임이 책임이 있는 정부기관에 그들의 악행을 고발하고 일반시민들 앞에서 외치지 않았던가? 세계에서 최연소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마틴루터킹 목사역시 흑인들의 인권을 옹호하기위해 백인들의 인종차별적인 행태와 흑인탄압 이라는 범죄에 대해 유색인종주의자들을 향해 강경한 표현과 어조로 그들을 비난하고 비판하지 않았던가?
세번째 오해에 대해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과 양심과 이나라의 정당한 법을 근거하여 집창촌 성매매 라는 악을 근절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랑이 없고 자비가 없는 행위가 아니라 그저 정의로운 행위일뿐이다. 오히려 이웃의 가정이, 청소년들이, 지역사회가 어떤 피해를 입고 어떤 악영향을 입든 말든 손하나 까딱하지않고 있다가 어떤 형제가 그 악에 대항하여 정의로운 법집행을 외치면 그 형제가 쓴 표현중에 정당한 윤리적 비판이든 뭐든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비난을 가한 표현이 없나만을 살펴 그 형제를 모욕하고 정죄하는 그런 행위야 말로 사랑이 없는 그리고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행위이다.
종교개혁사를 보면 프로테스탄트는 카톨릭을 향하여 교리적 개혁만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카톨릭이 실행하지못한 윤리적 개혁까지 실천하였다. 종교개혁가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카톨릭이 방관해온 매음굴( 지금의 집창촌)들에 철퇴를 가했다고 역사가들은 적고 있다. 그들은 성경을 바로 해석할 줄 몰라서 그러한 일을 한 줄 아는가? 그들은 사랑이 부족해서 자비가 부족해서 그러한 일을 한줄 아는가? 그들은 성경을 근거로 일어난 사람들이다. 루터는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마을에 들아가 설교를 했던 사람이고 존 캘빈은 자신이 사역하는 곳을 지나가는 가난한 유학생 하나에게까지 과분한 친절을 베풀어 줄 정도로 자비로운 사람이였다.
집창촌에 머물러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과 그들을 이용하는 포주들과 그곳에 기생하는 조폭들과 성매매 여성들과 더불어 간음을 한, 간음을 하고있는 사람들은 결코 회개하기전까지 구원을 얻지못한다. (고린도 전서 6장 9절.10절, 에베소서 5장 5절, 갈라디아서 5장 19절~21절, 요한계시록 21장 8절.27절,22장 15절....)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옥의 존재를 믿기때문에 순교하며 온갖 모욕과 멸시와 핍박을 참으며 전도하고 선교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라! 어떤 것이 많은 사람의 영혼을 지옥에 던져지지 않게 하는 실천이 되겠는지 진지하게 한번 생악해보라!!!
사랑.관용 타령과 초코파이 행사와 좋은 책읽어주기 행사의 노력으로 (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런 노력으로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1년에 1명 '집창촌 성매매 여성 회개수기' 발표 될때 수천의 영혼이 지옥에 던져지며 (수원중앙교회 고명진목사님은 1일 평균 35만8000명의 남성이 윤락녀와 간음을 하고 있다는 통계를 본적있다고 12월31일 설교한바가 있다) 수십만의 미혼남성들이 간음으로 더럽혀지며 수십만의 기혼 남성들이 간통으로 가정을 더럽히게 된다.( 이런 현실적 상황도 같이 균형있게 헤아려야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최후심판과 지옥의 존재를 맏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한번 죄의 수렁에 빠진 사람이 그 악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하는 것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윤락녀'대신 '성매매여성' 이란 좋은(?) 표현을 써주며 그들이 그일을 계속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실천의 전부가 아니다...
집창촌이 법대로 폐쇄되게 노력하여 그들이 그곳을 억지로라도 떠나 자신을 돌아볼수 있게 만들어주고 새로운 삶으로 비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더 가치있고 더 나은 실천이다...
그들이 그곳을 떠난 후에는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호소하여 그들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
정의로와야 할때 정의롭고 자비로와야 할때 자비롭자...
집창촌 성매매 영업을 근절시키고자 할때는 자비를 외치고 집창촌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을 돕자고 할때는 정의를 외치는 위선적이고 변덕스럽고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자!!!
그리고 정의와 사랑이 대립할때 실천적 순서는 정의가 먼저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자...